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최재홍 형제님(요약)

복음 : 바라바와 나

박이레 2024. 5. 26. 12:41

복음 : 바라바와 나 / 24년 5월 26일 일요일(요약1) / 최재홍 형제님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눅23:18-25, 개역한글)

오늘은 예수님 대신해서 풀려난 한 죄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바라바라는 죄인입니다. 이 사람은 민란을 꾸미고 살인한 자입니다. 바라바는 예수님 계셨던 당시에도 유멍한 강도였습니다. 현대에도 이러한 흉악범이 다시 풀려나 사회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백성들을 먹이셨고,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죽은자를 살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왜 유대인들은 계속 죽이려고 했을까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때에 이 죄목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게 했고, 자기가 스스로 왕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그들의 고소가 거짓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희 법대로 처리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사형판결을 내릴수 없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죽여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으려고 여러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절을 맞이하여 죄인을 풀어주는 관례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악명높은 바라바를 풀어줄지, 아니면 예수님을 풀어줄지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바라바보다는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말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의인임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박는데 내어줍니다.

그렇게 악인이고 살인자인 바라바는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죄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습니다. 바라바가 풀려난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바라바가 풀려나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보고 있을때에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인데 저 자리에 예수님이 달려있구나 생각할지, 아니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바라바와 저희를 투영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라바의 이름의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저희들의 아버지는 아담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사망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사람은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했던 빌라도가 아닙니다. 또는 예수님을 돈을 받고 넘겨준 가룟유다도 아닙니다. 또 시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해달라고 했던 유대인들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넘겨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10:18,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저희들의 죄값을 대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죄인들의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다 갚아 주신 것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의 고난은 내가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가 죽어야 했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자신의 생명을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저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나는 바라바처럼 죽을만한 죄를 지은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라바는 실제적으로도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사형판견을 받기에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바라바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드러난 죄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나쁜 마음, 생각들만으로도 지옥판결을 받을 마땅한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교만이며, 하나님의 판결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2, 개역한글)

'라가'라는 말은 사람에 대한 멸시와 욕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아랍어인데, 속이 빈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바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게 왜 나쁜 말인가,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상태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상대의 인격을 살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십니다.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곧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다면, 또 내밷었다면, 그는 지옥에 가야 할 마땅한 죄인인 것입니다. 바라바만이 죽어야할 죄인이 아닙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이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