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1일 금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안녕하신가요. 우리구주 예수밖엔 없네, 방금부른 찬송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이번 수양회를 통해 우리모두의 마음이 이처럼 주님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구세주가 있다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다는것에서 감사드려야 합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11절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18:1-14, 개역한글)
마태복음 16장과 17장은 주님께서 배반을 당하고 죽을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전해진후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자인지 다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큰자이고 싶어하지 않나요? 이것은 우리 본성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스스로 큰자가 되지 않겠다고 하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보다 나은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나요? 물직적으로 부유하고 싶어하며 지적으로 유식한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큰자가 되고 싶어하고, 영적으로 큰자가 되고 싶어하며 외모적으로 다른사람보다 나은자가 되고 싶지 않나요?
하지만 이러한 작은 생각들이 모임에 들어오면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언금된 교회는 몸된 교회에대한 언급입니다.
참으로 첫번째 지역교회가 언급된 것이 흥미로운 일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18:7, 개역한글)
그 제자들이 누가 큰자냐고 뭍는 다툼다운데서 주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왕국의 성도들의 인격과 성품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첫번재로 가르친것은 겸손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주님께 이러한 질문을 하였을때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셔서 이렇게 가르치신것을 놀랍게 생각했을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세우고 실제적인 교훈을 하십니다.
먼저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개역한글)
왜 이렇게 가르치셨나요?
어린아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다른사람을 의지합니다.
구원받아야 한다는것은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우리가 무능력하며 주님의 십자가에서 하신일을 믿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그리스도인에게도 있어야 한다는것을 4절에서도 계속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큰자가 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멸망할 자이며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도 우리 안에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큰자가 되고자 시도하는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큰자가 되기를 원할때 우리는 다른 성도들에게 잘 대하지 못할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18:5, 개역한글)
우리가 다른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우리 주님께 어떻게 대하는지를 반영합니다.
내 자신은 주님께 행하는것처럼 다른사람을 대하고 있나요?
바로 이렇게 하는것이 우리가 큰자가 되는것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에 대한 가르침이 첫번째 언급되는것을 통해 우리는 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18:6, 개역한글)
우리가 잘못된 자세로 신자들을 대했을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불러오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실족케 하다는 것은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발이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를들어 만찬예배동안에 20분동안 감사기도를 드리며 거창한말로 감사를 드리는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말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를 드리고나서 예배후에 다른성도들에게 거칠게 대하고 아주 하찮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우를 받은 형제는 마음이 어렵게 되고 모임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를 떠나버리게 되는것입니다.
이것은 한가지 예입니다.
다른신자를 실족케 한다는것은 마치 그의 목에 멧돌을 매고 바다에 빠치는것과 같다고 합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백성들을 대해야 할까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더 큰자가 되고자 하는것은 다른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8-9,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이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는 청중들에게도 가르치고 계십니다. 아마도 이말씀은 청중들에게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8절과 9절에서는 내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일이 내가 보는일이 내가 구원받는것을 방해한다면 그것을 잘라버리더라도 구원받는것이 낫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자리에 구원받지 않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집회가 끝나기 전에 구원받을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분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손발이 눈이 여러분을 구원받는것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물론, 문자그대로 잘라버리라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잘라버리고 천국에 가는것이 지옥에 가는것보다 더 낫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10절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0,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시작할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소자는 믿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와같이 업신여기고 있나요?
주위에 갓 구원받은 사람들, 여러분처럼 감사를 잘 드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인해 나는 저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나요?
10절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어떠한 가치로 백성들을 보시는지 말려주십니다.
11절과 12절에서 인자가 온것은 잃은자를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13절에 그들이 구원받았을때에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 이 소자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든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자들이건간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이 신자를 보시듯이 우리가 다른신자를 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1.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우리는 스스로 큰자가 되기보다 다른사람을 실족케 하지 않나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 우리는 본성적으로 크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또한 다른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봐야 합니다.
3. 우리는 다른성도들을 바라볼때 하나님께서 가지시는것처럼 큰 가치를 두고 바라봐야 합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15-20, 개역한글)
우리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으로 때때로 다른사람들을 힘들게 하게 합니다.
혹은 다른사람들도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아주 화를 내며 그것을 갚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나요?
주님은 각 신자에게 큰 가치를 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시기를 바라십니다.
부모로써 우리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랍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로써 자녀들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마찮가지 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화목하기를 바라십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북미 지역의 모임들의 가장큰 도전과제는 지역모임에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상대방에게 어려움을 끼칩니다.
어떤사람들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겠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가야 할것입니다.
"형제, 혹은 자매님 이러한 일이 당신이 내게 한 일이고 저는 이것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는 화를내고 말싸움을 해서 이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아갈때에 성도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는 원치 않으시는 일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했을때 많은 성도님들은 "미안합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나와 성도님들과의 큰 문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난 그런적 없다. 당신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 화를 내겠나요? 다른성도들에게 그형제 험담하겠나요.
주님께서는 이러한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사건에 대해서 더 잘아는 성도를 데리고 가서 그 성도에게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세사람이 이와같이 증거해 주었을때 바라기는 그 성도가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말도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는것은 제가 거기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은 암과같아서 계속해서 퍼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래도 그 성도가 받지 않는다면 교회전체에 알리는 것입니다.
그 성도는 장로들의 교정을 받고 고치게 될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장로의 교정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교제밖으로 출교되며 불신자처럼 대우를 받게 될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님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모두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어떤사람이 제사드리기 전에 다른사람에게 잘못한것이 생각난다면 제사드리기전에 먼저 그사람에게 가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한 적이 있나요? 저는 그렇게 한적이 있습니다.
만찬예배에 앞서 제가 다른분들에게 잘못한것이 생각난다면 우리는 사과해야 합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하였을때 그들은 모두 그에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용서합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한가지 더 중요하게 가르치고자 하시는것이 있습니다.
이는 용서의 중요성입니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21-35, 개역한글)
베드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다른사람을 용서해야 겠다는 필요성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몇번을 용서합니까?"
주님은 무어라고 대답하십니까?
베드로에게 용서의 횟수에 대해 고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 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많은 돈을 빚졌습니다. 이 금액을 어떤사람들은 60억원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왕은 그사람을 노예로 하고 모든소유를 다팔아 갚게 하려 하였습니다.
그사람은 "참으소서 갚으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왕은 그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60억원 빚진 사람은 저에게 600만원 빚진 사람을 갚을 능력이 없으므로 감옥에 가둡니다.
600만원도 큰돈입니다만, 60억원에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그 600만원 빚진자는 앞서 빚진자와 같이 같은말을 했습니다.
" 내게 참으소서 갚으리이다" 그러나 그 60억원 빚진자는 이말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정말 많은것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죄를 범하였는데 이 죄를 다 탕감받았습니다.
이는 60억원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다른사람이 우리에게 잘못했을때 우리는 왜 이죄를 용서하고자 하지 않습니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
여러분에게 어떤 성도가 상처를 줄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쉽게 용서할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큰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다
서로 용서하여 불쌍히 여겨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김과 같이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성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품은 세가지로 나뉩니다.
1. 겸손함 2. 솔직함 3. 용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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