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고린도전서

< 고린도전서 3장 >

박이레 2022. 7. 12. 21:38

2018년 5월 6일 일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고린도전서 3장 >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17, 개역한글)

고린도전서의 1-2장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사람의 지혜, 논리 방법은 영적인 곳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함을 말씀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사람의 지혜가 모임에서 이와같은 부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모임에서 사람의 지혜를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1-2절 : 성도들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3-9절 : 모임 안에서 시기와 경쟁이 일어납니다. (모임이 나뉘움)
10-17절 :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을 얻지 못합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1-2절처럼 성도들이 어린아이 상태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어느 가정에 자녀를 주십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런말을 합니다. 그 가정에 자녀가 없으면 웃을일이 없다고 합니다. 자녀가 있으면 그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뜻으로 인해 자녀가 없는 가정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임에 구원받은 성도가 나오면 그것만큼 기쁜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쁜일 일까요?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고 그 아이가 누워만 있다면 기쁘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탄생에 비례해서 가슴이 아프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임 안에서 성도가 자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성도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왜 자라지 않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모임안에서 사람의 지혜를 썼기 때문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3:1-2, 개역한글)

여기서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린아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2:12-14, 개역한글)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아이들아>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총칭해서 '자녀들아'라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자기 죄의 용서의 확신을 갖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죄 용서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가지로 나눕니다. <아비> <청년> <아이> 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가 다른것을 몰라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임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고 기도 합니다.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2:2-3, 개역한글)

어린아이의 두번째 특징은 젖을 먹으려고 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태어났는데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곧 죽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를 구원받았는지를 역으로 분별하는 방법은 그가 말씀을 보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곳에 가려고 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붙들어 맛보았기 때문에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두번째 특징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린아이의 부정적인 특징을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4, 개역한글)

어린아이는 요동하는 사람입니다.
어떤사람이 성경을 들어 설명하면 그런거 같고 다른사람이 다시 성경을 들어 다르게 설명하면 그것이 옳은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흔들립니다. 그가 흔들리는 이유는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잘 배워서 기준이 마음속에 잘 쌓여 있어야 합니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5:11-12, 개역한글)

히브리서(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는 전체적인 흐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서신 입니다.
그래서 흐름이 구약을 따라오다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 구원받기 전의 생활 습관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제사를 했다면, 구원받은 후에는 다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계명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 왔습니다. 많은 절기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과거에 행했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버려야 할것이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와같은 것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을 하나 장만해서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성전으로 들어와 양을 제사장에게 가져다 줍니다. 이러한것을 쭉 해왔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아 모임에 들어왔습니다. 모임은 가정집회이고 그 건물이 초라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몇몇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장 제복이 있는데 모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떡과 잔만 있고 감사하고 떡과 잔을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제사를 보다가 예배를 보니 뭔가 부족해 보이고 섭섭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의식에 마음이 있던 자였습니다.

요즘도 예배를 드릴때에 어떤 교회는 하얀 장갑을 낍니다. 마치 어떠한 종교의식처럼 합니다.
침례를 할때도 그냥 하기는 좀 그러니 침례곡을 만들고 틉니다. 이것이 모두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의식입니다.
그런것들(눈에 보이는것, 의식적인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자라지 못한 이유는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오지 못하고 인간적인것, 세상적인 것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전3:3-4, 개역한글)

그리고 고린도교회 안에는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사람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사람 이름의 학파가 생깁니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가 그런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따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것을 모임에 도입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두가지 해결책을 제시 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3:5, 개역한글)

1. 일군을 올바로 평가 해야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6, 개역한글)

2. 일군들의 사역에 대해서, 교회에서 섬긴 봉사에 대해서 올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일군은 누구입니까? 일군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세우신 사람입니다. 우리는 일군이 누구인지 오해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아볼로는 누구 입니까? 사도바울은 어릴적부터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그는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사 은혜로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을 믿고 다메섹에서 침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소에 가서 섬겼고 바나바가 사도바울을 데려가 인디옥에서 섬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두사람을 따로 세우게 하사 안수하고 전도여행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침례요한의 침례밖에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에베소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직 구원받지 않았음을 알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복음을 전했고 그가 구원받았습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넘어갑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입니다. 고린도는 마게도냐, 유럽입니다. 아시아에서 세워진 일군이 유럽으로 넘어갑니다.
그는 국제적인 수양회를 한것입니다.

다 각각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그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는 일군들이자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주시지 않았는데 나가서 사역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가 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성장시키시고 일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내준 일군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봄이 되면 농사를 짖기위해 밭을 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씨를 심고 물을 줍니다. 그리고 작물은 자라납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것은 심는것이나 물주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는것과 물주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나오는것은 하나님이 하게 하신것이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볼로가 와서 성도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회를 통해서 성도가 자라나면 그것또한 하나님께서 하신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일군이 와도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나게 하시려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준비되게 하셔서 우리에게 오게 하셨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아무것도 아니며 그를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높이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것을 우연히 사람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주고 학파를 만듭니다. 이것은 전부 세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로되> 영어로 nothing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뿐이로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원칙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8, 개역한글)

우리는 전도자와 교사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전도자와 교사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훈련하시고 보내신것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 일군들을 인정하고 존경하고 상주는 것은 성도들이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상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일을 평가해 주는것은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고 지킬때에 교회가 영적이게 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3:9, 개역한글)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밭에서는 아볼로나 바울이나 똑같이 일했습니다. 그러나 건물로 들어오면 역할이 달라집니다. 사도바울은 그 집터를 닦았고 아볼로가 그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나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 계속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떠나갔습니다. 그럼 이 교회를 누가 세웁니까? 바로 교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터위에 세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터를 닦아두었습니다.

터를 닦았다고 하는것은 그 건물의 크기와 모양의 기준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물을 지을때 터밖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누구든지>  이는 14절 15절 17절에 세번 나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개역한글)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사람, 구원받지 않은 사람 두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성경은 이 사람을 세가지로 나눕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의 신령한 자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또 구원받았지만 육신에 속한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육인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4-16, 개역한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7, 개역한글)

공력이 그대로 있는사람은 신령한 자입니다.
그리고 공력이 불타버리면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육인 사람은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2:4, 개역한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만 지역모임안에 거짓 성도들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들어옵니다.
저희들이 세대가 흘러가면서 유의해야 하는것이 자녀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싱가폴 주챗모임에서 세대가 흘러가면서 생기는 문제중의 하나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구원받은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문제의 예를 물었을때 쿠리얀 형제님은 제가 그 예가 될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손자 손녀가 참으로 예쁩니다. 그 아이들이 구원받았다고 구원간증을 하는데 들어보면 아닙니다. 그런데 한봉래 형제의 손자손녀인데 침례를 주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침례를 줍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모임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를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교회에 들어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만큼 좋아 보이는 배우자감이 없습니다. 착하고 순종적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려고 하는데 구원 받아야 하고 침례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구원받은척 하고 침례를 받고 가만히 교회에 들어 옵니다.

게다가 그들은 복음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요한복음 1장 12절을 쉽게 구원간증으로 말합니다.

고린도교회에도 이렇게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곧 다른복음을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세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자, 육신적인 자, 육인 사람입니다. 육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무너뜨린 죄로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집을 짖는 재료를 보겠습니다.
금으로 집을 짖는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일하는 것으로 이득을 보면 안됩니다.

히긴스 형제님은 잡지사의 편집(성경서적?)을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께 어떻게 이와같은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형제님은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는데 사례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을 위한 자원봉사자 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물질로서 그 일한것의 보상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도가니에서 일곱번 연단한 금과 같도다>

말씀이 그러하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것, 그것이 금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섬김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성도들이 주님의 빛나는 성품을 닮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주님의 모든 성품을 전적으로 닮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어떠한 면을 닮은 성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와같은 것을 목표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고 인격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진 삶을 사는 사람이 보석으로 세운 자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나는 천국 갈 것이기 때문에 상은 필요 없습니다.(나는 상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굉장히 나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하는일이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할수록 더 찬양하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상으로 주실 것입니다.

모임이 세상적인 사고방식, 세상적인 지혜를 도입하면 영적인 성도들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일꾼이 하는 일과 사역에 대해서 시선을 달리 합니다. 그들은 심고 물주었을뿐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섬김이 없게되면, 주님앞에서 칭찬받는 성도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저희 대전중구 모임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모임이 될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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