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17-21절(요약)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11:17-21,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 지난 시간에는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이르는 놀라운 이야기를 교제했습니다. 오늘은 돌감람나무가 감람나무의 접붙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1장의 주제가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 이스라엘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그 사랑이 변치 않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16절 부분 교제 더 못한 부분이 있으면 교제해 주시고 오늘은 17-18절 부분을 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많이 자랍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많이 쓰입니다. "또한 가지가 얼마가 꺾여졌는데" 가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것이 실패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떨어져 나갈때에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가지는 스스로 꺾여져 나갔습니다. 뿌리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살아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할지라도 살수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살수 있는 방법이 이방인에게 넘어갔는데 그때에 가지가 살아날수 있는 것입니다. 튼튼한 원가지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이방인이 그 믿음에 동참할때에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꺾여짐과 접붙임이라는 두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꺾여짐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로서 잘려진 가지가 생명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접붙이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인 가지는 본 나무에 더 접붙임을 받을수 있다고 말씀하며 자긍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7절에 보면 "가지 얼마가 꺾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지만 모든 유대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맺어질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로 시선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꺾이고 유대인들의 자리에 이방인들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18절에 '자긍'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는 우쭐대거나 경멸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이방인은 자기가 접붙여진것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유대인을 경멸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유대인들의 복음의 거부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이로 인해서 이방인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됨을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믿음의 뿌리이고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4:22, 개역한글)
유대인들이 비록 믿음에서 제쳐짐을 당했지만 이방인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빚진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11:17, 개역한글)
이 접붙임은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접붙임과는 전혀 다른것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고염을 자르고 그 위에 좋은 가지를 붙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반대로 말씀합니다. 이는 뿌리로부터 생명을 받는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아브라함입니다. 그 믿음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18절에 또한 가지를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한번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자랑하며 유대인들을 무시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사도는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인해서 자기들이 구원받았음에도 오히려 유대인들을 무시하는데까지 나가기에 사도는 이러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11:18,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 18절에 "자긍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읽을때에 이것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여진 말씀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로마 시민권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는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받고있는 나라였고 그들은 식민지배를 받는 나라의 종교를 믿는 것이었기에 이해가 쉬웠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실때 얼마의 가지가 꺾였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의 완고함과 회개치 않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접붙임받은 가지가 말합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롬11:19, 개역한글)
이스라엘이 꺾여진 것은 날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이와같이 자기를 높이고 교만케 되고 어떠한 측면이든지 하나님의 은혜와는 동떨어지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체질이고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러한 마음을 품지 않을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당연히 꺾이우지 않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완전하지만 지역교회는 부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역교회에게 경고하십니다. 19-20절을 볼때에 우리는 자긍하지 말고, 뿌리로부터 나오는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 중에 일부가 넘어지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방인에게 흘러갔고,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고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이 받아지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의 수준으로 회복될 것을 말씀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회복된 이스라엘로 나타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11:16, 개역한글)
거제로서 처음 익은 떡덩이를 구별하여 드립니다. 그렇게 되었을때 그 곡식으로 만든 모든 떡들은 성별된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처음익은 곡식가루가 있고 그 이후의 떡덩이들도 거룩한 것입니다. 이는 이후 민족적으로 회복될 이스라엘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뿌리와 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꺾여진 참 감람나무는 제쳐진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떠한 배경에 있느냐가 참감람나무인지 아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열매를 맺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꺾여진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이방인이 받게 되었습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받아서 열매를 맺었을때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잊고 자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를 보존하는 것은 뿌리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저희들은 배경이나 그 사람의 외모나 능력이나 재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창조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꺾이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열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 한재광 형제님 : 17절에 "가지 얼마"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일부'로 오해될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대부분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얼마"는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맥적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신지 보이십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민족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을 내시리며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눅3:23, 개역한글)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눅3:38, 개역한글)
이것은 별거 아닌 족보를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담 이상이 하나님이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나님은 피조물과 창조주간의 관계임에도 동일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어 놓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이루어갈때에 여러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깁니다. 그럴때에 사람은 여러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얼마나 놀랍느냐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아담의 범죄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혈통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이스라엘의 뿌리가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되고 아브라함 개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을 발휘한 대상,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이스라엘은 결국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이방인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하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11:20-21, 개역한글)
참감람나무도 아끼지 아니하셨는데 접붙임을 가지는 더욱 쉽지 않는가를 말씀합니다. 접붙임을 받은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자긍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재광 형제님께서 "얼마가 꺾여졌다"고 말씀하신 내용 중에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방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21-22절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11:20-21, 개역한글)
접붙임을 이방인에게 필요한 마음은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넘어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함이 있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꺾여진 이유는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구원받았고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은혜를 받았는데 두려워해야 합니다. 믿음을 붙잡지 않고 세상의 행위, 자랑을 붙잡는다면 하나님께서 꺾어내실 것을 기억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 > 로마서 성경읽기(요약) 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26-32절 (0) | 2024.05.11 |
---|---|
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22-25절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12-16절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8-11절 (0) | 2024.05.11 |
성경읽기 : 로마서 11장 1-7절 (0) | 202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