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6_너희도 이렇게 깨닳음이 없느냐>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1-23)
여기서 예수님의 질문은 18절에 <너희도 이렇게 깨닳음이 없느냐> 입니다.
이는 이제까지 계속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주님 말씀을 듣고 배워놓고도 모르느냐는 말입니다.
전혀 경험이 없거나 주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것이 아니라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30세 시작되어 33세에 돌아가신걸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를 잘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생애 중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주일이 복음서의 절반이 할애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년간의 생애의 중요한 부분들은 빠져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은 예수님의 3년 사역 중 몇년째로 보는 경우가 많냐하면 예수님께서 2년째 사역으로 봅니다.
이제 십자가를 1년 앞둔 시점입니다. 제자들은 2년간 예수님께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예수님께서는 답답해서 "이렇게 알아듣지 못하느냐?"라고 질문하신것 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은 못알아들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것이고 복음의 기본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답답해 하시고, 바리세인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7:6)
속으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부릅니까?
그들은 '외식'하는 자입니다. 요즘 우리들이 쓰는 언어로 바꾸면 '위선자'입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이여>
우리나라의 무덤은 땅위에 둥글게 흙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평토장을 합니다. 땅에 뭍지만 땅위로 둥글게 흙을 모양내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 땅위에 하얖게 칠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하얘서 깨끗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람의 부패한, 더러운 시체가 가득한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바리세인들에게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번째는 바리세인들, 즉 믿는다고 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두번째는 믿는 제자들, 그들이 깨닫지 못함으로 답답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왜 못알아 듣느냐> 하셨습니다.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막7:2)
최근 신종플루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신종플루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방법은 손을 자주 씻는것입니다. 신종플루를 예방하기 위해 손 씻는 방법도 공중화장실에 안내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또 서양 음식점에 가보면, 음식점의 직원들은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합니다. 씻지않으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손을 씻지 않은 제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는 아마도 저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손을 씻지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막7:3)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손을 부지런히 씻는것입니다. 제 성경에는 <손을 팔뚝까지 씻지 아니하면>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팔뚝은 팔꿈치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손을 씻을때 팔꿈치까지 씻어야 했습니다.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7:4)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물을 뿌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목욕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손씻는 것이 아니고 목욕하는 것입니다. 시장을 다녀오면 목욕을 재개하고 먹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잔, 먹는 그릇들을 다 씻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모든 음식을 먹을때 다 깨끗하게 하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했을까요? 율법에서는 왜 이렇게 하라고 쓰여 있을까요?
마가복음 7장 2절에 보면 <제자 중 몇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씻지않으면 전염병에 걸리거나 설사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먹을수 있는 고기와 먹을수 없는 고기가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구약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정한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잡아먹으라> 하셨을때 베드로는 부정한 짐승을 먹을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소,비둘기 등은 정하다 하셨고, 돼지등은 부정하여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어떤것은 먹게 하시고 어떤것은 부정하다하여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분명한 것은 위생적인 이유때문에 그렇게 하신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고혈압에 나빠서 못먹게 하신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먹을수 있는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 하는것은 먹을수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짐승은 먹을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분하신 것입니까?
되새김질을 한다는 것은 되새김질 하는 짐승들이 먹이를 먹어놓고 위가 여러개이기 때문에 일단 위에 담아두었다가 다시 꺼내서 씹어 소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서 자기것으로 소화해 내는 성도가 합당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이 내 실제 생활에서 적용되지 않으면 부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굽이 갈라졌다고 하는 것은 세상과 구분된 것입니다.
곧 세상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사람과 다른것입니다.
말씀에 따라서 말씀이 그 성도의 모습에서 구체적인 부분을 형성시킬때 성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못하게 하신것은 영적인 교훈입니다.
그럼, 레위기에서 손을 씻으라고 하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레16:4)
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레16:24)
불사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지니라 (레16:28)
에스겔서에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36:24-26)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물(성령)로 깨끗히 씻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7장을 보면 구약성경에 나온구절을 많이 발전시켜서 많은부분에 적용합니다. 이는 장로들의 유전입니다.
제자들은 왜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선은 이와같은 가짜 종교를 반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6절에서 <너희들은 외식하는 자다. 이사야가 예언했다> 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전에 그들은 아주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그때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이 이사야, 예레미야 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의 잘못된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해서 아주 많이 꾸짓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너희 조상이 하던 짓과 똑같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를 들었습니다.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7:10-11)
하나님께 드릴것이 있고 부모님께 드릴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드리기 싫어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바리세인들은 그를 죄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사람이 그 말대로 하나님께 헌금을 했다면 괜찮습니다만 하나님께도 헌금하지 않습니다.
드리겠다 해놓고 하지 않습니다. 고르반입니다.
이 사람들이 또 어떤 나쁜 전통을 가지고 있냐면, "이것은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해놓고 즉각 드리지 않고 그것을 계속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유예할수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분명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렸다 하고서 자기가 계속 가지고 있거나 자기가 써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고르반'이라는 그들의 전통을 이용해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 하기 위해서 다른 경건한 장치를 사용해서 불순종 했습니다.
마땅히 부모님께 드려야 할것을 드리지 않고 부모를 희생시키고 하나님께 드리니 이 얼마나 영적인 사람인가, 말하고 실제로는 자기를 위해 쓰는것입니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7:14)
예수님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7:15-18)
그런데 이 말씀을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해서 예수님께서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에게 하신 말씀,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7:15-16)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장로들의 유전은 틀린것입니다. 그들이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은것은 15,16절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음식이 아닌 것입니다. 안씻고 먹었다던지 부정한 음식을 먹었다고 사람이 더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더럽게 되는 것은 원래 사람의 속이 가장 더럽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세상에는 사람들이 싫어하고 냄새도 심하게 나서 얼굴조차 마주하기 싫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더러운 것은 사람의 속에 있는 마음이 제일 더러운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7:19)
모든 식물은 깨끗합니다. 안씻고도 먹을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한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하는것은 이럴때에 쓰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이 천국에 데려올수 없는 죄인들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지마라"가 핵심이 아니고 '천국에 올수 없는 죄인이 있다'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은 이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정말 더러운것은 따로 있습니다.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23)
이 구절에 의하면 어떤 더러운 것보다도 사람 마음속에 있는것이 더 더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더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 더러운 생각들을 어떻게 해결할수 있습니까?
이 죄는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있을수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죄인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을 나 때문에 죽었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믿는사람입니다.
내속에서 나오는 배설물이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러운 것입니다. 또는 생각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아야지 한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피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가 나의 이 죄악된 생각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내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손을 씻는 바리세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깨끗하다. 깨끗한 나를 더럽히는것은 밖에 있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더러운것이 나에게 영향을 못 끼치도록 나에게 방어막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동이 깨끗합니다. 자꾸 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생각을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겉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흉악범죄자가 나왔습니다. 지존파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범죄자가 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서 보통 어렸을적의 성장환경을 봅니다. 불우한 유년기 시절로 인해서 그가 이와같은 범죄인으로 자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 설명을 반대합니다.
그가 어렸을적 가정적인 불행이나, 그가 초등학교 시절에 왕따였다거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오늘날 성격파단자가 되었다는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밖에 있는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가 태어나면서 죄인이며, 그의 죄된 성향이 통제되어야 하는데 그가 그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 죄된 성향이 날뛰도록 놔둔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부모들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자녀가 밖에 나가서 욕을 배워오면 그곳에 가지말게 하거나 그 욕을 가르쳐준 친구와 사귀지 않게 하는것이 아니라 그 욕을 못하게 지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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