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중요성 > 2017년 / 조나단 블락 형제님
오늘 이 시간에는 가족과 관련된 말씀을 한번 상고해 보겠습니다. 참으로 이 가정이라고 하는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것과 관련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이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단지 여러분의 가정을 이렇게 양육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서 제가 서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내와 저의 자녀들이 여기있고 저도 또한 동일한 입장으로서 그러한 것을 공감하는 가운데서 이 교제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경이 가정과 관련되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함께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 각 나라마다 다른 문화가 있고 그것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족과 관련되서 먼저 살펴보기 위해서 창세기를 열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1-2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창 4:1-2).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39-5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25).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28-3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우리가 이 가정에 대한 주제로 성경을 상고하여 볼때에 이번 시간에 특별히 네가지 소 주제로 나누어서 생각하겠습니다. 첫번째입니다. 이 가정은 창조주께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번째입니다. 이 가정은 그리스도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한 가정에 난 그 사실을 보면서 함께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번째입니다. 또한 이 가정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가정을 세우고 양육하는 것은 그들의 임무이고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네번째로 또한 이 가정은 교회에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 지역모임이라는 것은 이 가정들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있는 분들은 자녀가 아직 없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오늘 주제는 나와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로부터 바로 이 가정이 나오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때에 그리고 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바로 이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이 여기 있을지라도 그분들은 또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이 결혼에 대해서 성경적인 결혼을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이 가정과 이 결혼에서 어떠한 것이 더 무거운 주제이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모든 사람이 다 결혼해야 되는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성경의 가르침은 남자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기로 오늘 이 주제는 여기모인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고 중요한 주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이 가정이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공격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분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으로부터 제정된 이 가정이 그때부터 계속 공격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한국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서양에 있는 나라들은 가정이 이 시대에 심한 공격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결혼이, 그리고 이 가정이 계속해서 잘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성별의 차이도 없애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우리는 마포모임에서 집회를 통해서 그 구절들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시간에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것은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점점 모호해지고 또 어떤 곳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없애버린 그러한 시대 가운데서 이 가정의 존립의 근거가 굉장히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꾸리고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이제 여자와 결혼해서 또 다른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완전히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말씀들은 제가 이러한 말씀집회를 시작하면서 드리기에 그렇게 즐거운 내용이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현실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시간 관계상 현재 여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 성별의 차이를 없애버리는 그런 법과 규정들에 대해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심지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까지 가르쳐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는 이제 구세대, 그런 성경적인 가르침을 따라서 교육을 받은 세대는 그것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이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유치원때부터 정부는 그런 교육자료들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이 가정이라는 것이, 그리고 이 결혼이라는 것이, 창조때부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성경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 가정과 결혼이라는 것은 문화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각 나라에 여러가지 문화적인 것들이 이러한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과 가정의 근거인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결코 어느 나라에서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때에 그 순서와 질서는 그것은 또한 분명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변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순서는 우리가 지역모임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구별을 두고 행하는 것에 또한 기반을 주고있는 것입니다.
이제 창세기 2장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결혼에 대한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않고 이제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않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고린도전서 7장 2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2).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또한 배우게 되는것은 뭔가 영적인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자가 그 남자, 아담을 돕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무엘이 특별히 에벤에셀이라고 그 지역을 붙인 것을 생각해 볼때에 이러한 생각을 해 볼수가 있겠습니다. '에벤에셀'에서 '에셀'이라는 것은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는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돕는 배필이라는데 사용된 이 '에셀'이라는 것은 그 여자가 남자의 실제적인 필요를 도와줄뿐만 아니라 모든 필요들, 영적인 필요까지 포함해서 돕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첫번째 가정이 죄로 말미암아 그것은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그것은 하나님의 가정에 대한 창조의 목적과 질서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
이 말씀은 여전히 신약성경의 에베소서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죄가 그 가정에 들어와서 그것을 훼손하였지만 여전히 이 창조의 질서, 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결혼의 관계를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서부터 지음을 받은 것이고 남자가 여자에게로부터 지음을 받은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1장 7-12절까지 이 내용을 가지고 지역교회의 실행에 대해서 사도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창세기 2장 24절에서 그 결혼의 진행 순서에 대해서 볼 때에 분명한 것을 보게 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고 그리고 그 아내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남편과 연합할지어다'라고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첫번째 가정에서도 남자가 그 가정의 머리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남자가 새로운 가정의 머리로서 부모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정의 교훈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의 부모를 자녀들이 공경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것은 남자가 새로운 가정의 머리로서 옛 주권아래 있는 것에서 독립해서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3장에서 여자가 그녀의 위치를 떠나서 앞으로 벗어나게 되었을때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디모데전서 2장에서 지역교회에 적용되서 사도는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1-15).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가정과 결혼의 그 순서와 질서가 어떻게 지역교회 안에서도 적용이 되는지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가르치는 것과 또한 주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오직 종용할 것을 사도는 말합니다. 두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아담이 먼저고 그 다음에 이와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가 아담이 꾀임을 보지않고 그 다음에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만드셨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이제 그 다음에 계속해서 그 진리의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할때에 항상 우위하고 또 열등하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권위와 또한 순종에 관한 문제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서 성별의 구별이 모호해질때, 공격받을때에 어떠한 위험성이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 남자와 여자의 성별이 전부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계획하신 그 결혼을 이룰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드릴것은 창세기를 읽어보면 그것은 많은 가정들이 나와있고 그 가정들을 통해서 창세기를 연구해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읽은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을 통해서 이 창세기에 기록된 첫번째 가정을 통해서 여자가 아이를 낳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 가정이 계속 이루어가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서 그 사단의 머리가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어떻게 밟히며 상할 것인지에 대한 그 약속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죄가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또한 창세기 4장에 나와있는 한 남자가 두명의 여자를 둔 그러한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는 가인의 후손들을 볼때에 그 가족들이 어떻게 파괴되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가정들을 계속해서 이루어가시며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서 여자의 후손, 구속자를 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 소주제의 두번째인 왜 가정이 그리스도에게 중요한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께서 태어나서 자라신 한 가정을 살펴보는 것에서 많은 교훈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이것과 관련된 세가지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라나신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제 그 부모와 또한 어떤 사람들과 그분께서 같이 계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한 이 가정을 돌보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땅에 속한 가정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여전히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또한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속하기 위한 그런 고통의 순간 가운데서도 바로 그분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도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며 어머니의 안녕을 분명하게 하신것을 우리는 알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가정이 계속해서 안전 가운데 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중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셨고 어린아이들이 내게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어린시절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때에 많은 부분들이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고 적은 분량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한 육체 가운데에 어떻게 모든 신성이 거하시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신지 그 신비를 제가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전서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시고"라는 말씀을 단지 말씀드릴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장 40절에서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다"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한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그 어린아이들의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를 이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을 바로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자라나심에서 보게 됩니다. 그분의 인간의 몸이 자라가며 또한 그 영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조심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그분의 순종에 대해서도 아주 주의깊게 용어를 선택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그는 순종을 배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님께서 순종하는 법을 몰랐는데 그것을 배웠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51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그분께서는 항상 순종하시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들을 실제적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자라나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나는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는데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그를 키웠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 자신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남자, 하나님의 여자로 키우는데 그러한 관심이 있는지를 우리에게 뭍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자면 참으로 가난한, 별볼일 없는 그러한 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2절이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것은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허구된 것들로 채워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역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가정에 대해서 가장 큰 교훈을 받을 수 있는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정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무엘이 매년 새로운 겉옷이 필요했던 것을 알고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그의 어머니가 매년 겉옷을 새로 가져다 준 이유입니다. 그것은 단지 그 시대의 유행이 바뀌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에 가져다 준 겉옷이 작아져서 못입게 되었기 때문에 큰것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자라지 않을때에 굉장히 큰 염려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이 구원받고 영적으로 자라나야되는 것도 큰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 무엇이 바로 그와같은 성장을 아이들에게 가져다주게 될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또한 그 가정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음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이것과 관련되서 좀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두번째로 우리 주님의 가정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교훈은 주님이 누구와 함께 계셨냐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열두살 되던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행하는 전례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그러한 관습일 것입니다. 그 유대인의 관습은 참으로 그렇게 강한 결속력과 실행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관습을 따라서 행하셨지만 분명하게 거기에는 영적인 유익이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십니다. 레위기에 나와있는 여호와의 절기는 단지 껍데기만 남은, 유대인들이 행하는 절기라고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그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을 키우는데 있어서 그러한 관습을 행하는 것이 영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의 부모님들이 주님을 잊어버렸을때, 그들은 근심하며 찾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하루만에 잃어버렸지만 다시 주님을 찾는데는 삼일이 걸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실제적으로 배우게 되는 교훈 한가지는 항상 어린아이들을 부모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교훈을 배우자면 우리는 부모님들이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두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부모의 양육이라는 것은 멀리 떨어져서 리모컨으로 아이들을 조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 부모들은 주님을 그들 가운데 있는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친족과 아는 자 중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 중에 찾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예루살렘까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이야기하는 데에 기쁨을 누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부모들은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것들을 사도행전 21장에서 같이보게 됩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쌔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행 21:4-5).
우리는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자녀들도 성도의 교제에 함께 데려온 것을 이 말씀을 통해 보게됩니다. 이와같이 오늘 이 집회에도 부모님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데려온 것을 볼때에 제 마음에 참으로 기쁨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쉬운일이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일곱살, 여덜살 된 아이들이 성경읽기 집회에 함께있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서 많은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집회에 데려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정들을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그리스도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로 이 가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6장을 통해서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이 두장의 여러가지 상세한 내용들을 먼저 말씀을 드리기 전에 이 전체적인 문맥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생활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정이 영적인 가정이 되야 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많은 가정들이 하나님 없이 그냥 존재하는 가정들을 보게 됩니다. 창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결혼을 했고 또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가정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가 주님 안에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모로서 우리의 자녀들에 대한 가장 큰 소망은 그 자녀들이 모두 구원받고 주님안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많은 경건한 부모님들이 이와같은 소망으로 자녀들을 길렀지만 그 자녀들이 이제 그들의 선택을 따라 나간것을 또한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격려하고 또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5장에서 주님에 대해서 여러가지 다른 구절에서 말씀을 하고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22절에서 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이 구절들이 주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 5:22).
그래서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주되심'이라는 원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으로 이 가운데 혹시 어떤 분들은 이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이 결혼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성경내용을 듣기 싫어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제 자매님들 중에 자기는 구원 받았고 또한 남자와 동등한 그런 위치와 권리를 누리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와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서 주되심이라는 그 진리를 상고해 보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참으로 여러분께서 의지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또한 주님이시고 주인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하게 될때에 실제적으로는 여러분은 주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23절에서는 그와같은 말씀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우리는 주님에 대해서 여기 세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그리스도', '구주'십니다. 이제 이 장의 세가지 가정에 대한 교훈을 말씀드립니다. 첫번째로 이 가정에서 중요한 것은 애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가정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또한 이 가정에서 행하는 그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애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때에 특별히 남편이 그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은 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빠진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오직 육체적인 매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저축한 돈의 액수를 가지고 그 사랑을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나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 한번의 논쟁을 하고 싸움끝에 이혼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결혼하고 여러번 결혼합니다. 참으로 그 영화와 헐리우드 배우들을 통해서 세상은 그 결혼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사랑의 모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우리는 이 가정과 관련된 그 사랑에 대해서 세가지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이 사랑 안에서는 서로간의 교통이 있습니다. 남편은 그 아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내를 향한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이 남편의 책임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는지를 묻게 된다면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을 교회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그가 그 사랑을 위해서 희생한 그 행동으로 그 사랑이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랑의 교제는 거룩하고 또한 순수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그분께서 하신 말씀과 또 그분께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 행동으로 보게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9).
그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는 것처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양육'하고 '보호'하다는 두 단어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는 이제 성숙을 가져다주는 그런 행동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따뜻한 보살핌과 그 돌봄을 말해주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에서 다시한번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사도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게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는 단어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결혼과 가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요소는 바로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그 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여기있는 남편들과 또 남성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젊은 남성분들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결혼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것은 여러분의 배우자가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을 그냥 주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런 관계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이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 희생적으로 그의 양육과 보호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가 들어온 후에 아담은 자기 아내에게 이와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그 아내, '이브'라는 이름의 뜻은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라면 그러한 일을 한 아내에게 '모든 죽은 자의 어미'라고 이름을 붙이는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이제 그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하기를 원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도우사 그녀의 실패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극복하고 구원을 얻는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여기의 아내의 책임을 보게 됩니다. 33절에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여러 다른 부부들을 보게되고 그들의 다른 믿음과 그리고 그 행위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자녀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선물임을 보게 됩니다. 그 가인을 낳게 되었을때 이브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경우에서는 그들은 오랫동안 불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삭과 리브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정의 아이를 낳게 된 그 나이를 보게 될때에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가정에 모두 아이를 약속하셨고 그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10년간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이제 자신의 방법을 사용해서 하갈을 이용해서 아이를 낳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 이스마엘이라는 아이가 이제 어떠한 운명을 가지고 나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에는 그들은 아이를 위해서 20년간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시고 에서와 야곱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나눠진 가정임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그 나눠진 가정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그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차별하는 그런 애정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교훈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래서 아이들이 있기 전에 그 부부간의 애정이 얼마나 견고해야 되는지를 중요성을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부부간의 애정이 이제 가정의 애정으로 발전하게 되고 가정에 그 사랑을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남편으로서 자신의 아내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면, 만약 아내를 위해서 어떠한 시간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어떠한 시간도 희생해서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 두번째로 이 가정의 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6장 1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이 여러 경우에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그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에게 주님을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주 안에서"라는 말씀을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7장을 보게 된다면 거기서도 이와같은 표현, 주 안에서 결혼할 것을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믿는자와 결혼해야 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 구원받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 안에서 결혼"을 말씀드릴 때에 그것은 그 이상의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두 사람이 모든것에 대해서 공통적인 동의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는 침례를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둘은 모두 지역모임에서 모이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주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가정이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의견이 나눠지게 된다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기서 젊은 성도님들이 이제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특별히 모임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주 안에서 결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러분의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6장 4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자녀들이 순종해야 하는것은 자녀들에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행하고 있는 모습에 영향을 받으며 또한 다른 부부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행하는대로 하고자 하는 그런 유혹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주님의 뜻인지를 분명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그의 책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세뇌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이제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십시요. 그들이 증거를 평가하고 여러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자녀들을 계속해서 부모들에게 동의하지 않도록 만드는 그런 교육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동의하지 않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했을때에 어떠한 보상이 있는지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이것은 이러한 자녀들이 단지 자동적으로 이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순종한 자녀들은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을 보다 더 현명하게 잘 살아낸다는 그런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에서 그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세번째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절에서 우리는 이 태도와 관련되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하지 말고" 이 서양 나라에서는 훈계라는 것이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그런 것들은 법으로 제제를 받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할 권리를 다 없애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이 징계에 대해서 성경적인 가르침은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해야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이제 사랑하는 자식마다 징계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징계의 결과로 자녀들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미안한 마음을 갖게하는 징계여야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성질에 의해서 나오는, 그 분에 의해서 나오는 징계는 그 자녀들로 하여금 또한 분을내게 만들고 선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두번째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 교양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를 훈련시키고 길러내는 모든 과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한번 주되심에 대한 원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와같은 질문을 해 볼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우리 가정의 주님이신가?' 우리는 디도서 말씀을 통해서 여자들이 해야되는 것에대한 주님의 뜻이 "집안 일을 하며"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집안 일을 하며"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지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집에서 읽는 것들과 여러분의 컴퓨터에서도 예수께서는 주님이 되십니까? 여러분이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 그 교육적인 도구들은 아이들에게 영적인 성장을 가져다주는 그러한 도구들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것 위에 여러분이 지난 주간동안에 읽은 하나님의 말씀들은 그리고 얼마나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습니까? 여기에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하는 젊은 가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 아침에 우리는 바쁘게 생활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되고 그리고 빨리 마쳐야 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모바일폰과 여러가지 게임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 가정에서 해야되는 일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 주님의 이름이 그 가정에서 들려지지 않을때에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그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집 안에서 이루어져야 되는 일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많은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무엇이 우리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까? 우리집 안에서 어떤 것들이 계속 행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잠언 22장 6절 말씀으로 이와같은 격려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이 가정이 모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전서 3장에 대해서 지난 마지막 시간에 언급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세가지 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정 안에서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 세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이 이제 그의 어머니와 외조모 안에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있는, 특별히 할아버지 할머니 되시는 분들께 이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또한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셔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 말하고 있는것은 이제 그 지역모임의 인도자들과 관련된 것입니다. 바로 디모데전서 3장에서 가정이 장로들을 위한 훈련장이 되는것을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의 집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겠느냐고 뭍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가정과 관련되서 가정에서 성경을 배우는 중요성을 사도바울은 또한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그것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여전히 이 한국에서 지역모임이 온전히 간증을 빛나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가정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의 또한 다른 부분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겠지만 오늘 나눈 이 말씀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가정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이 가정은 그리스도에게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한 가정에 나셨습니다. 또한 이 가정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높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로서 서로를 위해서 이 가정을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역모임이 이제 영적이고 경건한 한 가정들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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