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로렌스 퍼킨스 형제님(요약)

18. 주님으로 기뻐하라

박이레 2022. 7. 14. 15:35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안녕하신가요 다시한번 여러분을 뵈어 참으로 반갑게 생각합니다.

 

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시37:1-11, 개역한글)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시37:34, 개역한글)

 

수년동안 이 시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위로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편을 통해 위로받은적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특정한 성경말씀을 몇번이라도 읽을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세롭게 같은말씀으로 새로운 교훈을 주십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해했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이 있을것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여러번 읽은 말씀이 어느날 새롭게 나에게 다나오는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모든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신뢰할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들어야 합니다.
어떤일에서 어떻게 할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훈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어려움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는경우가 있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쁜일을 할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런 나쁜일을 여러분에게 행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용하여 이 시편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이 시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늙어 젊은시절부터 행악자들이 자기에게 한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행악자들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시37:1, 개역한글)

 

심지어 내 마음속에 강한 분노가 일어난다 할찌라도 화내지 말라고 합니다.
나쁜사람들이 나에게 악한일을 할때에 내마음에 분노가 일어날수 있습니다. 그들의 행한일이 안하지 않다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루실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수있는 두가지 행동의 방법이 있습니다.
한가지는 그 악한일들을 생각하면서 화를 내는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에서 기뻐하기를 바라십니다.
다른 한가지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이 중의 많은 분들이 제가 만찬후에 덕스러운 말을 한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유다서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 너희를 지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후 한ㅁ 일화로 수양회에서 본 나이많은 형제님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득사를 하기위해 가는데 그 늙은 형제님은 벽에 기대어 계셨습니다.
젊은형제들이 늙은형제님을 모셔서 줄 앞에서게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늙은 형제님은 "날 내버려두세요. 난 단지 주님께서 날 사랑하심을 즐기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요점이 무엇인지 뭍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이 늙은 형제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늙은형제님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분은 주님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즐기고 있나요?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갈때 그 형제님은 그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즐겼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사 주님과의 사랑을 즐길수 있게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가지 규율을 주는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적은수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규율들을 우리가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러한 관계속에서 계명이 지켜지기를 원하지 않나요?

 

저 또한 제 아내가 제가 원하는것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이 억지가 아닌 저를 사랑함으로 그것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것을 기대하고 있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마음에 말해주며, 우리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시37:3, 개역한글)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행한  악한일로 말미암아 불평하며 그것으로 마음이 쏠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잊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께만 집중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다른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알면 알수록 신뢰하게 되는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신뢰할수 있나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37:5, 개역한글)

 

여기서 <맡기라> 는것은 무거운짐을 다른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사람이 행한 그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을때 그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대로 두는것입니다.

 

저는 이런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맡기고서 잠시후 그것을 가져와 다시 지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첫번째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고시고 권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분노한채로 지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것처럼 부모는 자녀가 근심가운데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짐들을 짊어지고 있나요? 주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 너희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

 

이것이 주님께서 하신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짊어질수 없는 무거운짐을 짊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 저를 의지하면 >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도록 그분을 의지하는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짐을 처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단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사람들을 돌보셨는지 알게 되지 않나요?

 

주님께서 이땅가운데 계실떄에 그분의 제자들을 돌보시지 않았나요?

 

여러 사람들이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 상황을 다룰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 없었으나 예수님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비바람치는 폭풍우가운데 바다도 주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귀신들린 사람도 주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문제또한 주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말하기에 쉬운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무거운짐을 오랫동안 지고가는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이러한것들이 주님께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시37:7, 개역한글)

 

잠잠하다는 것은 조용히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쉴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짐을 지면 우리는 요동할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짐을 져주신다면 우리는 멈쳐서 쉴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짐을 주님께 드린다는것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단지 여호와앞에 잠잠할뿐 아니라 참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다리는것을 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아주 서둘러 이일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일을 해결해주시기를 기다리기 힘들때 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잠잠함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 자기길을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시37:34, 개역한글)

 

여기다시한번 < 여호와를 바라고 > 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1. 여호와께 맡기고
2. 여호와께 잠잠하고
3. 여호와께 바라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악자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를 바란다는것은 시대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되지 않을거야' 생각하는것은 주님을 바라는 태도가 아닙니다.
여기서 바란다는 것은 분명하게 하실것을 믿는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부느이 방법으로 분명히 하실것을 믿는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주님의 뜻가운데서 올바르게 될것을 믿는것입니다.
어떤분들은 4절의 구절을 빼먹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4절의 구절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시간을 들여서 이구절을 묵상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37:4, 개역한글)

 

< 여호와를 기뻐하라 >
여러분은 이렇게 하고 있나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희가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일인가요?

 

하나님께서 무릎으로 오랜길을 고행하라는 명령을 하신것입니까?
이세상의 많은종교들이 이러한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인정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받는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고난은 주님의 십자가로 끝난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말씀을 여렵다고 하지 않나요?

 

이것은 다른사람이 어더한지를 신경쓰지 않고 이 상황을 신경쓰지 않는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외에 다른것을 신경쓴다면 여호와를 기뻐하는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사람이 벽을 보고 기뻐하라고 말한다면 그 이유가 뭔데? 라고 물을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벽이라 할찌라도 그것으로 기뻐할일은 없습니다.

 

주님안에서 기뻐할것이 없습니까?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주님안에서 기뻐할 근거들을 보게 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개역한글)

 

첫번째 근거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과 개인적인 관꼐를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이것보다 소중한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수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3, 개역한글)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모든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많은사람들이 세상의 자연들을 즐기고 살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은후 주님을 알았을때 주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볼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감탄하였습니다. 자연을 보면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에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등산하는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등산할때 걸어서 등산합니다. 제 아내는 등산 하면서 작은 꽃들을 보면서 관찰하면서 갑니다.
제 아내는 새들과 다른것들을 보면서 가는데 저는 쭉 올라가 버립니다.
제 아내가 무엇을 보고 감탄하고 있나요? 참으로 주님께서 그와같은 작은것들을 만드신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보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개역한글)

 

여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

 

우리는 그영광이 육체가운데 가려있던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영광은 때때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요한이 이렇게 말한것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 우리가 그 영광을 보기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분한 벨런스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분이 이와같은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내 잘못을 넘어서 나의 필요를 보게 되었다"
이것을 주님께서 행하시지 않았나요? 우리의 모든 잘못을 넘어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그 많은 계명들을 만드셨습니다. 바리세인들이 많은계명들을 ㅏㅁㄴ들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개역한글)

 

참으로 이러한 주님에게서 어떠한 기쁨도 찾을수 없겠습니까?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털깎는자 앞에 잠잠한 양이셨습니다.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왜인가요? 이 세상죄를 지고가시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죄를 지지 않았나요? 여러분의 죄를 지고가지 않았나요?

 

주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주님앞에 나아올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일을 볼때 기뻐할수 있습니다. 우린느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무슨일을 하셨는지 보게 됩니다.
이단들은 주님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단들이 주님이 하나님이시라는것을 믿지않고 주님이 어떤분인지 모릅니다.

 

이단들은 주님의 대속이 충분하다는것을 믿지 않습니다.

 

시편 22편에서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자세히 보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볼때에 간단한 구절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단순한 사람들의 관찰의 내용을 적은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 22편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22:1, 개역한글)

 

구액성경의 구절이 이것 단 하나라고 할찌라도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왜인가요?

 

다윗은 주님께서  이땅에 오시기 천년전에 이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히자만 이 말씀이 정확인 세번에 걸쳐 신약성경에서 인용되었습니다.

 

1.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때 직접 주님께서 하신 말입니다.
2. 8절의 말씀도 정확하게 주님을 보던 사람들이 정확하게 한 말입니다.
3. 군병들이 주님의 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았습니다.

 

우리는 시편 22편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셨는지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홀로 그자리에 계셨습니다. 6절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요 > 주님은 벌레와같은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시22:14-15, 개역한글)

 

주님의 고난을 우리는 시편22편에서 보게됩니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 22편에서 현재로 보게 됩니다. 고난받으신 주님을 지금 보고 있으며 23편에서 목자되사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런 말씀들을 우리에게 많은 위로가 되지 않나요?

 

참으로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심으로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구원받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혹시라도 구원을 잃어버릴까봐 걱정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자주하였지만 실제로 그런일은 없었습니다.
사단이 자꾸 이러한 생각들을 우리에게 주입시킨 것입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도록 우리를 방해하는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 감사할 근거가 충붕하지 않나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고난받으셨나요?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돌보고 계시나요?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매순간 주님께 감사할수 있습니다.
주님을 우리를 돌보고 인도하시고자 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속 돌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충분히 돌보실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시편 24편을 통해, 천년왕국의 때를 볼수 있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주로 오실것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시24:7, 개역한글)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24:8, 개역한글)

 

참으로 이것은 22편에 기록된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르지 않나요?
옛젓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강하고 능한, 전쟁에 능한 왕으로 나오십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왕이 계신것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오후에 경복궁을 관람하였습니다. 저는 그 궁을 보면서 이런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왕이 앉았던 보좌와 그 주변의 많은 집들을 보면서 '곧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보고 그분과 거하겠수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가 기뻐할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서 우리는 기뻐할수 있습니다.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님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그들은 주님을 "죄인들의 친구"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말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귀신들인 사람은 얼마나 큰 절망가운데 있었나요? 하지만 주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주님과 함게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발앞에 엎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기뻐하게 하신것입니다.

 

막달라마리아또한 주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서 주님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녀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으나 막달라마리아는 동산기지인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단지 한마디를 하셨고 막달라마리아는 그분이 주님이심을 깨닳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두운 시간에 왜 무덤앞에 있었나요? 우리 대부분이 그 이른시간에 무덤에 있기를 원치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분이 이런말을 한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주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유는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37:4, 개역한글)

 

이제까지 우리는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슴을 보았습니다.
이제 후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시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해주신대로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기뻐하시는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을 행할 뜻을 우리 마음에 두셨습니다.

 

제가 구원받기전에 제가 가장 가기싫은곳이 이러한 말씀이 있는장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곳에 오고자하는 소원을 두십니다. 이소원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두시는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은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주님께서 우리가운데 많은 소원을 주신것을 아게 됩니다.
그 가운데 많은 어려움과 실망과 문제들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제 마음에 소원을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곧 어느날, 저의 기쁨은 충만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이일은 곧 있을 것입니다. 이 인생의 문제들이 끝나게 될것입니다.
이 육체와, 육신과, 사단과 사울것이 끝날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평화를 누릴것입니다.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있을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행함으로 인해 걱정하지 말라.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라. 나를 기뻐하라"

 

우리는 주님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을위해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마음에 소원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