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 고린도전서 강해 20 >

박이레 2022. 7. 12. 21:30

2015년 7월 2일 목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고린도전서 강해 20 >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전10:11-14, 개역한글)

 

13절은 유명한 암송말씀입니다. 감당할 시험밖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없다. 피할길을 주신다는 말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나누기 전에 앞에 말씀드린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종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통과하며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출애굽 1세대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 위하여 주어진 이야기 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침례에 해당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것을 먹었고 반석의 물을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실패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두가지 교훈을 줍니다.
1. 우리는 이말씀을 듣고 경계해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이 실패했다. 그러나 교회는 실패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결론적인 내용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입니다.
우리도 넘어질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자들아 너희는 피할수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에,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줄로 생각한자는 넘어집니다. 우리는 교만해선 안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감이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2차 세계대전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합니다.
왜 하필이면 노르망디일까요?

 

그곳은 독일군이 자신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반드시 막을수 있다고 생각해서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7교회중 사데교회가 나옵니다.

 

역사사 고레스가 사데를 점령하기 위해서 사데를 점령할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에게 엄청난 포상금을 겁니다.
그래서 한 병사가 사데성을 계속해서 봅니다. 그런데 그 성에서 지키고 있는 한군인이 헬멧을 떨어뜨립니다.
이 실수는 계속해서 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사소한 실수입니다. 그 타이밍을 잡아 공격합니다.

 

자신있게 서있다고 생각할때 공격당하고 넘어지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것이 분명하다고 해서 이세상을 사는동안 우리의 삶이 승리할것이라고 자신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두번째 격려로 이어져 갑니다.

 

우리는 인생가운데 닥쳐오는 여러가지 시험을 어떻게 이길것인지 배우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삶들에 적용해야 합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선택을 해야하고 그것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느끼는 시련과 어려움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스라엘과 달리 실패하지 않는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1-3, 개역한글)

 

주님께서 침례요한의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된것입니다.
공생애의 첫번째 시작은 침례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때문에 우리를 위한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시작이 알려지자마자 성령은 제일먼저 주님을 광야로 데려가셔서 사단에게 시험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에 집어넣으셨습니다.

 

광야 가운데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고, 길이 나쁜것을 겪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납니다. 실업을 하고, 사고를 당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두명을 빼고 모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왜 보내셨나요? 주님께서 죄가 없는 완벽한 의인이라는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십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욥기 1장에서 하나님은 욥을 사단에게 자랑하십니다.
사단은 이에 여러움을 주면 달라질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여러가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는 모든사업을 잃어버리고 아내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병이 듭니다. 왜 허락하셨나요?
욥이 의인인것을 드러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사람들에게도 없는 불행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의인이고, 순종의 사람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사업이나 직장에서 쫒겨난다면 우리는 욥을 봐야 합니다.

 

" 주신분도 하나님이시니, 가져가신분도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는 욥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하라고 우리에게 시험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의 사람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때에 우리가 어려워하거나 불편해 할 시험을 주신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신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것을 신령한 자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낸것은 주님이 의인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나 우리가 잘못반응할수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3, 개역한글)

 

여기에 나오는 죄짖게 하는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은 항상 우리를 위한, 우리를 드러내기 위한 시험을 하십니다.
여기에 사용된 시험은 시험이 아니라 유혹이라고 쓰는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의를 위한 시험을 주시는데 이 시험에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은 14절 15절에 나와있습니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4-15, 개역한글)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에 실패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시험을 받은 자는 12절과같이 반응합니다. 제대로 통과한 자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개역한글)

 

시험은 상황과 항상 관련되어 있습니다. 직업을 잃어버렸다든지, 건강을 잃어버린것처럼 난처한 상황에 빠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믿음으로 반응해서 주님께 칭찬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실패하고 불평, 불만할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속의 욕심이 작동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물을 끓일때 단단한 감자를 넣으면 감자는 익어서 부드러워져 먹기 좋습니다. 하지만 달걀을 넣으면 달걀은 액체에서 고체로 단단해 집니다. 동일한 상황인데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와같이 상황은 동일해도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개역한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것이 없나니> 라는 구절을 영어성경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사람이 다 받습니다.

 

시험은 우리가 타락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당할때에 우리는 이러한 시험을 받지 않는사람이 없다는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시험을 당할때 실패한 분입니다. 미리 주님께서 예고 하셨지만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 말했습니다.
그런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 생각지 말고>

 

우리는 이 말씀대로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한 계속적으로 직면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너희가 서로 죄를 고하며> 써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서로 말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이 시험은 우리의 평생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가지를 피해야 합니다.

 

1. 나만 이러한 시험을 당한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시험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시험은 환경적인 문제, 길의 문제,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계시냐, 인도자를 바꿔보자 등의 문제를 겪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어려움은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들과 비교했을때 그들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나요?

 

모든사람이 이러한 시험을 당하므로 불평해도 된다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안넘어질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보다 낫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후대에 살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2세대 전부를 가나안에 넣으셨습니다.
사람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에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모든 시험에서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이 오거나 할때 핑계대서는 안됩니다.

 

2. 하나님은 비쁘사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이 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믿을만한가를 봐야 합니다.
사단의 말을 듣는것은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임을 잊은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습니다.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임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불평중에서 기가막힌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가운데 들어가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분임을 이스라엘은 잊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셨을때 사단은 세가지 시험을 합니다.
1. 돌을 떡으로 만드십시오   2. 성전에서 뛰어내리십시오.    3. 내게 엎드려 절하십시오.

 

이 세가지 시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전부 걸려 있습니다.

 

먹을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붇을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에서 주님께서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붇든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천사들이 수종 듭니다 (음식들 드립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라는 사단의 말에, 뛰어내리지 않고도 하나님께서 나를 약속대로 보호하심을 믿음으로 신뢰하겠다고 하십니다.

 

천하만국을 사단은 십자가 없이 얻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고난을 통해서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단은 고난을 주는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않는것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2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1-9, 개역한글)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십니다.
주님께서 체포되시던 장면은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룟유다가 두가지 사람, 로마의 군인과 하속들(경찰)을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이사람들은 우리로 치면 특별히 체포조인 것입니다.
그들은 체포하기 위해 인술과,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문가였고 담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체포되시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한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체포를 당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오자,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나가서 누구를 찾는지 물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을때에 주님께서 "내로라" 하십니다.

 

이말은 "나다"라는 뜻도 되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로다" 라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때 그들이 전부 물러가 땅에 엎어집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전문적으로 사람을 잡고 체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다"라고 하실때 그들은 전부 물러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누가 주도적입니까? 주님께서 체포를 당해주십니다.
주님께서 힘이 약해서 체포되신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그들에게 체포되신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나만을 잡을것을 그들에게 각인시킵니다. 본인만 잡히시고 제자들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이때 잡히면 그들이 감당할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당할수없는 시험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왔을때 우리는 이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할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1. 이 시험은 모든 사람이 다 당하는 시험이다 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진이 간 길을 그대로 보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밝은빛을 보여주실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신실하심을 믿고 있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다만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며> 라는 문구는 이 시험이 유혹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인 것입니다.

 

시험이 유혹으로 넘어가면 죄를 지을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내가 눈을 들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신실하신 분입니다.

 

주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근거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호해 주신것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세번째는 주님께서는 피할길을 내십니다.

 

어느 건물을 들어가든지 반드시 출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시험에는 탈출구가 있습니다. 그 피할길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시험받는 중에 딴길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피할길은 그 시험을 통과해 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 괴로운 상황들이 오면 하나님께서 주신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의를 입증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 내가 이 시험을 통과한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

 

이것이 우리의 피할길 첫번째 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를 행할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이 시험을 빨리 끝내기 위한 간단하고 쉬운길을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직자을 잃거나 가난하여 지면 우리는 주변상황에 눈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인맥이나, 로또등..)

 

세번째로, 주님께서는 내가 이시험을 감당할수 있다고 보십니다.
내가 안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해낼수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누가 옳습니까?

 

주님께서는 끝까지 그짐을 지고 시험을 통과해라. 그래서 너의 영광을 입증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11:17-19, 개역한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삭이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내가 순종해서 이삭을 죽이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리라. 
우리는 모순된 하나님의 명령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약속을 주셔놓고 모순된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논리적이 않을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시험을 피했나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살려서라도 약속을 이루실것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 없는 것을 있는것으로 부르시며,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 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두번째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삭 없이도 그분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라고 믿은 것입니다. 
과거 선진들의 믿음을 근거로 현재 당면해 있는 어려움과 시험을 통과해 낼수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 (빌1:19,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반역죄로 로마의 감옥에 갖혀있습니다.
재판결과에 따라 사도바울은 죽을수도, 살아날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재판을 받을때에 사도바울의 당면한 과제는 그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수 있는가 입니다.

 

목숨이 달려 있는 중요한 문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황제 앞에서 담대히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는 담대히 할수 있을까요? 믿음대로 통과하는것이 구원입니다.

 

사도바울은 담대히 증거할것을 확신합니다. 그 근거는 세가지 입니다.

 

1. 빌립보 교회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성령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3. 사도바울이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욥기를 인용한 구절입니다 (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의인을 합당한 결과를 얻게 하십니다 -욥기)

 

이것이 다 피할길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하늘에 이를것입니다.
지금은 타락한 세상가운데 살며 많은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하나님께서 주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왜인가요? 우리를 의를 입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속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할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피할길은 쉬운 해결책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길을 갈때 하나님게서 신실하신 분인가가 걸립니다.

 

우리는 사단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을수 없다고 유혹해도 우리는 이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5-37, 개역한글)

 

우리는 이구절을 암송하고 외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정금으로, 하나님의 선택이 옳았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많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2세대들은 모두 성공하였습니다. 2세대가 1세대보다 나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여러가지 실패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늘날 이 수준까지 보호해 주시는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따라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다운 모습으로 변화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