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5일 일요일(요약1) / 전의석 형제님
< 여호수아 3장 >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 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 이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수3:1-17, 개역한글)
요단강을 건너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홍해도 마른 땅으로 행해서 건너갔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홍해를 건너는 것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시 붇잡기 위해서 바로의 정예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왔습니다. 요단강은 물이 위쪽에서 쌓이고, 밑에 있는 물은 흘러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나 홍해는 바다가 갈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는 모세가 지팡이를 쳤을때, 동풍이 불러서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언약궤가 먼저 들어갔을때 내려오는 물이 샇이고 그 밑에 있는 물이 끊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너희는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 큰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대적이나 애굽에 있는 병사들이 쫓아와서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보여주시고 그 앞에서 유숙하게 합니다.
주님을 섬기다보면 저희들의 삶 가운데 때때로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홍해를 하나님께서 가르셔서 바로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지을수 있는 식양을 주시고 짓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원을 받은 기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성막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스라엘과 교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무는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시고, 성막이 아니라 한 나라를 세우시고 성전을 짓게 하시고 그 성전가운데 거하십니다. 또 이스라엘을 만방에 알리시고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게 하십니다. 또한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천년 동안을 의로 통치하시고, 예루살렘의 통치를 인하여 전 세계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받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에게 놀라운 약속이 있고, 그 시발점이 요단강인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싯딤이 나오는데요. 싯딤에서의 큰 실패의 사건이 민수기에 있습니다.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가 발락에게 모압의 여자들로 이스라엘을 꾀게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간증을 해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실패하게 될때, 사람의 생각으로는 다른 사람을 세우시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서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 사람과 정하신 약속을 저버리시지 않습니다. 싯딤에서의 실패를 실패로 두지 않으시고 거기서 헤어나오게 하시고 요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수3:3, 개역한글)
"백성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명령을 받았을때, 이에 대한 이야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약궤를 좇으라고 했는데 그 앞에는 강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명하셨습니다. 설명없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기르다보니까, 때때로 설명보다 어떤 것을 하라고, 하지 말라고 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의구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 말씀에 순종할때에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4절에 상거가 이천규빗 정도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1km 정도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지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언약궤를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사람들의 입장이 다르다보니 생각과 주장들이 다를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보여주시고 주님이 인도하는대로 같이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는 부분을 생각하게 될때, 어떤 사람이 그 언약궤에 가까이 갔을때 그 사람에게 가려져 다른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기 힘들어집니다.
5절 말씀에 여호수아는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홍해에서는 없던 말씀입니다. 저희들이 믿음의 진보를 나타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결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저희들의 의무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스스로를 정결케 해야 하는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널때는 물이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요단강은 위에서는 물이 쌓이고 밑은 말라버렸습니다.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런 초자연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가운데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가 있을때 흐르던 물이 말랐습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본성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본성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운 것이 요단강을 건널때는 멈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믿음의 길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흐르던 것이 멈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그 길 가운데 있고 언약궤로 말미암아 그 흐르는 물이 멈춰져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내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처럼, 저희들의 본성을 멈출수 있고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널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수3:9, 개역한글)
여기 첫번째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수3:10,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실뿐 아니라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9절처럼, 때로는 말씀만 있을때가 있습니다. 저희들의 믿음이 연약함으로 인해서 그냥 말씀만 읽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운데 계시사, 그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요단을 건너서 있는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호수아 4장을 보고자 하는데요. 각 지파마다 하나의 동을 들어 탑을 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저희는 떡과 잔을 놓고 주님을 기념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에 비하면, 상 위에 놓인 떡과 잔은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떡과 잔을 바라보면서 큰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통해서 저희가 주님을 잊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가나안 땅에는 많은 족속들이 나옵니다. 특별히 헷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나옵니다. 여부스 족속은 성전의 터를 다윗에게 파는 역할을 하게 되고요. 헷 족속은, 우리아라는 사람이 헷 족속이었습니다. 이게 왜 큰 축복이 되냐면, 이들은 모두 다 진멸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연약하여 다 하지 못했지만, 이 족속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돕게 하시고 다윗의 용사 중에 그 이름을 올리게 하십니다.
저희들이 다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더해지게 하셨습니다.
앞 장에서는 라합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룻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오게 됩니다.
저희들 가운데 때떄로 연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용기를 주시고, 요단 앞에서 요단을 건너게 하시는 것을 볼때에 저희들에게 똑같이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에 감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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