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9일 목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4_ 누가 손을 대었는가>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막5:21-34, 개역한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많아서 손댈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자는 고민하다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누가 내 옷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 질문을 몰라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누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대었는지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지목해서 나오라고 하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물으신것은 이 여자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여자는 대중앞에 나오기를 싫어하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몰래 뒤에가서 옷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중앞에 이 여자를 공개적으로 나오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대중앞에 나오게 하신것은 이 여자를 괴롭히려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이 여자에게 손만대고, 병만낫고 돌아가는것 이상으로 주고자 하는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염두해두고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막5:21, 개역한글)
21절의 이곳은 어디입니까?
바로전에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지역에 가셨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루종일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저녁때에 배를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너무 피곤하셔서 풍랑이 치는데도 모르고 주무셨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거라사 지방에 이르렀는데 거라사인들이 예수님께 "우리지방을 떠나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떠나셔서 이방인들이 사는곳에 가셔서 잠시 쉬고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떠나달라고 했기 때문에 다시 배를타고 건너오신 것입니다.
도착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이곳은 가버나움입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눅8:40, 개역한글)
거라사 지방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소서"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떠나셨을때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고 오셨을때 환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오셨을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오늘읽은 혈루병 앓던 여인과 회당장 야히로 입니다. 이 두 인물을 성경은 주목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눅8:41, 개역한글)
야히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장소를 만들었고 그것이 회당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이 성립하려면 10명의 가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안에서 랍비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당장은 쉽게 말하면 평신도지만 그는 건물을 관리하고 랍비를 초청하기도 하는 총책임을 맡은자입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회당장은 사실 존경받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회당장이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내 어린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손을 얹으사 그 병을 낫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가시는 중에 그 딸은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하신 분입니다. 지체하면 그딸이 병을 앓다가 도착하기전에 죽을것을 아셨고, 또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를 만져 병이 나을것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내옷을 만졌느냐>라고 질문하시고 그 여인이 나와서 사실대로 고하느라 시간을 버린일 때문에 야히로의 딸이 죽어버립니다.
이러한 일이 성경에 몇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금방 오셨으면 나을수 있었던 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금방 오시지 않음으로 인해서 죽어버린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는 나사로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야히로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의 딸이 죽을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에게 열 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눅8:42, 개역한글)
<함께 가실 때에>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함께 갈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난 그곳에 가지 않고도 고칠수 있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멀리서 그곳에 가지않고 병을 고친 케이스가 로마의 백부장의 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될지를 다 알고 안가보고도 고치실수 있는 예수님께서 함께 가주십니다. 이렇게 함께 가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다음시간의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가 왜 우느냐> 입니다. 야히로의 딸이 죽으니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입니다. 주님의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지금 보고 있는 예수님께서 왜 같이 가시는가도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실때에 큰 무리가 에워싸 밀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고 왜 오셨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기복신앙인 것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축복이 주어질것만 따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눅8:43)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병입니다.
이러한 병을 현대의학이 고칠수 있을까요? 현대의학으로 기능성 자궁출혈이라고 합니다.
이런병이 생기면 이 여자는 이스라엘 여자이기 때문에 이 여자는 피가 멈추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여자가 됩니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레15:19)
그러므로 이 여자는 회당에 나올수 없고, 남편도 회당에 나올수 없으며, 자녀들도 회당에 나올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써 회당에 못나간다는 것은 우리로치면 학교나 직장을 다닐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피가 흐르면 부정하다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부정하다>고 정하고 염격하게 격리를 명하신 이유는 성경은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파괴하는 가를 말하고 싶은것입니다.
혈루병도 그 병이 부정한것이 아니고 전부 죄를 상징하기에 부정하다고 한것입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5:26)
당시의 의술이라는것은 민간요법수준이거나 효과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상을 입으면 된장을 바르는 것과 같은것입니다. 지금은 절대로 의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여자는 가족에게도 격리되고 사회에서 격리되고, 돈도없고, 몸도 많이 약해 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5:27)
이 일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주님께서 한 일을 마가복음에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 계실때에 그 집 지붕을 뚫고 어떤 병자를 예수님앞에 달아내리고 그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을뿐 아니라 죄 용서까지 해주십니다.
이것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당시에서는 이것은 굉장한 사건이고 충격적이고 믿을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1:2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장 야히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사람들의 가르침과 달랐고, 마침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귀신들린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성경에서 사람가운데 예수님을 이같이 고백한 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니이다> 이것을 귀신이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겨우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대답을 베드로가 해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대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대부분 예수님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니이다>
그래서 귀신이 사람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시고 귀신이 순종합니다.
마가복음에 나온 기적만 세번이고 그 후에도 예수님이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5:27)
여자는 왜 몰래 손을 대었을까요?
여자와 부딧친 사람은 일주일간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는 드러내지 않고 하는수 없이 몰래 만진것입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막5:29-30)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능력 덩어리고 예수님을 만지면 그 능력이 쑥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스스로 아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어떤사람에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이 이 여자에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십니다. 그리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냐>
이 말을 들었을때,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내가 나가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나갔을때 그 여자옆에서 부딧쳤던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가 부정한 사람이었다는것을 알게될것이기 때문입니다.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5:32-33)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시려고 둘러 보셨습니다.
이 여인은 두려워하며 떨며 나왔습니다. 이 여자는 무엇을 두려워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해서 이 여인이 두려워 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엎드려> 입니다. 예수님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르신들 앞에 절할때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에는 어떤 경우도 사람이 사람앞에 엎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사람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엎드리는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합니다.
이 여인이 엎드린것은 하나님앞에 나와 경배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두려워하며 떤것은 자기가 욕먹는것이 두려운것이 아니고 내 병을 낫게하신 하나님 앞에 간다는것으로 말미암은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5:34)
예수님의 이때 나이가 30~31세 입니다. 12년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자의 나이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딸 정도의 나이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딸아>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여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놀라우신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이 죄를 짖습니다. 죄인이 되면 죄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죽는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때 죽지않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인이 되었기에 사람이 죽는것입니다.
죄는 항상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병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병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간접적인 증거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병'입니다. 두번째는 야히로의 딸의 '죽음'입니다.
병과 죽음, 이 두가지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앞에 나갈때 우리는 이 여자처럼 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사람들에게 욕먹게 생겼다 가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주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나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5:33)
33절은 이 여자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34절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5:34)
<네 믿음이> 예수님이 하나님인줄 아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정말로 해결하려고 하시는것, 영혼의 구원을 해주시기 위해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때 여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나갔을때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너를 구원하였으니> 라고 하신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것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막4:41)
예수님은 자연을 통제하시는 분입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막5:8)
마가복음 5장 1절부터는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정복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온갖 병들이 많았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은 병을 치유하십니다.
다음주에 하게 될것은 죽음을 정복하십니다. 우리는 이와같은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것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예수님을 제시하면, 우리는 성경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을 받아들이면 성경대로 행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가 됩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연을 통제하시며 귀신을 이기시며 병을 고치셨습니다.
다음시간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39절의 <너희가 왜 우느냐>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4_ 누가 손을 대었는가>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막5:21-34, 개역한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많아서 손댈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자는 고민하다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누가 내 옷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 질문을 몰라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누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대었는지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지목해서 나오라고 하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물으신것은 이 여자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여자는 대중앞에 나오기를 싫어하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몰래 뒤에가서 옷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중앞에 이 여자를 공개적으로 나오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대중앞에 나오게 하신것은 이 여자를 괴롭히려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이 여자에게 손만대고, 병만낫고 돌아가는것 이상으로 주고자 하는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염두해두고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막5:21, 개역한글)
21절의 이곳은 어디입니까?
바로전에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지역에 가셨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루종일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저녁때에 배를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너무 피곤하셔서 풍랑이 치는데도 모르고 주무셨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거라사 지방에 이르렀는데 거라사인들이 예수님께 "우리지방을 떠나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떠나셔서 이방인들이 사는곳에 가셔서 잠시 쉬고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떠나달라고 했기 때문에 다시 배를타고 건너오신 것입니다.
도착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이곳은 가버나움입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눅8:40, 개역한글)
거라사 지방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소서"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떠나셨을때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고 오셨을때 환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오셨을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오늘읽은 혈루병 앓던 여인과 회당장 야히로 입니다. 이 두 인물을 성경은 주목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눅8:41, 개역한글)
야히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장소를 만들었고 그것이 회당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이 성립하려면 10명의 가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안에서 랍비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당장은 쉽게 말하면 평신도지만 그는 건물을 관리하고 랍비를 초청하기도 하는 총책임을 맡은자입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회당장은 사실 존경받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회당장이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내 어린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손을 얹으사 그 병을 낫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가시는 중에 그 딸은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하신 분입니다. 지체하면 그딸이 병을 앓다가 도착하기전에 죽을것을 아셨고, 또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를 만져 병이 나을것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내옷을 만졌느냐>라고 질문하시고 그 여인이 나와서 사실대로 고하느라 시간을 버린일 때문에 야히로의 딸이 죽어버립니다.
이러한 일이 성경에 몇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금방 오셨으면 나을수 있었던 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금방 오시지 않음으로 인해서 죽어버린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는 나사로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야히로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의 딸이 죽을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에게 열 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눅8:42, 개역한글)
<함께 가실 때에>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함께 갈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난 그곳에 가지 않고도 고칠수 있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멀리서 그곳에 가지않고 병을 고친 케이스가 로마의 백부장의 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될지를 다 알고 안가보고도 고치실수 있는 예수님께서 함께 가주십니다. 이렇게 함께 가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다음시간의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가 왜 우느냐> 입니다. 야히로의 딸이 죽으니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입니다. 주님의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지금 보고 있는 예수님께서 왜 같이 가시는가도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실때에 큰 무리가 에워싸 밀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고 왜 오셨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기복신앙인 것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축복이 주어질것만 따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눅8:43)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병입니다.
이러한 병을 현대의학이 고칠수 있을까요? 현대의학으로 기능성 자궁출혈이라고 합니다.
이런병이 생기면 이 여자는 이스라엘 여자이기 때문에 이 여자는 피가 멈추지 않았으므로 부정한 여자가 됩니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레15:19)
그러므로 이 여자는 회당에 나올수 없고, 남편도 회당에 나올수 없으며, 자녀들도 회당에 나올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써 회당에 못나간다는 것은 우리로치면 학교나 직장을 다닐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피가 흐르면 부정하다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부정하다>고 정하고 염격하게 격리를 명하신 이유는 성경은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파괴하는 가를 말하고 싶은것입니다.
혈루병도 그 병이 부정한것이 아니고 전부 죄를 상징하기에 부정하다고 한것입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5:26)
당시의 의술이라는것은 민간요법수준이거나 효과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상을 입으면 된장을 바르는 것과 같은것입니다. 지금은 절대로 의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여자는 가족에게도 격리되고 사회에서 격리되고, 돈도없고, 몸도 많이 약해 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5:27)
이 일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주님께서 한 일을 마가복음에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 계실때에 그 집 지붕을 뚫고 어떤 병자를 예수님앞에 달아내리고 그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을뿐 아니라 죄 용서까지 해주십니다.
이것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당시에서는 이것은 굉장한 사건이고 충격적이고 믿을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1:2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장 야히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사람들의 가르침과 달랐고, 마침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귀신들린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성경에서 사람가운데 예수님을 이같이 고백한 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니이다> 이것을 귀신이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겨우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대답을 베드로가 해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대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대부분 예수님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니이다>
그래서 귀신이 사람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시고 귀신이 순종합니다.
마가복음에 나온 기적만 세번이고 그 후에도 예수님이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5:27)
여자는 왜 몰래 손을 대었을까요?
여자와 부딧친 사람은 일주일간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는 드러내지 않고 하는수 없이 몰래 만진것입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막5:29-30)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능력 덩어리고 예수님을 만지면 그 능력이 쑥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스스로 아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어떤사람에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이 이 여자에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십니다. 그리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냐>
이 말을 들었을때,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내가 나가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나갔을때 그 여자옆에서 부딧쳤던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가 부정한 사람이었다는것을 알게될것이기 때문입니다.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5:32-33)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시려고 둘러 보셨습니다.
이 여인은 두려워하며 떨며 나왔습니다. 이 여자는 무엇을 두려워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해서 이 여인이 두려워 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엎드려> 입니다. 예수님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어르신들 앞에 절할때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에는 어떤 경우도 사람이 사람앞에 엎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사람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엎드리는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합니다.
이 여인이 엎드린것은 하나님앞에 나와 경배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두려워하며 떤것은 자기가 욕먹는것이 두려운것이 아니고 내 병을 낫게하신 하나님 앞에 간다는것으로 말미암은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5:34)
예수님의 이때 나이가 30~31세 입니다. 12년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자의 나이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딸 정도의 나이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딸아>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여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놀라우신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이 죄를 짖습니다. 죄인이 되면 죄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죽는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때 죽지않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인이 되었기에 사람이 죽는것입니다.
죄는 항상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병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병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간접적인 증거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병'입니다. 두번째는 야히로의 딸의 '죽음'입니다.
병과 죽음, 이 두가지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앞에 나갈때 우리는 이 여자처럼 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사람들에게 욕먹게 생겼다 가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주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나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5:33)
33절은 이 여자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34절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5:34)
<네 믿음이> 예수님이 하나님인줄 아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정말로 해결하려고 하시는것, 영혼의 구원을 해주시기 위해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때 여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나갔을때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너를 구원하였으니> 라고 하신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것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막4:41)
예수님은 자연을 통제하시는 분입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막5:8)
마가복음 5장 1절부터는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정복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온갖 병들이 많았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은 병을 치유하십니다.
다음주에 하게 될것은 죽음을 정복하십니다. 우리는 이와같은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것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예수님을 제시하면, 우리는 성경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을 받아들이면 성경대로 행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가 됩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연을 통제하시며 귀신을 이기시며 병을 고치셨습니다.
다음시간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39절의 <너희가 왜 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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