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리스도인의 성품 : 성품이 하는 일 > 2019년 / 글렌 베이커 형제님
히브리서 1장 1-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본체의 형상이라시라는 아름다운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본체의 형상, 형상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말하고 있는, 성품을 말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
주님의 뜻이면 우리는 이 집회 기간 동안에 세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우선 첫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해서, 또한 결혼과 관련되서,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제 먼저 말씀을 본격적으로 교제 드리기 전에 이 집회 기간 동안에 제가 어떻게 이 내용들을 말씀을 드릴지를 '아웃 라인'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보았습니다. 지난 시간과 오늘, '성품'에 대해서 다룰 것이고요.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의 인도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아내의 순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이제 저는 제 자신의 간증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토요일 시간에는 말씀 집회를 먼저 한 시간 갖고요. 그 후에 식사를 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 응답 시간을 갖고자 하는데요. 그때 이러한 교제를 나눌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포 모임에서 만찬 예배 후에 30분간 성도 말씀 교제를 할 때에,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비유'를 통해서 성품에 관련되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열두시부터 한시까지 역시 마포모임의 성도 집회에서 이것을 거역하면서 사람들이 범하는 흔한 실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복음 집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그 마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떻게 그 거역하는 마음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면 우리는 수요일에 대전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대전에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집회에서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마음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목적과 그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나서 12일에는 성경이 '화'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3일에는, 우리가 토요일에 목포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교만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목포중부 모임에서 복음집회와 성도 집회를 갖는데요. 복음 말씀을 전한 후에 성도 말씀에서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집회를 연속적으로, 특별히 성품과 또 자녀 교육과 가정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다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 성품이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될 때까지 그것을 계속해서 하는 생활 양식임을 또한 보게 됩니다. 성품이 무엇입니까? 성품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서도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이 성품이라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또 밖에서 오는 압박에 대해서 견디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 성품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는 그런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러한 성품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게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성품이 여러분이 겪는 시험을 하나님을 향한 간증으로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의 예로 욥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욥은 부유한 자였고, 또한 아름다운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건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 가운데서 그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우리는 욥이 그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은 계소해서 그의 순전함을 지켰던 것입니다. 십지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을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욥을 들어서 사단에게 보이실수 있었으며, 그래서 하나님은 그 욥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의 순전함이 무엇인지를 증명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품이 이 시험 가운데서도 간증을 먼저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두번째로 하나님을 닮은 여러분의 성품은 여러분의 결혼을 준비시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로써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부터 빚어 만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를 꺼내시고 거기서부터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이 결혼을 앞두고 그를 만드는, 그를 형상화 하는, 그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있으라"라고 했을때 빛이 있었던 것처럼, 단지 무에서 아담을 말씀으로 단지 존재 시킬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들여 그 아담과 하와를 만들고 형성해 내시는 것을 보면서 교훈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이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성품들이 우리 가운데서 형성 되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것들에서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성품을 형성하도록 만들고 교육해야 하는 그 책임과 특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하나님을 닮은 성품은 단지 시련 가운데서 간증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또한 이 하나님의 성품은 여러분의 결혼을 준비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이번 시간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성품은 여러분의 인생에 그 아름다운 빛을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성경 전체를 한번 보시게 될때, 여러분은 우리 주님의 그 삶에서 이 하나님의 성품이 그토록 아름답게 드러나는, 그거보다 더 나은 예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그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그 본체의 형상이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본체의 형상, 이 형상이라는 단어를 헬라어에서 번역할 때에 어떻게 번역됐는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헬라어 원어를 음역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영어로 음역하든지, 한국어로 음역하든지 똑같은 단어가 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그 헬라어 단어가 '캐릭터'라는 단어이고 그것이 영어의 캐릭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가셔서 이 헬라어 사전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본체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헬라어 단어가 '캐릭터'라는 것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는 본체의 형상, 바로 그분의 성품이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생은, 그 분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아내된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결혼이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 정말로 우리 주님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 되겠습니까? 참으로 여러분의 남편이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겸손한 분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마 11:29, 킹제임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개역한글).
성경은 우리 주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 그리스도와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결혼생활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어떠한 동정심을 가지고 계셨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으니 목자 없는 양 같이 지치고 널리 흩어졌기 떄문이라"
"주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가엽게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지치고 흩어졌음이라."(마 9:36, 킹제임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개역한글).
우리 주님께서는 참으로 동정심이 깊은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을 그와 같이 주님처럼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또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부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은 어떻겠습니까? 요한일서 4장 19절에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아내들은 그와 같은 남편의 사랑 같운데서 그들의 안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러하신 하늘의 신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 할때, 우리의 얼굴에 미소가 띄워지고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이 그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 결혼 생활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이 남편이 그렇게 용서하는 분이라면 또한 그 분은 어떤 분이겠습니까? 참으로 이러한 용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못박힌 손에서 흘러 나오는 피가 그분이 창조하신 이 땅에 흘려내리고 있을때, 그 분께서는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눅 23:34).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남편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것을 용서한다면 내 아내는 여기서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남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십자가를 둘러싸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무리들을 용서하실 때에 그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먼저 알았습니까? 주님께서 그들이 그 교훈을 배울때까지 나는 용서를 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고 있겠다, 이렇게 하셨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전에, 그 전에 주님께서는 먼저 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들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사람들은 주님 자신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는 그 순간에 주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아직 조롱하고 있을 때에,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하고 있을 때에, 그들을 주님은 먼저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아직 주님을 비웃고 있을때에 주님은 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 그들이 먼저 이것을 배워야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남편은 그의 아내가 그 교훈을 이제 배우기 전에 먼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남편은 즉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남편은 즉시로 그 아내를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아내들에게 또한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로 하여금 "아내들에게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남편보고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라는 이유를 이렇게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히 남편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는 이유는, 남편들이 본성적으로 자신의 아내들을 괴롭게 하는 성향을,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성경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그분 자신을 온전히 통제하셨습니다. 남편들이 이와 같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남편이 그의 결혼 생활을 위해서 희생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되겠습니까?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희생적으로 자신의 신부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분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제가 특별히 이 구절을 들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를 닮은 이 성품은 우리의 삶 가운데, 또한 우리의 결혼 생활 가운데에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특별히 남편 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이제 아내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내들 역시 그들의 성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면, 남편 분들, 그 결혼 생활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1장에서 보이신 것처럼 그분이 그렇게 감사하는 성품을 아내가 닮는다면 우리의 삶은 또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무덤 주위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이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순간에 주님께서 잠깐 멈추시고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참으로 아내들이 남편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남편이 그 직장 가운데서 수고하는 일에 감사한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남편들이 모임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아내들이 감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모임의 가장으로서 남편이 인도하는 그 인도와 그들이 막고 있는 책임에 대해서 아내가 감사한다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어떠한 것이 되겠습니까? 이와 같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 감사하는 성품은 참으로 그들의 결혼 생활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삶의 기쁨을 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충성한 것처럼 그 아내가 그의 남편에게 그런 충성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얼마나 또 아름답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열두살 되었을 때도, 주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여전히 순종적인 자녀로 계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서 그분의 아버지에 대해서 충성됨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아버지 일에 관계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열두살 되던 때에도 그 분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 일에 대해서 그 분은 충성되게 헌신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제자들에게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신 것처럼 그 아내가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결혼 생활은 어떻겠습니까? 이제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 큰 풍랑이 일었고 이제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서 주님에 대한 믿음이 적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을 오래 참으시며 그렇게 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이제 여전히 인내로 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에서는 바로 이 장면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 8:2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 아내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 민감하게 아는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결혼 생활은 또한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서 항상 민감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가르치시고 이제 그들이 주렸을 때에 주님께서는 오천명이 되는 사람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은 여러분의 가정 생활에서, 또한 믿음 생황에서 그것은 아름답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가정에서 부족하다면 그것은 또한 그 영향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이 순종이 집안에서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제 불순종이 그 가정 가운데서 계속 나오게 됩니다. 겸손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교만이 나타나게 됩니다. 서로가 책임감이 없어지게 됩니다.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이 이제 그 삶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이 참됨은 우리에게 참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속이는 것은 우리가 꺼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됨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위선은 우리가 꺼리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우리가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내는 것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빈다. 그리고 덕을 우리가 선호합니다. 그리고 부도덕함은 우리가 꺼리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을 우리가 장려하는 것이고 그리고 악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쁨을 장려하며, 자기 연민은 멀리 해야 됩니다. 그리고 온유함은 장려해야 되는 것이며 나쁘게 강하게 대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네번째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우리 삶 가운데서 무엇을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성품은 우리의 시험 가운데서 그것을 하나님의 간증으로 사용되게끔 만듭니다. 또한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결혼에 잘 준비되게 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성품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게 만듭니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나타날 때에 여러분의 이름이, 여러분의 명예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릴 이 인용구는 특별히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때에 만약에 다른 사람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런 삶을 살아 갈때에,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와 같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 대해서 공격할때에, 그것을 거짓말로 고소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여러분의 성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 거짓 고소를 믿지 않는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품과 우리의 평판은 물론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평판은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품 자체는 여러분이 실제로 누군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요셉에 대한 예를 창세기에서 볼 때에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거짓 고소를 당하고 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셉의 평판은, 요셉의 공적인 간증은, 우리가 쉽게 말하자면 완전히 망한 것이라고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그 애굽의 다른 사람들은 보디발의 아내의 말을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요셉의 평판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것은 요셉이 그의 성품을 잃어버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말씀을 드리자면 보디발의 아내는 단지 요셉의 외적인 것을 파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내적인 것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또한 이것과 관련되서 성경의 다른 한 가지 예는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입니다. 가룟 유다는 외적으로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판은 아주 좋아서 주님꼐서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 라고 말할 때에도, 그 제자 중에 어느 누구도 가룟 유다를 가리키면서 "그건 너일거야." 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그 나쁜 성품은 그의 외적인 것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외적인 평판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안의 성품은 아주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단지 그의 외적인 것을 좋게 보이는데 아주 훌륭했던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접니까?" 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뻔뻔함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의 평판과 여러분의 실제 성품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좋은 예 입니다. 외적으로 그들은 아주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기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놀랍게 영적으로 보이는지를 말하곤 했습니다. 외적으로는 그들의 평판은 굉장히 높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외적인 외모를 꿰뚫어서 그들의 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위선자들'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품과 관련되서 '나는 진실로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인 사이에서의 나 자신에 대해서 그런 모습들로 말하고자 합니다. 성도들 앞에서 앞에서 내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 지를 들어서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는 다른 신자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지고 나의 성품을 규정하고자 하는 그런 유혹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되는 것은 우리의 성품과 우리의 평판 다른 두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는, 여러분의 주위에 아무도 없을때, 그때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이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이 결정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할거야, 라는 순간에 내리는 결정이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창세기로 돌아가서 이것에 대해서 좋은 예인 요셉을 들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그가 유혹을 받을 때에 그 주위에는 다른 누구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먼 나라에 있고요.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멀리 있습니다. 애굽에서 실제적으로 요셉은 그냥 홀로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내 가족들이나,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거라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그 성품이 아름답게 빛나는 그 순간은 이제 그가 결정을 내린 순간에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알수 없는 그때에 그가 여전히 순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 어두움 가운데서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택하였습니다. 이 성품과 우리의 평판이 다르다는 것을 또 한가지 예를 통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또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평판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하지만 성품과 관련되서는 오직 여러분 자신만이 여러분의 성품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평판을 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그의 성품을 건드릴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또한 다른 사람은 여러분의 평판을 망칠 수 있어도 여러분의 성품과 관련되서는 오직 여러분 자신만이 그것을 망칠수 있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망친 것은 요셉의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 안의 성품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성품은 여러분의 평판과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가지 이 성품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성품은 죄로부터 모임을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여리고에 막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리고 성을 둘러 행군하게 됩니다. 그는 하루에 한번씩 성 주위를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번째 날에는 일곱번 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곱번째 날에는 모든 사람이 그 나팔을 불게 됩니다. 그 여리고 성벽은 너무나 강력하게, 견고하게 세워져 있어서 그 안에 있는 집들도 거기에 의해서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나팔 소리에 그 성벽은 모두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성벽에 두께가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칼과 무기로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 성벽이 그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여리고는 그 성벽이 없어졌기 때문에 대적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안의 어떤 물건도 손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한명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간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은 아주 아름다운 바벨론 옷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좌우로 살피고 앞뒤로 살핀 후에 아무도 자기 주의에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바벨론 옷을 취해서 몰래 감췄습니다. 그는 분명히 그의 장막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가지 은 종류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또한 그 은을 자기가 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가 둘러볼 때에 여기에 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본 후에 그는 금을 취해서 감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확인해야 되는 방향 중에 잊어버린 것은 하늘을 보는 것을 잊업렸던 것입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제 상상력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이 가져온 옷을 보여주면서 "여보, 이옷좀 봐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내가 "하나님은 그것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게무슨 일입니까?" 라고 했을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괜찮아, 아무도 안봤어."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을 꺼내 줍니다. 은도 보여주고, 그 아내는 다시 한번 얼굴이 파래져서 하나님이 이것을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다른것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금도 꺼내 보입니다. 만약 이 순간 그 아내는 화를 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아간! 이것은 만지면 안되는 것인데!" 하지만 아간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잘 마무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군인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아이 성을 공격할때에 그것은 작은 성이었고 그것을 쉽게 함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날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몇명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돌아왔을 때에 여호수아는 이게 무슨 일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장막 가운데에 죄가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지은 자가 누구인지를 지목하십니다. 그는 아간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아간이 지은 죄는 단지 아간만 형벌을 받게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성의 전투에서 이미 많은 생명이 잃게 되었습니다. 그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간이 바로 그 죄인이라는 것이 지목 되었을때, 그리고나서도, 아간의 생명과 그 아간의 아내의 생명과 아간의 자녀의 생명 모두가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또한 태워지게 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는 그 결과는 단지 나에게만 나에게만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죄의 결과는 내 아내에게도, 내 자녀에게도 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은 죄는 또한 내가 속한 지역 모임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속한 지역모임에 24시간 속해 있는 것이고, 일주일 내내 속해 있는 것이고, 그리고 365일 내내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아간이 여리고에서 개인적으로 행한 일은 모두 공개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7장 1절 전반부에 단지 아간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가, 심지어 그들이 알지 못하는 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아간에게 진노하시니라' 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구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가 작동하는 방식이빈다. 그 죄라는 것은 실제로 짓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그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다윗이 그가 범죄한 후에 그로 말미암은 한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마음 속에 그 아기가 병들었음으로 인해서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 아기가 병들어 있는 그 모습을 볼 때에 그 마음 속에 큰 슬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아기가 겪고 있는 고통이 바로 나 때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죄 없는 아기가 죄 있는 나로 인해서 대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덴 동산에 이브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는 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때에 그 죄로 말미암은 결과는 단지 이브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범한 죄는 이제 그녀의 자녀와 그녀의 손자와 그리고 그 후대를 거듭해서 지금 2019년 지금까지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단지 어떤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그 죄라는 것은 어떤 본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살아있는 바이러스와 같아서 이제 전염되고 확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아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간의 성품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그 바벨론 옷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취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바벨론 옷을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은을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금도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도 그로 인해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아간이 합당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그의 가족을 보존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모임이 보존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편 25편 21절에서는 정확히 같은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시 25:21).
여기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나를 보호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죄로부터 보호하고 그리고 우리 모임을 그 죄로부터 보호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20장 7절에서도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잠 20:7).
그의 자녀들이 그를 따라서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간에게도 역시 그들의 자녀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간의 나쁜 그 성품이 이제 그 자녀의 미래까지 망친 것입니다. 하지만 도한 잠언 20장 7절에서는 대조적인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는 자기의 순전함 가운데 걷나니 그의 자녀들이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 줄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닮은 성품은 우리 자신을 죄로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미래에 우리 자녀들을 또한 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제 또한 다음번으로 이 성품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성품은 우리의 믿음의 기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여기 이 '현숙'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다른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 잠언 31장에 나와 있는 이 여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하나님을 닮은 그 성품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믿음의 기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남편의 마음이 그녀를 평안히 신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 31:11).
어떻게 그녀를 남편이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녀는 현숙한, 그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그 가정을 출입하면서 남편은 그녀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의 성품이 이제 남편이 그녀를 신뢰할 수 있는 그 기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또 하나의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 결혼의 많은 문제들이 단지 이 문제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남편과 아내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저 상대를, 저 배우자를 도저히 신뢰하지 옷하겠어." 그 관계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이 서로를 신뢰하게끔 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은 단지 결혼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필수적인 그러한 조건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우리가 우리 자녀들로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기대 해야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서 자녀들을 다루지 못하고 분노 가운데서 다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화는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 딱딱 마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성경이 이 화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볼때에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게 될 때에, 자녀들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해야 됩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명령을 듣게 될 때에, 그것은 즉시로 그 명령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습니다. 순종의 세가지 요소는 행하고, 즉시하고, 그리고 웃으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화난 목소리로 단지 그들에게 명령한다면 자녀들은 좋은 태도로 그 명령에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당장 저 쓰레기 치워라!"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저 쓰레기좀 치워 줄래?"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우리 자녀들이 좋은 태도로 그 명령에 순종하게끔 도울 수 있겠습니까? 첫번째는 당연히 아닙니다. 이 첫번째 같이 말한다면 자녀들에게 화를 돋구게 하는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 1절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명령을 합당하게 순종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2절에서는 그에 대해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하고 있스빈다. 이 순종한다는 것과 공경하라는 것은 다른 두가지 것입니다. 이 공경한다는 것은 그 부모가 지금 자신의 옆에 있지 않을 떄에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에서 그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한 순간에 부모가 어떤 한 자녀 바로 옆에 있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기 곁에 없는 환경 가운데서 그 자녀는 이제 다른 영향으로 부모가 원치 않는 다른 것을 하고자 하는 그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가 지금 내 주위에 없을 때에도 부모가 옆에 있었다면 이 일에 대해서 어떤 것을 기뻐하셨을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학교에 갑니다. 이제 그 주위에 친구들이 안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다가와서 그 나쁜 일을 같이 하자고 유혹합니다. 그 어린 자녀의 마음 속에 그와 같은 것을 따라서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그 욕구를 따라서 행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그는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자기 옆에 있지 않은 그 순간에도 그렇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모를 순종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가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명령을 했을 때에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가 지금 옆에 있지 않을 때에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그 공경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를 또한 하나님이 높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오늘 하루 가운데서 주님께서 여러분 옆에서 24시간 같이 계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오늘 하루동안 여러분 바로 옆에 계셨다면 여러분의 오늘 결정했던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 있진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장소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른 장소에 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말을 행했고, 그 말을 행한 방식이 주님이 옆에 계셨다면 아마도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육체로 우리 바로 옆에 서 계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구원을 받으셨다면 그 주님께서 바로 여러분 안에 내주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속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이미 주님이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공경하는지 그분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성경적인 원리는 나를 공경하는 자를 내가 공경하리라,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공경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의 결혼 관계와 또한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필수적일뿐만 아니라 이 공경이라는 것은 모임의 인도자들, 장로들과 또한 모임의 양들, 그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20년간 장로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일은 여러분을 굉장히 혼자서 결정해야 되는 그런 순간으로 몰고 갑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선택을 해야 되는 그런 순간에 직면합니다. 그 모임의 인도자는 성벽의 꼭대기에 앉아서 멀리서 다가오는 그 위험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성벽 꼭대기에 앉아서 바라보게 되는 위험은, 밑에 있는 양들은 때때로 보지 못하는 그러한 것들을 보고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러한 위험들을 보고 이것을 하고 이것을 하지 말고 그리고 이 위험에 준비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상황에서 이제 양들은 하나님이 주신 인도자들의 목소리를 공경하는 가운데서 그들을 따라야 되는 그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에서는 그 양들이 목자들에게 맡겨졌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목자들은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회계해야 되는 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하나님의 성품은 그 모임의 양들을 겸손하게 하고 그 겸손함 가운데 양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인도자들의 인도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게, 순조앟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구절에서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라는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임의 인도자들은 이제 어느날 하나님 앞에 서서 회계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은 알지 못할지 모르는 그러한 선택을 어떻게 행했는지 이제 하나님 앞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임의 인도자는 이제 다른 사람이 주목해서 그를 높여 바라보게 하는 단지 지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엄중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래서 모임의 인도자들은 그 성도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그 인도자들의 목소리를 청중하는 그러한 성도들을 귀하게 보고 그들을 높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양들은 어떻게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습니까? 양들이 이렇게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각각 갖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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