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세 개의 십자가 > 24년 3월 31일 일요일(요약2) / 최재홍 형제님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4-43, 개역한글)
오늘은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세개의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처형 방식입니다. 이는 사형수들이 서서히 죽어가도록 만든 처형틀입니다.
중앙의 십자가에는 예수님께서 달려 계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러 지역을 다시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죄인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을 은혜를 베푸시고, 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 중에 죄라고 부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생각해 보시면서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양 옆에 달린 사람들은 강도였습니다. 그들은 둘다 예수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27:44, 개역한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막15:32, 개역한글)
양쪽에 달린 강도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죄로 인해서 유죄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면 상식적으로 자기 죄를 반성하는것이 맞을것 같지만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욕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동일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에게 어떤 차이점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한 강도가 회심하게 됩니다.
한명은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이는 모든 인류의 모습을 그림자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강도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악한 생각과 마음을 품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한쪽에 있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살피겠습니다. 그는 회심한 강도입니다. 그는 이제까지 악한 일만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악인이고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고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절망 가운데 있던 이 강도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예수님과 같은분을 만난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자기를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강도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23:40-41, 개역한글)
이 강도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살피고자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선한 일을 하지 않고 악한 일만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고 자신의 주인이시고 왕이신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생각하는 바를 입을 열어서 고백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개역한글)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향해서 욕하던 강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무죄한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는 주님을 주와 왕으로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의 임하실 떄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는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왕이시기에 자기를 생각해 달라,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3,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책망의 말이나 거절의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을 계속 욕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그 부탁이 여러분이 큰 희생을 치뤄야만 하는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의 부탁을 들어주십니다. 그 강도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회개하지 않은 강도를 보겠습니다. 그 또한 회개한 강도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 둘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계속 비방했습니다.
그는 그대로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그들이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기 전에도 예수님은 그들과 가까이 계셨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자기가 죄인이기는 하지만 십자가에 달릴만큼, 죽을만큼, 지옥에 갈만큼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일 뿐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개역한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21, 개역한글)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않은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 또한 죄입니다. 그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판결하셨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5:26, 개역한글)
그 죄값을 다 치루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지옥 판결에서 벗어날수 없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엄중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죽어가는 강도의 옆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셨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그 시간을 낭비한, 회개하지 않은 강도처럼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는 여러분과 저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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