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16-18절(요약)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15:16-18, 개역한글)
- 김민원 형제님 사회 : 16절부터 교제 부탁 드리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6절에 사도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역자로서 복음을 제공하며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받은 은혜는 그들이 예수님께 나갈 수 있도록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심을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 지역을 두루 다니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까지도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은사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게 하시며 또한 성취하실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할 때에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6절에 말씀해주신 것과 비슷한데요. "이 은혜"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처음에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은혜로 주님을 만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에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통한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일하셨고 이방인들이 복음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죄 가운데 살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18절에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말'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 말씀이었을 것이며 '일'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며, 많은 위협 속에서도 멈추지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님을 1장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교훈하고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그가 확신합니다. 그가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을 올바르게 교훈하고 변화시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6절에 보면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제사장의 직무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이방인들입니다. 물론 이것은 구약의 개념처럼 이방인을 제물로 바쳤다는 개념으로 잘못 이해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아는 것과 같이 제사장은 굉장한 조심함과,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사장은 특별히 선택된 레위 지파에서 아론의 자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나님 앞에 받음직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것이라는 수식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이 제사장 일과 같이 중요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도 가장 큰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여져서 하나님이 받으심직하게 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수많은 헌신과 기도도 같이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자랑하는데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만 자랑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낫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낫게 해주시겠다가 아니라 그것이 네게 족하다고 답하셨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답을 하십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그의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인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가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바울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몸도 아프고 몸도 안좋은데 이러한 사역을 행하겠는가?' 그러나 성경의 많은 부분을 사도바울이 기록했습니다. 사도바울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대단하신 형제 자매님들이 계시지만 그러한 분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6절에 "이 은혜는"으로 시작합니다. 이 은혜는 너무나 특별한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만났을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5-16, 개역한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자입니까? 성도를 잡아서 옥에 가두는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고 바울이라는 새 이름도 주셨으며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사도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사장 직무도 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신제사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이 구원받으므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영적인 제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일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원어적으로 이것은 사도바울에게만 사용된 단어는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면서 동일한 단어, 일꾼으로 보냅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은 사사로운,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임명이 아니라 주님에게 임명을 받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여 함이라" 한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거룩하게 하시는 분, 구원받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화되어 가는 과정도 성령의 역사로 되어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을 허락하시는 가에 대해서도 또한 감사가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15절에 "대강"이라는 단어를 교제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강, 하면 자세하지 않고 대충대충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정말 그런지 보게 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대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단어로는 "여기저기"라는 뜻으로 쓰이며 현대어 성경으로는 "몇가지"라고 번역 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가르친 몇가지 교회진리가 아닌가 해석이 됩니다.
Q. 혹시 이 '대강'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해주실 형제님이 계시다면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7절을 원어적인 측면을 살펴 볼 때에 그의 자랑은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높이는 취지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이 아닌 모든 자랑은 죄가 되어야 한다, 철저하게 사도바울의 자랑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일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역사하사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사도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자기 자랑을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자랑을 살펴보면 그는 날마다 죽는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은 언제든지 배제됩니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에서는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드린것이 자기에게 면류관이 될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처럼 자신이 어떠한 자였는데 이러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이 사도바울과 같은 삶을 살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일꾼이 제사장 직무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 개역한글)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15:9, 개역한글)
교회를 핍박하던 자를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몇가지가 언급됩니다. 첫 번째는 제사장(16절), 두 번째는 전도자(19절)입니다. 세 번째는 건축자(20절)입니다.
16절에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이를 오해하는 분이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개역한글)
바울 형제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측면에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것이 이해됩니다.
저희 모임에서 여러 지역모임을 개척하신 형제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들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다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개척하는 분들은 또 다른 곳에 개척하러 나가시지만 그 세워진 모임은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여러 원인 중에서 그 부분을 말씀하신 형제님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기에 저희들이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모임이 어지러울 수록 육신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말하고 행동할 때 사람이 드러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31, 개역한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3:3, 개역한글)
바울은 자기가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무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자랑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자랑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민원 형제님 :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20절) 한글성경으로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niv성경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기를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개역한글)
- 김보영 형제님 : 18절은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왜냐하면"이라고 시작합니다. 왜나하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말도 하고 행하고 주님처럼 행하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뭔가를 했다고 생각할 때 교만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을 하고서도 주님께 칭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책망을 듣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자랑에 대해서 계속 교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는 예시가 있습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행14:27, 개역한글)
주어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말합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15:12, 개역한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형제님은 많은 일들을 했지만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겸손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롬1:5, 개역한글)
전도자는 믿게만 하는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하게 하는 것까지 하는 것이 전도자의 일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개역한글)
믿음의 반대가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 형제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는다고 한다면 당연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침례를 받을 이유가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가르치실뿐 아니라 행하셨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행1:1, 개역한글)
주님꼐서는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행하셨습니다. 전도자는 먼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먼저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한 전도자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15:18, 개역한글)
바울 형제님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방인의 사도로써 일하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 > 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22-27절(요약) (0) | 2024.05.11 |
---|---|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19-21절(요약)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13-15절(요약)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7-12절(요약)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5장 4-6절(요약) (0) | 202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