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덕언 말씀(요약)

덕언 :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

박이레 2023. 4. 23. 14:08

덕언 말씀 :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 / 23년 4월 23일 일요일 / 장승훈 형제님

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7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레16:6-10, 개역한글)

대속죄일에 아론이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 뿐만 아니라 권속,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 쭉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각 영적인 분파대로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드리게 하는 일이 나와 있습니다.

두 염소를 준비합니다.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가 되고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는 사람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제비뽑힌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들을 위한 몫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몫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이 한명도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받으시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으셨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해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남과 북으로 나눠져서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는 모습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대우를 받으셨는지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무시당하고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들이 지키지 아니함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호와를 위해 준비된 염소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며 해결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아주 은혜로운 사람이 와서 "당신의 죄를 사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그것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은혜가 은혜답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피해를 받은 쪽에 대한 대책이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용서하겠다고 해야지 재판장 쪽에서 그 일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피해 받으신 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먼저 저희의 죄를 사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은혜로 통치하기 위한 도덕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기 때문에 긍휼과 진리가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신다면 저희에게 은혜가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를 잠깐 보겠습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아사셀 염소는 무인지경으로 보내집니다. 사람들에게 이 염소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멀게 한 것처럼 더이상 보이지 않는, 상징적인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그 어디에도 인생의 구원과 같은 모습은 담겨있지 않은 것입니다. 인생을 구원하시는 것은 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담겨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주일 아침에 감사드릴 때에도 저희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많이 놓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2:11, 개역한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9, 개역한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꼐서 이와 같은 은혜를 베푸실 때 인생이 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말씀합니다. 이와같은 말씀을 보게 될 때, 주님께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속죄물이 되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충분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하셨고, 이와 같은 예비하심이 누구나, 모든 사람에게 이와 같은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근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먼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입으신 일에 대한 회복이 먼저 된 후에 사람들을 위한 속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찌니 (레16:15, 개역한글)

이와 같은 동일한 절차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에게 동일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7이라는 숫자가 완전한 수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실 때에 하나님을 위한 일 또한 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죄를 속죄 할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죄와 사단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우실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본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