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강사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7_무엇이 보이느냐>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막8:22-26, 개역한글)
소경에게 예수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이 부분은 조금 앞으로 가서 예수님의 세번째 질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11-13절입니다.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막8:11-13, 개역한글)
예수님의 질문은 <왜 표적을 구하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낸 분이 확신할만한 증거(기적)을 구했습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 깊이 탄식하시고 <왜 표적을 구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14-21절까지입니다.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14-21, 개역한글)
두번째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입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다음 세번째 질문이 소경에게 <무엇이 보이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소경에 집중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다는것은 정말로 소경이 눈을 뜬것이겠습니까?
만약 소경의 눈을 뜨게하면 그사람을 하나님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의미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2-5, 개역한글)
침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세상죄는 이세상에 살았던 모든사람의 죄입니다. 이 죄를 예수님이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희생양임을 침례요한이 증거했습니다.
침례요한은 본인이 알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제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그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침례요한은 약간 회의에 빠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오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실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소경이 눈을 뜬것'을 근거로 들으십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소경의 눈에 진흙을 이겨바르사 실로암 못에가서 씻게 하여 눈을 뜨게 하십니다. 이것으로 안식일에 일한다 하여 바리세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논쟁이 됩니다.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9:30-33, 개역한글)
이것은 소경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이가 아니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할수 없다 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것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많은 기적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시기 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곧,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것은 하나님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기적은 오병이어와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기적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기적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것과 귀먹고 벙어리인 사람을 고치신 것입니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막7:31-35, 개역한글)
귀머거리고 벙어리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치십니다. 그런데 <에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고치십니다.
이 두개의 기적을 마가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가 그리고자 하는 주님의 모습이 이 기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나중에 상고해 보기로 하고 마가복음 8장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막8:13, 개역한글)
마가복음에 기록된 이 부분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마지막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제자들하고만 이야기 하십니다. 이 기적이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의 맨 끝인 것입니다.
이 일은 벳새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1:44, 개역한글)
벳새다는 안드레 빌립 요한의 고향입니다. 열두제자 중 세 제자를 배출한 지역인 것입니다.
13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10:13-14, 개역한글)
세번째로 벳새다에 대해서 성경에 나온 내용은 그곳을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동네라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기적을 예수님께서 베푸셨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서 어떤것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왜 믿지 않은 것일까요?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막8:11-12, 개역한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표적을 전혀 주지 않으시고 표적없이 믿으라고 하신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표적들은 예수님 하나님일수밖에 없다는것을 증명하는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세인들이 또 표적을 구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더 이상 표적을 보이시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행한 표적으로 충분하다>는 의사를 보이셨습니다.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28-31, 개역한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죽은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증거하면 사람들이 믿을것 같지 않습니까?
죽은사람이 부활해서 전한다 할찌라도 안믿을것이라는 것은 위에서 본 바리세인들이 표적을 구할때에 예수님께서 깊이 탄식하시며 표적을 보이시지 않겠다고 한것을 연계시켜보면 사람들이 못믿는 것은 증거가 부족해서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못믿는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증거를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헤롯왕도 예수님을 심문할때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자 조롱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서 오셨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것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족을 얻는것이 아닙니다. 이정도 했으니 내가 믿어준다가 아닙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앞에 굴복시키는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족시켰으니 됬다 하고 내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내 생각을 거기에 복종시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요구를 아브라함이 거부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중심이 되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앞에 굴복하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다시 마가복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막8:22, 개역한글)
벳새다는 그많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앞의 바리세인들에게 "내가 더이상 표적을 주지 않으리라. 이미 내가 보여준 표적으로 믿어야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신 것은 이렇게 고치십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막8:23, 개역한글)
예수님께서는 소경을 마을 밖으로 데려가십니다.
곧, 소경과 제자들만 데려가십니다. 믿는 사람들만 데려가신것입니다. 그리고 소경을 고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막8:26, 개역한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더이상 표적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어진 표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이 한말과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정말로 이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준것이 맞느냐?"라고 그의 부모에게 계속 묻고 그사람에게 확인하고 어떻게든지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11:53, 개역한글)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12:10-11, 개역한글)
바리세인들은 예수님만 없애려고 할뿐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불신은 증거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보고 믿는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때 생기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내가 그 말씀을 순종하며 들을때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이 소경을 고치실때의 특징은 그를 마을밖에서 고치셨을뿐 아니라 마을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는 그 마을에 충분한 기적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소경을 고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에는 굉장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경을 고치신것과 연이어서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적이 적어도 베드로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것을 고백하는데 의미가 있는 기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소경을 고치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는 기적입니다.
두번째, 이 기적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적입니다.
이는 침례요한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봤을때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천년왕국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사35:5-7, 개역한글)
천년왕국때 이 지구가 완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통시하는 이 복된 나라를 예언할때 쓰고 있는 말입니다.
이는 천년왕국에서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천년왕국의 예고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왕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적을 행하신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통치, 주님의 다스리심을 사모하고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기적이 상징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두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영광을 미리 보여줍니다.
세번째는 이것입니다.
앞서 바리세인들이 예수님께 기적을 구할때에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들이 왜 표적을 구하느냐> 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보여주신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들이 원하는 증거들을 하나님께 요구하느냐, 너희들이 하나님보다 높으냐?
너희들이 하나님위에 서서 요구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겠느냐?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에게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안믿는 분들은 이 구절을 생각해야 합니다.
두번째, (믿는사람들은 이 구절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막8:15,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누룩을 이야기 하시니 제자들이 "떡이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알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고 사천명을 떡 일곱개로 먹이신 일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자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함으로써 영적인 교훈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늘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축복을 생각지 않고 현실에 있는 여러가지 것들에 매이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영적인 것들을 놓치는 것입니다.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19-21, 개역한글)
제자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잊어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해놓으신 사실들을 자꾸 기억하고 반복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벳새다의 소경의 가장 독특한 점은 예수님께서 한번에 고치시지 않고 두번에 거쳐 고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한번에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번 고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셨습니다.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막8:23-24, 개역한글)
그리고 있다가 한번 더 고치십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번에 고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기적은 다 한번에 고치셨지만 이번에는 두번에 거쳐 고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영적인 소경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보여주셔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었습니다. 소경은 아닙니다. 사물을 봅니다. 그러나 촟점이 맞지 않는것입니다. 사람을 보는데 나무로 보는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말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구원받은것에서 머무르지 말고 분명하게 영적인 사물들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벧전1:12, 개역한글)
구원받고 주님이 머리가 되신 교회에 더해졌다고 하는 것은 천사들도 살펴보길 원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우리보다 더 많은 영적인 것들을 보고 있는 존재입니다.
천사들이 원하는것은 복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 그리고 구원받고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하는것을 굉장한 가치를 두고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구원, 교회에 관심이 없고 현실에 더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떡이 중요한데"라고 먹는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교회에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영적으로 평가하는 천사들은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떳을뿐 아니라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는 단계에 와야 하는것은 정말로 가치있는것, 중요한것을 구분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막8:22, 개역한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그들은 손대시기를 구했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대시면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의 옷을 만져도 나았습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막8:23, 개역한글)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고치실때 손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서 씻고 오라고 하시고 고치셨습니다. 공통재료가 무엇이냐하면 '침' 입니다.
이것은 숙제입니다. 왜 침을 바르셨을까요?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막8:24, 개역한글)
<우러러보며> 이는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소경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무엇이 보이느냐'
우리의 대답은 "사람같은데 사람같이 안생겼고 나무같은것이 걸어다니는것 같습니다" 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만물을 밝히 보는 상태로 우리가 나아오기를 예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막8:31, 개역한글)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이제 주님께서는 가르치십니다. 구원받고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할것이 많고 열두 제자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이후에 십자가를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알고 베드로는 바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마옵소서"
그것으로 예수님께 강하게 꾸중을 듣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은 후에 이제 비로소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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