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 엘리야 : 우선순위, 무엇보다 중요한 것 >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 한봉래 형제님
"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 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 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약조하고 저를 놓았더라 선지자의 무리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저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가로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왕이 지나갈 때에 소리질러 왕을 불러 가로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종이 이리 저리 일 볼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 본지라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왕상 20:31-43).
요즘에 전쟁이 일어나서 저희들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서 밀가루 값이 뛰고 식용유값이 오르고 한다, 하죠. 여기 전쟁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잠깐 소개를 드리면 나라 이름은 북이스라엘이고요. 왕 이름이 아합왕입니다. 이 왕은 악한왕입니다. 하나님을 믿지않고, 이스라엘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았습니다. 왜 믿지 않았느냐? 아내가 시돈여자, 이세벨이라고 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이 여자가 자기 친정에서 믿고있던 신이 바알입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바알신, 이게 아주 효능이 있는 신인데 이 신을 믿읍시다." 그래서 아합이 그 신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왕이다보니까 국가적으로 그와같은 바알신을 지지하고 돕고 이렇게 하고 있었던 거죠.
그랬을때 하나님께서 이 아합왕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아합왕에게 하나님을 믿도록 세번 역사하십니다. 첫번째, 그가 잘못된 우상을 섬길때에 하나님이 나라에 기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도록 만드는 첫번째 조취입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고, "너 때문에 우리나라에 기근이 생겼다." 사실은 자기 때문에 기근이 생긴건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네가 기근을 선포해서 이런일이 생겼다." 하고 안돌아와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두번째, 그러면 바알이 진짜 신인지, 하나님이 진짜 신인지 내기를 하자.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신을 참 하나님으로 하자. 이렇게 해서 바알 선지자들이 아무리 하루종일, 반나절동안 어떤것을 해도 하늘에서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기도할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첫번째는 기근으로, 징계로, 고난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두번째는 하나님이 실제로 살아계신다고 하는 증거를 그 눈으로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세번째 그를 도랑오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베푸신게 뭐냐면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국가가 아람이라고 하는, 지금은 시리아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이게 공격해 왔습니다. 전쟁에서 군대가 약해서 지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또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전쟁을 이기게 해 주겠다." 전쟁은 군사력으로만 보면 지는거거든요. 그런데 질수밖에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해주면 네가 나를 하나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세번째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믿지 않고 다른신을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세번째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그냥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이 아니고,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살아서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이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뭘로 알수 있느냐? 말씀으로 알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말합니다.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게 참 하나님을 알수있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이 아합이 하나님의 세번째의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도 하나님을 인정 안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것이 어떻게 나타났느냐 하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고 아람 군대는 패배해서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벤하닷이라는 이 아람왕이 다행히 죽지않고 살아있습니다. 왕이 전쟁에서 졌으니까 잘못으면 이스라엘 군에게 잡히면 끌려가거나 죽잖아요. 그래서 살기 위해서 아합왕에게 연략을 합니다. "제가 겨우 살아남았는데 살려주십시요. 저를 불쌍히 여겨서 살려주십시요." 이렇게 합니다. 이때 아합왕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약에 살려주면 자기는 관대한 사람이 되는거죠. 죽어 마땅한 사람을 살려주는 아주 은혜로운, 자비로운, 인자한 왕이 되는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느냐, 하는것을 물어봐야 합니다. 이 전쟁은 자기가 이긴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왕이 지금 패배한 것은 자기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쟁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승리를 은혜로 받은 아합왕이 해야 할 마땅한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셨느냐? 당연합니다. 죽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왜죠? 하나님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을때는 그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 대해서 합당하게 처벌하기를 원하시지, 그냥 유야무야 한다던지, 그렇게 해서 전쟁을 이기게 하실리가 없죠. 그래서 그가 마땅히 그 왕을 죽이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물어보거나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줘버립니다. 성경에 이와같은 예가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왕인데요. 사울왕입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사울이죠. 사울왕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해라. 아말렉을 쳐서 남김없이 없애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이 아말렉과 전쟁을 합니다. 하나님이 전쟁에 승리를 주십니다. 그리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각왕을, 그때의 왕이 아각인데요. 그 왕을 죽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살려둡니다. 그리고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나오죠. 사무엘이 한 말이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하신 말이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해드리는 것이 아니고, 사울이 이렇게 말하죠. "아니, 좋은 짐승들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남겨놨습니다. 아각왕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아각왕이 얼마나 우리에게 잡혀서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단순하게 그대로 순종해라.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이유가 뭐냐?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산의 한나님이다. 그래서 들에서는 전쟁에서 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 이방왕을 당연히 죽여야 합니다. 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실패한 경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갈때 입니다. 여호수아에 의해서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고 내 쫓으라. 그들과 약속하지 마라. 그들과 결혼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아래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쫓아내야 합니다. 다 죽이고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지 않고 가나안 족속과 결혼하고, 기브온 족속을 살려두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단순하게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어야 된다.' 믿으면 됩니다. '해라.' 하면 됩니다. '하지말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앞에서 순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뭐냐? 나중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래는 아합이 전쟁에서 이기고 벤하닷을 죽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이 그렇게 안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어떻게 하시죠? :벤하닷은 죽지 않을 것이다. 대신 네가 죽을 것이다." 이제 아합에게 죽음을 선고합니다. 이제 저희들이 몇장 더 가면 후반부, 2-3장 더 가면 아람과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싸웁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아합은 죽습니다. 벤하닷이 승리합니다. 이유가 뭐냐? 그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아합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잠깐 더 적용하고 넘어가면요. 우리는 고난받을때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어려울때, 어렵고 내 힘으로 안되는 사건을 만났을때 "하나님 도와 주십시요." 이렇게 나갑니다. 언제 안나가느냐? 평안할 때, 이제 승리했을 때, 이때 마음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데, 그것을 자신이 잘해서 이룬 것으로 보고 하나님께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받을때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많은 것들을 주셨을때 그때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 아합왕이 그와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사건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한명 사용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요. 하나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너는 전쟁터에 있는 사람으로" 아합왕을 만나야 하는데 아합왕이 안만나 줍니다. 그래서 서 전쟁터에서 왔다갔다 할때에, 아합왕을 만나도록 그가 전쟁 중에 있는 군인인 것처럼 누가 자기를 쳐서, 전쟁 중에 입은 상처죠. 그가 가서 전쟁터 안으로 들어가서 아합왕을 만나도록 누구에게 너를 쳐서 네가 상처를 입고 전쟁터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지금 열심히 다니고 있는, 승리해서 기고만장해 있는 아합왕을 만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라. 이렇게 해서 선지자가 자기가 맞아야 하니까, 어떤 선지자에게 "나를 때려라." 그랬더니, 아니 맨날 같이 말씀보고 같이 기도하고 했던 동료인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습니까? 안때립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때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해야 합니까? 안해야 합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어떻게 때리냐? 라는 인간적인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생각과 달리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 우리는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그러나 높으신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도, 심지어는 아합왕은 안그랬는데요. 선지자도 안그랬습니다. 선지자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우리로치면 전심 사역자입니다. 장로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주님만 위해서 살고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자기 생애를 드린사람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나온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가 됐다, 전심 사역자다, 그러면 다 완벽한게 아닙니다. 계속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고 우리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위엄있는 말씀 앞에 피조물인 내가 서야합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도 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옳은거죠. 그래서 이 선지자가 말합니다. "네가 나를 떠나 가는 길에 사자가 너를 죽일 것이다." 그는 죽습니다.
이것도 누구를 생각나게 하냐면, 북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여러보암 왕입니다. 여로보암왕이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북이스라엘에 우상을 도입한 왕입니다. 그가 금송아지를 도입했습니다. 그가 벧엘과 단, 두군데에 세웠는데요. 벧엘이라고 하는 곳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려고 할때, 하나님께서 어떤 선지자를 불러서 이 여로보암왕에게 경고하도록 보냅니다. 보내면서 그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경고하되, 거기서 음식을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도 말고 가던길로 또 돌아오지도 말고 다른길로 가라." 하나님이 보낸 사람입니다. 그는 그 우상을 숭배하는 곳에서 어떤 관련도 맺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안합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왕에게 경고합니다. 여로보암왕이 "감히 나에게" 하고 손짓을 하니까 그 손이 말라버립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드리고 있던 그 단이 부서집니다. 하나님이 명백하게 경고합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은 안된다.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너희들은 하나님 백성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애굽에서 출애굽한, 내 백성이다. 이렇게 하신거죠. 그리고 이와같은 심판의 경고를 듣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런데 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돌아가는 길에 그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가 있었어요. 이 늙은을, 오래된 선지자. 그 선지자가 이 유다 선지자를 만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너를 접대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집에 가서 먹자."라고 하는 말에 유다 선지자가 넘어갑니다.
여기서 두가지를 볼수가 있습니다. 지금 열왕기상 20장에 있는 때리라고 했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유다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가 말하기를 "천사가 당신을 접대하라고 했다."라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것을 분별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알아야 합니다.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것은 들어서는 안되는 거짓말이다.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유다 선지자가 따라가서 먹고 마시다가 사자에게 찢겨 죽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사건이고요.
그래서 다시 선지자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쳐라. 칩니다. 이번엔 순종하는거죠. 이상한 일이지만 순종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상처가 나니까, 전쟁터로 갑니다. 그리고 아합왕을 만납니다. 아합왕을 만나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왕이여, 어떤 사람이 나에게 포로를 한명 맡기면서 '이 포로를 놓치면 안된다. 만약에 이 포로를 놓치면 네가 대신 죽어야 한다.'하고 이 포로를 나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바쁜일도 많고 급한일도 많고 이리저리 하다보니까 포로가 어디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나 어떻게해야 됩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지금 아합왕에게 자기, 아합왕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아합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맡은 조건대로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벌을 받아야 하네. 포로를 놓쳤으니 네가 약속대로 포로대신 죽어야한다." 이렇게 판결을 내립니다. 이런 일이 또 뭐가 있었느냐면 다윗에게도 일어납니다. 다윗이 밧세와가 간음을 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갑니다.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은 양이 많고, 부자는 양이 많았고, 어떤 사람은 양 한마리밖에 없었는데 이 부자가 자기집에 어떤 손님이 와서 접대를 해야 하는데 자기집에 있는 많은 양으로 접대를 안하고 가난한 집의 양 한마리를 뺏어다가 그 손님에게 접대를 했습니까?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이 딱 대답합니다. "네배 갚아야 한다." 다윗의 아들 네명이 죽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보면, 저희들이 보통 하죠. 장기, 옛날에 길가에 보통 평상에 어르신이 장기두고 있는 것을 보면 두분이 장기를 두고있죠. 그런데 옆에서 훈수두는 분이 있습니다. 본인들은 안보이는 수를 훈수두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 이렇게 해라."하죠. 그래서 싸움이 나는거죠. 왜 가르쳐 줬느냐, 하면서.. 자기 문제인데 자기 스스로는 그것을 못봐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때는 알아들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게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하셨는데요. 뭐가 들어가냐면, '서로'가 들어갑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 왜냐하면 우리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자기를 못봐요. 그런데 누구는 보냐면 다른 사람은 봐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기 문제에 대해서 훈수를 들수 있습니다. 그게 정확한 거거든요. 이거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안듣죠. 나모다 어린 성도가 이야기하네? 나보다 모임에 늦게 들어와놓고 나한테 말하네? 이렇게 해가지고 안들으면 자기 손해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서로' 물론 겸손하게 해야 되겠지만, 서로 교제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발을 씻기고, 그리고 서로 섬기고, 또 은사라고 하는것이 있으니까요. 이 대목에서 저희들이 받아야들여야 하는게 나에 대해서 누군가가 동의하지 않지만 발언을 하면, 어떤 충고를 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아니, 그건 아니고" 이렇게 말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주님이 교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안받아들이면 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에게 말을 한거죠. "포로 만약 놓치면 내가 대신 죽어야 된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데 제가 죽기는 좀 어렵고 어떻게 다른 수가 없을까요?" 이렇게 물어본거죠. 아합왕이 "안된다. 너는 약속한대로 죽어야 된다." 이렇게 한거죠. 그러니까 그가 다시 변장을 풀고, 하나님의 선지자인것을 드러냅니다. 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증거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벤하닷을 죽이고 당신이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하셨는데 당신이 벤하닷을 살려줬으니 대신 당신이 죽어야 한다. 하나님이 죽이려고 한 사람을 당신이 살려 주었으니 이제 당신이 죽어야 한다." 이게 선지자가 한 말입니다. 여기서 잠깐 보겠습니다. 아까 이야기 한대로, 하나님께서 왜 승리를 주셨을까요? 벤하닷을 죽이도록입니다. 벤하닷을 그런데 왜 살려줬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자기가 얼마나 관대한 사람인가,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뭘 무시한거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댓가를 지불하는 거죠. 그가 대신 죽을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것을 하나 보겠습니다. 여기서 저희들이 받을수 있는 교훈은 '우선순위'입니다. 다시 예화로 들어가 보면, 어떤 사람이 포로를 맡기면서 "이 사람을 만약에 놓치면 당신이 죽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리저리 바쁜 일 때문에 놓친 건데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육체적인 생명도 그런데요. 영원한 생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하나뿐입니다. 그러면 내가 영원한 삶을 천국에서 보낼 것인지, 지옥에서 보낼 것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어떻게 가느냐? 착한 사람이 가는게 아니고 지옥에 누가 가느냐? 죄 지은 사람이 가는것이 아니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천국에 갈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모두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두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에게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내 죄라고 고백하는 사람,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어떻게해서 내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른 일도 있죠. 다른 많은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직장이 있고, 가족 문제가 있고, 집도 얻어야 되고, 할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 내가 영원히 천국에서 살수있다보다 중요한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성경을 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천국에 보내주십시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천국에 가야 합니다. 어떻게 영원토록 지옥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주님." 하고 성경을 펴고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는지, 믿음은 뭔지, 회개는 뭔지, 그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것이 믿음인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찾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열어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하지 않으면 아합왕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보겠습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하고요. 구원받은 후에는 뭐가 중요합니까? 구원받지 않은 분들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구원받은 분은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삶에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이 우선순위 조정을 못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우선순위를 말하는거죠.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내가 내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고, 물론 일도 해야되고 의무를 해야 합니다만, 내가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내 필요를 채우고 그리고 약간 여유가 있을때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그와같은 원리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왜 구원받았죠?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천국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치루신 대가가 무엇입니까? 가장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거죠. 고린도전서 6장에 "이제 우리는 값으로 산 바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니" 그게 되어야 하는거죠. 그런데 여전히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구원받기 전과 유사하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우선순위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합왕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땅히 죽이기로 한 것을 안죽이면 다시 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하죠. 우리가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그 예가 여기 있습니다. 사울왕이 아말렉 사람인 아각왕을 안죽였습니다. 사울왕은 누구에게 죽는지 아십니까? 아말렉 사람한테 죽습니다. 아합은 누구를 안죽이냐면 아람왕 벤하닷을 안죽입니다. 그는 누구와 전쟁에서 죽지요? 그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습니다. 우리가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마쳐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왕에게 은혜를 베풀고 또 베푸십니다. 그래서 그가 우상을 숭배했을때 그에게 어려움을 줘서 돌이키게 하시고, 그리고 그가 '정말 바알이 하나님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때 성경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불로, 그리고 그가 왕입니다. 왕에게 가장 중요한 것, 왕은 국가가 있어야 왕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국가가 없고 그는 왕이 못되는 거죠. 남의 신하가 되는거죠.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왕자로 태어나서 왕자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으로서 계속 있을수 있도록 이길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생애에서도 하나님께서 여러가지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번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말씀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무엇으로 나타나느냐면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지금 여기까지는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불순종의 대가로 심판을 선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이 본문이 저희들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때,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실때, 그것에 대해서 계속 자기 생각을 가지고 반대합니다. 사울은 어떤 생각으로 아각왕을 살려줬냐면 하나님께 제사드리겠다는 미명으로, 그 다음에 아합왕은 왜 그런거죠? 자기 자존심으로, 자기를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이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주된 두개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람들은 어려울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기셔서 상황을 호전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살만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울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음성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로 하여금 평안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도 그런분들을 많이 봤는데요. 고난 당하면 이렇게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하나님 이번만 해결해 주시면 제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어떤분은 "주님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사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놀랍게 기적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할수 없도록 그 상황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선교사로 다 안나갑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서,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때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고 그리고 하나님께 대신, 물론 하나님과 거래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와같은 은혜를 베푸시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좋아지면, 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해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감동하신 것들을 순종해내야 한다. 다시 번복하지 말고, 그때 그 심정으로 돌아가서, 초심을 잃지말고 그 놀라우신 주님앞에 헌신과 드리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손해가 아니고 그것이 참된 복입니다.
선지자를 보면 하나 차이를 보면 아합왕은 그렇게 잘못하는데도 하나님이 놔두십니다. 은혜를 베풀고 베풀고 베푸십니다. 선지자는 한번 때리라고 했는데 안때렸다는 이유로 사자에게 찢겨죽습니다. 유다 선지자도 그렇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한 일 다해요. 그리고 다만 돌아가는 길에, 완수하고 돌아가는 길에 먹지 말라고 한것, 누가 거짓말해서 가서 먹은 거예요. 그래도 죽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까요? 베드로전서 4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합왕에게도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심판은 세상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서부터 하십니다. 믿지 않는사람부터 심판하시는 것이아니고 믿는자부터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저번에 말씀드린대로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소돔 심판이 있었습니다. 소돔은 부도덕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유황불로 심판하십니다. 가버나움은요? 가버나움은 그 마지막날 소돔 사람들이 일어나서 가버나움 사람들을 책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에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주님을 믿지 않고 있는, 지금 침례요한과 주님의 말씀을 믿고있지 않은 지금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침례요한이 말했어도 침례요한을 거부합니다. 왜요? "아니, 침례요한 너무 낙타 털옷입고 사막에서 살고" 주님은요? "아니, 주님은 죄인의 친구여서 먹고 마시고" 그래서 침례요한을 거부하고 주님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기쁨으로 받고 순종하는 관계에 못들어 가 있는 것이 이미 심판입니다. 미래에 심판받을뿐만 아니라 지금 이미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저희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내가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수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라고 하는 영혼이 나오기를 주님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경우에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하는, 나는 내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심으로 나는 하나님 것이다. 이제 내가 살고죽는 것은 나에게 달려져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하는 헌신이 믿는 성도들의 심령속에 일어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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