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고린도전서 강해 <19>

박이레 2022. 7. 12. 21:29

2015년 6월 30일  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고린도전서 강해 <19>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13, 개역한글)

 
 

하나님 말씀을 살펴볼때 제일먼저 1-13절까지 말씀을 보면 말씀공부를 위해서 제일먼저 해야 할것은 계속해서 여러번 읽는 것입니다. 다른성경으로 그 말씀을 반복해서 읽는것도 좋습니다.

 

두번째는 이 문맥의 핵심구절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1-13절까지의 핵심구절은 12절입니다.
세번째는 앞뒤 문맥가운데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문맥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문맥입니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8:9, 개역한글)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9:1, 개역한글)

 

다른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고전9:12, 개역한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9:19, 개역한글)

 

이와같은 자유를 쓰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유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9:27, 개역한글)

 

둘째는 자유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10:6, 개역한글)

 

자유를 남용하면 악을 즐겨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실수 없게 됩니다.
구약백성이 자유를 남용하여 한 실수 네가지를 살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잘못은 우상숭배입니다.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32:1-6, 개역한글)

 

이스라엘은 지금 출애굽을 해서 시내산 앞에 와있습니다.
출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걸리는 거리는 사흘길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할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 기간은 기한하고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대략, 40일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기한이 없으므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우상을 너희들을 출애굽시킨 신이다 라고 합니다. 우상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름붙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송아지 우상을 생각해 냈을까요. 광야에는 빈들이며 우상이 전혀 없습니다.
고린도교회 주변은 우상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시대에도 다양한 우상이 있습니다. 돈, 건강 등등 많은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보았던 우상을 생각해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애굽에서 출애굽 하였으나 정신은 애굽에서 출애굽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구원받아 비로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것인지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우상을 생각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의 특징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 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2.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상의 목표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첫번째 실수 입니다.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32:6, 개역한글)

 

우리는 아니지만, 일반교회에서는 주일날 1부 예배를 합니다. 놀러는 가야겠고, 예배는 빠지기 그러한 마음때문에 일찍이 예배를 드리고 마음편하게 놀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성경을 끌여들여 명분삼아 내가 하고싶은일을 하는 것입니다.
외형은 성경이지만 내면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출32:25, 개역한글)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성령께서는 '방자하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삶을 지적하면 우리는 받아들여야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모임에서 잘못을 지적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은 잘하느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방자한 것입니다. 아니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 이 또한 방자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했던 첫번째 실수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표를 중심으로 삼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음행입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민25:1-3, 개역한글)

 

이것이 발람이 직접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두번째 방법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도록 간접적으로 계략을 씁니다. 이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음행이라는 것은 부도덕한 성적인 죄로 음행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못합니다.
이는 한국 모임에서도 가끔 있는 일로, 참으로 손해되는 일입니다.

 

음행을 민수기에서는 바알브올에게 부속된다라고 말합니다.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6:15-17, 개역한글)

 

만약 남자와 여자가 음행을 한다는 것은 한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기와 음행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창기와 한몸이 되게 해버린 결과를 낳게 되는것입니다.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그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 속해 버린것입니다. 이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세우신 주님을 닮는, 영광스러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것을 따라 나가는 것입니다.

 

이는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길을 가야하는 존재가 비천한 길을 걸을수 있습니까
이것이 성경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나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광스러운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임의로 낮출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내가 이정도면 됐다' 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에 빠지지 않고 헌금을 다 합니다. 그러나 그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안됩니다.

 

이일 하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전16:22, 개역한글)

 

성령께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대해서 만족하시지 않으면 나도 만족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 '나만큼 하는 사람은 없다' 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그친다면 이스라엘이 행한 두번째 실수인 음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고전10:9, 개역한글)

 

세번째로, 주를 시험한것과 뱀에게 물린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출17:1-7, 개역한글)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하고 나중에 놋뱀을 만들어 보는자는 낫게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합니다 "물을 달라, 만일 물을 안주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있는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져야 하나님께서 계신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때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내 기준에 맞춰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신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족하게 하셔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많은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주셨는데 주님께서 주지 않으실 것이 무었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적인 것에서는 하나님께서 절대 부족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때 하나님께서 주시는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추억합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은 주님을 의지하게 하고자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애굽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것이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사는동안 외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복된 도구로 믿어야 합니다.
가난해도, 병들어도 그것은 주님을 닮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되지 않아서 주님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원망입니다.
이스라엘은 참으로 많은원망을 했습니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민14:26-32, 개역한글)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죽은이유는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원망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믿고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을 격려하였으나 10명은 우리는 메뚜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왜 원망하나요? 하나님 말대로 하다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손해봅니다. 못하겠습니다."

 

왜 이러한 말하요? 자기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그와같은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인해 출애굽 1세대 60만명, 모두합해 120만명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출애굽 했어도, 영광과 존귀의 길은 우리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절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자신이 연약하다는것을 시인할줄 알아야 합니다.

 

이 네가지 이스라엘의 잘못은 전부 불평과 불만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사도바울은 다릅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0-13, 개역한글)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갖힌것을 빌립보 교회가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후 그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에게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며 필요한 물질을 선물로 보냅니다. 이를 받은 사도바울은 감사의 편지를 빌립보 교회에 보냅니다.

 

사도바울은 10절에서 내가 크게 기뻐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가난에도 처할줄 알고, 부에도 처할줄 안다'
이는 나는 어떠한 환경에도 만족할줄 안다는 것입니다.

 

곧, 선물을 받고서 받기전이나, 받은 후에나 마음이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고백을 할수 있을까요? 이런 고백을 할수있는 비결을 알아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갖혀있는 것이 아닌 셋집에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위대가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옆에는 항상 군인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24시간 내내 군인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 가운데 믿는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셋집의 돈을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가야 할것입니다.
감옥에는 구원받은 병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감옥에서는 만날수 없을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셋집에서 머물기위한 돈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것을 보낸 빌립보 교회에 돈을 보내지 않아서 내가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나는 괜찮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2,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이와같은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구원받자마자 안것이 아니라 배운것입니다.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사도바울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그는 생애의 목표가 예수님을 닮는것이었습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 개역한글)

 

사도바울의 생애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 > 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할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잡으신것을 그것을 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때 세우셨던 목표를 따라가고자 하는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0, 개역한글)

 

주님의 부활을 아는것 주님의 고난을 아는것이 사도바울의 유일한 생애의 목표였습니다.
이것을 생애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도님들,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우리의 목표가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반드시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하늘에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을 만나든지 성장할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 목표를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잊지않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지않습니다. 이것을 세상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공격의 종류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욕구를 불러 일으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6, 개역한글)

 

tv를 보는것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tv를 보면 우리에게서 세상의 욕구를 끌어냅니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욕구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것을 갖고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2.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6-17, 개역한글)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은 세상에 대해서 즉각 반응을 일으킵니다.

 

3. 불만을 일으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8, 개역한글)

 

사단은 우리의 주의를 자꾸 다른곳으로 돌립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이세상에서 나의 형편에 대하여 불만을 갖게 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이 다가갑니다. 에덴동산은 완벽한 환경에서 하와에게 불만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것이 사단이 쓴 수법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계속 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비결은 1. 삶의 목표를 주님을 닮는것이었습니다. 2.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계속해서 훈련했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3가지로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부지런히 봐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간의 교제속에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네가지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깨어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개역한글)

 

세번째, 사도바울은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있습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7-10,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그육체에 심각한 병이 있었습니다.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여러형제님들이 이에대해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병을 고쳐주실것을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구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사도바울을 나쁜 환경속에 두게하셨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불만을 가질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기뻐했습니다. 왜일까요?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고쳐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수 있습니다.
두번째, 사도바울의 병을 고치지 않고 여전히 아픈가운데 사도바울을 사용함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두번째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나쁜조건속에서도 주님의 이릉ㄹ 감당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자로 쓰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 목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의 선택에 기꺼이 감사하며 그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암에 걸리면 우리는 병을 고쳐주실것을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병을 고쳐주시지 않고 그길을 간다면 우리는 이 병을 가지고 그럼에도 변함없이 주님께서 쓰실수 있는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여기한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든지간에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사른 사람에게 실족이 되지 않고 나에게도  위험이 되지 않도록 절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저희들 가운데 주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