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2015년 플러싱수양회(요약)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3 >

박이레 2022. 7. 13. 23:14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3 >

 

계속되는 집회에 기도해주시고 함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제 우리는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영적인 싸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 영적인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권세와 정사와 주관자들의 싸움이 아닌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방비 상태로 있는것은 우리가 깨어 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기에 사단에게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대상으로는 사단과 그와 동조하는 타락한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앞에서 망가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14장에서 사단의 모습을 잠깐보겠습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16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17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사14:12-17, 개역한글)

 

한글성경에는 '내가' 라는 단어가 많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구절에 '내가'가 들어 있습니다.

 

사단은 사실 아주 영광스러운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그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로써 찬란한 자다, 빛을 들고가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국을 엎은자라는 것은 열국을 약하게 만든자라는 뜻입니다. 그런그가 추락했습니다.
여기 다섯가지 '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신실히 섬겼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이 곤경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 사단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욥은 세명의 친구들과 변론할때에 계속해서 "내가" 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내가'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올때에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저조할때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계속해서 말해야 합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14:13, 개역한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시48:1-2, 개역한글)

 

북방의 시온산은 주님의 도성입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로써 그 마음속에 하나님과 비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계신곳에 좌정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그자리에 들어가겠다고 하는것입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14:14, 개역한글)

 

가장높은 구름은 곧 하나님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으며 그 구름기둥이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스스로 가장높은 구름에 올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내가 앉겠다. 모든 피조물로 존경을 받는 자리에 내가 앉겠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음부 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천지창조때에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6일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하나님은 천사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의 존재입니다.
천사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겔28:12-13, 개역한글)

 

우리는 이 수많은 보석들을 보며 그 천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천사에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가 어떻게 하나님앞에서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죄는 이 루시퍼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에스켈서 28장에서 먼저 두로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로왕은 페니키아의 가장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각종 무역으로 가장 부유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칭했습니다.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두로가 멸망할것을 예언했습니다.

 

두로는 역사적으로 두번 멸망했습니다. 두로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부가넷살왕이 두로를 무찔렀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또한 멸망시킵니다.
여기서 두로왕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상은 사단을 이야기 하고 계신것입니다.

 

뱀을 이야기 하지만 그 뱀이 사단인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 고 구짖으십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꾸짓으셨지만 실상은 사단을 꾸짓은신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해서 두로왕을 이야기하며 사실 사단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진 재능,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가진것마냥 자랑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을 사단이 한것입니다.
우리는 천부께서 주신것을 감사하나요? 자랑하나요?

 

사단은 자신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자기 위치를 벗어난 생각입니다.

 

<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도다 >

 

루시퍼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존재 였습니다.
그는 기름부음은 받은 덮인 구릅입니다. 기름부음은 받았다는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메시야가 기름부은 자입니다.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런그가 타락했습니다.
기름부은자는 한존재가 모든일을 할수 없다고 단정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는것은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동시에 세가지일을 할수 없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하나님께 제사장 직분을 행하려 할때 그는 문둥병자가 되지 않았나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 최초의 그리스도 기름부은자가 하나님을 넘보고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그리스도 기름부은자가 이세상에 오십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을 경호하는 자였습니다. 피조물중 가장 높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를 탐했습니다.

 

자족하는것은 모든 경건입니다.
이제 그는 추락했습니다. 저 깊은 곳까지 추락했습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1-11, 개역한글)

 

이사야 14장이나 에스겔 28장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14장이나 에스겔 28장은 루시퍼 천사,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천사라 할찌라도 그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고 더 높아져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그는 추락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십니다.

 

우리는 이싸움을 시작할때 우리는 사단과 그 따르는자들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마음을 주님께 집중할때 우리는 이싸움을 싸울수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된자가 아닌 피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게서 이땅에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로써 영적인 생리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전혀 다른 것들을 알게 됩니다.
사단이 어떠한 자였는지 그가 얼마나 주제넘은 교만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이끌리어 범죄하였습니다. 구원받기전의 우리의 생각이나 사상, 곧 생리는 사단의 것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높아지려고 합니다. 다른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다른사람들에게 얼마나 섬김을 받는가가 사람들의 자랑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얼마나 대우를 받았는지를 자랑합니다. 이것은 사단으로 직접받은 생각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높아지고 싶다면 서로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진정 높아지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빌립보서 2장에서 주님께서 나타내신 말씀이 아닙니다.
'지는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믿음은 무엇으로 비춰져 있습니까?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믿음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실천하고 섬기는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길은 나는죽었다, 지는것이 이기는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보는것이 믿는것이다 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이는것으로 믿고 붙드는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과연 허상을 쫒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6장 4절 이하의 부분에 그리스도의 종의 특징 27가지를 설명 하고 있습니다.
9,9,9개씩 설명합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8, 개역한글)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6:9-10, 개역한글)

 

영광과 욕됨, 욕된것이 영광입니다. 악한이름이 사실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종의 특징입니다.

 

사단이 생각하는 모든승리, 모든 가치관을 우리는 따라갔었습니다. 공중의 권세잡으자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은후 어떻습니까? 이 모든것을 부질없는것으로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기까지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뻐서 가장 높은곳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전쟁에서 어떻게 쌰워야 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물이 없어서 불평할때에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방법으로 모든일을 해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말렉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것은 물이었습니다.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참 독특합니다. 여호수아가 이 전쟁에 나갑니다. 여호수아는 군장이었습니다.
골짜기에서 아말렉과 전쟁할때 모세는 아론과 훌과 같이 산곡대기로 올라갑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높이 들면 이기고 내려오면 집니다.

 

이 모양을 가만히 볼때에 이 전쟁은 그냥 전쟁이 아닌것을 봅니다.
이 전쟁은 산곡대기의 전쟁이 있고 골짜기의 전쟁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이중성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사단과 싸우는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아말렉) 전쟁을 볼때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이 전쟁이 있을때에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우리주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보좌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중보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현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주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 대언자로 중보자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호수아는 골자기에서 전쟁을 합니다. 그는 전쟁을 하면서 어디를 쳐다봐야 하겠습니까?
그는 모세를 쳐다봐야 합니다 .지팡이를 쳐다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지팡이 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권위를 나타내는 지팡이 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권위가 올라가는것을 여호수아는 쳐다봤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갈때 밤새 노를 저어 건너갑니다. 주님게서는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더 찾아오셨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우리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아말렉 전쟁은 어떻게 되었나요? 대승하였습니다.

 

또한 모세가 지팡이를 들때 아론과 훌이 도왔습니다. 합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합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깊은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하게 될때에 사단과 싸우지만 우리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호수아 말고 또다른 군장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모든 전쟁에서 다 이겼습니다. 그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쟁할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고대 전쟁은 어떠합니까? 20대의 젋은 청년들이 전쟁에 참가 했습니다.
전쟁을 할때에 그들은 처참하게 피를 흘리고 죽을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다윗은 매 전쟁에 이러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1-6, 개역한글)

 

다윗은 두가지로 유명합니다. 1.군인 입니다. 2.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전쟁에 임할때에 안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이미 이겼습니다.

 

사기가 떨어지고 마음이 떨리면 그 전쟁은 이미 진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에 임하기전의 그 마음상태를 말해줍니다. 이 전쟁에 들어갈때에 우리는 사단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라는 것에 몰입하지 말고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몰입해야 합니다.

 

다윗의 마음이 왜 전쟁에서 안연하였나요. 그 마음은 성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께서 행해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항상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항상 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사단이 얼마나 주제넘교 교만했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교만했고 그와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어떻게 낮아지셨는지, 어떻게 순종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주는것이 받는것보다 낫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받는것이 주는것보다도 낫다고 말합니다. 다른사람을 밀치고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것은 사단으로부터 온것입니다.

 

정말 높임을 받고 싶다면 먼저 섬겨라.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온것입니다. 우리는 이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순종하지 못하면 실생활에서 사단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울리는 영화를 보면 그 잔잔한 감동이 보전되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전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야 하며 항상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단을 기쁘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섬김을 받는다면 우리는 이미 낮아진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되어 낮아지신 주님, 고난받으신 주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 주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어제 아가서에서 신랑이 신부보고 "나와같이 높은곳에 올라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 높은곳에는 사자굴과 표범굴이 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전에 고난받으시고 이제 높은곳에 계시고 이제 다시오실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럴때에 옆에 사자가굴과 표범굴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물리칠수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성소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안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