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일 일요일(요약1) / 전의석 형제님
< 모임간의 교제, 영접 >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행15:1-41, 개역한글)
15장에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가르침이 바리새파 유대인들로부터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교회에 다툼과 변론이 없어야 하지만 일어났습니다. 2절에서도 일어났고, 35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이 후의 바나바의 행적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중에 누가 옳았는가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9절에서도 심한 다툼과 변론이 있었습니다.
모임에서도 이런 다툼과 변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순종한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로 갈라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때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기다리고 주님의 말씀이 드러날때까지 참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사랑의 시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유대 형제들이 와서 다툼과 변론이 무엇으로 이어지느냐면,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통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가 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행15:2-3, 개역한글)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그 중에 몇사람을 보냈고요.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았습니다.
전송을 받을 때는, 우리가 어떤 형제 자매님들을 천거하는 것은 장로 형제님들이 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전송을 받는 것입니다. 저희가 어디를 가거나 어디를 보내거나 하는 것은, 물론 장로 형제님들께서 최종적으로 싸인을 하시지만, 결국에는 교회가 그 형제 자매님들을 다른 모임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접하는 것도 장로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요. 물론 장로 형제님들이 어떤 연유로 모임을 방문하게 되었고, 어떤 상황 가운데 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일 처음 교회로부터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거서를 보면 "대전중구 모임을 '대신하여'" 라는 구절이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에 꼭 편지를 통해서만 천거를 하고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 천거할수는 없느냐는 질문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영접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에, 다른 어떤 모임에서는 외부에서 다른 형제 자매님들이 오신다면 소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떡과 잔을 뗄 때가 되어서야 천거서를 읽고 함께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오시는 분들이 조용히 뒷 자리에 가 앉아 있다가 장로형제님께 늦게서야 천거서를 건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영접을 하고 함께 교제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형제 자매님들이 오셨을때, 먼저 교회에 말하고 교회가 영접하고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외국 형제님들 가운데서 그런 교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젊은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구원받았다고 하면 바로 침례를 받고 떡과 잔에 참여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양 모임에서는 구원받고, 구원을 시인하고, 침례를 받고 교회안에 들어오기 전에 교제를 합니다. 이 모임 가운데 주님이 계시는구나를 인정하고, 지역모임의 가르침에 순종하겠다는 것을 확인하고 성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 가운데 있다고 장로 형제님들께서 모임에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영접하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자매님이 장로 형제님께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청년이 그 동네에 여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영접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장로 형제님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합당한 삶과 태도를 해야만 교회에 영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행15:25, 개역한글)
말씀대로 하지 않고, 말씀대로 일치되지 않는대로 한다면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행15:7, 개역한글)
때로는 모임 안에 다툼이 있을때에 우리가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다툼을 일부러 할 필요는 없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대로 그분들을 교정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순종할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 가운데서 일어나서 말합니다. 서신서나 여러가지 성경을 통해서 형제님들이 말씀을 읽을때나 기도할때나 설교할 떄에 일어서서 할 필요가 있다고 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모습은 저희들에게 좋은 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15:12, 개역한글)
2절 말씀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바울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바나바입니다. 12절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입니다. 바나바가 먼저 나옵니다. 이방인의 교회에서는 바울이 주도적으로 교제를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유대 교회에서는 바나바가 인정을 먼저 받고 주도적으로 교제를 한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바울이 성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바울이 더 신령하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조력하는 것은 누군가가 더 우세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은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선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행15:25, 개역한글)
교회는 일치가결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는 제 마음 가운데 그냥 장로 형제님이 내리는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 형제님들의 결정과 고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결정을 지지하고 또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른 형제님이 강단에 올라가 복음을 전할때에 저는 안심하고 그 형제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 증거는 그 형제님의 복음 증거가 아니라 그 모임의 복음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복음 증거시간 입니다.
기도 또한 한 형제님의 기도가 아니라 지역모임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라는 총회가 있고 그 밑에 안디옥이라는 지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분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어떤 사람이 있었고 안디옥 모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문제였기 때문에 서로 사람을 보내고 받은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행15:29, 개역한글)
예루살렘 교회에서 정한것을 안디옥 교회에 청하고 권한 것입니다. 스스로 삼가고 평안함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아주 훌륭하신 형제님로 인해서 모임의 실행이 결정되고 진행되어질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위험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안디옥 교회에 큰 도움이 되었고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데 큰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기억한다면 지역모임의 모든 행함과 실행에 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지역모임에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것을 교제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하는것이 교회 안에서 아름다움이 될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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