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박이레 2023. 9. 2. 15:01

< 복음 :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 강성찬 형제님

누가복음 말씀 13장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2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각성 각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22-30).

여기 사람이 나와서 23절에 보면, 이제 주님께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제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걸 잘 들어보니까 자기 생각하고 다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는 구원받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주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상하게도 구원받은 자가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주님 구원받는 자가 적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다 보면 주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이제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들이 많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생각을 교정해야 됩니다. 우리의 많은 생각들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 이번 중국 여행 이야기를 한 가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이제 내 생각하고, 정말 이제 바른 판단하고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번 중국에서 있었던 이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이번에 이제 저희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요. 지금 연세가 77세 되는 분입니다. 그 어머니를 기차 여행을 하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잃어버려도 쉽지가 않은 일인데 말도 안 통하는데 이제 중국에서 잃어버린 겁니다. 중국에서 잃어버렸을 때는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제 머리가 하얘져가지고 이건 정말 잃어버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잃어버리게 됐냐면 이제 기차를 이제 타게 됐는데 이제 제가 이제 예약한 표가 이제 취소가 돼서 다른 표를 이제 급하게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표가 다 매진된 상태여서 입석표를 구했는데 좌석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만 거기 좌석에 앉게 해드리고 이제 나머지 저희 가족들은 다른 비어 있는 좌석을 돌아다니면서 이제 앉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어머니랑 우리가 이제 헤어지게 된 거예요. 이제 어머니는 목적지까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가시면 되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제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게 이제 잘못한 건데, 그리고 어머니가 "우리 언제 내리니?" 이렇게 물어봤어요. "한 4시간 가야 됩니다." 제가 이 말을 안 했어야 됐는데 이 시간을 말씀을 드린 거예요. "4시간 가고 6시 10분에 내려요." 그때까지 앉아 계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린 거였는데, 어머니는 본인이 그때 내려야 된다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우리가 이제 안 보여도, 그리고 그 기차 역 그 칸 안에는 큰 시계가 붙어 있는데 몇시인지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시계인데 거기에 이제 16시 10분이 되자 어머니가 내리신 거예요. 그 순간에, 여기가 여기가 내려댄다고 저희 어머니를 보면 이 오래 혼자서 이렇게 사셔서 그런지 혼자서 다 이렇게 해야 된다고 그런 성향이 있으세요. 그러니까는 제 생각에는 제가 당연히 이제 그 시간 되면 모시러 와가지고 이렇게 모시고 내려갈 걸로 저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시간이 됐다고 혼자서 지금 내려야 된다 생각하시고 이제 내리신 거죠. 이제 잘못 생각하신 것이고, 그래서 이제 우리랑 500km가 떨어져 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중국이 워낙 커서, 나중에 보니까 500km가 떨어졌더라고요. 다행히 의외로 이게 중국의 역무원들이 친절해서, 통화가 되고 이제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해서 어머니를 다시 태워서 보내줬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제 만날 수가 있었는데, 굉장히 이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이제 한 가지 이제 교훈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제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다.' 이제 이런 고집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해야 된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제 그게 틀릴 수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제 모르는 나라에서 정확한 정보가 있지 않은데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관련돼서 많이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련돼서 내가 안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때 이렇게 해야 돼 이게 하는 게 맞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판하지 않도록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자기 생각으로, 개미가 사람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조심해야 됩니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이제 귀를 기울이고 들어봐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유대인들은,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두 하늘나라에 갈 걸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선택받은 민족이고 그래서 자기는 그냥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에 갈 걸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요한복음 13장을 보고 있는데요. 그 앞에 보면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조금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는 당연히 하늘나라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적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 수가 적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 때에 구원받은 자가 겨우 8명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겨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겨우 8명, 그때 당시에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이 겨우 8명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많은데, 이 중에서 겨우 8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그 사람들만 하늘나라 간다고?' 그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제 고등학교 다닐 때에 이제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님이 이제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내일까지 이제 수학 문제집 몇 페이지를 풀어가지고 와라." 그런데 그때 왠지 수학 선생님이 좀 명확하게 수학 문제를 수학 숙제를 내지 않으신 것 같았어요. 저희가 생각할 때는,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끼리, 우리 반 아이들끼리 좀 논란이 됐어요. "야, 이거 해야 돼? 말아야 돼?" 막 이렇게 근데 자연스럽게 "야, 아니야. 이거 수학 숙제 안 해도 돼." 다른 애들이 다 안 하니까는 그래 안 하는 게 맞아 하면서 다 안 했죠. 그런데 이제 그다음 수학 시간이 됐을 때 선생님이 검사를 하더라고 숙제 검사를, 우리는 생각하기에 모든 사람이 안 하니까는 안 해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시작하시고 선생님이 화가 엄청 나셨어요. 그리고 아무도 안 했으니까 '에이, 뭐 그냥 벌은 안 주시겠지.' 했는데 선생님이 벌을 주시는데 한 사람에게 몇 대씩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셨는데, 우리 반에 그때는 한 반에 53명이었습니다. 53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몇 대씩 엉덩이를 다 맞았습니다. 그 수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분위기가 다 안 하는 분위기니까는 안 해도 아무 문제 없겠지 생각했지만 정말 선생님은 그 많은 매를 다 때리시더라고요.
이것은 공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게 의로운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분위기로 가는 게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사함을 받았느냐? 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너도 안하고 나도 안 하니까 봐주겠지, 이런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의롭고, 죄인이고 이거는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단 8명만 있으면 그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한 명만 있더라도 그 사람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판을 말해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저 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뭐,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분명한 것입니다.

여기 누가복음 조금 뒤로 가서 한 군데를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4-27).

우리 주님께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라고, 이처럼 수가 적다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낙타가, 그 큰 짐승인 낙타가 작은 구멍에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이 "아니,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이 이런 것입니다. 다시 누가복음 13장으로 돌아와서 13장 1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

사람들이 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에 대해서 또한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자기는 하늘나라에 갈 만큼 충분히 의롭다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지옥에 가는 사람보다는 더 낫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금방 읽은 말씀과 같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두 가지 비극적인 사건이 그때 당시에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는 이스라엘 북쪽 지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북쪽에 이제 갈릴리 지역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러 왔을 때에 그때 당시에 총독인 빌라도가 이제 그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리고 이제 그들의 피를 그들의 희생 제물에 섞어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이제 그런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죽은 그 갈릴리 사람들을 보고 저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안 좋은 일을 겪었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하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지옥에 가는 형벌을 받는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형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 갈릴리 사람들이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 갈릴리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하는 걸로 생각하느냐?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은 다 이와 같이 망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이제 한국에도 얼마 전에 이제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그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 "아니. 거기 그런 데를 왜 갔어? 그러니까는 그런 사고를 당하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거야."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그 사람들보다 더 의롭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도 자기는 지옥에 가는 사람들보다 그렇게 지옥에 갈 정도로 문제가 있지 않다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구원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십니다. 이번에는 그 이스라엘의 중심부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사람들은 저기 시골 동네 저기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겪는 일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이제 그럴 만한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사람들이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있었던 일을 한 가지를 더 말씀을 하십니다. 4절에 보면은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18사람이 죽은 겁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건물이 무너져가지고 사람들이 죽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제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말해주고 있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인 일들이 이거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회개치 않는다면 다 그와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뭔가 좋은 점이 있어가지고 그런 비극을 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것을 면제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비극적인 일은 우리에게 이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치 않는다면"입니다. 이러한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고 있는 그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이것이 옳다라고 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그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더 이상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회개를 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다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갈릴리 사람보다 이 망대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더 심각하게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 그것을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그곳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구원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속하게 될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13장 24절에 이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 구원에 대해서 '좁은 문'이라고 이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좁은 문이라고 했을 때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조금만 구원받도록 정해놓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사람 수가 적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소수만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22절에 예수께서 각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각성을 방문하시고 각촌을 방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도록 방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크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좁은 문이라고 했을 때, 이것을 마치 대학교 입시처럼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학교 입시는 그 뽑는 사람의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원이 정해져 있는 것이죠. 그래서 문이 좁은 것입니다. 그 안에 100명을 뽑는다면 그 100명 안에 들어야 되기 때문에 경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힘든 것이죠. 취직도 그렇습니다. 취직도 몇 사람만 뽑기 때문에 경쟁을 해야 되고 이제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좁은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의 이 구원은 사람의 수를 정해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좁은 것은 사람들 자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제 '좁다'라는 그 원어의 뜻을 보면 이게 '여러 장애물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넓게 만들어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자기 생각으로 장애물을 갖다 놓은 겁니다. 자기 생각이 그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돼.' 그게 그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이제 목적지가 여기니까 여기서 내려야 돼.' 이게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주님께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 문을 좁게 만드는지를 이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25절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눅 13:25).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의 첫 번째는 그 문이 항상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한 번 닫을 때가 있다." 그리고 문을 닫으면 아무리 문 밖에서 두드린다 할지라도 그 문은 열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은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여시고 그리고 지금은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문으로 걷어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 초청을 받아들여서 안으로 들어오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다음에 믿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믿겠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지 않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믿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조금 미루는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여기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문제와 관련돼서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겠다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는 구원받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집 주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문을 닫을 수 있는 권한은 집 주인인 예수님이 가지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집에 방문할 때에 그 집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은 그 집 주인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집 주인이 문을 닫으면 그 손님은 자기가 그 문을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내가 이때 구원받겠다 저때 구원받겠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집 주인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집 주인의 초청에 그 부름에 겸손하게 응답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집주인처럼 행세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원할 때에 구원받겠다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집 주인으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분이 여러분의 구원을 결정할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심각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을 한 번 닫은 후에는 여러분이 아무리 두드려도 다시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아침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은 이 복음을 전할 때에 몸이 병에 걸려서 힘이 없어졌을 때, 그때 이제 복음을 듣겠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때 복음을 듣겠다고 하는 분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들어보면 며칠 안 돼가지고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서 그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금방 돼버립니다. 이제 암 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이 처음에는 꽤 자기가 활동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그때도 이제 복음을 안 들으려고 합니다. 근데 이제 몸이 쇠약해지고 고통이 느껴질 때 그때 이제 마음이 낮아져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겠다라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미 늦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불과 며칠 안 돼서 의식을 잃고 금방 돌아가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의 인생이고 우리의 연약한 생명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이 문이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문은 한 번 닫으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그래서 그 문에 갖다 놓는 장애물이 또 하나 여기에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눅 13:26-27).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구원을 받을 거라고, 자기는 지옥에 가지 않고 이제 하늘나라에 갈 거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그들이 종교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실제로 구원받지 않은 분들이 교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배우기도 합니다. 말씀을 배웠다고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고 받을 것이고 하늘 갈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에 와서 이제 다른 구원받은 성도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식사도 같이 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나라에 갈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원을 받고 안 받고 그것을 가늠하는 문제는 행악하는 자들인가, 아닌가입니다. 죄인인가, 아닌가,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들었고 안 들었고가 문제가 아니고 이 교회에 와서 함께 밥을 먹었고 안 먹었고가 아니라 여러분이 죄인인가 죄인이 아닌가 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인이라면 그리고 죄인으로서 죽는다라면 언제 그 죽음이 올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죄인으로서 죽는다면, 그러면 그 벌은 "내게서 떠나가라."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그런 운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그분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지옥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 우리의 기쁨의 근원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 이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제 심판자 앞에서 이 형벌을 선고받게 될 것입니다.
"내게서 떠나가라" 이것은 정말 두려운 그런 운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머니로부터 떨어지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통으로부터 주님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러한 형벌에서 참 모두가 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형벌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께로 나아오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는 그런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받았고 하늘나라에 갈 걸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들이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 가르침을 받았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신 일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기 보면 22절에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에 대해서 누가복음 9장 말씀을 한 군데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간다는 것은 단지 그 예루살렘이라는 어떤 한 도시로 가신다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그러한 곳을 말하고 있습니다. 승천하시는 곳입니다. 그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장소입니다. 주님은 이 목적을 가지고 그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셨습니다. 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행악자들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사함을 받는 것이고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흠없는 희생 제물이 피를 흘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삶이 없다."라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대가는 피가 흘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는 반드시 그 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흠없는 희생 제물이 대신 죽어야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희생 제물로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씻겨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기 51절에 보면은 "기약이 차가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와 같이 구원하시는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만들어낸 그러한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도 전에 우리를 영원토록 의인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것을 정하시고 또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또한 51절에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예수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치와 모욕을 받는 것이었고,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참으로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셔서 굳게 결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으시기로 굳게 결심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다시 누가복음 13장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장애물을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28-30).

사람들은 의인이 되는 것을 자신의 선한 일로 하고자 합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그 말씀을 듣고 있는 그 무리들이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 여러 종교적인 선한 일들을 많이 하였고, 그리고 자기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걸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먼저 된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기들은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의 선한 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앞에 읽은 누가복음 18장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18-27).

하늘나라는 죄 없는 의인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서 그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온 이 한 사람도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으로 봤을 때에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얼마큼 부족한 것이었냐면은 그는 하나도 그 계명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도 그 계명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렇다면 네가 그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재산을 다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를 쫓아라." 그는 예수님을 쫓는 것보다 자기에게 재산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고 있음을 그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결국을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드러내 보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렇게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사람도 그도 그 마음속으로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산을 살아가는 그러한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죄인이온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참 이렇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롭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참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아니,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지? 저런 사람은 나보다 뒤처진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겸손하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구원의 복을 이 가운데 있는 모든 분들이 누리게 되시기를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