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모 형제님/솔로몬의 생애

< 솔로몬의 생애 06_성전 건축 재료 준비 >

박이레 2021. 7. 19. 20:57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솔로몬의 생애 06_성전 건축 재료 준비 >

 

어제에 이어서 열왕기상 5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2 이에 솔로몬이 히람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3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5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6 당신은 영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나의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붙이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

(왕상5:1-6, 개역한글)

 

읽은 말씀에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이 즉위하고 난 이후 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을 3장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기브온에서의 교훈이었습니다.

4장에서는 솔로몬의 왕국이 번성하도록 부를 주신것을 보았습니다. 이 두가지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때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기브온에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네게 무엇을 줄까?"라고 이야기 할때 솔로몬은 다른것은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을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 이외에도 여러가지를 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부 였습니다.

 

부요함은 각국의 왕들이 솔로몬에게 조공을 계속 바치는 것으로 그에게 부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주변 나라를 다 정벌하고 그들이 모두 속국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5장에 와서 성전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5장에서 그는 두로왕 히람과의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두로왕 히람이 다윗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 했습니다.

 

두로라는 것은 페니키아 지방의 유명한 도시 입니다.

두로는 해안 가까이에 있는 바위 섬 입니다. 그 섬의 사람들은 천을 가지고 염색하는 기술이 잘 발달했고 그들은 금속을 아주 잘 다루는 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무역상들 입니다.

그래서 페니키아는 고대의 역사적으로 무역을 통해서 대단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로와 페니키아, 레바논의 왕은 레바논 산맥에 있는 목재들, 백향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두로왕 히람은 솔로몬 이전 다윗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 속의 역사로 봅니다.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즉위하고 난 이후에 그는 신복들을 보내서 그가 보좌에 앉은것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절의 내용입니다.

대사들을 보내서 솔로몬이 즉위 한것을 축하 하면서 평일에 다윗을 히람이 사랑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과의 이와같은 좋은 관계가 있었기에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때에 히람으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게 되는 길을 하나님께서는 마련하셨습니다.

사신들이 왔고 그들이 돌아가게 될때 솔로몬은 편지를 같이 보내게 됩니다.

 

3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왕상5:3-4, 개역한글)

 

이 편지 내용에서 솔로몬은 두로왕에게 자기 부친이 뭔가 시도했던,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었던 내용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버지 부친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전을 건축할수 없음을 말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다윗이 전쟁의 사람이라는 것은 전쟁의 사람으로 계속해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주변의 국가가 모두 다윗에게 굴복할때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의 사람인데, 어떤 나라가 다윗을 향해서 공격하려 한다면 다윗은 가만히 있을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평화가 올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왕위에 임명되었지만, 그가 제일처음 임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쳐 죽이고 그의 민족을 구원한 일입니다.

그는 소년때부터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웬만한 전쟁에 나가서 싸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아무도 할수 없는 것을 가장 강력한 대상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사울도, 아브넬도 그 누구도 그를 위시하지 못하고 공포속에 있을때 소년 다윗이 가서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이때부터 그는 전쟁의 사람으로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4장에서 본 것처럼 솔로몬의 왕국은 대단히 부요한 왕국이 됩니다. 그 이유는 모든 나라가 다윗에게 굴복함으로 인해서 조공을 매년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나라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서 전을 건축하기를 바랬습니다. 솔로몬이 히람에게 편지를 쓰게 될때, 자기 아버지의 뜻을 이야기하게 될때 그 뜻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선전을 건축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성전과 하나님의 이름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 갑니다.

 

그냥 성전이 아니고 이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성전이라는 것을 솔로몬 자신도 다윗에게 항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원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성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항상 투철하고 열정적인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마음속에 깊이 세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게 될때 그냥 성전이라고 쓸수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연관된, 그것을 위해서 짓는 성전이라는 것을 반드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왕국에서 내각들이 있었습니다. 그 내각들 중에 서기관이 있었습니다. 서기관은 외국에 편지를 쓰게 될때 왕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서 적든지, 그냥 아무렇게나 써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형식을 갖춰서 거기에 인을 찍어서 보냅니다.

이 편지도 분명히 서기관이 마땅한 형식을 따라서 솔로몬의 의향을 적어서 보낸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재료가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양의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들을 어마어마하게 쌓아놓은 창고가 있습니다.

금,은,보석 수많은 보화들이 가득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성전을 짓지 못하지만 성전의 구조인, 하나님의로부터 식양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구조를 머리속에 생각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는 조목조목 준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다 준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여기서 연급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재목 입니다. 백향목과 전나무 입니다.

이것은 다른데서 얻을 수 없습니다. 웬만한 광야나, 유대에 있는 산에 가서 얻을수 있는 나무로는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기 위한 이 재료에 대해서 다윗이 준비한 재료가 있고 솔로몬이 준비하는 재료가 있습니다.

 

다윗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대상29:1, 개역한글)

 

다윗왕이 회중 앞에서 자기 아들 솔로몬이 전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상황이 어떤가 하는것을 서론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대단히 미약 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국민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아들은 미약 하지만 역사는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3장에서 기브온에 갔을때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라고 하셨을때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원하는 것을 구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게 될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간구해야 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가자마자 간구부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면 언제나 그분의 임재앞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에게 찬양과 예배와 감사와 은혜에 대한 모든 감사의 표를 주님앞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주님 앞에서의 기본 입니다.

 

솔로몬도 무엇을 줄까? 라고 할때 바로 지혜를 주십시요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는 하나님께서 나의 부친 다윗에게 주신 은혜와 다윗 이후에 나같은 사람을 왕위에 오르게 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지혜를 달라고 할때 뭐라고 말씀 했습니까? '국민은 크고 나는 어린아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그가 기브온에 갔을때는 그가 왕이되고나서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오래전에 자기 아버지가 국민들 앞에서 성전을 놓고 이야기 할때 "내 아들 솔로몬은 너무나 어리고 연약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대단히 장엄하고 역사가 크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그는 머리속에 담고 있었습니다.

 

국민은 크고 자기는 어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지혜가 필요함을 구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옛날에 국민 앞에서 성전을 건축할 역사는 대단히 장엄한데 내 아들은 어리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자세로 기드온에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시편 72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에는 그 시를 시작하기전에 타이틀이 있습니다. 72편은 '솔로몬의 시' 입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시72:20, 개역한글)

 

이 내용은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에게 부탁하는 기도 입니다.

아들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 인데, 그 기도 내용을 솔로몬이 적었다고 봅니다.

여기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어 솔로몬이 쓴 시라고 여겨 집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기록 했지만 그것을 베푼것은 아버지가 한 말씀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한 기도 입니다.

그 기도를 잠시 우리가 발췌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시72:1, 개역한글)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왕은 자신이고 왕의 아들은 솔로몬 아니겠습니까? 이 은혜를 달라고 기도 합니다.

 

2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3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4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5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

7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72:2-7, 개역한글)

 

제일 첫번째, 왕과 왕의 나라는 의로운 왕이며 나라가 되어야 함을 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 가서 "내게 지혜를 주십시요."라고 기도할때 그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나라는 큰데 나는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다스릴수 있도록, 그래서 나라가 의로 설수 있도록 그것을 구했습니다.

그런 생각이라고 하는것은 물론 아버지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아들이 곧 왕이 될텐데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를 의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따라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 나라가 압제자에 의해서 백성들이 고통 당하게 될때, 압제자를 꺾고 의를 펼수 있도록 하십시요 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왕국을 견고하게 세운다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백성을 의로 다스리고 편안하게 인도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평안이 목적 입니까? 여러분과 저는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사는것이 목적 입니까?

편안하게 사는것은 우리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 번영하는 나라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준비시키고 기대하고 있었나요?

성전을 짓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지어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성전은 그 치수가 이방인의 성전과 비교할때 대게 작습니다. 대단히 위대하고 영광스럽다고 얘기하지만 그 크기나 재료를 보면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성전은 어마어마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은 그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작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성전은 영광스럽고 영화롭고 위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의 다이아나 신전은 대리석 기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 크기는 말로 할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고대 7대 불가사의에 나타나는 수많은 건축물들은 대단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은 그보다 작은데도 그것은 위엄이 있고 영광스럽다고 말합니까?

다른데는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전은 이와같이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고 돌과 보석으로 만든 성전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산 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성전을 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교회는 여기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라고 하면 건물이 얼마나 큰가 하는 외적인 것을 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방신전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그것보다 훨씬 작아도 거기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 때문에 히람에게 편지를 보낼때도 그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서 짓는 성전'이라는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72편에서 그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은 아버지의 간절한 심정 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한 시대에 끝나지 않고 반드시 다음세대에 전달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처음부터의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시편 78편을 보시겠습니다. 이것은 아삽의 교훈입니다. '아삽의 마스길'

 

1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78:1-8, 개역한글)

 

3절 말씀에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그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해서 내려가는 대수를 보면 5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해 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곳곳에서 하나님은 이와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진리의 말씀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살리고 강하게 하고 세워주고 쓰러진 사람을 강하게 하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밝은 빛을 비춰 주고 밝은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을 더욱 더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 합니다.

이 말씀은 절대로 한 세대의 특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계속해서 누리고 전파하고 다음 세대에 같은 열정과 같은 사랑, 그 이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대상 29장에서 다윗이 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죽기전에 솔로몬을 언급하면서 성전에 관해서 중요한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대상29:2, 개역한글)

그가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여호와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라고 하며 안쓰러워 했습니다. 자기는 더 좋은곳에 거하는데 주님은 천막속에 거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표현 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대에 가서 전을 건축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었을때 다윗은 섭섭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의 말씀을 그는 받아들이고 자기자신이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윗의 수많은 위대한 점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원에 대해서 거절 했을때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소원은 하루이틀 가졌던 소원이 아닙니다. 그 소원은 어려서부터, 목동 때부터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소원 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해서 궤를 빼앗겼고 그 궤가 여기저기를 돌다가 결국에는 기럇여하림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서 궤를 빼앗기고 궤가 여기저기 돌다가 돌아온 슬픈 역사를 다윗은 소년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궤의 목적지에 대해서 소년때부터 깊이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윗에게 있는 탁월한 마음 입니다.

소년이 하나님의 거처에 대해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이 주님의 거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깊은 숙고 속에서 하나님 앞에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가지고 있던 열정을 드디어 왕이 되었을때 표했습니다. 궤를 시온까지 모셔 들여왔고 추가로 성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말씀 드렸을때 주님께서 거절 하셨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이 어땠습니까?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때에 가서 이 일이 이루어진다면 자기는 무어을 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고결한 생각 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 동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전리품을 가지고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때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쟁에 나가서 이기게 해 주신다. 자기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기게 해주신다는 생각 가운데 전투에 이길 때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다" 라고 했습니다. 내가 승리해서 그것이 나의 자랑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신 모든 전리품을 주께 드리려고 쌓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2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3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4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5 금, 은 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대상29:2-5, 개역한글)

 

여기 두가지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수많은 금은, 보석들을 드리고 자기 사유의 재산에서 또 금은을 드린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때 천부장과 백성들의 인도자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앞에 드렸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29:14, 개역한글)

 

그가 주님 앞에 드리게 될때,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가 번것, 자기가 소유한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여호와의 궤는 휘장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할때 다윗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지적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누구에게 적선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야 할 분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런 이야기를 할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주님께서 너무 초라하다. 그래서 주님께 좀더 대우를 해 드려야 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빚을 지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누구로부터 뭔가를 받아야 할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주님으로부터 항상 받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앞에 드릴때에라도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14절에 주님께서 주신것을 주님앞에 드립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것을 가지고 주님앞에 드린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주님 앞에 드리고 남은것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물이 우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 자체가 주님께서 피 값으로 주시고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주님에게 속한 사람 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앞에 드리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받을수 있는 모든 소유와 재산, 이런 모든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기 전에 회중 앞에서 자기 아들에 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대해서 자기가 어떻게 준비 했는가, 그리고 주님께서 어떻게 주신것에 대해서 드리는가를 얘기 합니다.

만일 다윗이 자기 것을 드린다고 한다면, 이 금은은 전쟁에서 상대의 나라를 전멸시키고 전리품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가 전쟁에서 잘 싸웠기 때문에 내가 얻은 것을 주님께 드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이긴것도 주님의 은혜고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것도 주님의 은혜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주님께 드립니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앞에 나갈때에 우리의 자세도 이와같은 자세가 되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왕상5:3-4, 개역한글)

 

평화의 때가 왔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왔습니다. 다윗은 주님께로 가고 드디어 태평한 시대가 왔습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 때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때를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은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2-3, 개역한글)

 

여기 두가지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남은 때가 있고 두번째는 지나간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때는 과거 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고 이방인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우리 육체의 남은 때는 어떻습니까?

2절 말씀을 보면 그 후로는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하려 함이라 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정욕 소육을 따라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남은 이 시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 히람에게 솔로몬이 편지하게 될때, 전쟁의 때가 끝나고 평화의 때가 왔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다윗 때에는 성전을 짓지 못하지만 아들때에 와서 성전을 짓는다고 말씀했습니다. 바로 그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히람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이와같은 일을 구태여 구체적으로 히람에게 하고 있습니까?

솔로몬은 그에게 요청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백향목과 전나무를 베게 허락하시어, 나에게 그 나무를 주십시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론입니다.

그러나 이 본론을 이야기 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히람 사이에는 좋은 유대관계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전을 지을뜻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다면 그 소원을 가지고 당신에게 요청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우리 아버지에게 백향목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 내용을 보면 그가 이와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편지하는 내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가 있습니다.

뭔가를 이야기하게 될때 절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목적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먼저 서론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히람에게 보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를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사실상 히람이 그것 때문에 사신들을 자기에게 보내서 자기가 즉위한것을 축하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것을 받아서, 당신이 아버지와 좋은 관계에 있었고, 아버지가 그것을 요청 했다면 당신은 전나무와 백향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요청할 것이고 당신이 그것을 나에게 줄 것을 100% 확신한다는 이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득력이 아닙니다.

설득할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설득할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설득하는 것입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다면 당신에게 요청했을 것이다.

그래서 백향목과 전나무를 달라고 요청 합니다. 이 레바논 산맥의 백향목이 가득 합니다.

그런데 이 백향목을 주면 솔로몬은 무엇을 줍니까?

 

10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11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 궁정의 식물로 밀 이만석과 맑은 기름 이십석을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왕상5:10-12, 개역한글)

 

솔로몬은 왕궁에서 나오는 밀을 주었습니다.

어제 저희들은 열두명의 관장이 열두지구에서 한달에 한번씩 물자를 왕궁에 공급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조달 청장들이었습니다. 이 조달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왕궁에는 계속해서 물자가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왕궁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풍족하게 먹을수 있도록 했습니다.

왕궁에서 나오는 이 곡식들이 여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아 백향목을 얻고 대신 곡식과 기름을 주었습니다.

레바논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곡식을 재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기하게 이와같이 여러가지 여건들을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백향목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와같이 좋은 나무, 썩지 않고 화려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이와같은 나무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솔로몬은 히람에게 그것을 요청하고 히람은 물론 그에게 흔쾌히 응답 합니다.

레바논 산맥의 백향목을 생각할때, 레바논 산맥을 보고 레바논 산맥의 저 아래쪽에 지중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것은 백향목입니다. 솔로몬이 주는것은 곡식 입니다.

곡식은 매년 재배해서 매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향목이라고 하는것은 매년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십년 수백년 자라야 하는 나무 입니다. 그것을 베어 버리면 그것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불가능 합니다.

오랜 기간이 지나야 그것은 자라 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이것을 요구 했을때 히람이 권력이 없었다면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이 백향목을 베어서 주어야 하느냐? 라는 반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가운데 히람은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론 두로라는 섬에 있는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레바논까지 다스리고 있었던 왕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을 허락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과 전나무를 벌목하게 됩니다.

 

6절 하반절을 보면 시돈 사람들은 벌목하는데 달인 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그런 산이 없기 때문에 벌목하는데 기술이 없습니다.

백향목을 얻기 위해서는 재료도 레바논에서 얻어야 하지만 그것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벌목해서 잘라서 산 아래로 끌고 내려와서 시돈에서 띄워야 합니다.

바다를 통해 200마일 정도 보내서 욥바까지 내려와 그것을 육지로 운송해서 해발 800m 되는 예루살렘까지 끌고 와야 합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한두 그루가 아니고 그 목재로 성전의 바닥, 높이로 다 깔아서 지어야 할 양이 필요 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나무가 잘려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솔로몬이 준비해야 할 재료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준비한 것은 우리가 역대상 29장에서 보았습니다. 금은 보석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준비하는 것은 백향목 재목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5장 하반부에 가면 돌을 준비 합니다. 채석장에서 어마어마한 돌들을 잘라서 그것을 아름답게 깎아서 갈아서 다 준비해서 그것을 성전 지대로 옮겨서 성전을 짓게 됩니다. 전 지대를 깝니다. 그 지대는 대단히 큽니다.

오늘날 그 일들을 기계로 하지만 이 당시에는 전부 손으로 사람의 힘으로 하던 시대 였습니다.

이것은 상당한 공학적인 엔지리어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고대 시대에도 인간은 그런것을 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도 상당히 먼 거리까지 운반 했습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뉴욕은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많은 다리를 건설 했습니다.

현수교이기 때문에 보통 다리가 아닙니다. 그 현수교를 지을때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를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 입니다.

이러한 일이 고대시대나 현대시대에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희생을 원치는 않지만 이런일을 하게 될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로 솔로몬이 준비하는 것은 나무 입니다. 레바논 산맥 꼭대기에 올라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올라가서 큰 나무를 베어야 합니다.

시돈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 갑니다.

한달에 1만명씩 번갈아 갑니다. 3만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 내었습니다. 그래서 석달을 교대로 돌아가면서 한달에 만명이 레바논 산에 올라 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두달 쉬었다가 그다음 달이되면 다시 레바논으로 올라가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와같은 사람들을 감독하고 인도하는 사람들은 시돈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벌목하는 달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벌목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향목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 쓰여지는 재료 입니다.

백향목을 자르기 위해서는 높은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백향목은 높은 산에서 위엄의 자태를 가지고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것을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 합니다. 항상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입니다.

그런 사람을 백향목을 자르면 쓰러집니다. 더이상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끌어가는 사람에 의해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바닷물에 들어갑니다. 바닷물에 들어가면 수많은 나무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엮습니다.

밴쿠버의 거대한 다리를 지나가다 보면 로키산맥에서 자른 나무들이 수많은 뗏목이 되어서 내려 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나무들이 내려 옵니다. 캐나다는 산이 많고 나무들이 많아서 펄프를 수출하는 나라 입니다.

레바논이 바로 그런 나라 입니다. 이 나무가 잘려서 시돈에 들어와 지중해로 욥바까지 흘러 갑니다.

 

나무안에 있는 수지, 기름들이 있습니다. 그 나무가 오랫동안 물속에 있으면 물이 나무속에 침투해 들어가서 나무를 다듬고 할 때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수운하는데 편리할 뿐 아니라 나중에 나무를 다듬는 데에도 편리 합니다.

소금물 속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운송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성전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교만한 마음, 우리의 높아진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다 잘려서 쓰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우리의 옛 습관이라던지, 옛 성품들이 넘어지고 쓰러져서 우리가 주님앞에 겸손한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쓰십니다.

 

솔로몬이 준비한 또 다른것은 많은 금속들입니다. 

특히 나중에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관해서 7장에 가면 놋으로 만든 수많은 기구들을 말씀 합니다.

특별히 성전 앞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라는 거대한 기둥이 있습니다. 그 다음 성전앞에 놋바다가 있습니다. 물두멍이 아니고 거대한 연못 사이즈의 그릇 입니다. 그릇과는 비교할수 없는 거대한 컨테이너 입니다.

거기에 물을 가득 담아서 그 밑에 열두마리의 소가 그 큰 그릇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다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있는 물을 꺼내서 물두멍에 담습니다. 열개의 물두멍이 있어서 그것을 성전에서 사용 했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놋과 관련된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이 놋 기구를 만들게 될때 그것을 녹여서 부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틀이 있어야 합니다. 그 틀을 어디서 만들었냐하면, 여리고에 가면 진흙뻘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진흙은 아주 좋은 진흙 입니다. 보통 흙이 아니고 틀을 만드려면 그 면이 아주 매끈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좋은 진흙이 사용되었습니다.

진흙이라고 말할때 시편에 보면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진흙 구덩이 속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진흙 구덩이에서 우리를 꺼내서 단단한 바위에 우리가 설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모양과 구원받고 난 후의 모양을 진흙 구덩이 속에 있던 사람이 거기서 나온것으로 말씀합니다.

진흙 구덩이 속에 있으면 사람이 설수 없습니다. 즌흙속에 있으면 밑으로 가라 앉습니다.

결국에는 머리까지 들어가서 숨을 쉴수 없어서 죽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습, 구원받기 전의 모습은 그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밑을 바쳐주는것이 없습니다. 구원받기전에 우리의 삶은 파운데이션이 없습니다.

설수 없습니다. 계속 빠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설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될때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때 우리는 어디에 섭니까?

단단한 바위 위에 섭니다. 우리가 바위 위에 서면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내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서서히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는것은 시간문제 입니다.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는 깊이 빠집니다.

 

바로 그와같은 여리고의 진흙 구덩이 속의 진흙으로 틀을 만들 었습니다. 

놋을 거기에 부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구들과 아름다운 기구들이 그렇게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때 우리는 전에 진흙 구덩이에 있었던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변모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놋 기둥이라든지, 놋바다라든지 주님이 원하시는 놋 기구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 교회를 가리켜서 우리는 산 돌이고 그와같이 성전을 짓는다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구원받은다음 주님께 어떻게 쓰임을 받을수 있는가를 생각 할때 우리에게 좋은 그림이 된다고 생각 합니다.

 

솔로몬의 또 하나의 재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준비한 것입니다.

채석장에 가서 돌을 떠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채석장에 어마어마한 바위덩어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위 전체를 쓸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수가 있습니다.

 

그 기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왕상7:10, 개역한글)

 

한규빗은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되기 때문에 거의 50cm정도 됩니다.

그러면 십규빛이면 5미터입니다. 팔규빛이면 4미터 입니다. 크기 5미터와 길이 4미터면 어마머마한 돌입니다. 이 돌을 떠내는 것입니다.

바위산에서 그 돌을 떠내려면 얼마나 많은 수공이 들어가겠습니까?

그것을 끌과 망치로 서서히 뜨는데 그것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잘라 낼것입니다.

우선 5m, 4m 보다 더 큰 사이즈의 돌로 대강 잘라서 꺼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확하게 그 사이즈로 금을 그어서 그대로 잘라냅니다.

그것을 대강 잘라내고 울퉁불퉁한 돌을 반듯하게 하기 위해서 긁어낼 것입니다. 마광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긴 일이겠습니까?

 

돌을 뜬는것에서부터 돌을 잘라서 반들반들하게 하기까지, 그것을 규격에 딱 맞춰서 떼질때까지 수공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전에는 마치 그냥 산에 있는 돌덩어리 같아서 쓸데가 없었습니다.

그냥 커다란 돌 덩어리 였습니다. 산과같은 그 덩어리를 쓸수 없습니다.

그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잘라서 잘 떠내고 그것을 자르고 반들반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난후에 처음에는 모가 많이 나 있고 비죽비죽하고 표면이 매끈하지 않아서 울퉁불퉁하고 이런 우리 자신을 기억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우게 될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울퉁불퉁한가 봅니다.

울퉁불퉁하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왜 반들반들하게 해야 합니까?

 

이 돌로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기초를 놓으려면 돌이 빼곡하게 딱딱 맞아서 틈새없이 바닥에 깔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울퉁불퉁하면 갔다 붙이면 그 사이가 샙니다. 그러면 기초석으로 쓸수 없습니다.

두 돌이 딱 맞아서 틈이 없으려면 두 돌 모두가 반듯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직선이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석수들이 떠서 자르고 마모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난 후에 주님을 배우게 될때 우리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 이기적인것 경쟁심, 시기심 이런 옛 습관들, 옛 성품들이 내 속에 있다면 나는 울퉁불퉁한 돌입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해변가에 가면 울퉁불퉁한 돌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때보다도 더 오래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보다도 더 오래전에 돌들은 이미 있었고 그들은 파도에 의해서 들락날락하며 계속 마모되었습니다.

그래서 반들반들하고 동글동글한 것입니다. 그 돌을 가지고 다닐때 절대 손을 베지 않습니다.

산속에서 얻은돌을 가지고 다니다가는 긁힙니다.

그러나 그런 돌들은 우리를 긁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한 돌이 되려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쓰기에 합당한 존재들로 우리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주님 손에 들어가서 석수의 손에 들어가고, 놋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벌목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 재목으로도, 놋 기구들로도, 돌로도 손색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까 히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가 전쟁의 사람으로서 성전을 지을수 없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태평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고 나는 전을 지어야 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처음 전을 건축 했습니다. 그 전에는 회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성전은 그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 당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 되어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때에 두번째 성전을 건축 합니다. 구약시대에 성전 건축이 솔로몬의 건축과 스룹바벨에 의해서 돌아와서 다시 건축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건축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솔로몬은 드디어 때가되었기 때문에 건축을 시작 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아버지가 그렇게 당부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즉위한 다음에 때가 되어 그 뜻을 히람에게 보내고 건축자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께 받았지만 완전하기 위해서 건축하기 전에 재료를 준비합니다.

이 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건축에 돌입하기 전에 우리는 재료가 다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면서 재료를 만들고 그런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학교에서 훈련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거기서 우리 자신이 준비가 되도록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준비 합니까?

 

우리는 구원받고 나서 개인의 생활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 개개인으로 트위터가 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지만 가정 안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루십니다. 모임 안에서 좋은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모임의 삶과 모임의 집회와 모임의 모든 교제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손실을 우리가 받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학교에서 조퇴하고 결석하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쓸수 없습니다.

모임이 하나님의 학교 입니다. 집회와 모임의 교제와 모든 활동과 봉사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주님앞에서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시간 입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편지할때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라고 얘기 합니다.

건축할때가 왔다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학개서를 보면 학개가 백성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1:2, 개역한글)  

 

주전 538년에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고 고레스가 고토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말씀을 보면 고레스가 태어나기 약 1세기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고레스는 나의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고레스라는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가 나타나서 나의 백성들을 목자와 같이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어나기 훨씬 전에 그 이름을 말씀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시아가 그런 사람 입니다.  요시아가 태어나기 35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에서 온 선지자를 통해서 벧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요시아가 이런이런 일을 할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 입니다.

모든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봅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때는 과거를 돌이켜봐도 기억이 안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가 다 눈 앞에 있고 영원한 미래도 주님은 눈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님과 교재하면 미래에 대해서도 주님과 계시를 받을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주님과 교제함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것을 내다보는 분입니다.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고레스가 태어남을 말씀 했습니다.

100년이 지나고 난 후에, 이사야 선지자 훨씬 후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때려 부시고 그 성전이 불타고 70년이 지나고 난후에 고레스가 나타나서 유다 백성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했잖아요?

그것이 주전 538년 입니다.

 

돌아오고 난 후에 예루살렘에 5만명이 돌아왔습니다.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고레스 칙령에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돌아가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허락하신대로 성전을 지어라.

돌아가서 성전을 지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단순히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너희 고토로 돌아가라고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서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들은 돌아간 후에 그것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3년 만에 성전건축이 중단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주변의 사람들, 총독들이 이 백성들이 성전을 지을수 없다라고 하면서 페르시아 왕에게 편지를 보내고 항소를 하고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왕이 짓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건축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23 아닥사스다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스4:23-24, 개역한글)

 

전 역사가 그치게 되는 것은 535년 이었습니다.

돌아온 3년만에 방해공작이 그치면서 왕의 권력으로 억제 했습니다. 그래서 제 2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15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52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다리오 왕 2년 입니다.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스5:1-2, 개역한글)

 

538년에 이미 전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3년의 노력을 통해서 왕이 중단하게 해서 중단 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15년이 흘렀습니다. 15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하고 있었나요?

그것이 학개서 2장 1절의 말씀 입니다.

학개가 일어나고 스가랴가 일어났습니다. 학개는 선배고 스가랴는 후배 입니다. 스가랴는 청년이고 학개는 좀더 나이가 많습니다.

이 두 사람이 동시대에 일어나서 성전 건축을 해야 겠다, 우리는 졸고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전 건축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서 전 건축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두 사람이 합동으로 전파하기 시작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은 때로는 거절 당합니다.

그런데 스가랴와 학개 이 두사람의 사역은 놀라운 호응이 있었습니다. 이 두사람의 선견지명입니다.

사실 이 두사람의 선견지명이라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선경지명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가서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나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가 나른해져 있을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우리 마음이 살아 납니다.

우리 마음이 포기 상태에 있을때 우리 마음이 절망 상태에 있을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때 우리는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까지 쪼개고 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발가 벗기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로 운동하고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이 역사하니, 그 다음은 누가 역사 합니까?

스룹바벨과 인도자들이 역사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 모두가 다 여기에 참여 합니다.

학개서로 돌아오겠습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1:3-8, 개역한글)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학1:12, 개역한글)

 

이 백성들이 그 말을 청종 했습니다. 순종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 입니다. 듣고 순종 했습니다.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학1:12-14, 개역한글)

 

여기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인도자와 개개인 백성의 모든 마음을 '흥분시키매'라고 합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흥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마음에 깊은 영향력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까 소롤몬은히람에게 편지할때 뭐라고 했습니까?

"때가 되었습니다." 라고 얘기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때는 때가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때가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에게 백향목을

주십시요."라고 요구 했습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이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벌목하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기 학개서를 보면 여호와의 전은 황무 했습니다. 조금 지대를 놓다가 말았습니다.

그리고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일어나서 산에가서 나무를 베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전은 황무한데 너희는 좋은집에 살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 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15년 동안 많이 뿌려도 적게 거두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주님의 전에 대해서 오늘날 신약시대의 용어로 말하면, 모임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사랑과 모든 헌신을 우리가 바치게 될때, 우리는 우리 개인에게 우리 개인의 자녀들에게 엄청난 유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수천번 말해도 똑같은 진리의 말씀 입니다.

우리는 모임에 충성하게 될때 손해본다고 하는 마귀의 이야기를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15년동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상황이 아니니 기다려야 한다."

그 말은 언제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까? 무한정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차일피일 자기들의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를 원하고 살았습니다.

좋은 집도 짓고 살았습니다. 15년동안 전에 대해서 무관심 했고 전의 역사에 대해서 연기심을 가지고 산 것입니다.

 

그들의 상태를 학개가 해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재정 출납을 조사해보니 많이 벌었지만 전부 전대 구멍에서 새버렸습니다.

이것이 학개가 조사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이것을 우리 용어로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모임에 대해서 등한시하고 모임의 모든일에 대해서는 2차, 3차의 우선순위로 놓고 나의 개인의 삶은 1차에 놓고 산다면 그 결과는 어떤 것인가를 말합니다.

반드시 우리의 삶은 모든(영적인 육적인) 면에서, 계속 손실을 볼것입니다. 

 

우리의 전대는 구멍이 생겨서 다 새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개가 말한 말씀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때 그들은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그렇거든요.

15년 동안 삶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새 나가는 것을 경험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개의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이릉ㄹ 시작하고 그들의 마음이 흥분 되었습니다.

에스라서로 돌아오겠습니다. 에스라 5장 3절 말씀을 보면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것은 포로후에 돌아와서 성전 건축을 시작하려 하는데 방해꾼이 왔습니다.

 

3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다 나아와 저희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 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스5:3-5, 개역한글)

 

538년에 전 건축이 시작 되었고 그것이 3년만에 중단 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 동안 아무일도 없다가 학개와 스가랴가 일어나서 520년에 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이야기 할때 전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때 방해꾼이 왔습니다. "누가 어떤 권위로 너희가 이것을 건축하냐?" 라고 이야기 했을때 그들의 방해 공작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이 억지로 중단 시키지 못하고 그 동안 왕에게 편지 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편지 했습니다.

그것이 5장 하반절에 기록된 것입니다. 너무 길어서 다 읽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스5:17, 개역한글)

 

닷드내라는 총독이 와서 그것을 저지하려고 하다가 "우리 하나님이 이것을 건축하라고 하였다."라는 유다인들의 대답을 듣습니다.

누가 하라고 했느냐 물어보는 질문에 고레스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럴때에 닷드내가 다리오 왕에게 조회를 해보는 것입니다.

전에 총독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고 그것이 사실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서 우리가 그의 말대로 하고 있다고 하니, 고레스 왕은 닷드내보다 위에 있는 권위있는 왕입니다.

 

닷드내는 이 일에 함부러 개입할수 없어서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씁니다.

정말 이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고레스 왕이 이 사람들에게 그런 칙령을 내린적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6장에 보면 답장이 옵니다.

 

1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2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3 고레스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스6:1-3, 개역한글)

 

고레스의 조서를 악메다 궁에서 발견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요시아 때에 성전을 정리하고 재건하려고 하다가 성전 안에서 두루마리 책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율법책을 발견 합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너무 소중한 기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수많은 문틈들 속에 꺼어박혀서 사람드르이 안목과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가만히 생각할때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서 정말로 가까운 교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먼지속에 저기 처박혀 있는 것을 발견 합니다.

 

성경을 들고는 있지만 성경말씀이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들어와서 역사하지 못하고 있고 그 말씀이 내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을 내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고레스의 이 칙령은 대단히 중요한 칙령입니다. 그것을 왕의 보고 안에 저장해 놨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수많은 다른 서류들에 뭍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가서 일일히 조사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레스 왕의 칙령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찾았습니다.

그 칙령을 보니 다리오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은 커무니케이션이 참으로 발달된 시대 입니다. 이 시대와 얼마나 이와같은 차이가 있는가 보게 됩니다.

오늘날은 버튼만 누루면 메시지가, 모든 도큐멘터리가 다 나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모든것을 수작업으로 다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다리오가 538년, 15년 전에 이런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닷드내 총독은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닷드내는 그 명령을 받들어 그들에게 전 건축을 허락하고 필요한 것까지 공급해 주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저희들이 에스라서에 나타난 이 사건을 찾아보고 있는 이유는 성전건축 처음의 솔로몬때에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히람에게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백향목과 잣나무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개 선지자가 일어날 때는 15년 동안이나 그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 미루는 그와같은 태도를 순식간에 일소해 버리고 두 사람이 일어나서 메세지를 전하게 될때 사람들의 마음은 흥분 했습니다.

 

그래서 전 건축이 재개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와같은 사람, 학개와 스가랴 같은 사람이 필요 합니다.

전 건축이 때때로 주춤해 지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이렇게 건축 뿐만 아니라 보존하는 마음이 희미해 질때가 있습니다.

1세대는 건축하지만 그 다음 세대는 건축된 성전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모임이 세워지지만 계속해서 성장해가야 합니다. 모임이 건설은 됬는데 해가 가면서 점점 퇴락해가기 시작하고 있던것도 사라져 버리고 집회도 없애기 시작합니다.

어떤 모임을 가면 집회가 너무 길다고 해서 반으로 자릅니다.

어떤 성도들은 모이는 것을 등한히 합니다.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고 그렇습니다.

 

이것은 슬픈 것입니다. 이와같은 상황 속에서 후대가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러나 이 건축된 모임이 계속해서 그 다음세대에 더욱 더 힘을 내고 주님 앞에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타내고 헌신하고 주님께 자신을 드림으로 인해서 복음을 통해서 영혼들이 더욱 더 늘어나고 성도들이 성장하고 이 가운데 다음 세대들이 계속해서 엄청난 유익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안전함 가운데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게 될까요?

이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모임이 확고하지 못하면 우리 자녀들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임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성전이 이와같이 중요 하다면 모임이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모임이 성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를 위해서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고 자신의 피 값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3 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14 솔로몬이 저희들을 한 달에 일만인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왕상5:13-14, 개역한글)

 

역군이 벌목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 레바논에 보낸 사람들입니다.

시돈 사람들이 인도자 입니다. 그들은 벌목에 관한 모든 감독을 하고 일을 맡고 이사람들은 돕고 해서 일이 이루어 집니다.

솔로몬은 일하는 사람들을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솔로몬의 이 왕국은 장차 천년왕국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림자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되면 이스라엘로 인해서 이방인들이 복을 받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놀라운 조화가 일어나게 될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돈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벌목하는데 함께 역사했다고 하는 것은 이와같은 천년왕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인이며 (왕상5:15, 개역한글)

 

담군은 힘을쓰는 사람입니다.

사실상 기중기라든지, 크레인이라든지 엄청난 힘을 쓰는 기계들이 오늘날 있습니다.

건축을 위해서 그런것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건축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힘을 써야 하는데 그것을 적어도 인간의 힘으로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술자가 아닌 그냥 힘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담군이 칠만입니다.

 

16 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인이라 저희가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17 이에 왕이 영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18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왕상5:16-18, 개역한글)

 

오늘 우리는 5장에서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서 다윗이 준비해 놓은 것 이외에 자기가 준비할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6장에 들어가서 이제 성전 건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말씀 합니다. 건축 이전에 준비과정을 말씀 합니다.

5장은 솔로몬이 전에 대해서 가지는 그의 마음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히람에게 편지하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 대신 그는 그에게 곡식과 기름을 공급 했습니다.

이런 모든일을 통해서 그는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다윗대로 준비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솔로몬대로 재료를 준비 했습니다.

이 재료를 준비하게 될때, 그는 전쟁을 통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고 외교를 통해서 준비 했습니다.

이것이 전쟁의 사람 다윗과, 평화의 사람 솔로몬의 차이 입니다.

히람과의 이 외교관계를 통해서 그는 배향목을 얻어 냈습니다. 무역을 통해서 이와같은 것을 얻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준비 합니다. 우리는 전을 위해서 모임을, 위해서 이와같은 여러가지가 필요합니다.

 

모임을 위해서 이런 영적인 전쟁이 필요 합니다.

모임을 위해서 외교적인 관계, 인간관계,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필요 합니다.

그래서 재료를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재료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힘썼고 또한 감독하는 일에 힘썼고, 어떤 사람은 돌 뜨는 일에, 어떤 사람은 놋을 붓는 일에, 어떤 사람은 나무를 잘라오는 일에, 바다에서 시돈에서 욥바까지 뗏목으로 옮겨오는 일만 전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욥바에서 예루살렘까지 언덕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 올라가는 일에 이 무거운 것을 실고 안전하게 손상 없이 가야하는 인도하는 모든 일이 있습니다.

 

대단히 다양합니다. 모임안에 이와같은 다양한 일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의 한계가 있고 책임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우리가 온전히 이수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주님앞에 갈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충성된 종아'.. 거기에는 '성공한 종아'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성공하는 종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일을해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그런데 힘을 많이 씁니다. 물론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종이 칭찬을 받는것이 아닙니다. 충성된 종이 칭찬을 받습니다.

결과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일에 얼만큼 충성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맡은자에게 요구하는것은 충성이라>

 

오늘 저희는 전 건축을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중에 솔로몬이 어떻게 자기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솔로몬의 인도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독 없이 시작해서 모든 기술자와 힘쓰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역사 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인까지 이 일에 가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추진했습니다.

이와같은 역사를 우리가 보게될때 이것은 단순한 이스라엘 역사가 아니고 오늘 이 시대의 모임, 하나님의 성전인 모임을 건축하는 사람들로써 우리가 어떠한 책임과 주님께서 맡겨준 일에 충성되게 일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