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0일 목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2 >
각처에서 오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번 집회기간동안 합당한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 마지막때에 합당하게 살수 있도록 강건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먼저 에베소서 6장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0-13, 개역한글)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6-8,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복을 받았는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에베소서는 구약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여호수아서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렇게 계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400년의 노예생활과 40년간의 방황후에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모세가 떠나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할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얻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중에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입니다.
그러나 아직 현실적으로 그땅을 얻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그 땅을 얻어 지파대로 분배해줍니다.
우리가 이것을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이 고위한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사단의 역사를 한봉래 형제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길을 마쳤다"
왜 선한 싸움인가요? 이 싸움은 대의가 선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진외란 7년간은 수많은 양민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전쟁을 패하고 막지 못하면 그와같은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은 그 이상입니다.
선한싸움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기셨고, 사단을 제압하셨고 승리를 약속하신 고귀한 싸움입니다.
이는 성격에서부터 고귀합니다. 이는 혈과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인 이유는 고귀한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법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0, 개역한글)
싸움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임하기전에 요단이 갈려졌습니다. 여리고는 이미 공포가운데 있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아모리왕과 시온의 왕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임하기 전에 할례를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하기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어떻게 원수와 싸우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전쟁하기전에 군장을 만납니다.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5:13-15, 개역한글)
전쟁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마음에 깊은 확신을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군장을 만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기이한것중의 기이한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말할때에 항상 같은 대답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말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무엇입니까?
위하고 아니위하든, 그사람이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라는것은 어느것보다도 확실한 대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나타난 전쟁 중 , 여리고의 전쟁을 봅니다. 세상에 그러한 전쟁이 있습니까?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선하며 대의가 고귀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6장 말씀을 보며 사도바울의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길을 마쳤다" 고백을 보게됩니다.
< 선한 싸움을 싸우고 >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놀이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전쟁터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이며 우리는 지금 사단의 영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전쟁의 삶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0, 개역한글)
나를 위하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은 편이라는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승리할수 없습니다. 어떻게 약한자가 강자를 이기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영적인 힘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1, 개역한글)
마귀의 궤계는 속임수 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서에서 "우리가 그 궤계를 모르는바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점에 대해서 잘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초대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게 이루어 질때에 마귀의 궤계는 더욱 큽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면 마귀는 여러방법으로 공격할것입니다.
우리가 나태한 삶을 산다면 마귀는 우리를 내버려 둘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수 있는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아4:7, 개역한글)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4:8, 개역한글)
신랑이 신부를 향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신부를 향해서 여행을 초청합니다.
레바논이라는 말이 두번나옵니다. 레바논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그곳에는 만년설이 있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스키를 탈수 있는 곳입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쓸때 레바논으로 가자고 합니다. 정상이 있습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여호수아와 에베소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무한한 축복과 그것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범죄함으로 이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늘보좌 우편에 앉았는가를 말씀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낮아지셨기에, 피흘려 돌아가셨고, 순종하셨기에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하나님을 높이 세우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실뿐만 아니라 높이 승격되어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까지 앉아 계신가요? 원수가 발등상되기까지 앉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런 주님과 같이 앉은바 된 것입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아마나는 진리와, 확증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참 진리이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며 기뻐합니다.
이러한 진리이신 주님께서 높아지실때 우리는 아멘하며 기뻐합니다.
스닐이라는것은 갑주라는 뜻입니다.
갑주는 전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 갑주인가요?
장차 주님께서는 천년왕국때 통치하실 것입니다. 온세상이 반발할수 없는 영광과 권세로 통치하실때 우리도 같이 통치할것입니다.
이 모든것을 우리는 은혜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이 은혜의 부요함을 보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부자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미미하다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인것을 드러내는것을 부끄러워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사단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 못하지만 우리가 비천하고 비루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높은곳에 올라갈때만 사자굴과 표범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약하다면 사단은 우리를 가만둘것입니다.
우리가 높은곳으로 올라갔을때에 우리는 영적인 전쟁가운데 있다는것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헤르몬은 열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주님은 십자가에 달릴때 실패한것 같았으나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죄악에 끌려다니지 않을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요한자입니다.
우리가 전쟁할때, 전쟁은 전방에서 싸웁니다.
참혹한 전쟁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것입니다. 전방이 아닌 후방에는 국민들이 있고, 공장이 돌아가고 학교가 돌아가고 모두 돌아갑니다.
강대국은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이 모든삶을 문제없이 영위하는데아무런 문제가 없을정도가 되었을때 강대국이라고 할수 있는것입니다.
아프리카같은 약소국은 어ㄸ너가요.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부요하다는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후방에 있는 모든 하부구조들을 때려 부시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방에서 이것을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마지막 부분에서 전쟁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5장에 걸쳐서 이야기한 모든것을 보전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하늘나라에 앉았다는 의미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음을 걸어가는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알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우리는 매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것입니다.
우리는 높은곳을 갈때에 부요와 특권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높은곳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자굴과 표범굴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삭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3, 개역한글)
재미있는것은 앞에서는 전십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십갑주를 취하라 라고 하고있습니다.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전신갑주란 머리부터 발끝까지 커버하여 마귀의 궤계에 말려들지 않게 합니다.
우리는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하지만 입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적이 달려올때에 우리는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능욕할때에 이스라엘의 누구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사울조차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나간다고 할때에 사울은 자신의 갑주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사울의 갑주는 맞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갑옷은 다윗에게 맞을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물매를 챙기고 갑주를 벗고 나갔습니다.
다윗의 진정한 갑주는 하나님의 보호였습니다.
우리는악한날에 이겨야합니다.
악한날은 무엇입니까? 사단은 자신의 타락한 천사들, 졸개들을 여기저기에 보내 마치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것처럼 모양을 취할때가 있습니다.
혹은 이상야릇하게 일이 꼬일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느낄때가 바로 악한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깨어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자는자는 죽은자입니다.
우리는 남은시간동안 이 전쟁이 1. 영적인 전쟁임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으로 라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나은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며 땅의 생각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생각을 멸시하고 불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사단은 가인의 생각에 이러산 생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정말로 주님말씀을 받아들이나요? 순종합니까?
우리가 구원받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킬때, 그것이 나의 생각과 맞지않을때, 이상한데? 라고 생각해도 순종한다면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다른 성도, 영혼들을 위해서 중보합니다. 간구합니다.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이땅을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무슨 교제를 하느냐, 이땅을 그저 즐기며 살아라.
그러나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는 어떻습니까? 한번도 비가온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세상이 멸망할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때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노아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구원받은것입니다.
여러분께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못하고 떠났습니다. 갈바를 알지못하고 떠나는 자처럼 바보천치같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단은 아브라함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위대한 하나님을 봤습니다.
< 나의 가는길을 주께서 아시나니 >
주님께서 오직 목적지입니다.
우리가 길을 갈때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네비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때 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확실한 안심을 주는것이 앞서가는 차에 길을 아는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차만 따라 가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믿음으로 건넜습니다.
이스라엘의 두번째믿음은 여리고성을 돈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입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입니다. 한 가족 한개인이 아닌 집합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는것은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이러한 믿음이 오늘날 필요하지 않습니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1, 개역한글)
우리는 에베소서 안에 있는 위대한 신분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놀라운 부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신분과 부에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까?
우리는 혹, 세상의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볼때에 그들을 부러워하고 내가 잘못걷는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왕자입니다. 우리는 왕족입니다.
하나님과 보좌에 앉을 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것입니까?
왕자가 길바닥에서 거지처럼 쓰레기를 주워먹는것이 사단이 원하는 것입니다.
부요하지만 아무것도 없는것처럼, 소망이 없는 것처럼, 미래가 없는것처럼 생활하는 사람으로 마귀는 우리를 계속해서 끌고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신갑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후방을 지키기 위해서 전방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전방에서 아무리 잘싸운다 해도 후방이 공격당할때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싸움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것은 필수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마음속에 이 위대한 신분과 처신을 어떻게 이어나갈것인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해와 힘이 되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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