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모 형제님/솔로몬의 생애

< 솔로몬의 생애 05 _솔로몬의 정부 >

박이레 2021. 7. 19. 20:57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솔로몬의 생애 05 _솔로몬의 정부 >

 

1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3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장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5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6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왕상4:1-6, 개역한글)

 

주님께서 읽은 말씀에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저희들은 솔로몬이 즉위하고 초기에 그가 그의 나라를 어떻게 더 견고히 하는일에 주님앞에 자기 마음을 드렸는가를 보았습니다.

기브온에서 그의 꿈 속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라고 이야기 할때, 그는 지혜를 선택 했습니다.

그 선택을 하게 될때 그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배경은 그의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할 것인가 대해서 그가 골몰한 것입니다.

 

다윗이 죽을때에 유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왕상2:1-2, 개역한글)

 

다윗이 유언에서 제일 첫번째 강조한 말씀은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대장부가 된다는 것은 남자답게 행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이 말은 책임을 이행한다는 말합니다. 책임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가정을 이끌도록 대행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내는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그 일을 하게 될때 가정에서 남편은 전체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집합적으로 모임에서 형제들이 갖게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을때 왕으로서 국민을 다스려야 합니다.

국민을 다스린다는 것은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자기 자신이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그는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대행권위를 이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권위를 백성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3장에서 지혜를 선택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고 사람들 위에 그 지혜를 가지고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 지혜를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그렇게 주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4장에 왔습니다. 어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라가 서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분별력과 가치관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요함이 필요합니다. 번영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4장의 첫 부분에서 성령님께서는 솔로몬의 왕국에 있는 그의 장관들에 관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 시대에, 사무엘하 8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열두지파의 인정을 받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때가 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때 다스리자마자 장관들을 세운것을 보게 됩니다.

6개 부처에서 장관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도주하고 나서 전투에 승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환궁하게 된 이후에 그는 내각을 다시 조성 합니다. 그때 일곱부처와 장관들을 세우게 됩니다.

열왕기상 4장 말씀을 보면 그의 왕국을 세우게 될때 아홉개 부처에 열한 사람의 장관들을 세웁니다.

 

그것을 보면 다윗때보다 조금 큰 정부 입니다.

첫째로 솔로몬이 왕입니다. 많은 신하들이 있지만 이 정부에서는 솔로몬이 모든일에 대한 결정의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국민 앞에서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하들이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 뒤에도 제사장이 나오는데, 여기의 제사장이라고 하는것은 수상이나 하는 의미로 이해하면 더 낫겠습니다.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왕상4:2, 개역한글)

 

사독의 아들 아사랴가 수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두번째 부처는 서기관입니다. 서기관이라고 하는것은 왕이 국민들에게 편지를 쓰게 될때, 외국에 편지를 쓰게 될때 이것은 외교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편지들입니다. 사사로운 편지가 아닙니다.

왕이 이와같은것을 쓰게 될때 그것을 규격에 맞춰 잘 쓸 뿐만 아니라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 이 사람들이 왕 옆에서 조언하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을 두사람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왕상4:3, 개역한글)

 

엘리호렙과 아히야 입니다.

두 사람이 담당한다고 하는것은 대단히 해야 할 분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외국에서 오는 수많은 편지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번역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왕에게 제출하는 일들도 합니다.

사실 상 서기관은 왕의 사사로운 비서 입니다. 그의 옆에서 왕을 돕는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때는 아마 왕이 그 내용을 부르면 그가 써서 잘 정리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공적으로 편지를 보내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관이 있습니다. 사관은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 입니다.

여호사밧은 사실 다윗 때에도 사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의 부친 때에도 왕을 섬겼고 계속해서 지금도 왕을 섬기고 있습니다.

상당히 베태랑입니다. 이 사관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왕국에서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모든 국가에서 한 일입니다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이 일에 있어서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한다고 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다음 군대장관이 나옵니다. 그는 브나야 입니다.

그는 요압을 쳐서 처형한 사람입니다. 전의 군대장관을 쳐서 죽인 사람입니다.

물론 왕의 명을 따라서 그렇게 했고 그는 용맹을 보였던 사람 입니다.

사무엘하 23장을 보면 그는 눈 올때에 사자를 죽인 사람입니다. 그가 군대장관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그 다음 제사장이 있습니다. 이 제사장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당시는 아직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어제 말씀드린대로 기브온에는 회막이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휘장에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사실 궤와 회막은 함께 있었던 것인데 지금 분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통합이 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양쪽에서 제사장들이 그 일을 해야되는 그런 상황이었으리라 봅니다.

 

아비아달은 우리가 알기로 아도니야가 죽임을 당한 이후에 그는 파직이 되고 자기 고향 아나돗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일을 했는지, 아니면 초기에 이 두사람을 임명 했는데 그 후에 아비아달이 떠났지만 이 두사람을 초기에 임명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째든, 처음에 임명된 것은 이 두사람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다음 관리장이 있습니다.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왕상4:5, 개역한글)

 

이는 나단의 아들 아사랴다라고 말씀 합니다.

나단은 다윗이 범죄했을때 그에게 가서 그를 책망한 선지자 입니다. 또 성전 문제에 대해서도 나단이 와서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온 나단은 그 선지자 나단이 아니고 아마도 솔로몬의 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에 나온 주님의 족보를 보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나단까지 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솔로몬의 형 입니다.

 

7-19절 말씀을 보면 왕궁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이 관리장이 책임을 맏습니다.

일년 열두달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열두지구로 나눠서 그 지구마다 일년에 한번씩 거기서 나오는 소출을 가지고 왕에게 공급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을 한 사람을 가리켜서 관장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각기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왕상4:7, 개역한글)

 

관장이라고 하는 말은 열두지구의 각 지구마다의 책임자 입니다.

그래서 그 지구 안에서 거두어 들이는 모든 수확, 곡식이라든지 가축이라든지 먹을 것들, 재목을 공급해서 왕국이 공급을 받을수 있도록 하는일을 관장이 했습니다.

이 열두 관장 위에서 감독하는 사람을 관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리장은 대단히 중요 합니다.

관리장의 역할은 왕궁안에 음식이 조리되는 것과 재료의 공급을 하는 관장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대신이 있습니다. 그는 또 나단의 아들입니다.

나단의 두 아들이 솔로몬 정부의 두 부처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영예로운 일입니다.

나단의 두 아들이 이 일을 감당 했습니다. 나단의 아들 사붓이 이 일을 감당 했습니다. 그는 대신이 되었는데 특별히 그는 왕의 벗 입니다. 왕의 친구 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그가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주하게 되기 전까지 항상 다윗의 옆에서 카운슬 했던 모사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히도벨입니다. 그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 입니다.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서 아히도벨은 대단히 격노했고 다윗을 증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압살롬의 편에 들었고 압살롬에게 카운슬 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악함에 대해서 분개하면서 압살롬에게 조언을 하게 될때, 후궁들을 백주에 취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다윗에게 보복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모사는 그런 보복적인 모사였고 사실상 그의 모사는 실제적으로 다윗과 압살롬이 만약 전쟁을 한다면 그 모사는 사실상 효과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모사를 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때 아히도벨의 모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했던 사람이 누구 입니까?

 

그는 다윗의 친구 후새였습니다.

그는 또 다른 모사 였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나를 따라오지 말고 예루살렘에 가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 있으면서 그럴듯한 카운슬을 압살롬에게 전해 줍니다. 그렇게 했을때,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카운슬을 처음에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결국 후새의 카운슬을 그들이 받아들입니다.

그렇게해서 다윗이 그날 요단강을 급히 건너게 되고 전략적으로 다윗이 우위에 서도록 만드는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윗의 친구이며 다윗의 카운슬러 였던 후새 입니다.

 

다윗에게는 벗인 후새가 있었다면 솔로몬에게는 나단의 아들 사붓이라는 사람이 친구이면서 대신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모사를 많이 두지 않았습니까? 모사는 카운슬러 입니다.

특히 벗으로서 모사가 되어 카운슬을 한다고 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에게 가서 그 재반사를 잘 이해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이야기 할때 가장 바른 정책을 어떻게 집행해야 할점에 대해서 카운슬 하는것이 모사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냥 장관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친구 입니다.

가장 가까워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 입니다.

모사라고 하는것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카운슬을 하게 될때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신뢰와, 또 친구이기 때문에 정이 있습니다.

신뢰를 토대로 한 정이 있습니다. 거기에 바른 조언을 한다고 하는것은 대단히 중요 합니다.

솔로몬은 이미 3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지혜를 받았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솔로몬처럼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말씀 합니다.

그 말씀은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에게 왜 카운슬러가 필요 합니까? 자기가 다 결정하면 되는일이 아닙니까?

 

그런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뭐라고 말했나요?

그는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그의 책 잠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1:5, 개역한글)

 

"내가 지혜롭기 때문에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우준한 사람 입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식을 더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9:9, 개역한글)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교훈을 더하면 그는 더욱 더 지혜로와 집니다.

다시말해 솔로몬이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는 지혜에 있어서 완벽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지혜에 있어서 더욱 더 증진하고 개발하고 전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더욱 더 많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더욱 더 그것을 받아들이고 개발하고 증진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혼자 지혜롭다고 해서 모든 일을 자기 생각으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지혜로운 사람, 신뢰할수 있는 사람, 벗이 있다면 그 사람의 조언을 통해서 모사를 통해서 더욱 더 내가 지혜롭게 되고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왕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많은 장관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각 부처에서 자기들의 일을 하고 그것을 보고하고 설명하고 또 어쩌면 솔로몬도 거기에 대해서 조언을 하고 그랬습니다.

이와같은 대화를 통해서 나라를 꾸려 나가게 될때, 가장 최선의 정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라를 부요하게 하고 백성들의 모든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솔로몬에게는 그의 내각들이, 장관들이 필요 했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독단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혼자 모든것을 주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대화하는 사람 입니다.

그러나 의미없는 대화가 아니라 정말로 의미있는 대화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사람 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어린아이를 통해서 배운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와같은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잠언에서 그러한 말씀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그 다음 관리를 보겠습니다.

궁내대신이 있습니다. 궁내대신이라고 하는것은 다윗왕가 안에서 되어지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말 입니다.

조금 전 관장이라는 사람들이 열두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달씩 자기 지역에서 나는 모든 식물들을 왕실에 공급 했습니다.

그런 왕실의 공급 물품이 들어오면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까, 음식으로 어떻게 만들까, 부엌의 일이 있습니다.

부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엌에서 먹을 것이 나오기 때문 입니다.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음식을 먹어야 그 왕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임에 적용해 보십시요.

모임의 성도들이 계속해서 음식을 먹고 있나요? 우리는 모두가 다 각각의 책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각각의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왕의 나라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서 일하는 수많은 일꾼들으 다 먹여서 그들이 잘 일할 수 있도록 물자들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 물자들을 잘 요리하는 것입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하는 것입니다.

 

궁내대신은 요리와, 부엌을 관리 합니다.

그 부엌안의 쉐프들을 관장 합니다. 요리들이 제대로 나와야 먹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궁내대신이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모임안에 영적인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잘 성도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요리하고 맛있게 먹을수 있도록 삶고 맛있도록 만들수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말씀들을 읽고 시간을 들여 묵상하고 거기에 있는 내용들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거기에 있는 내용들을 전달하게 될때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들을 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 서로들 말씀을 교제하게 될때 나누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먹을수 있도록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열왕기상 4장의 중요한 이슈 입니다.

그의 역할이 궁내대신 입니다.

 

그 다음 감역관이 있습니다.

감역관은 아도니람 입니다. 그는 다윗때도 그 일을 했습니다. 솔로몬 때에도 감역관의 일을 합니다.

감역관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을 세우거나 궁전, 궁들을 세울때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성전과 궁을 세울때는 엄청난 재물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재물이 있다 해도 수많은 기술자들과 노동이 필요 합니다.

그 모든 일들은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이와같은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을 다 징집해서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백성들에게 감역관은 그렇게 인기있는 부처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아도니람은 나중에 르호보암때에 백성이 반기를 들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게 인기없는 직분이었습니다.

 

여기 보시기 바랍니다.

인기있는 직분이 있고 인기 없는 직분이 있습니다. 인기없는 직분에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면 성전 건축은 어떻게 되고 그의 궁전 건축은 어떻게 될까요?

그 직책의 책임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아홉부처를 보게 될때 솔로몬의 다 다른 부처에서 일하는 일들이 다 다양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모임을 보게 될때 어떻습니까? 솔로몬의 행정부를 보면 그것은 물론 구약에 있었던 왕국의 행정부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늘날 이 시대, 우리 모임에 적용 한다면 모임 안에 인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왕이 있고 장관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국민들을 이끌어 갈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권이 큽니다. 그 사람들은 국가에서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많은 급료를 받았겠지요.

왕에게 총애를 받았겠지요. 또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장관들이 임명되게 될때, 참된 장관이라면 자기 부처에서 자기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가 왕에게 제출할수 있는 정책과 그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이 나라에서 잘 이뤄져 갈까를 궁리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왕이 전체적으로 일을 이끌어 나가게 될때, 각 부처에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해서 책임이 있게 왕에게 조언하고 설득하고 그 정책을 이끌어 나가고 책임을 이수하게 될때 이 나라는 정상적으로 잘 가동이 될 것입니다.

모임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임의 인도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장로들이 영적인 모든 것들을 인도 합니다. 그 외에도 집사들이 인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적인 집사들은 말씀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모임의 집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 은사는 다양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들이 활용이 되게 될때 성도들을 세웁니다. 그렇다면 그 은사를 활용하게 될때, 성도를 세우는 일에 모임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는가요?

 

모임에 대에서 몇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인도력에 있어서 지혜로움은 뭘까요? 바람직하고 건전한 인도력은 무엇일까요?

인도력의 성품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그 말입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잠11:11, 개역한글)

 

성읍이 진흥할수도 있고 무너질수도 있다는 것을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서 말씀 했습니다.

언제 성읍이 진흥 합니까? 그것은 정직한 자의 축원 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가 입을 벌리면 성읍은 무너 진다고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인도력을 발휘하게 될때, 인도자의 자격이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성품에 있어서 곧바라야 합니다. 인도자는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인도자는 균형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울어지거나 한쪽에 기울어지거나 이런것은 대단히 성도들에게 해가 되고 모임에게 해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가지 말씀을 우리는 잘 알아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자의 성품 중에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친절이 있어야 합니다. 그와같은 마음이 그 사람의 성품속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잔인하거나 눈물을 모으는 사람, 아픈 마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인도자가 되겠습니까?

또한 그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와같은 성품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덕입니다.

 

성품이라는 말이 있고 명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품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속의 무엇인가를 성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명성이라고 하는것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성이 높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명성은 하나님 보기에 합당할수 있고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거나 사람들에게도 합당하게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와같은 것은 첫째로 인도력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이런것을 얻을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님을 배워가게 될때,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될때 가능한 것입니다.

인도자는 어떤일을 추진할때 잘하기만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추진할때 그것을 잘해도 덕이 없어서 그 일을 다 망칠수도 있습니다.

만들어 놓은 일이 다 무너져가고 쓰러져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 저희들이 읽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읍이 언제 진흥 하는가요? 정직한 자의 축원을 통해서 성읍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이 왜 위대한가요?

왜냐하면 주님의 인격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분의 사역이 위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역은 우리의 인격을 넘어갈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의 분량 이상으로 우리가 사역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역 이전에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 가운데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인도력, 그것은 제일 첫번째로 성품 입니다.

 

우리는 룻기의 보아스를 압니다.

룻기 2장 말씀에서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고 말씀 합니다.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 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막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부에 있어서 막강한 자, 우리나라 말로 부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자 입니다. 그리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영향력이 있고 어떻게 막강한 사람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보아스를 잘 살펴보면 그는 주님의 그림자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갖는 평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는 유력한 것 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신뢰할만한 것입니다.

모든면에서 우리가 다 통틀어서 생각해 볼때 그는 도덕적인 면에서 부자 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재물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 부자 였습니다.

 

룻이 시모의 명을 따라서 타작마당에 가잖아요?

대단히 민감한 분야 입니다. 그 순간에 가서 친족 구속자로서 그가 자기 가문의 잃어버린 것들을 다 구속해 주도록 찾아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때였습니다.

만일 보아스가 이와같은 성품에 있어서나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 곧바르고 정직하고 덕이 있고 도덕적인 부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룻으로 하여금 대단히 당황스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룻이 아침에 떠나갈때,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쭉 이야기 하는것을 보면 그가 룻과 초면에 있어서의 대화와 모든 처신은 보아스의 성품, 도덕적인 곧바름, 정직함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인도자는 성품에 있어서 인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둘째, 모임에서 인도자는 성도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무슨 상황에 있는가 하는 처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말이 있습니다.

'돌보는 척은 할수 있고 듣는 척은 할수 있지만 그 현장에 가서 있는 척은 할수 없다.'

다시 말해 모임의 인도자는 성도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여러가지 어려움들, 슬픔들, 문제들, 해결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일들에 대해서 잘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아니하고 먼저 판단하거나 먼저 결론 내리는 것은 대답히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는 해결할수 없습니다.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벌써 내가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대단히 성급한 것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 성도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듣고 분석하고 해결을 위해서 주님의 지혜를 그는 구하고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계속해서 얻고 나가야 합니다.

 

세번째, 인도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의 영적인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29:18, 개역한글)

 

참으로 유명한 말씀인데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합니다. 이것을 영어 표현으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라고 합니다.

묵시는 살리는 것입니다. 묵시라고 하는것은 앞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앞을 내다보도록 만들어 줍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면 앞을 예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을 예견할 수 없다면 대단히 위태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게 될때, 시야거리는 대단히 중요 합니다.

캐나다에 가끔 눈 폭풍이 옵니다.

눈 폭풍 속으로 들어가면 시야거리가 어떤때는 1m~2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와같은 상황 속에서는 절대로 자동차 스피드를 낼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스피드를 내기 위해서는 시야가 적어도 수십미터, 백미터는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시야를 봐야만 내가 바른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핸들을 잡고 자동차 속도를 조절하고 편안하게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습니다. 시야는 대단히 중요 합니다.

인생에서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앞을 내다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 시야거리를 만들어 주는것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묵시 입니다.

 

묵시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전망 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가 있다면 미래에 대해서 내가 예측하고 미래에 어떤 일들이 가능 하도록 우리는 주님 앞에서 생각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면 대단히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잠언 말씀은 인도자 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시가 없으면 모든 백성이 망하는 것입니다.

인도자는 묵시를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도자만 앞을 내다보는것이 아니라 모임의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토대로 앞을 내다보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향후 5년 후에, 지금 5살 먹은 아이가 10살이 됩니다. 10살 먹은 아이는 15살이 되고 15살 먹은 아이는 20살이 됩니다.

향후 5년은 그렇습니다. 향후 10년은 두배 입니다. 그와같은 시간안에 어떤일이 벌어져야 하며 무슨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 나이를 먹어가게 될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묵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될때 앞을 내다보고 아름다운 전망에 대해서 우리는 소원하고 그것을 가능토록 지금 뭔가를 해야 합니다.

 

지금하지 않으면 5년 후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5년 후에 될 일을 내가 내다봐야 그 일을 지금 내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모든일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임감에 의해서 우리가 적당히 말씀을 읽어 간다면 우리가 성경 말씀의 어떤 부분은 우리의 일생에서 한번도 읽어보지 않고 그 생이 끝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생이 끝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비상한 각오를 통해서 나 자신을 주님앞에 드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기간을 기회를 사용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인도자와 함께 모든 생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 인도자는 다른 성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 잠재력을 보아야 할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구세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 땅에 오셔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목수 이셨습니다. 주님은 목수 이십니다. 그런데 목수이신 주님께서 어부에게 여기에다가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부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목수가 여기에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했을때에 말로할수 없는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사실상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목수 입니다. 목수가 하는 많은 일이 있습니다.

 

목수가 하는 일들 중에는 길가에 있는 쓰이지 못하는 나무 조가리들, 버려진 나무 재목들을 딱 써야 할곳을 아는 것입니다.

곧, 목수는 잠재력을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입니다.

 

미국에서 무슨 볼트나 너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파는곳에 가서 사려면 상당히 비싼 가격에 사야 합니다. 단순히 상품이라는 이유로 대단히 비쌉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분은 항상 땅만 보고 다닙니다.

볼트, 너트 그런 것들을 다 주워 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은 쓰레기 입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 그것은 대단히 고귀한 가치가 있는 재료들 입니다. 그것을 다 모아 놓으면 집을 고치는데 다 쓰이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다 들어가고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눈에는 대단히 이 사람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떤 학생이 아무에게도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도 귀히 여기지 않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너는 노래하는데 대단히 소질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는 처음 듣고 밤에 잠이 안와서 성인이 될때까지 그 말이 항상 머리속에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너는 어떤 소질이 있다." 라고 말해준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쩌면 장난꾸러기 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아 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생님이 그에게 "너는 어떤 소질이 있다."라고 얘기해 줬을때 그 아이는 그것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중에 가수가 되었습니다.  

  

모든 구원받은 사람은 은사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것을 어떻게 쓸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마음속에 동기가 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싹 틀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잠재력을 깨달아 아는 인도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내각을 이루게 될때, 중요한 사람을 두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입니다. 책임감이 있다는 것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할때,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 정책을 펴게 될때 반드시 그 사람은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그 사람들을 기용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대가로서 내가 모든것을 다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도움을 그는 청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지혜 였습니다. 인도자로서 이와같은 시선, 볼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요청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임 안에서 영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 합니다.

 

인도자에게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파숫꾼이 무엇을 합니까? 파수꾼은 다른 사람들이 다 잘때 자지 않고 성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자지 않고 누가 오는지 보는 것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왜 침몰 했습니까? 그 당시에는 많은 기구들이 발달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봐야 했습니다.

저쪽에 빙산이 오고 있는가를 똑바로 보고 미리 알려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에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파수꾼이 파수를 제대로 못했다는 말입니다.

 

모임안의 인도자는 파수꾼 입니다.

모임안의 인도자는 문제에 대한 경성함이 있는, 깨어서 살펴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인도자 입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잠27:23, 개역한글)

 

양떼와 소떼의 상태, 형편을 마음을 두고 지속적으로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장로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떠나면 밖에서 이리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양들을 아끼지 않고 해칠 것입니다. 그리고 안에서는 자기를 좇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어그러진 말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로들은 밖에서, 그리고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와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 합니다.

경성해야 합니다. 경성하게 될때 우리가 마음에 잘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성을 균형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성을 균형있게 하지 못하면 피해망상의 경성이 있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문제가 됩니다.

 

피해망상에 걸려서 모든것이 문제가 되고 모든것이 골치거리라고 생각하면 인도자로서는 피곤 합니다.

거꾸로 경성하다 지쳐 버리면 모든것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고 돌보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게 될수 있습니다. 될대로 되라는 그러한 마음, 이 모든것은 다 극단 입니다.

그런 것이 아닌 경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요?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밖에서 들어오는 원수가 있는가를 잘 봐야 합니다.

그리고 안에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분열 시키는 말을 하고 자기를 좇게하려는 사람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인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드러나고 어필하는것에 골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참 모임안에 해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임에서 주님이 높임을 받는 모든일에 우리가 피차 합심해서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주님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원수에 대해서 경계해야 할 뿐 아니라 모임 안에서 자기를 따르게하기 위해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낙심하는 사람이 있는가도 살펴야 합니다.

또 조그만한 일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그와같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 그런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영혼들에 대해서 깨어서 잘 살펴야 합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잘 세우고 두려움을 버리고 사랑 안에서 담대함을 얻도록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그 일을 해야 할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각기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왕상4:7, 개역한글)

 

이스라엘을 열두지구로 나누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때, 제비 뽑아 각 지파마다 땅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기업으로 준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따라서 각 지파마다 한 지파가 한달 먹을 식량에 대해서 그 땅에서 준비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경을 각 지파의 경계선을 따라서 하지 않고 여러가지 요인을 따라서 골고루 나눴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때부터 이스라엘 안에 각 지파들간에 경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사시대 때에 사사 기드온이 있습니다. 그는 므낫세 지파 사람 입니다.

그가 혁혁한 공을 세우고  미디안을 격파하고 백성을 구원하고 오니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전쟁할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와서는 "왜 우리를 초청하지 않았느냐?" 라고 하며 싸웁니다.

다시 말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다른지파보다 자기가 낫다고 생각하는 지파 입니다.

유다지파는 또 거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파 입니다. 유다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항상 우열을 다투는 지파였습니다.

 

그 지파들 중에 어떤 지파는 작은 지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것을 그대로 내 버려 둔다면 어떤 지파는 조달하는 문제에 있어서 편하고 어떤지파는 힘들게 됩니다.

어떤 지파는 땅이 비옥 하지만 어떤 지파는 땅이 비옥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파는 산악지대로 어떤 지파는 해안가였고 기후대도 다 달랐습니다. 이런것에 있어서 그 기업을 주기 위해서 지파의 경계를 따라서 그 땅 안에서 얻는 곡물을 왕에게 조달하는 일을 하게 한다면 상당히 불합리한 일이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솔로몬은 지혜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3장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 지혜를 모든일에 그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행정부를 건설하는 일에도 그는 지혜를 썼습니다. 그리고 조달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그는 지혜를 씁니다.  

그는 백성들 가운데 경쟁심으로 나타나는 부조리를 막기 위해서 자기가 따로 지구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구는 몇지파가 함께 협동해야 했습니다. 다른곳은 매우 작은 땅이고 어떤 곳은 큰 땅이고 했습니다.

그 작은곳은 대단히 비옥한 곳입니다. 땅이 큰 곳은 덜 비옥하기 때문에 더 많은 땅이 있어야 그만큼 물자를 공급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것들은 솔로몬이 자기 지혜를 사용하면서 일했다는 증거 입니다.

 

..벤아비나답이니 저는 솔로몬의 딸 다밧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왕상4:11, 개역한글)

 

이 조달 관장은 솔로몬의 사위 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솔로몬의 사위가 있습니다.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니 저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왕상4:15, 개역한글)

 

관장들 중에 두명이 솔로몬의 사위 였습니다.

이 문제를 가만히 보면 족벌 정치나 친척들끼리 무언가를 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친척들끼리 끼리끼리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솔로몬이 자기 친척이기에 기용한 것이라면 솔로몬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친척끼리 했다고해서 무조건 족벌정치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것도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인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위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친척이 행한다 해도 그것에 대해서 모든 성도들이 그것을 주님 앞에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인도력이 합당하다고 하는 것을 주님께서 인증해 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은 족벌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지혜를 가지고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공과 사를 잘 구불할 줄 모르는 행동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결정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두 사위를 기용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이 자기의 자식들 중이나 친척들 중에서 이와같은 사람들을 기용하는구나'라고 생각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만큼 제대로 일을 했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또 저희(열두관장)가 각기 직무를 따라 말과 준마에게 먹일 보리와 꼴을 그 말의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왕상4:28, 개역한글)

 

그 관장들은 각각 자기 달에 솔로몬왕과 왕의 상에 참예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왕상4:27, 개역한글)

 

열두 관장들이 하는 일들이 어떻게 집행 되었습니까? 그들은 영락없이 자기 달이면 자기 달의 책임을 계속해서 책임감 있게 공급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왕의 친척이든 아니든 모두가 다 맡은 일들에 대해서 열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의 사위라 할찌라도 그것은 여기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 사람, 관장들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재료를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의 일일분 식물이 무엇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2 솔로몬의 일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석이요

23 살찐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찐 새들이었더라

(왕상4:22-23, 개역한글)

 

하루에 이만큼이라고 하면 여기에 삼십을 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달입니다.

그것을 관장들이 매달 자기의 지정된 달에 그와같은 분량을 제출한 것입니다. 빈틈없이 영락없이 딱 그 분량을 왕에게 공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모임에 적용해 보십시요. 모임은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룻기로 하면 모임은 베들레햄, 빵집 입니다. 모임은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4장 말씀을 보면 모임은 부엌이라고 말씀 할수 있습니다.

 

부엌에서 수많은 음식들이 조리가 되서 솔로몬의 상위에 나오는 것입니다.

상이 가득차서 아주 풍성한 것입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풍성한가요?

일년 열두달 한달도 빠짐없이 음식이 있습니까? 어땐때는 음식이 있다가 또 어떤달은 음식이 없어서 쫄쫄 굶다가 어떤때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습니까?

이런것이 아니고 솔로몬의 상은 일년 열두달 빠짐없이 음식이 조달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 관장들이 일년 열두달 각 한달씩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달하도록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일년 열두달을 한달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달치를 항상 공급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3월달을 맡은 관장이라면 일년을 계속 일하면서 전부 저축해 놓았다가 이 분량만큼 3월이 되면 왕실에 공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같은 열 한사람이 똑같이 일한다면 일년 내내 이와같은 분량이 계속해서 공급 될 것입니다.

여기 음식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일 인분은 밀가루가 있습니다.

그리고 굵은 밀가루가 있습니다. 이것은 곡식 입니다.

 

그 다음은 모두가 다 짐승입니다. 음식을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가루고 하나는 짐승 입니다.

주님에 관한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만, 구약에 다섯가지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와 화목제와 속건제와 속죄제 이 모든것은 전부 주님을 말씀 합니다.

그 제사들은 짐승을 잡아서 피 흘려 드리는 제사 입니다. 그러나 소제는 가루 입니다. 고운 가루입니다.

거기에 유향을 넣고 기름을 붓고 화덕에 구워 만드는 것입니다. 소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완전한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기쁨을 드렸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희생제사가 있습니다.

번제는 우리 주님께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헌신하여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화목제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이루게 한 주님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속건제와 속죄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속죄제는 우리 죄 때문에, 속건제라고 하는 것은 죄의 값 때문에 무언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건제는 내가 주님의 성물을 도적질 했다면 그 값의 1/5을 더해서 내야 합니다. 그리고 희생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성물을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 인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해야 하는것 이상으로 주님께서는 다 지불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만 지불한 것만이 아니라 죄가 끼치는 악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다 지불 하셨습니다.

 

이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 그리스도 이십니다. 주님의 생애와 죽음 입니다.

죽음은 주님께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자기를 드렸는가, 아니면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이 모든것을 주님께서는 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양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먹게 될때, 어떤때는 곡식을 통해서 먹게 되고 어떤때는 짐승의 고기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락없이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나요? 강단에서 우리 주님에 관한 말씀이 계속해서 공급되고 있나요?

그것은 단순히 우리 주님의 희생 제사나 주님의 아름다운 소제의 말씀만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관련된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는 수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에 관한 말씀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에 개인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성결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말씀을 보게 될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지, 사단은 어떤지, 천사는 어떤 것인지, 또한 말세에 관한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 하는지, 주님은 언제 곧 오실 것인지,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배우고 인내와 소망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그와같은 힘을 이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정은, 집은 어떻게 건설이 되야 하는지, 모임은 무엇이고 모임안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주셨는지 이런 다양한 말씀들이 계속해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여러가지로 골고루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은 어떤 말씀만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계속 전합니다.

그런 기울어진 말씀이 아니고 비틀어진 말씀이 아니고 건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말 성경에서는 '교리'를 '교훈'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후서에 교훈이라고 나옵니다. 교훈이라고 할때 그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단수 입니다.

그 교훈의 말씀안에 수많은 주제들이 있는데 왜 단수 입니까?

그것은 주님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개역한글)

 

우리 말에는 이렇게 단수 복수가 나뉘어져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구분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정확히 말하면 '귀신의 가르침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귀신의 가르침들 입니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귀신의 여러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가르침들은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일치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가르침들에 대해서는 복수를 사용합니다.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13:9, 개역한글)

 

'여러가지 다른 교훈들'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다양한 말씀, 성경의 각 곳에 있는 말씀을 읽게 될때 우리를 위해서 위로만 계속 찾아보고 매일같이 아침에 위로가 되는 말씀만 한구절 찾아보고 지나가고 내일도 위로, 모레도 위로의 말씀만 찾아보고 산다면 우리는 초콜렛만 먹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사랑하는 말씀, 주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말씀, 또 우리에게 고난과 인내를 요구하는 말씀, 제자의 도에 관한 말씀이 대단히 소화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유같지만 않고 고기와 같이 질겨서 우리가 씹어야 합니다. 이런 여러가지를 우리가 먹어야 합니다.

물론, 초신자일 경우에 우리는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초신자가 고기를 씹을 수 없습니다.

먹어서 점점 아이가 자라면 어느때 가면 이유식을 먹게 되고 다음에 가면 밥을 먹게 되고 그 다음 가면 조금씩 단단한 것을 먹습니다. 그렇게해서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됬을때에 단 것도 먹지만 채소도 먹고 모든것을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런것은 어머니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에 수많은 음식들이 솔로몬 상위에 있었던 것 처럼 우리는 모임안에 다양한 말씀들이 계속해서 영락없이 공급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개인의 생활속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모임에서 들은 말씀만 가지고 계속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따로 주의 말씀을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임으로 모였을때 공부하고 성도들과 함께 모였을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교제를 하게 되고 수많은 기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는 영적인 양식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열왕기상 4장 20절 말씀입니다.

 

20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21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왕상4:20-21, 개역한글)

 

솔로몬 왕궁은 이 전에도 이 후에도 그렇게 넓은 영토를 얻은때가 없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저 위 레바논, 남쪽으로는 애굽지경까지 동쪽으로는 유프라데스,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이 넓은 땅을 다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수 많은 왕국들이 다 굴복 했습니다. 그리고 조공을 바칩니다.

그래서 세 수입이 매년 엄청나게 솔로몬의 왕국속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부의 근원이었습니다. 이 부가 있을때 그 부를 어떻게 잘 사용할수 있을까, 하는것은 지혜 입니다.

그것은 믿음 입니다.

이 나라가 넓은 땅을 얻게 되고 조공을 받게 되어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씀 합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4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왕상4:24-25, 개역한글)

 

여기 왕국의 경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왕국의 경계가 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평화를 말합니다.

그 경계를  침범해서 다른 나라가 들어오는 일이 없습니다. 평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평화없이 번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솔로몬 왕 때에는 전의 사사시대나 다윗 시대처럼 기근이나 온역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국가 안에서의 반란이라든지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이 상징을 여기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항상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말합니다. 저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를 말씀 하면서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다고 합니다.

이 표현은 나중에 천년왕국때에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때 평화가 온 지구에 깃들고 의로 통치가 되고 철장으로 주님께서 다스리게 될때, 백성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때의 모습을 이때의 이스라엘이 평안한 모습을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더라> 라고 표현 합니다.

 

솔로몬의 때는 아마 천년왕국때에 가장 근접한 나라 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때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풍성함과 번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번영이라고 하는것은 첫째로 왕국의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잠언 말씀을 보면 '옛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계석이라고 하는 것은 내땅과 저집 땅 사이의 경계선을 알리는 표 입니다.

이 지계석을 옮기는 것은 그 경계선을 무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바꿔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와같은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율법과 은혜가 무엇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모르면 율법에 은혜를 섞고 은혜에 율법을 섞어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분명한 한계,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임 안에서 실행 속에서 형제님들의 위치와 역할, 자매님들의 위치와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안에서 다 동등하지만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가 다 귀한 형제 이지만, 모임 안에서의 위치와 역할에 있어서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보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계석을 옮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이와같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흔들어 버리면 우리의 삶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바로 신앙생활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계가 불분명 하다는 것은 전쟁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계선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적군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될때 경계선은 이만큼 줄어듭니다. 또 들고 밀고 들어오면 경계선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계선이 바뀌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과 기업을 잘 보존하고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말씀을 토대로 해서 이어 나가야 합니다.

 

26 솔로몬의 병거의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며

27 그 관장들은 각각 자기 달에 솔로몬왕과 왕의 상에 참예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왕상4:26-27, 개역한글)

 

우리는 여기서 또 다시 슬픈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제 본 것처럼 신명기 17장 말씀을 보면 왕이되면 아내를 많이두지 말고 말을 많이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두지 말라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3장 1절에서 벌써 애굽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데려왔습니다.

여러나라와 동맹을 맺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을 의지하고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아내를 자꾸 많이 두었습니다.

여기서 또 말을 많이 두었습니다. 말을 많이두면 애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애굽에서 사오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도움을 또한 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말이 많다는 것은 이 당시에 무엇을 말하나요? 우리나라는 괭장히 힘이 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랑이고 교만 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것,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우리의 몰락과 멸망을 가져오는 시초가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신8:2, 개역한글)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신8:13-14, 개역한글)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8:17-18, 개역한글)

 

광야를 일부러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내 명령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 광야를 일부러 통과하게 하신 이유는 너희를 일부러 낮추려고 했다고 하십니다. 너희로 주리게 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 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다 통과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은 좋은 땅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자원들이 있는 곳입니다. 젖과꿀이 흐르는 땅이고 수많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땅입니다.

그곳에서 너희들이 집을 짓고 정착해서 점점 너희들의 부를 증식 시키게 될때, 그때 주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가서는 이렇게 된것은 내가 힘이 좋아서, 내 재능이 좋아서 이렇게 부를 쌓을수 있었다고 자랑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억하라, 잊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는 것이 신명기 8장 말씀 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 알지만 얼마나 많은 경우에 우리가 부유하게 될때, 뭔가를 얻게되고 평안하게 될때,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에 대해서 집착하는 나머지 그 주신분에 대해서는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어느순간 내가 능력이 많아서 이렇게 뭔가를 이룬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길로부터 서서히 떠나가는 과오를 우리가 범합니다.

주님께서 그와같은 성향을 알기 때문에 신명기 8장에서 너희는 반드시 이와같은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4장 26절에 솔로몬이 병거 마병 등을 축적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군대를 외국 사람들이 와서 많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것을 보고 감동 받습니다.

여러분 스바여왕이 예루살렘에 왔을때 말들을 보고서 감동 받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아내들이 천명인데 그 아내들을 보고 대단히 멋있다라고 감동받은 말이 없습니다.

솔로몬에게 찾아와서 솔로몬의 지혜와 솔로몬의 신복들과 성전과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 이런것을 보고 스바여왕이 감탄 했습니다.

솔로몬이 만약 자기의 권력이나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아내를 많이두고 말들을 많이 두고 병거를 많이 둔다면 외국 사람들은, 솔로몬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의해서 감동 받았을 것입니다.

큰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상을 주기 위해서 솔로몬이 만일 그렇게 했다면 솔로몬의 수준은 이방사람보다 나은것이 별로 없겠지요.

바로 이것을 성경은 26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4장에서 이 시대는 번영의 시대 입니다. 이것이 문제 입니다. 번영의 시대이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것같이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어느순간에 가서 솔로몬은 갑자기 나선으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처럼 추락해 버립니다.

많은 경우에 모두가 겉보기에 대단히 번영하고 잘나갑니다.

4장의 솔로몬의 왕국은 멋집니다. 그런데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문제의 요지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살펴볼때에 그런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볼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본다면, 아내에서 불순종하고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불순종 했습니다. 이것은 이 당시에는 많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몰락의 근원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볼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면  미래에 이와같은 문제가 오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우리를 정리하고 갈수 있다는 말입니다.

 

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왕상4:29-30, 개역한글)

 

동방의 지혜가 있습니다. 애굽의 지혜는 남방의 지혜 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철학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상 속에 담긴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 입니다.

세상의 관원의 지혜 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의 서 전도서, 잠언, 아가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지혜를 그에게 주셨는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람보다도 탁월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뛰어 났다는 말로 가득합니다.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왕상4:32, 개역한글)

 

32절 말씀을 보면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라고 합니다. 잠언 삼천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언은 잠언서에 담겨있는 내용들입니다. 

노래는 일천다섯입니다. 그의 노래는 지금 아가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고 그것은 성령님께서 발췌해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지혜에 있어서나 노래에 있어서 부족이 없습니다.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왕상4:33, 개역한글)

 

그 다음 초목을 말했습니다.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나는 우슬초까지 말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초목을 다 말한 것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식물중에 가장 장엄한 식물입니다. 그리고 가장 초라한 것은 담벼락 아래의 조그맣게 나는 우슬초 입니다.

백향목은 아름다운 향기와 영광입니다. 장엄하고 위엄 있습니다.

우슬초라고 하는 것은 가장 작은것입니다. 그것은 겸손 입니다. 우리가 회개할때, 우슬초가 나옵니다. 또 피를 바를때 우슬초로 발랐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겸손, 가장 낮아진 것, 담벼락 저 밑에 있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런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위엄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습니다. 주님의 위엄과 주님의 겸손, 이 모든것을 말하는 듯 합니다.

물론 그는 초목을 말했습니다. 그는 자연 과학자 입니다. 그리고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모든것을 말했습니다.

그는 이와같은 지혜에 있어서는 앞서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과학에서도 앞서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오기 훨씬 전에 그의 마음에는 르네상스가 이미 왔습니다.

 

아무도 이와같은 생각을 할수 없는때에 그는 이미 이런것들을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빛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수 없는 놀라운 것을 우리가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시119:97-100, 개역한글)

 

시편기자가 자기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우리가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의 법이 자기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똑똑하고 자기가 지혜롭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골몰 했을때,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묵상하고 그것을 담고 순종했을때 원수보다 지혜롭고 스승보다 지혜로우며 노인보다 탁월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기자랑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가진 지혜가 노인보다 낫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자랑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의 말씀을 보고 그것에 순종 했더니 노인보다 지혜롭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주님으로부터 이 위대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는 그의 국민들을 이롭게 하는데 그가 통치자로써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주님 앞에서 그가 구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3장에서 그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4장에서는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와같은 부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한대로 "네가 부요하게 될때 주님을 잊어버릴까 나는 염려한다"는 말씀을 솔로몬은 기억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왕상4:34, 개역한글)

 

옛날 예루살렘이라고 하는곳은 무역상들이 지나가다가 잠깐 들리는 작은 촌이었습니다.

거기에 여부스 사람들이 성도짓고 했지만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은 국제적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왕들이 무엇 때문에 찾아 왔습니다.

솔로몬의 지혜 때문에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지혜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예루살렘은 유명해 졌고 솔로몬의 왕국은 국제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4장 말씀을 보면 <너희가 말씀을 지키면 너희가 산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지키면 너희가 산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순종하면 너희는 세상나라 중에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된다고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사랑하고 순종한다면 모든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언제나 권위를 인정하고 엎드리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세련된 사람들이 됩니다.

영적인 선진국의 국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같은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되면 우리의 앞길은 주님과 함께하게 되는 번영의 길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번영하게 될때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이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다 주신것이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번영이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번영이 이루어 졌을때 우리의 마음이 서서히 교만해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추락해버리고 말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위대한 교훈 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경고 입니다.

 

오늘 저희들이 솔로몬의 행정부, 그리고 솔로몬의 열두관장들과 솔로몬의 식사, 식탁, 음식들과 그의 부요함과 그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이와같은 것은 그의 국가가 견고히 서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입니다.

그가 그것을 그렇게 쓰게 될때 그의 나라는 5-6장으로 가면서 번성해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로몬의 생애 속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왜 그의 말년에 추락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항상 경계심을 갖고 주의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 보면서 우리에게 적용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언제나 구하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계속해서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