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8장 : 사마리아의 문제점 > 2023년 1월 15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 8:5).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행 8:9-24).
사도행전은 복음이 증거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사도행전의 큰 줄기는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복음이 전해져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이 말씀하신 거죠.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복음이 증거됩니다. 예루살렘 맨 먼저, 그 다음에 온 유대, 그 다음에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그 중에서 사도행전 8장은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는 과정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된 것을 보면 두가지에 대해서 조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 빌립이,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아니고 사도행전 6장에서 뽑은 일곱명, 세데반, 발립, 일곱명을 뽑았을때 제일 먼저 뽑힌사람이 스데반이고 두번째 이름이 빌립이 나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랬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믿고, 그 다음에 이분들이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침례가 보통 저희들이 말하는 첫번째 순종의 행동입니다. 마음으로 믿었을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믿음을 삶으로 드러낸 거죠. 그런데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구원받는 믿음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침례라고 하는 삶의 순종까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것을 사마리아 전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은 이유인데요. 두번째, 빌립이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교회가 분별합니다. "믿었습니까? 어떤 말씀으로 언제 믿었습니까?" 분별하죠. 그런데 여기서, 사마리아 교회에서 최초로 잘못된 가짜가 들어옵니다.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잠깐 보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합니다.13절 보시면 "시몬도 믿고" 믿었습니다. "침례를 받은 후에" 침례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 전심으로 따라다녔으니까 굉장한 거죠.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이렇게 표현했고요. 21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너는 복음과 교회와 영생과 아무 상관도 없고, 여기서 네가 받아갈 것도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22절,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그러니까 여기서 나옵니다. 회개한 적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기도하라" 그랬더니 시몬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정말 제가 회개합니다. 정말 제가 악한 사람이군요. 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안하고 뭐라고 대답하냐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자기더러 하라고 했더니 기도해 주세요, 하고 있는 겁니다. 끝까지 불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몬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교회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 사마리아 교회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해야만 합니다. 빌립의 전도가 부족했다는 뜻 아닙니다. 빌립은 정확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느냐면, 그 다음에 에디오피아 내시를 보면 압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의 경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의 복음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뭐가 문제가 있길래 그들이 믿고 침례까지 받았는데 주님께서 성령을 유보하신 이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할 때에야 비로소 성령이 임한 이유, 사마리아의 문제, 그게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 시몬과 같은 가짜를 허용한 이유, 같은 이유입니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요한복음으로 가 보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0-24).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주님이 미리 복음의 씨를 뿌려 놓으셨죠.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만 믿은 것이 아니고, 이렇게 되어 있죠. 이 여자가 원래는 물길으러 오셨지요. 그런데 주님과 대화 하면서 주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압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어떻게 삶이 변화되냐면 "물동이를 버려두고" 지금 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죠. 그리고 마을로 들어갑니다. 원래 마을로 안들어가려고 하는 여자죠. 왜냐하면 소문이 나빠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니까 같이 안할려고 일부러 육시에 물길으러 왔었거든요. 그런데 구원받으니까 변화되어 마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와 보라." 이 사람을 보십시요. 내가 행한 모든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래서 수가성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시간 좀 내주시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틀을 머무십니다. 그래가지고 이 수가성에 있는 사람들이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 말을 인함이 아니다. 우리가 친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분이 과연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에는 이미 주님이 씨를 뿌려 놓으셨죠. 그리고 다시 빌립이 와서 사마리아에서 다시 예수님으. 그리스도로 증거합니다. 그랬을때 아마 빌립의 전도, 복음증거에 수가성 여인이 함께하고 기도하고 동역하고 그래서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 것으로 봅니다. 자, 그런데 주님이 수가성 여인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사마리아의 문제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문제점은 뭐냐, 그러면 예배 장소가 다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에서" 라고 했는데, '이 산'은 저희들이 알기로 그리심산이라는 산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두개가 차이가 나죠. 그리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민족적으로, 서로 인종적으로 차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좀 달라, 했을때 "아니 당신은 유대인인데 왜.." 벌써 복장만 봐도 딱 구분이 되는거죠. "아니, 유대인인데 왜 나에게 물을 달라 하세요? 우리는 서로 말 안하는 사이 아니예요?" 이렇게 한거죠.
주님은 이 인종적 차별을 넘어가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넘어가시냐면 몇가지 예를 들면요.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뭍습니다. "내 이웃이 누굽니까?" 계명을 크게 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어봤어요. "이웃이 누굽니까?" 그러니까, 이웃은 어디까지입니까? 가족, 팔촌, 아니면 더 넘어서 동네, 어디까지 확대해야 됩니까? 이렇게 물은거죠. 주님이 대답을 하시죠. 비유를 뭐를 쓰시냐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씁니다. 강도 만난 자가 있었는데. 제사장이 그냥보고 지나갔다. 제사장, 유대인들이 생각할때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웃 사랑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지나갔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종교적인 사람 레위인,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그를 돌봐주었다. 이렇게 말하는거죠. 지금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막 충돌할때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냐면 "당신은 사마리아인입니다." 이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면 그것은 굉장히 모독적인 발언이 되는 셈이 되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이웃을 사랑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마리아인을 댑니다. 주님께는 민족적, 인종적 차이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문둥병자가 열명 있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리니까 그들이 유대인 이건, 사마리아인 이건, 문둥병인데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같이 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렇게 고쳐주십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아직 문둥병이 있는거죠. 그런데 갑자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은걸로 믿으라는 거죠. 제사장에게 왜 가느냐 하면 나았을때 가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 낫지 않았는데 주님이 말씀하시 거죠. "가라" 그러니까 이 열명의 문둥병자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갑니다.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문둥병이 싹 낫습니다. 그랬을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아홉명의 유대인 문둘병자들은 그냥 제사장에게 갑니다. 한명, 사마리아 문둥병자가 주님께 돌아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주님이 사마리아 문둥병자도 유대인 문둥병자와 차별하지 않고 고쳐 주셨다. 이게 저희들이 주님의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다음에 세번째가 수가성 여인입니다. 이 수가성 여인에게. 요한복음 3장은 니고데모가 나오죠. 유대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입니다. 그에게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이렇게 하셨어요. 그리고 모세의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통해서 설명하셨죠. 그런데 주님이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처럼 주님도 십자가에 들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셨고, 이 4장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이 최초로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명백하게 제시합니다. "너와 말하는 이가 그니라" 오히려 사마리아 여인에게 더 분명하게 주님 자신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유대인이냐, 마리아인이냐에 대해서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 중에 또 하나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사마리아인들이 생각하는 예배 장소도 아니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예배 장소도 아니고, 이 두개를 다 부정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주님께서 민족적, 인종적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죠.
그런데 그 다음 발언은 또 분명하게 표현 하십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상관 없으니까 우리 다 그런거 따지지말고 그냥 하나되서 믿자고 말 안하십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은 아는 것을 예배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 그러면 이제까지 다 인종적인 것, 서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이는 서로 보기만 해도 원수지요. 그러니까 잘못하면 이 사마리아 여자가 유대인인 주님, 주님은 사실은 유대인 이상이시지만, 하여간 겉으로 볼 때에 유대인인 주님에게서 말씀을 안들을 가능성이 있는거죠.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너머, 인종이 아닌 예배와 관련된 것을 말씀하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명백하게 짚을건 짚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 제가 약간 번역해 보겠습니다. 너희들의 그리심산은 가짜다, 입니다. 진짜는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 성전이, 물론 이것도 그림자죠. 그림자지만, 솔로몬성전이 진짜고, 너희들이 그리심산에서 지어놓은 예배장소는 모방한 것이다. 가짜다, 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가짜를 만들어 왔기 떄문에 시몬과 같은 가짜가 들어간 것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마리아가 믿어도, 침례를 받아도, 예루살렘 사도들이 가서 안수해야만 성령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사마리아의 문제점을 말하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우리 문제점을 살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그럼 왜 사마리아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했는가? 그리고 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는 건가? 이게 민족적인 것인가? 아닙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알지 못한다, 하면 항상 답은 명백합니다. 왜 알지 못하죠? 성경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뭐 어떻게 알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하나님이 알려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나는 이런 하나님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고, 이것을 싫어한다.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뭘로요? 성경으로. 그런데 사마리아가 뭘 잘못했느냐? 구약성경의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구약성경의 일부만 딱 받습니다. 일부 어디까지요? 모세오경까지만 딱 받아들입니다. 그 이후는 안받아 들입니다. 왜요? 거기에 이제 역사적인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유대와 사마리아가 서로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를 걸으면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최초의 왕이 여로보암이죠. 여로보암이 왕이되고 나서 제일 걱정이 되는게, 열지파 잖아요. 이게 남쪽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다가 자기 안따를 수 있으니까, "남쪽 갈것 없다." 그래서 단과 벧엘에 우상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린 것이죠. 이때부터 남쪽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받으신다는 구절들을 빼야 됩니다. 그래서 분리가 됐죠. 항상 왜 모르냐?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 중에서도 일부만 받아들이고 일부는 안받아 들이면 당연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마리아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제 이 여자가 뭍기를 "우리는 그리심산에서 예배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데, 어디가 진짜인지, 어느 장소를 하나님이 받으시는지 그리스도가 오면 알려주실 텐데요." 이렇게 했는데요. 이게 어딘지 성경을, 만약 이 수가성 여인이 구약성경 전체를 봤다면 그는 답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제가 성경을 한 구절만 찾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슥 3:2).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택했다고 성경에 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 그리심산,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선택 하셨습니다. 명백하게 답이 나와있는 거죠. 그리스도가 올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주님이 오셔야 되지만, 다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러면 사마리아는 뭘 인정하느냐면, 모세를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렇게 말하지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는데 하나님이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그래서 가나안땅으로 간다는 겁니다. 모세 자신은 못들어가지만 그 다음에 세대가 들어갈 것입니다. 이 들어가는 세대에게 모세가 신명기에 이렇게 쓰니다.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들을 누릴 것이다. 거기서 곡식, 과일들의 열매, 이것들을 풍성하게 누릴 것이다." 이것들을 누리면, 주님이 주신 것이죠. 자기들이 이룬것 아닙니다. 자기들이 짓지 않은 집에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것들을 누릴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이 과일, 이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와서 감사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서 드려야 하느냐? 자기 집에서 하면 안됩니다. 자기 각각 있는 곳, 땅 덩어리가 넓으니까, 각 지파마다, 누구는 어디 지파, 누구는 어느땅, 이렇게 차지 했잖아요? 그러면 각 지파는 자기 구역에서 감사드리면 안됩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했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실 한 장소, 그곳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 이렇게 모세가 신명기에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말 안해 줍니다. 모세 때는 못찾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상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이 예루살렘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이렇게 찾아냅니다.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터가 어떤 터냐하면, 첫번째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기꺼이 죽이려고 했던 장소, 이 장소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일어난 장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그 갈보리 십자가,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실체를 놓고 말씀하신 거죠. 창세기 22장을 지나가야 하고요. 그 다음에 두번째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다윗왕이 범죄합니다. 무슨 범죄를 하냐면 백성의 숫자를 셉니다. 왜 세요? 내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가를 보는거죠. 다른 나라는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살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다윗이 늘 그랬죠.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잖아요. 자기 힘으로 이겼나요? 아니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긴거죠. 그런데 또 다윗이 백성을 계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놀라우신 분이죠. "세가지 벌 중에 하나를 골라라." 그랬을때, 다윗이 삼일 온역을 고릅니다. 그것을 골랐다기 보다도 다윗은 이렇게 말하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고" 전쟁에서 쫓길래, 이렇게 할때, 왜냐하면 사람의 손이 잔인하거든요. 하나님의 손에 당할래. 그래서 하나님의 손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삼일동안 전염병을 일으켜서 7만명인가를 죽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죽이려고 할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천사에게 "됐다, 그만해라." 하나님이 심판받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심판을 면제해주신 장소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그곳이 솔로몬 성전터 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의 어떤 사건과 함께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거죠. 그런데 모세오경만 인정하니까, 뭔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는 곳이 있을텐데, 그곳은 솔로몬 성전 예루살렘이라고 이미 결정되었는데도 안받아 들어요. 그리고 그리심산에다가 가짜 신전을 지어놓고, 솔로몬이 진짜입니다. 가짜를 지어놓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에게 적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알고 있는가?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슬퍼하며 갑니다. 주님 부활하신 날,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가는데 주님이 같이 끼시죠. "무슨 이야기 하고 가세요?" 주님을 타박하죠. "당신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그것을 모른단 밀이요?" 그래서 이야기하죠. "예수라고 하는 분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거라고 믿었는데 그냥 십자가에 죽어버리셔가지고 우리는 소망없이 가고있다." 그랬을때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죠? "이 미련하고 더디믿는 자들이여" 그러면서 주님께서 뭘 하셨죠? 성경의 모든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을, 그들은 일부만 믿은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승리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고 축복하시고 이것만 보는거죠.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죠. 그리스도가 자기 고난을 받은 후에 영광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냐? 성경은 고난을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영광을 나중에 말합니다. 그런데도 먼저 나오고 있는 고난은 싹 눈감고, 훗날 이루어질 영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는거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자꾸 듣는거죠. 그래서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사마리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죠. 하나님이 어떻게 그 예물을 받을 장소를 고르시는가?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체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아끼시지 않으실 장소. 그리고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는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가 일어나는 곳. 이 두군데를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찾아내신 것이죠. 그리고 여기서 감사를 드려야 된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런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들을 용서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 대목을 싹 자른거죠. 그리고 가짜를 세워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게 사마리아의 문제점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해질때 이와같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의 가르침이 뭐냐하면, 이 사도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가 열두명입니다. 가룟유다를 빼고 맛디아를 넣어서 열두명이죠. 그리고 사도바울이 추가가 되었으니까, 열세명,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 교회가 하는거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더라" 이렇게 되어 있죠. 그래서 우리가 하는거죠.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할때,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를 가르킵니다. 마태, 요한, 그 다음에 사도바울, 야고보 다 하는거죠. 그래서 대표적으로 로마서에 이렇게 되어 있죠.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보는것이 아닙니다. 뭘 해야죠?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죠. "믿음으로만 아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 이게 행위가 아니고 믿음이라고 사도바울은 강조 하셨는데, 행위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는데, 야고보께서는 또 믿음만 가지고 안된다. 행위가 있어야 된다고 하면, 이 행위와 저 행위는 다른거죠.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된 건가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가 뭘 좋아하느냐 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게 좋잖아요. 행함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은 좀 부담되잖아요. 그러니까 로마서만 하는거죠. 그래서 믿는다고 말만하면 구원이다. 이렇게하면 가짜가 들어오게 됩니다. 시몬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게 저희들이 배워야되는 교훈인 거죠. 그리고 하나 더, 나도 성경을 읽을때에 나에게 부담되는 말씀을 빼버리고 나에게 축복이 되는 말씀만 좋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내 그런거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그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 오실때에 '호산나'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전부 오해한 거죠.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하실 겁니다. 초림때는 피 흘리고 죄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빼 버리면 안됩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보는거죠. 하나님 말씀 중에 나에게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광과 축복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거 한 다음에, 이 말씀도 하나님 말씀이고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받아야 될 것은 헌신과 희생이지, 영광과 보상과 이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사마리아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역사상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요. 이스라엘 역사상에 여러 사람이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을 사마리아와 관련해서 뽑으라고 하면 첫번째, 아브라함입니다. 예를들면 사마리아 여자도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라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마리아 여자도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예언한 사람은 창세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첫번째가 아브라함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한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은 전번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두가지입니다. 우상은 다 가짜다.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다.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심판하실 유일한 참 하나님 한분이 계신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신 것이고요. 그리고 두번째,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계시된 거거요.
그 다음 두번째,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리가 두번째로 주목해야 될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쭉 썼는데요. 모세를 통해서 뭘 주셨느냐면, 율법을 주셨습니다. 십계명, 그리고 저희들이 아는거죠. 십계명을 왜 주셨죠? 죄인인 것을 알도록, 정말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마다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못지키는 죄인인 것을, 그 다음에 모세가 준 것이 뭐죠? 이 죄를 용서받는 제사법을 주신 것입니다. 누가 죄를 범하거든 이렇게 해라. 평민이 범하거든, 제사장이 범하거든, 이렇게 해라. 양을 가져오고, 피를 뿌리고, 제사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중요한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죄인이다. 이스라엘 너희들이 죄인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인데 너희들이 죄인이다. 그 죄를 용서받는 방법은, 이거다. 그리고 이게 용서가 된 사람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알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있고, 그 다음에 모세를 통한 계시가 있고요.
그 다음에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세번째로 중요한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누구냐 하면 왕입니다. 이스라엘을 최강 나라로 만든 왕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뭐하시죠? 왕입니다. 유대인의 왕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에 대해서 다윗이 그림자로 활동합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니까 훗날 오게 될 메시아의 그림자로서 활동을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어디서 태어나죠?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십니다. 베들레헴, 메시아는 어디서 왕노릇을 하시죠? 다윗의 성, 예루살렘에서. 그래서 다윗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있다가 죽지만 메시아는 영원한 왕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모든 인물들이 중요하지만, 저희들이 뽑아라 하면, 아브라함, 모세, 다윗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인물들을 통해서, 성경은 이론도 아니고 철힉책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이런 분일거야.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려면 이렇게 해야 되겠지?' 라고 머리 속에서 이렇게 잘 만들어낸 이론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와 함께 여러가지 사건을 일으키시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리시고 사람에 대해서 알려 주시는 책입니다.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사신 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순신이 계셨듯이, 세종대왕이 계셨듯이,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로마의 역사를 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 이분을 십자가에 처형합니다. 그리고 이분이 삼일만에 부활했다고 하는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이 왜 안믿느냐? 부활을 본적이 없거든요.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이것을 안받아 들이는 거예요.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왜 내 경험보다 위대한 일이 없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모든것의 기준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을 겸손이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자마다 놀라운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조선왕조 실록처럼 성경도 이스라엘 역사,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사상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이론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 겸손하게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 사실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는 사람마다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한 복음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이 세상 여러나라가 있지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왜 그분이 왕이냐? 그 왕께서 무엇을 하셨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한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며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을 알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빌립이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전했을때, 시몬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시몬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짜를 용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심산 신전이라고 하는 가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느냐면,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은 마술을 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능력으로, 마술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속임수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안일어 났는데, 하도 빨리 하니까 속는 거거요. 그 다음에 두번째는 정말 사단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한복음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기적으로 인한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요한복음 2장입니다. 이 시몬은 실제로 어떤 다른,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사단의 능력을 이용해서 실제로 기적을 많이 행했어요. 그랬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게 가짜에 속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니요, 모든 기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기적 중에서는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도 있고, 사단이 행한것도 있습니다. 사단이 어마어마한 기적을 행합니다. 이제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요. 적그리스도가 올 겁니다. 그를 사람들이 다 믿습니다. 왜요? 그가 기적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놀라운 기적을 행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다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적을 통한 믿음을 성경은 인정하지 않고 항상 진리를 통한 믿음을 인정합니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 실제로 일어났던 팩트, 그것이 의미하는 바, 상징, 이런 것들을 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심산 신전이 있으니까, 시몬이 그렇게 가짜 능력을 행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속습니다. 그리고 시몬도 믿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시몬은 회개없이 믿을 수 없습니다. 시몬은 이것부터 해야 믿습니다. "내가 행한 것은 가짜였습니다. 나는 진짜를 속였습니다." 이렇게 진리 앞으로, 진짜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돌아오는 과정이 없이, 시몬이 믿은 이유는 이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능력보다, 빌립이 행하는 능력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몬의 능력과 빌립의 능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 목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빌립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이되서 통치하는 나라가 옵니다. 천국에 가야 합니다. 거기에 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냐? 하나님인데 사람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이 뭘 하셨느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분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이렇게 복음을 전하자, 하나님이 복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빌립은 내가 보낸 사람이다. 그가 메세지는 내 말씀이다. 라고 하는것을 기적으로 도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은 이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중풍병자가 나았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와같은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빌립의 말을 들으라. 빌립의 복음을 믿어야 된다. 이것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몬의 기적은 뭘 말하느냐면, 자기가 위대한 사람이죠. 자기가 아주 높아진 사람이죠. 그런데 자기 기적보다 빌립의 기적이 더 큰거예요. 왜냐하면 자기는 사단의 능력이고 여기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거니까, 그게 당연히 크죠. 그러니까, 이 시몬이 빌립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이 있네? 이 더 큰 능력을 내가 사용해야지.' 이렇게 한 겁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정한 복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복음을 입증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가 힘입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회개한 적이 없고 복음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능력일 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니까 성령이 임하거든요. 그러니까 돈을 줘서 "나에게 이 능력을 팔아주세요. 내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 받게좀 해주세요." 지금 말이 안통하는 거죠. 그는 한번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굴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산다고 한적이 없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뜻대로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자기 능력을 키우고, 자기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삶을 그대로 끌고가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너는 악독이 가득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시몬이 사마리아에서 굉장히 추앙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불행한 일이 생긴 겁니다. 빌립이 와서 자기가 못하는 능력을 막 행사하는 거예요.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저사람 누구야? 왜 내 사업을 방해하는 거야? 나는 다 망했잖아. 사람들이 나 안보고 빌립을 다 따라다니네?' 그것을 보고 그가 마음에 쓰라린 쓴 뿌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쓴뿌리를 어떻게 활용했느냐면, 불의가 가득하다. '내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아?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내 명성을 되찾고 말거야.' 이게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떻게 내가 다시 이런 것을 되찾을 수 있지?' 그래서 그가 침례도 받고, 그 다음에 '빌립이 행하는 능력, 나도 한번 모방해보자.'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자기 이름을 다시 드높이려는 하는 방법을 '불의'라고 베드로가 책망한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가짜 시몬을 용납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은 쓰라리겠지만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 유대인이 더 뛰어난 민족이어서가 아니고 그들은 성경을 전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이 하셨던 이 말씀,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얘배드리고 있다. 그들은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짜를 용납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다 받아들인다고 하는 사도 요한과 베드로의 안수에 굴복해야 합니다. 이쪽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금 한거죠.
그리고 또 하나 이런 해석을 해 볼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인데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ㅇ. 주님을 영접을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우리는 예루살렘 가는 사람과는 같이 사귀지 않는다. 사마리아를 지나가는데 숙소도 제공하고 식사도 제공하고 그래야 하는데, 예루살렘 가는 사람은 우리는 못해. 이것을 보고 사도요한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주님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이들을 태워버릴까요?" 태워도 마땅한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어떻게 영접해야 합니까? 마땅히 영접해야죠. 그런데 자기 생각으로 영접 안했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인해서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 때는 지금이 아니죠. 그런데 요한이 불을 말하고 주님이 책망하시죠.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너도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거다." 이렇게 하셨죠. 이 요한이 이제 사마리아에 와서 하늘에서 불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 믿는 자에게 성령이 내리도록 기도합니다. 변화가 필요한 겁니다. 이제는 민족이 아닙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도 이렇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의 지교회입니다, 이렇게 안합니다. 예루살렘 명령 들으세요, 이렇게 안합니다.독립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 말씀을 다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에게는 주님 이렇데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써야 합니다. 언제 쓰느냐? 오순절에, 사도행전 2장에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천국 문을 엽니다. 그 다음에 여기 사도행전 8장, 사마리안인을 위하여 천국문의 열쇠를 써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사도행전 10장, 이방인 고넬료를 위해서 천국 문을 엽니다. 베드로에게 권위가 있는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셨고, 베드로는 이 받은 열쇠를 써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와같은 사건들을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돈인데요. 돈을 잘 다뤄야 합니다. 돈이 이제까지 계속 문제가 나오는데요.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돈 문제를 가지고 넘어집니다. 밭을 팔아서 그 돈의 일부만 헌금하고, 그거 헌금 안해도 됩니다. 팔았을때도 자기 것이고 헌금할때도 자기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일부만 헌금해도 좋습니다. 일부만 헌금해도 굉장한거죠. 그런데 일부만 헌금 하면서 전부 헌금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돈이 거짓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 사도행전 6장, 과부들을 공궤하는 문제를 가지고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에 지역교회 내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돈 때문입니다. 돈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되는가를 사도행전 5,6,8장, 돈은 영적인 것을 살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과 무관합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이 여러가지로 돈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우리들이 돈에 대해서 얼마나 연약한가? 이런 것들을 잘 의식하고 돈에 대해서 합당한 청지기로서 그 돈을 관리해야 된다. 이런 것들이 그 교훈 중에 하나로 추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면서, 보자기가 내려와서 잡아먹어라. 이런게 들어가고요. 사마리아에 들어가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된 여자는 성령이 임하지 않는, 성령은 이렇게 임합니다.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순서로 성령이 임하고, 고넬료 이방인에게는 어떤 순서로 성령이 임하고, 그 다음에 사마리아인에게는 어떤 순서로 성령이 임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게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와야 됐었다. 그래야 성령이 임했다. 사마리아에는 가짜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것이 사마라이아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사마리아는 아니지만, 영적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을 말씀으로 받은 쪽에서 구원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가짜의 특징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워서 저희들 가운데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게 전파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구원과 하나님의 교회가 저희들 가운데 세워져서 주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 오실때 저희 가운데, 그러니까 저희가 이렇게 늘 기도하는 거죠. 대전 중구 모임에서 영접되었는데, 휴거될때 휴거 안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포모임도 마찬가지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저희들이 깨어서 기도하고, 분별하고, 무엇보다도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하는일이 저희 가운데 계속 있어서 주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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