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 7월 16일 일요일(요약) / 한봉래 형제님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26:36-46, 개역한글)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장면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묘사하는 책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여러가지 왕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는 세상 왕과 예수님이 어떻게 다른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에게 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합니다. 헤롯이 서기관들을 불러서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나는지를 묻고 박사들에게 말합니다. "왕이 어디서 나신지 알면 나에게 말하라. 나도 경배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마태복음은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의 책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한 사람은 이방인과 동방박사들 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교회에 대해서 두번 언급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이지만 유대인들이 참된 왕을 경배하지 않았다는 것, 이방인들이 그를 경배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가자 헤롯이 베들레헴의 두살 이하의 아이들을 전부 죽입니다. 이게 세상 왕입니다. 자기가 계속해서 왕을 하려고, 자기의 왕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전부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지금 죽으려고 하십니다. 이유는 우리를 왕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한 제사장, 왕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이 세상을 통치하는 왕이 되도록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십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또 헤롯이 나옵니다. 그는 헤롯 안디바입니다. 그는 침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이유는 침례요한이 헤롯의 결혼을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분봉왕으로 있었고요. 그의 동생은 로마에서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한 여자, 헤로디아를 보고 유혹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와 같이 왕궁에서 통치하자. 그리고 동생을 이혼시키고, 자기도 이혼하고 둘이 결혼합니다. 이것을 침례요한이 책망합니다. 헤롯은 침례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헤로디아는 침례요한을 죽이자고 했습니다.
왕국과 민주주의의 차이가 뭐냐면, 민주주의는 법이 주관하지만, 왕국은 왕이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롯은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 왕국에서 감히 침례요한이 헤롯을 비난했습니다. 헤로디아가 침례요한을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죽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왕보다 높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못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일날이 돌아왔습니다. 그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이, 유명인사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가 자기 딸에게 춤을 추게 합니다. 헤롯이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라의 절반을 춤 잘추는 여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세상 왕들이 하고 있는 독재 정치입니다. 헤로디아는 딸에게 침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라고 할 말을 넣어줍니다. 헤롯은 침례요한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헤로디아의 딸이 침례요한의 목을 요청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줘야 합니까?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보다 자기 자존심을 선택합니다. 자기 명예를 선택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려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끄러운 죽음이며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모독을 받으시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이것이 세상 왕과 참된 왕과의 차이입니다. 우리를 구속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에 주님은 죽으시려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세번이나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에 가야바가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대제사장입니다. 그에게 가룟유다가 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죄한 자를 팔았다." 예수님꼐서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유다가 후회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죄인들이 오면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가게 하고 그 죄가 사해졌음을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야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한 일이니 네가 당해라." 제사장이 원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이 오면 양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죄가 넘어갔음을 말하고 양을 죽이고 그 피를 단에 바르고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셨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가야바는 "네가 당해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단번에 온 세상의 죄를 가지고 속죄하려고 그 길을 가고 계십니다.
그 다음, 왕에 해당하는 사람, 로마총독 빌라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기 때문에 풀어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로마황제의 반역자를 풀어주려 했다고 당신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는 자기 지위가 흔들리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물을 가져와서 자기 손을 씻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깨끗하다." 그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겠다." 이 말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어마어마한 고난을 당합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는다고 되었나요? 그는 자기의 직책, 직무를 완수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이해관계 떄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마태복음은 주님을 헤롯왕, 가야바, 빌라도와 대조합니다. 그리고 이분이 우리의 왕이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나와서 이분을 기억했습니다. 이분을 내 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실제로 이분이 내 삶의 왕이신가요? 일주일동안 우리가 살아갑니다. 마태복음은 말합니다. 이분은 왕이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실제 삶에서 이분이 왕이 되어야 합니다. 이분의 말씀이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분이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가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 자리에 모여서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합당한 분이며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 가운데 있었나이다."라는 기도를 다움주에 이 자리에서 드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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