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모데후서 2장 > 2017년 / 조나단블락 형제님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1-26).
지난 시간 우리는 사도바울이 그의 마지막 때에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용기를 낼 것을, 이제 부끄러워하지 말고 강할 것을 당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역시 동일하게 이 어려운 말세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바울이 1장에서 디모데에게 주었던 그 용기와 격려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인해서 그와같은 헌신을 하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2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되는 일곱가지 그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싸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충성됨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2장 1-7절까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우리는 충성되게 행해야 됩니다. 8-18절까지는 이 싸움의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 싸움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두번째 단락이 19절까지였고 이제 세번째 단락은 20-26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하나님의 큰 집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별되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이 일곱가지 성격은 이 세가지 단락의 전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아들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아들은 담대하게 섬겨야 됩니다. 우리는 3절과 4절에서 그리스도인은 좋은 군사로 말하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충성심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경기하는 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법대로 게임을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농부입니다. 그것은 이 복음의 씨를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이 학생으로,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꾼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은 그 섬기는데 길이 쓰임을 받는 그릇임을 비유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온유한 종으로서 다투지 않고 잘 가르치는 종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곱가지 영역 중에서 어떤것이 내가 정말 그렇게 말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은 내가 그에 못미치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있는 모임에서 어떤 분들은 좋은 군사로 불릴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와있는 어떤 용어에 대해서, 의미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이제 여기 성경에 나와있는 것처럼 좋은 학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때는 그런 사람들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인내를 갖고 다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잘 돌보는 종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2장에서 여러분이 이 일곱가지 모든 성격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7절에서 "주께서 범사에 모든 일에 네게 총명을 주시기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비록 모든 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좋은 군사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법대로 경기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일곱개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헬라어 원어는 "내 자녀야"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헌신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 헌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행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주님께 맡긴 것이 있는가 하면 또한 14절에 "하나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복음을 사도 바울에게 맡긴 것을 또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아들의 측면을 살펴보게 될 때에, 이 의탁하는 것의 세번째 면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에게 들은것을 또한 충성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충성된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저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때에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그 벽에 구멍을 어떻게 뚫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그 경험을 저의 아들에게 또한 가르쳐 주고자 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영적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인 아버지께 받은 것들을 또한 우리의 다음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지역모임의 인도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는 그러한 부분들입니다. 어떻게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들이 받은 것을 또한 가르쳐 주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저에게 가르침을 베푼 영적인 선배들에게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어 그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 올라오는 다음 후손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잘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 강조는 충성된 증인들에게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능력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잘 가르칠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성숙한 나이든 성도님들이 이제 젊은 성도님들 가운데서 잘 가르칠수 있는 성도님들을 눈여겨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별히 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성도님들을 잘 눈여겨 봐야되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처럼 그들을 데려다가 가르치고 또 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이 젊은 성도님들은 이 모임의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다고 해서 모든 진리를 알고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제 믿음의 2세대로서 모임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하지만 계속 모임에서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속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르침을 받은것을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흘려보내지지 않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이 젊은 사람들이 나중에 다 사라져 버리고 난 후에는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가르칠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가르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강한 아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이 사람들이 다시 흩어지지 않게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이러한 배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수 있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에 대해서 디모데는 확신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네가 내게 배운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우리는 나중에 사도바울이 그가 가르친 것을 실제적으로 본을 보인것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처럼 믿는자로서 하나님의 가정안에 들어오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던 이 세가지의 위탁하는 것은 이 가정 안에서의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첫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 두번째로 좋은 군사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것은 충성되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 오래 견디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군사에 대해서 세가지 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자기의 마음을 굳게 정하는 것을 첫번째로 말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군인으로서 그가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구별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군인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좋은 군사로서 그가 겪는 고난에 대해서 그것을 견디어 나갈것을 굳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아들에 대해서 생각할때 하나님 안에서 한 가정임을 보게되며, 군사에 대해서 대해서 생각할때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싸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전쟁에 지금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때가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의 세가지 대적이 세상과 육신과 그리고 사단이 있음을 듣게 됩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대적이었습니다. 사담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손상하고자 하고 그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에게 지금도 여전히 사단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고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삼킬 자를 계속 찾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은 아직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또한 개선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까지 계속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군사에 대해서, 자기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군사로서 디모데는 자기의 생활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그 임무에 분명히 초점을 맞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자기생활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고있는 생활 공간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의 이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첫번째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복음의 전선에 나아가게 될때, 여러분은 반대를 즉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반대를 받고싶지 않을때에, 어떠한 고난도 겪고싶지 않을때에, 그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복음의 전선에 뛰어들게 될때에 이러한 싸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단은 계속해서 이 지역모임을 훼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모임이 번영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군사로서 우리를 택하신 바로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됩니다. 4절에서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서울에서 전쟁 기념관을 가게 되어서 그 한국전쟁이 마이너스(영하?) 40도 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 싸웠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들은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전진하고 싸웠어야만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군사로서 계속해서 움직여야 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군병들에게서 이런 군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장에서는 로마 군대들이 어떻게 잘 지키는지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단순히 지키는 것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로마제국의 성공은 그 로마군인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에서 달려있는 것입니다. 로마 군대는 그들이 공격할때에 항상 만드는, 그들이 형성하는 그 진의 구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젊은 군인을 가장 전방에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오직 20분간만 싸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 첫번째 20분간 싸우던 군대는 물러서고 그 다음 열이 앞에 나가서 싸우게 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함께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군인들이 가장 강력한 힘과 정력이 있기 때문에 먼저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나이든 경험이 있는 군인들은 그 뒤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역모임의 젊은 성도님들이 가장 전선에 서기를 자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에게서 배우게 되는 또 한가지는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자신의 돈으로 사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자신의 모기들을 잘 간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제 세번째로 5절에 나와있는 경기하는 자의 비유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것은 경기 중에 싸우고 있는 경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법대로 경기한 후에 그는 상급을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항상 그의 삶이 끝난 후에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상급을 위해서 법대로 경기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법대로 경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어떤 지역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실행에서 제쳐놓은 상태인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한 것처럼 주님의 만찬을 매주 하지 않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법대로 경기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셔서 우리가 계속해서 법대로 경기할수 있게 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상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저는 올림픽 경기에서 어떤 선수들이 자신의 매달을 다시 반납해야 됬던 경우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경기 후에 심판들이 그들의 몸을 검사하게 되었을때 불법적인 약물을 복용한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몸을 다 꿰뚫는 눈빛으로 우리를 다 조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을 다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에 대해서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때에 단지 우리가 몸으로 행한 것을 보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형제 자매님들은 대했는지도 보고 계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우리가 지역모임 안에서 어떤 것으로 세웠는지를 또한 조사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정하게 법대로 경기하도록 도우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제 6절에서는 이러한 비유가 농부의 비유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농부는 이제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 열심히 수고하는 농부는 그의 밭에서 나오는 첫번째 곡식을 얻을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지역모임 안의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모임에서 그렇게 수고하고 땀을 흘린 사람이 이제 거기서 나오는 열매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때 그것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성경에 나와있는 추수는 그것은 영혼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 전도지를 이런 수고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도지를 열심히 돌렸지만 결과는 거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하지만 그 추수할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수고를 보고 계시고 그래서 여러분이 계속해서 힘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밭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일해야 되는 바로 그 장소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밭을 이 열매를 생각하게 될때에 우리는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절부터 17절까지 우선 우리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8절부터 19절까지는 이제 우리의 이 싸움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으신 이" 라고 특별하게 언급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내가 고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죄인처럼 고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확신하는 것은, 그리스도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절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는 매일수 없는 분입니다. 그 죽음을 완전히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바울도 나는 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1절부터 13절까지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죽으셨을뿐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릴 시간은 없지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단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도 내게 대하여 죽고 나도 세상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 15절에서 다섯번째 그 비결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과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일꾼에 대해서, 좋은 학생에 대해서, 세가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말씀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연구해야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인정된 일꾼으로 자기를 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때 오직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그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그런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때 항상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된 일꾼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면서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것에 대해서는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게 될때 그것은 일꾼처럼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로하여금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이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떻게 이 성경을 계획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까? 제가 어렸을때에 말레이시아에서 선교하고 계시는 어떤 성도님은 이제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많은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말하셨을뿐 아니라 어떻게 성경을 연구할지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르쳐 주셨던 네가지 성경 연구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주 유용했고 여러분에게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첫번째입니다. 이 성경 전체를 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분은 성경을 한번에 다 읽어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디모데후서는 20분이면 전체를 다 읽을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디모데후서를 읽을때에 전체적으로, 디모데후서의 전체적인 것을 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때에 중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노트해 가면서 읽으면 성령님께서 그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분은 각 장에 대해서 차트로 표를 만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각 장에 대해서 어떤 내용이든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리고 각 장에 대해서 개요를 만들어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게되는 것은 또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마치 예를 들어서 2장을 일곱개의 비유로 나눈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2장을 읽으실때에 여러분은 또한 다른 방식으로 나눌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그 각 단락에 대해서 이제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각 장의 단락, 소 단락에 대해서 묵상하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이동통신과 여러가지 소셜미디어가 발달된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저희 세대에도 이 성경을 읽고 앉아서 그 뜻을 깊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그것을 깊이 생각하며 이것이 무슨 뜻인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이제 각 구절의 내용을, 그 가치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구절을 암송할 뿐만 아니라 그 구절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 또 어떤 사람이 어떤 질문을 했을때에 특별한 구절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번째입니다. 제가 네가지를 말씀드렸지만 실제로는 다섯가지인데요. 그것은 그 단어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시간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한 단어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때에 여기 나와있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두개의 비유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22과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특별히 두 사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떠나버린 그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릇되었도다. 이것은 그들이 과녁을 명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성도들의 부활에 대해서 이미 지나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5장에 기록된 그 죄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서신서를 보게 될때에, 각 장에서는 두명씩 그 그릇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1장에서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시도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2장에서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그릇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여섯번째 비유는 좋은 그릇입니다. 이제 다른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큰 집입니다. 이 큰 집에는 그 주인을 섬기기 위한 많은 그릇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그릇은 굉장히 크고 또한 비싼 그릇입니다.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그렇게 가치있는 그릇이 아니고 나무나 또한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상에 나타나지 않을것처럼 보이는 그릇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들은 귀히쓰일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릇과 관련되서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첫번째는 그들이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거룩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쓰시기에 거룩하고 주인의 쓰시기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니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또한 "너희는 저희들 중에서 나와서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며"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특별히 오늘날 인터넷을 말씀을 드리자면 참으로 그릇인 우리를 더럽히는 많은 그러한 것들이 인터넷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람처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그릇에 금이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용될수 없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번째로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2절에서는 이 구별에 대해서 두가지 방식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가지는 먼저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번째로는 쫓아낼 것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좇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구별된 것은 긍정적이고 단지 어떤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것을 우리가 좇아 가야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을 좇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교제를 또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좋은 성도님들과 함께해야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린 성도님들에게 여러분들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가 중요합니다.
이제 일곱번째 비유는 종입니다. 23절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난다"고 듣고 있습니다. 24절에 나와있는 종은 노예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섬김에 있어서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그의 섬김의 특징은 온유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극단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온유하고 그리고 다투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래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다른 사람들을 이제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잘못됐고 교정받기를 원치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2장의 마지막을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 것을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곱가지 비유에 대해서,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상고해보게 될때에 흥미로운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고 온전한 종이셨습니다. 참으로 그 참음에 있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그 말씀에 있어서는 그분 자신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분은 죄없이 사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온전하신 종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우리가 다른사람에게 맡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첫번째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모든것들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들을 통해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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