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성도 말씀

기드온에게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박이레 2022. 4. 22. 21:18

< 기드온에게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 / 강성찬 형제님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삿 6:1-6).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삿 6:11-16).

여기 우리는 기드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여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가자 나타나서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큰 용사여" 라고 부르게 됩니다. 참 그것은 참 놀라운 호칭입니다. 그런데 기드온도 그것에 대해서 의아해하고,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우리도 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기드온의 모습과 전혀 큰 용사라는 말이 맞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드온에 대한 기록을 쭉 살펴볼 때에 기드온은 처음부터 용기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실지 회의하고, 그는 두려워하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징표를 보여주시기를 구했으며, 또한 그러한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듣게 하시고 계속해서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놀라운 승리 이후에도, 그리고 몇가지 실수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는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거절하였지만, 그는 또한 그들이 얻은 제물 가운데서 김귀걸이를 달라고 해서 그것으로 에봇을 만들어서 그것이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가 되는 그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는 또한 많은 아내를 두었고 또 그 가운데 한 첩을 통해 낳은 아들은그 이제 그 집을 대신하고 그 형제들을 다 죽이는 그런 비극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참 이와 같이 기드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완벽한 그런 영웅은 아닙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성정이 비슷한 사람이고, 우리처럼 두려워하고 또한 우리처럼 여러 실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시고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그를 사용하게 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큰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그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미디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디안이 모든 곡식을 다 빼앗아 간 후에도 여전히 그의 가족과 그의 나라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민족들에게 여진 곡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그 곡식을 공급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포도주 틀에서 곡식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이 곡식이라는 것은 타작마당에서 하는 젓입니다. 너른 마당에서 알곡들을 놓고 거기서 타작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자신이 곡식이 있다는 것을 대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자그만한 포도주 틀에서, 그리고 얼마남지 않는 곡식을 가지고 힘들게 타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곡식을 공급하고자 하는 그 모습,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곡식을 공급해야 겠다는, 그 기드온의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곡식은 크게 두가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주 곡식으로 비유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에너지를 주는 그것이 이 곡식인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곡식을 우리의 영혼에 비유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이제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처럼 이제 참으로 구원받은 영혼이 알곡인 것이죠. 그 한 씨가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 이 과정이 한 영혼이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는 그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은 그 곡식을 싹 가져가 버리는 것입니다. 미디안이 우리가 말씀을 공급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수고하지만 모두 가져가 버립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고 여러가지 수고하지만 전부 가져가 버립니다. 미디안이 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파종할때면 미디안 사람들이 올라와서" 이스라엘이 파종하고 난 후에, 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하고 난 후에 힘들게 씨를 뿌리고, 그리고 키우고 이제 곡식을 얻으려고 할때에, 이 미디안 사람들이 마치 메뚜기 떼처럼 와서 남김없이 전부 가져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님들이 모임에 말씀을 공급하기 위하여 여러가지로 수고하고 말씀을 교제하고 나누게 됩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죠. 하지만 대적이, 성도들이 그 말씀을 섭취하고 거기서 양분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말씀의 능력이 경험되지 못하도록 가져가는 것이, 마치 새가 그 씨를 다 먹어버리는 것처럼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이들을 힘들게 키우고 있지만 때때로 세상은 그 아이들을 뺏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운데에 많은 상실과 낙심 가운데서, '그러면 어쩔수 없지, 다 가져가 버렸는데..'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곡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수고하고 타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가운데서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이제까지 어떻게 해오셨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모든 이적은 어디 있습니까? 참으로 옛적에 여호와께서 그렇게 행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이며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옛적에 그렇게 행하셨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아는 사람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다시 이 곡식을 우리 손에 쥐어주실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드온을 "큰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더욱 근 용기를 주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첫번째로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삿 6:19-24).

여기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기 위해서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무교전병을 만듭니다. 그리고 국을 가지고 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고기와 무교전병과 그 위에 국을 쏟게하고 지팡이를 그 제물에 대니, 불이 반석에서 나와서 그 제물들을 다 사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살롬" 이것은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평강이시라,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참된 용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임을 알 때에,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평강일 때에 거기서부터 용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오전 시간에 두려워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참된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강일때, 그때 참된 용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것을 여러번 보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이것은 그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단이 불살라지는 것도 성경에서 여러군데 나옵니다. 단과 그 희생제물이 그 죄를 속죄하는 속죄 제물이 불에 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의 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한 화목 제물을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화평이 있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러한 불이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이 있을때에, 그 단에 불이 내려서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에 화평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봉헌될때에 그 단에 불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석들간에 화평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단에 그 희생제물이 불에 살라지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평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생제물이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고기와 무교전병과 그 쏟아진 국은 모두 우리의 온전한 희생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신 것, 그분께서 온전히 드리신 그 전제와 같은 사역, 그분의 흠 없는 인격, 이 모든 것이 이 예물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평임을 알때, 참으로 "여호와 살롬"이라고 말할때에 우리에게 용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용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드온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기드온이 분명하게 알게하고 그것을 증거하게 합니다.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삿 6:25-32).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평강이시고 반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 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증거하게 합니다. 그 바알의 단을 헐고 우상 아세라상을 찍어서 불태움으로 그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증거하게 합니다. 기드온은 그 우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죠.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우상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우상을 훼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를 벌주려고 합니다. 그럴때에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이렇게 논리적으로 잘 말합니다. "만일 우상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당신들이 손댈 것이 없다. 우상이 그 능력을 가지고 친히 그 우상을  훼파한 사람을 벌 줄 것이다. 아발이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여룹바알'이 됩니다. '바알이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되는 이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때,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우상이 살아있는지를 아닌지를, 저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이 망하면, 저 사람이 해를 당하면 우상이 살아있는 것이고, 저 사람이 아무 문제 없이 잘 살면 우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이 동네 사람들이 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우상상을 망가뜨렸다고 그런 소동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원리로 작동한다고 말을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지 성공한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밟아야지 네가 잘되는 길이라고, 그런 세상적인 원리가 이 세상의 신인 것입니다. 그러한 원리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너는 이제 어려움을 겪을 것이야. 너는 이제 망할것이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런 처세술이 맞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만약 그것이 옳은 원리라면 스스로 드러낼 것이다. 증명할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도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치 말고" 사도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볼 때에 우리에게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가진 소망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게 될 것입닏. 우리는 이 기드온이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다녔던 것처럼, 만약 바알이 살아있으면 바알이 스스로 쟁론할 것이라는 그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됨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증거를 하게 될때 우리는 더욱 큰 용기를 얻게 됩니다. 더욱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삿 6:36-40).

기드온은 여전히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강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어도 우리는 뭔가 더 분명한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것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제 양털 한뭉치를 타작마당에 두었을때, 하룻밤이 지났을때 이슬이 양털만 적시고 땅은 그대로 둔 것입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슬이 땅은 안적시고 가운데 있는 양털만 적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한번 더 요구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증거를 이걸로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십시요. 이번에는 양털만 마르고 땅은 젖어있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한 가운데 있는 양털만 마르고 땅은 다 젖어있는, 그것을 해달라고 하였을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더욱 굳은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가지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믿지 않으려고, 불신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요." 라고 하는 아버지를 도와주신 것처럼, 참 믿음 없는 도마를 주님께서 도와주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자 할때, 더욱 의지하고자 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믿음을 견고케 하는 그런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흔들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분명한 이와 같은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도 어떤 때에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이 저로 하여금 보게하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이 양털과 같은 증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 이 인류를, 이 역사를 어떻게 경영하시는지, 이것을 보게 하십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은 이제 제쳐짐을 당하고 온 이방 열국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기록된대로, 이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참으로 하나님의 깊은 뜻과 깊은 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 지혜로운 분께서 선하게 이 모든 역사를 운영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게 하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이 양털의 기적과 비슷합니다. 양털만 이슬이 있던 것처럼, 이슬은 그런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에는, 양털은 말라있고 온 땅에, 온 열국에만 이슬이 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영하시는 것을 볼 때에, 분명한 증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을때에, 그분은 마른 땅에 나온 줄기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 양털에만 이슬이 내린 것처럼,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있는 그러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마른 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양털이 말랐을때,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을때에, 그로 인해서 이제 땅이 이슬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분명한 증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받은 증거보다 더 확실한, 그 두가지 증거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주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7장으로 가서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기드온의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드온의 군대의 수를 줄임으로서,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아이러니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어려운 상황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로 인해서 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가 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삿 7:1-7).

여기 이스라엘 모인 군대는 삼만 이천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미디안 군대의 수를 계산해 보면 십삼만 오천명인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도 상대가 안되는 그런 수입니다. 벌써부터 용기가 나지 않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수를 더 적게 만들어서 삼백명으로 줄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용기를 갖게 하십니다. 우리가 적은 수이지만 어느정도 자원이 있을때는 은근히 그 자원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가 가진 자원을 의지하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두려울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가진 힘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오히려 그 수를 줄임으로서, 우리 힘을 전혀 의지하지 않게 함으로서, 만약 우리 가운데 우리의 수를 빼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럼으로서 용기를 얻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 군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수를 더 줄이시고 그리고 시험하십니다. 항상 우리의 믿음은 시험을 통과하게 되며,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할때에 더욱 견고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시험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물을 마실때에, 그들이 물을 마시는 것에 정신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투 중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이 군인인 것을 인식하고 경계하면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 그 사람, 그 사람만을 남기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신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가 어떠한 부르심을 입었는지를 알게 될 때에, 그리고 그 부르심대로 살아갈때에, 우리는 큰 용기를 얻게 되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전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9절부터 14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기드온으로 자신의 대적이 이스라엘 군대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기드온이 용기를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듣게 하심으로서 또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실때가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삿 7:9-14).

기드온은 여전히 두려워합니다. 그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진에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미디안 진은 보기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고,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해변에 모래가 많은 것처럼 그 수가 많아 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볼 때에 보이는 모습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은 보리떡 한덩어리, 정말 적은 무리, 가치없는, 보잘것 없는 그러한 평가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마음 속 깊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들의 삶에 대한 허무함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을 궁금해 하게 됩니다. 그것이 뭘까, 왜 그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은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그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그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삶의 허무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을 전하면서, 또한 우리 친구들하고의 대화 가운데 이러한 것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 더욱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그 소망의 이유를 대답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용사로 만들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평강이심을 우리로 알게 하십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십니다. 참 우리가 하나님의 경영하심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분명한 증거를 통해서 보게 하십니다. 참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의 그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을 듣게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고 계시는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사역이 무엇인지를 또한 깨닫게 하십니다. 참 기드온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드온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용기를 얻고, 그리고 그 싸움을 이기고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공급한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중구모임 성도님들이 모두 기드온같이 일어서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가 포도주틀에서 곡식을 타작한 것처럼, 우리가 이 환경 가운데 할수 있는 일을 하며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그분을 의지해서 용기를 얻고 이 싸움을 이겨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용기를 주시고 복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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