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엘리야

엘리야 사역의 시작

박이레 2026. 1. 15. 14:23

< 엘리야 사역의 시작 > 한봉래 형제님 / 금천 26년 1월 11일.

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엘리야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번 교제한 적이 있는데요.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7장부터인데요. 여기도 문맥상 16장 30절부터 17장까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0-34).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저가 가지러 갈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 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 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 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왕상 17:1-24).

우선 첫 번째로 아합 왕이 즉위하고 엘리야가 선지자가 되는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통일 왕국이었죠. 첫 번째 왕이 사울이고, 두 번째가 다윗입니다. 세 번째 솔로몬이 왕의 자리를 이어받죠. 이 세명의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둘로 분열이 되죠. 이제 소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분열이 됩니다. 열 지파는 북 이스라엘이 되고, 두 지파가 그러니까 이제 다윗 지파하고 베냐민 지파, 예루살렘, 남유다가 되는 국가가 분열하게 됩니다. 왜 내가 분열하게 됐느냐? 이런 것들 찾아보시고요. 그다음에 이제 북이스라엘이 나라가 세워질 때 그때 왕이 여로보암이고, 나라는 북이스라엘이고 수도는 사마리아, 남쪽은 유다고, 수도가 예루살렘이죠. 북 이스라엘을 세울 때 그가 한 잘못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 그가 금송아지를 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으로 예배드리러 가면 자기의 정통성이 흔들리게 되므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 유다에 예배드리러 갈 필요가 없도록 단, 브엘세바, 두 군데다가 단을 세웁니다. 나쁜 짓이죠. 단을 세우고 거기에다가 금송아지를 만들었죠. 그가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 생각을 해보면, 아마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본 것 같아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금송아지를 만든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느냐? 아론이 만들었죠. 시내산 밑에서 율법을 받는 데 40일이 걸리니까,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게 우리를 출애굽 시킨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렇게 한 거잖아요. 그걸 참고해서 금송아지 두 군데 만들고 "남쪽 솔로몬 성전으로 내려갈 필요 없다. 여기서 예배드리면 된다." 그래서 이제 금송아지를 만든 것, 제사장을 아무나 세운 것, 절기를 마음대로 바꾼 것, 이런 죄를 지은 거죠.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단 한 명도 선한 왕이 안 나옵니다. 남쪽 유다는 선한 왕, 악한 왕이 번갈아가면서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은 한 명도 선한 왕이 없어요. 그래서 여로보함의 죄가 큰 거죠.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로보함보다 아합의 죄가 더 심했다." 저희들이 이제 왕들 이야기 가운데, 쭉 살펴보면 악한 왕들이 많이 있죠. 아합이 아마 제일 나쁜 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표현하는데요. 이유가 뭐냐 그러면, 여로보함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도 십계명 첫 번째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두 번째,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존재죠. 그런데 이제 눈에 보이는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뭐라고 불렀냐면, 우상을 만들었죠. 십계명 첫 번째 계명, 두 번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겼지만, 그래서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어겨놓고도 금송아지를 뭐라고 불렀냐? "여호와다." 이렇게 부른 겁니다. 금송아지에게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렇게 한 겁니다. 아합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여호와 하나님을 제치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 섬긴다.
우리는 바알을 섬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흔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그들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해내시고, 그리고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곳에서 살게 하신 거죠. 그런데 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안섬긴다. 우리는 바알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긴다." 이게 이제 결혼을 잘못했거든요. 시돈 공주 이세벨과 결혼해서, 그러니까 불신 결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 우상을 섬기는 여자랑 결혼해서 그 여자가 섬기는 신을 이스라엘 온 민족이 섬기도록 바꿔버린 왕입니다. 아합왕, 그리고 그는 이제 전 국가의 힘을 동원해서 이 바알을 섬기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렇게 한 거죠.
이렇게 했을 때, 이제 첫 번째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뭐가 훼손이 됐냐면 첫 번째 '예배가 훼손'됩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우상에게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없죠. 예배가 훼손이 됐고, 두 번째 16장에 보시면 여리고 성을 다시 짓습니다. 여리고성은 여호수아가 정복을 하면서 가나안 땅에 이렇게 들어갈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첫 번째로 막은 성이 여리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을 누리기 위해서 들어가는데 그걸 막고 있는 성이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를 어떻게 무너뜨렸냐? 13바퀴 돌고 무너지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무너뜨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6일 동안 한 바퀴씩 돌고 성 주위를 돌았어요. 성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여리고 성 사람들이 "쟤들 뭐해? 우리를 정복하기 위해서 왔다며?" 한 바퀴 도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가요. "미친 거 아니야? 저래서 어떻게 성을 무너뜨려?" 그다음 날도 또 합니다. 한 바퀴씩 돌고 돌아가요. 그래서 성을 정복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일곱째 날은 일곱 번 돌았어요. 그리고 소리를 지르니까 성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무너뜨린 성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성을 다시 짓는 자는 성 건축을 시작하는 날 첫째 아들이 죽을 것이다. 이 성을 완공하는 날 막내 아들이 죽을 것이다."라고 저주를 했어요. 누가 짓겠습니까? 자기 아들 둘 잃으면서 성을 왜 짓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보다, 성을 왜 짓겠어요.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제 첫 번째 예배가 무너지고, 두 번째 '말씀이 무시'됩니다. 그래서 이제 히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성을 지었어요. 여리고 성을 지었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가 착공식을 하는 그날 그의 첫째 아들이 죽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거예요. 무섭지 않습니까? 그래도 계속 지어요. 완공을 했어요. 그날 자기 막내 아들이 죽어요. 놀랍죠.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도,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식이 죽어도, 성을 짓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이 두 가지가 벌어집니다.
예배가 훼손되고, 말씀이 경시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입니다. 예배 말씀 세 번째 그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있었는가? 있었어요. 몇 명이 있었냐? 7천 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보면 오바댜라고 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선지자 100명을 숨겨주었어요. 이분들이 이제 7천 명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7천 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일어나서 이 잘못된 아합 왕의 패역한 행동을 막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형제님은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그날 왕궁에서 이제 여호와 선지자를 죽이고, 바알을 국가적으로 숭배하도록 하고, 여리고 성을 완공하고, 그날 이세벨하고 아합이 아마 상상인데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둘이 하지 않았을까? 이사벨이 득이양양하게 "이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서 바알만 숭배해야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라고 아마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뭐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고 있는데 이제 길르앗이라고 하는 곳에 디셉 마을에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길르앗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뜻은 요단을 건너, 요단 서편을 건너가는 거예요. 이게 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두 지파 반이 여호수아한테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요단강 안 건너가고 요단 동편에서 살고 싶어요." 여기 풀이 잘 자라고, 물도 넉넉하니까, 우리 가축 키우기, 이스라엘이 이제 목축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가축 키우기에 좋으니까 이쪽에서 살게요." 그랬을 때 하나님 뜻은 아니지만 허락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지파 반이 제일 먼저 망합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정복을 당하잖아요. 그리고 앗수르 침략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두 지파 안에 있던 땅 중에 일부가 길르앗입니다. 그리고 디셉은 성경에서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마을에서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이, '엘리야'라고 하는 이름은 이런 뜻입니다. '내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이 엘리야가, 예배가 무너지고, 말씀이 무시되고, 이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음성도 들리지 않던 그 시대에, 이건 야고보서로 가겠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그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영웅 아닙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생활해야 되고 그래서 일상적인 여러 갈등을 많이 느끼는, 직장생활도 해야 되고 상사에게 욕 먹기도 하고, 이제 이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합니다. 기도는 항상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하잖아요. 그가 성경을 펴봤어요. 성경을 폈더니, 나중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11장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미리 말씀하셨어요.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데 반석을 두 번 쳤잖아요. 그런데 못 들어갔지만,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게 신명기잖아요. 신명기는 '두 번째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한 번 이미 앞에 말했던 것들을 다시 요약해서 말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11장에서 "너희들이 하나님이 준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출애굽한 것도 하나님 은혜죠.
광야 40년을 통과한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온갖 기적을 통해서 광야를 지나왔잖아요. 그리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여리고, 하나님이 다 정복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땅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 그거 안 되죠.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으로 살고 있는데, 자기를 구원하고 자기를 보살펴주는 하나님을 버리고 알지도 못한 우상을 섬긴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우상을 섬깁니다. 이제 모세가 말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늘을 닫아버리겠다." 애굽하고 가나안 땅하고 차이죠. 애굽은 나일강이 흘러서 농사를 짓습니다. 물이 넉넉하죠.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비가 와야 농사가 가능합니다. 이게 좋은 땅입니다. 비가 안 와도 강이 흘러서 농사 지을 수 있는 땅, 나쁜 땅입니다. 믿음으로 안 살아도, 말씀대로 안 살고 기도 안 하고 살아도 잘 살아지는 것, 나쁜 것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하나님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건 나쁜 겁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는 그런 환경이 복된 환경입니다. 가나안 땅이, 그래서 만약에 가나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이 죽이겠다가 아니고요. 내가 개입하겠다. 그런 상황에 내가 개입하겠다. 그래서 내가 징계하겠다. 하나님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고난을 통해 말하겠다. 그리고 돌아서면, 그 징계를 순히 받아 돌아서면 다시 비를 내리고 축복하겠다. 이게 신명기 11장입니다. 엘리야가 그 기록을 읽었어요. 성경에 안 나와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추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성경을 보니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이미 모세가 예언해 놓은 거예요. 이게 그냥 생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세요.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닫아버리겠다라고 돼 있는 거예요. 엘리야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옵소서." 열왕기상 17장의 주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하나님이 경고한 말씀, 그 말씀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고난을 자초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형통해달라고 기도한 게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움이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징계가 있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것은 엘리야 자신도 어려움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비가 안 오면 엘리야에게는 비 오나요?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도 고난에 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그들이 돌아설 수 있다면, 고난이 필요하다라고 그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것도 이제 안 나와 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한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 내가 하늘을 닫아버릴 거다. 너는 이 사실을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해라." 이런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제 디셉이라고 하는 어디 촌 동네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래서 그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수도 사마리아, 거기서도 가장 경계가 엄한 왕궁까지 갑니다. 아마 내비게이션도 없고, 가본 적도 없고, 자기 동네에서는 수도 갔다 온 사람도 없고, 하여간 이게 어떻게 갔는지 모르지만, 고생고생해서 가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아합왕을 만나서, 촌 사람이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 은혜로 만나서 선포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맺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약속하신 겁니다. "네가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선포해라. 그리고 내가 기도했던 너에게 약속한다. 다시 비가 오고 다시 우로가 맺히는 날은 너를 통해서 다. 네가 선포하는 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이제 다시 우리를 회복시키셨다라고 선포하기 전에는 안온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더합니다.
그럼 이제 여기서 적용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그가 한 말을 보면, 그가 선포한 말을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가 첫 번째로 한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첫 번째 그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아도, 우상에게 예배드려도, 사람 눈에는 안보이니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 일을 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예배드리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상관없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말씀하셨죠.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 무시합니다. 여리고를 짓는데 뭐, 그 왜 지으면 안 되는데? 이 좋은 땅에다가 성 하나 지으면 좋지, 이걸 왜 안 지어? 그리고 아들 죽는다는 게 아들이 그 말씀 때문에 죽었겠어? 마침 그때 사고가 나서 죽은 거지
뭐, 이렇게 아무리 사람들이 그렇게 해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성경에 써져 있는 하나님 말고, 내 실제 삶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 나의 발걸음과 나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고 내가 잘못할 때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의 모든 측면을 개입하고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론이 아닙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두 번째,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게 이제 영어로는 이제 '섬긴다'고 돼 있기도 하고요. 영어로는 어떤 성경에는 '서 있다' 내가 그분 앞에 서 있는, 나는 늘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가서,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그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 마음의 소원을 아뢰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말한다. 이게 엘리야가 한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가? 엘리야는 믿음의 영웅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이 말한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왕궁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을 때, 이제 여기서부터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열왕기상이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에리야에게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보시면 엘리야가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그릿 시냇가에 가라." 그릿 시냇가로 갑니다.  하나님이 "사렙다로 가라." 사렙다로 갑니다. 하나님이 다시 "갈멜산으로 가라." "아합 왕을 만나라." 그래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그대로 엘리야가 순종했다라고 하는 기록이 계속 나옵니다. 그게 뭐 하고 반대되냐면, 그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도 않던 시대에,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한 사람을 일으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해도,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져도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귀를 열어서 하나님 음성을 듣는 사람, 이렇게 말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이게 이제 어떤 사람들이냐면, 예를 들면 이런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뭐라고 대답했죠?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게 순종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그게 무슨 말씀이든지 제가 순종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게 창세기 22장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 어마어마한 말씀을 하시죠. 이에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 갔고, 모세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주님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릅니다. "모세야" 모세가 뭐라고 대답하죠?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게 믿음의 사람들이 대답했던 말들이다. 우리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압니다. 주님이 저에게 복된 말씀을 하시는 분인 줄 제가 압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았고,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제가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말씀하옵소서. 이게 이제 엘리야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라."라고 말합니다. '숨어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스타 탄생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알지 못했는데 갑자기 어떤 스타가 나타나서 이제 막 말씀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엘리야는 첫 번째 아무도 알지 못하는 디셉이라고 하는 어느 시골 깡촌에서 성경을 보고 기도하던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씁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훈련시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면, 엘리야를 불러서 하나님의 목표는 갈멜산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데서 내기를 하려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겨라. 바알이 하나님인데 섬겨야지,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를 섬겨라. 이렇게 말하죠. "여호와만 섬기라." 하나님 한 분이니까 하나님만 섬기자. 이걸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놓고, 바알 선지자 500인을 놓고, 그가 내기를 해요. 이거 내기를 이렇게 하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신, 그분을 하나님으로 가자. 이제 이걸 해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증하고자 하는 이 일을 엘리야에게 맡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훈련시킵니다. 숨어라.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어라.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들은 부름받고 나서 하나님과만 교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대표적인 게 사도 바울이죠. 사도 바울이 어디서 구원 받죠? 다메섹 도상에서 구원 봤습니다. 그래서 다메섹 모임에 들어갑니다. 원래는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구원 받으니까 다메섹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이 "형제 사울아" 그래서 형제가 되서 다메섹 모임에 들어갑니다. 다메섹 모임에서는 받아주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죠. "그는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가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들어가죠.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이 3년간 아라비아에 있습니다. 홀로, 3년 동안. 그러면서 아마 사도 바울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구약 성경을 순종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데, 왜 주님을 몰라봤을까? 구약이 그토록 예언한 메시아를 왜 몰라봤을까? 나에게 뭐가 문제가 있나? 3년, 그리고 나서 다시 다메섹에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그다음에 이제 아레다왕의 방백이 잡으려고 하니까 예루살렘으로 3년, 모세는 40세에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었죠. 그가 애굽의 왕자였을지라도 노예된 이스라엘 백성 편에 섭니다. 그리고 자기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이스라엘이 싸우면 되냐? 그래서 이스라엘을 위하고 이스라엘이 자기를 인정해서, 이스라엘을 위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몇 년간 그가 양을 치냐 그러면, 40년을 양을 칩니다. 그래서 80세에 주님이 부를 때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 못합니다. 이제는 양이 언제 새끼 낳는지, 이것 밖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이 쓰십니다. 힘이 다 빠질 때,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 때, 그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심으로 "너는 순종과 믿음만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혜로우시거든요. 하나님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많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방법으로 하실 거거든요.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사용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영광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죠? 사람이 자기걸 빼야 합니다. 그걸 만드려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요구한 것, 가서 숨어 있어라.
숨어 있다고 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상과 분리입니다. 세상과 달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징계로 비도 오지 않고 이슬도 없는 곳, 그 사람들과 달리 너는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을 것이다. 분리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이제 전부 비도 안오는데 그는 그릿 시냇가에서 있죠. 시내는 물이 흐르는 곳이죠.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고기를 물어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먹이시는 것을, 자연을 통제하는 것을, 까마귀를 사용하셔서 자연을 통제하시는 분인 것을, 그가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과 분리되고 하나님 앞에서 성별된 삶을 삽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용을 받는 사람들이 처음에 꼭 통과해야 되는 필수 코스입니다.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했죠. 그는 그릿 시냇가에 있습니다. 이제 비가 안 오니까 시냇물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시내가 말라버립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사렙다로 가라. 그곳에 있는 과부 집에서 과부가 너를 먹일 것이다. 너는 그 집에 있어라."
두 번째 지금 아합은 어떻게 하고 있냐면, 아합은 자기 죄로 자기가 바알을 숭배하고 말씀을 무시해서 생긴 문제죠. 그래서 기근이 생겼는데, 아합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엘리아 그게 와서, 비가 안 온다고 선포한 통에 비가 안 오는 거라고 생각해서 엘리야를 체포하게 합니다. 그래서 전국에 엘리야, 현상금 걸어서 엘리 엘리야가 있는 곳 알려주면 몇 억, 그렇게 합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사렙다는 이스라엘 바깥 땅입니다. 이방 땅입니다. 쭉 가야 합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금 엘리야 잡느라고 지금 온갖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거기 가야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제 기근 동안, 기근이 있는 동안, 기근이 3년 반이잖아요. 3년 반 동안 엘리야를 계속적으로 이렇게 먹이려면 좀 그래도 생활이 넉넉한 사람이 먹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과부래요. 나중에 보면 아들도 하나 있어요. 자기는 이거 먹고 죽으려고 그래요. 지금 그런데 그 사람더러 엘리야를 먹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상하시죠. 누가복음 4장에서 주님이 이 대목을 놓고 말씀을 전하시죠.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를 먹인 거고, 이건 첫 번째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입니다. 엘리야를 누가 먹여야죠? 이스라엘 사람이 먹여야죠. 그런데 이방 여자가 먹입니다. 왜요? 이스라엘에 믿음 있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다 입니다. 단 한 명도, 그래서 하나님은 사렙다라고 하는 이방 땅에 있는, 그리고 공궤할 형편이 안돼는, 그런데 말씀하시면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한 여자를 하나님이 발견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이 대목은 이제 이렇게 보겠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과 교제해서 하나님이 자연의 주인이시고, 통치하시고, 역사를 끌고 가신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배운 거죠.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작업은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다른 사람이 믿음을 갖도록 도울 수 있어요. 성경은 지식이 아닙니다. 공부해서 알아내는 게 아닙니다. 물론 지식적인 요소가 있죠. 그런데 이게 실질적으로 삶으로 변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께 잘 배웠으면 그다음 작업은 뭐냐 하면, 어떤 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걸 엘리야가 해냅니다. 그가 갑니다.
이제 사렙다까지 갔어요. 그런데 사렙다에서 하나님이 정한 과부가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찾아내야죠. 그런데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하십니다. 그가 사렙다에 도착했을 때 과부가 그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 인도하고 계시고 그가 그 과부에게 요청합니다. "물을 좀 달라." 요청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나죠. 수가성 여인 생각도 나고, 또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에게 물 좀 달라 했던 생각이 나죠. 그런 식으로 물을 달라고 하니 이 여자가 기꺼이 물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합니다. 이 여자가 맞구나. 하나님이 택한 여자가 맞구나. 그래서 다시 요구합니다. 물을 가지러 가니까 "떡을 만들어 달라." 떡을 가져와라. 나를 공궤해야 되니까 떡을 갖고 오라고,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지금 이거 먹고 죽으려고 합니다. 나 먹고, 아들 먹고, 그리고 죽으려고 합니다." 이 여자에게 자기에게 먼저 떡을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이 여자가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어떤 믿음을 발휘해야 되냐면 하나님 먼저 입니다. 우선순위 1번 하나님, 지금 굉장히 잔인한 케이스죠. 이거 먹고 죽으려고 그러는데 그거 뺏어다가 자기한테 갖고 오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냐면 마태복음 6장 33절인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여자는 먼저 하나님께, 이거 먹고 죽을 음식이지만 이걸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보낸 사람입니다. 하나님처럼 대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요구한 겁니다. 그거 할 수 있나요?
엘리야가 그 믿음을 돕기 위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면, 믿으면, 하나님을 신뢰하면,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합니다. 그녀가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먼저 떡을 만들어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밖은 완전히 기근이지만, 이 집은 풍성한 음식이 매일매일 신선하게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릿 시냇가, 그다음에 이제 사렙다까지 온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 갑자기 아들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십니까?" 성경이 더 이상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 아들과 관련해서 뭔가 이 여자의 양심에 죄와 관련된 일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오셔서 먹고살게는 됐지만 내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까?" 되게 이제 불편하죠.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제일 먼저 뭘 심판하냐면 교회 성도들을 심판합니다. 성도들부터 심판합니다. 세상은 나중에 심판합니다. 이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하나님이 직접 돌보고 있는 이 가정에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가정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다른 약간 비슷한 케이스를 생각해 보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요셉한테 옵니다. 요셉은 형들과 화목하길 원합니다. 과거에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구덩이에 던져놓다가 이유는 이거죠. 꿈 자기가 꿈을 꿨는데 꿈을 이야기를 했거든요. "형들이 내 앞에 절한다." 기분 나쁜 거죠. 그래서 "이게 어디 막내가 돼서, 어디 우리가 지 앞에 절을 해?" 그래서 죽이려다가 그래도 어떻게 형제간에 죽이냐, 그래서 팔아버린 거죠. 그런데 요셉은 총리가 됐습니다. 이제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하나님이 준 꿈이죠.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형들에게 "내가 요셉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정체를 밝히고, 그런데 그전에 요셉이 확인해야 되는 게 있습니다. 형들이 죄를 회개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를 품고 화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돼야만 편안한 형제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도록 자루에다가 돈도 집어넣고, 은잔 집어넣고, 이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그들이 했던, 그리고 이제 그들이 했던 잘못들을 재현해 냄으로써, 그들이 우리가 저랬었지.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있고, 요셉이 형들의 죄를 생각나게 하도록 하는 것처럼, 이 사렙다 과부의 집에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이런 것들을 내놓는 겁니다. 이건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니고, 죄를 정결케 하여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누리게 하려는 의도로 주어진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들이 죽고 과부가 불평하고 이렇게 했을 때, 엘리야가 "아들을 달라." 그래서 그다음에 자기 침대에 눕힙니다. 침대가 어떤 침대냐 그러면 그가 매일매일 기도했던 장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마치기 전에, 오늘도 여러 가지 일들과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그 자리에 눕힙니다. 기도처에, 그리고 그는 성경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기도를 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합니다. 엘리야 이전에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라고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합니다. 그전에 부활에 관한 것들은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론으로 주어집니다. 내가 이삭을 죽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이면 하나님이 이삭을 살릴 것이다라고 그가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죽고 사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걸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걸 그가 배운 겁니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된 이 하나님을 그가 사렙다 과부에게 동일하게 믿음으로 섬기도록 격려했었고, 이제 세 번째, 그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아야 되냐면 '부활시키는 하나님'으로 알아야 됩니다. 왜요?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이 패역한 이스라엘, 해역한 아합, 바알을 숭배하고 있는 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래서 그가 다시 한 번 기도하도록, 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3년 반이나 비가 오지 않았지만 다시 기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 아이를 자기가 기도했던 침대에 눕혀놓고,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기도할 때 이제 뭘 기도하냐면 "하나님 이 아이는 죽어 마땅합니다. 어머니의 고백에 따라 무슨 죄와 연관돼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어떤 명예가 걸려 있냐 하면 하나님이 보호하는 집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공궤하고 있는 이 사렙다 과부 집에서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 죽으면 하나님의 돌보심이 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이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그래도 이제 죽은 사람 살려낸 그런 걸 보면, 유두고도 떨어집니다. 유두고가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데 드로아에서, 그다음 날 가야 되니까 저녁 늦게 말씀을 전하니까 유두고가 창가에 앉았다 떨어져 주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말씀을 듣다가 죽는 일이 생겼으니까, 이게 이제 집회를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이게 어떻게 되겠어요? 여기 교회의 간증이 훼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려가죠. 그리고 그 청년 위에 자기 몸을 포개고, 세 번을 그렇게 하고 가죠. 이런 게 전부 뭘 의미하냐면 엘리야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몸에 자기를 포개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그걸 분명하게 하는 겁니다. "저는 이 죽은 자와 똑같습니다." 나는 이 죽은 이 아이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나도 이 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연약하고, 죄가 있고, 죽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돌보시는 능력을 위하여, 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일이 굉장합니다. 아무 말을 안 하고 어머니한테 돌려줍니다. 이게 예수님 뭐 한 게 생각이 나냐면, 나인성 과부가 있었어요. 아들이 청년이었어요. 과부가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서 드디어 청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죽어버렸어요. 이제 장례 행렬이 갑니다. 장례 행렬이 보통 우선순위 1번입니다. 가면 다 비켜주죠. 그거 안 막는 거죠. 요즘에 앰뷸런스 그러면 막 가잖아요. 그런데 그 장례 행렬을 가로막는 분이 있었습니다. 주님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아무리 바빠도 저기는 막는 거 아닌데." 주님이 멈춰 세웁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안 하십니다. 어머니에게 돌려줍니다. 불사히 여깁니다. 여기도 아무말 안 합니다. 자랑하지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어머니에게 돌려 줍니다. 이 아이와 관련돼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어머니에게 돌려 줍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발언을 보시죠. 이 과부가 뭐라고 하나요? 이제까지 이 여자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하나님이 아니죠. 자기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지만, "나의 하나님" 이렇게 못 부릅니다. "당신은 하나님",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이제까지 그는 계속 엘리야를 사용하시는 분, 엘리야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케 하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여호와 그러면 '약속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는 뭐라고 불렀냐면 "하나님의 사람" 이렇게 불렀거든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죠. 그런데 이 여자가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엘리야 즉, "하나님의 사람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줄을 내가 아노라" 그래서 17장의 주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진실한가?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고, 죄 있는 자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고, 간증을 나타내는 위대한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으로 이 17장이 끝을 냅니다. 사람들은 무시했지만, 사람들은 읽고도 그냥 이론으로 생각하고,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고, 그리고 말씀을 무시했을지라도, 이제 엘리야가 기도와 그리고 살려내므로 그게 한 이방 여인이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한 것이다. 참된 것이다. 능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말씀을 이제 마치겠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한 이름 없는 곳에서 저희들과 똑같이 성경을 가지고 살피고, 그리고 기도하던 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하나님이 살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라고 믿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훈련시킵니다. 그에게 세상과 분리된 하나님 앞에 성별된 삶을 살도록 그릿 시냇가로 가게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를 다시 이제 그가 알게 된 이 하나님을 다른 사람이 이 하나님을 동일하게 믿도록 돕는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가 있는 집에서 죽음이라고 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가 성경 최초로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기도하게 합니다. 그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엘리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따라 기도했던 것을 이제는 그가 듣도 보지 못한, 그가 경험하지 못한,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다는 고백을 이끌어냅니다.
엘리야가 저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엘리야와 똑같이 성정이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씀과 기도가 우리의 상황 속에서 정말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기도를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그다음 단계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 사람 있습니다. 디모데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와 같은 간증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의 사람입니다. 말씀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우리들이 하고 있는 말은 진실하다라고 하는 평판을, 이 시대에 우리 이 지역에서, 금천 지역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도전과 각오와 결단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