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하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하 5장 6-14절

박이레 2021. 9. 8. 20:55

성경읽기 : 열왕기하 5장 6-14절(요약)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5:6-14, 개역한글)


[ 6-8절 성경읽기 ]
- 최재홍 형제님 : 6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 앞에 나아만 장군이 간다. 어린 여자아이를 통해서 나아만이 들었던 것은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간다. 그는 선지자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자기의 생각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는 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간다. 자기 나름대로의 대가를 그는 들고 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왕은 나아만이 자기에게 나아온다는 말을 들었을때 자기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것을 알면서도 엘리사에게 나아만을 보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 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기에 이 일에 대한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방인인 나아만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 전의석 형제님 : 7절에서 여호람 왕의 반응은 자기 옷을 찟고 자기가 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 통탄하고 슬픔과 고통속에 들어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고통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그 편지를 들고 온 나아만에게 자세히 물었다면 자연스럽게 엘리사에게 인도될 것인데, 그 일에 대해서 오해하다 보니까 본인 스스로가 고통과 침륜 속에 빠지게 된다.

또 이스라엘 왕에게 보낸 엘리사의 확신에 찬 메세기를 볼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인생 가운데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통해서만이 나음을 얻을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확신이 전도자 형제님들에게 있어야 하며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 김대현 형제님 : 나아만은 군대 장관으로서 아람왕의 크고 존귀한 자였지만 문둥병자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문동병을 인지 했기 때문에 낫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자기의 병을 알아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수 있다.

나아만은 많은 은과 금, 의복을 가지고 간다. 이는 우리가 셀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고 재산이다. 그는 이러한 부로 치료를 받고자 했다. 그리고 마치 이스라엘왕이 문둥병을 고쳐줘야 하는 것처럼, 강대국으로서 아람왕이 이스라엘왕에게 명령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존재였다.
작은 계집아이의 말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그 병을 고칠것이라고 말했지만 나아만이나 아람왕은 자기의 생각을 따라서 행동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이고 은혜인데 많은 경우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습들이 많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 장승훈 형제님 : 나아만은 은 십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간다. 그는 자기 병을 고친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가지고 가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무지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문둥병을 고침을 받는데 있어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이러한 재물들은 아무런 영향도 줄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작은 계집아이는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나아만과 아람왕은 이스라엘왕에게로 먼저 출발했다. 이는 자기 생각대로 했다고 볼수 있다. 혹은 계집 종이 말한대로 선지자 앞에 가야 낫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왕이 선지자에게 명령을 내려서 나아만을 고칠것이라고 생각해서 간 것일수도 있다.
이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왕의 영적 상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에도 아람왕이 북이스라엘왕에게 얼토당토않은 일을 한 적이 있다. 전에도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하면서 네것은 다 내것이다라고 말한 역사가 있다. 또한 지금도 북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주변국이 이스라엘보다 강한 상태에 있다.
이 당시의 왕이 여호람왕이었는데 그가 어떤 영적 상태에 있었는지는 열왕기하 3장에 나와있다. 그는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는 왕이었다.

그리고 아람왕의 편지를 받았을때 이스라엘왕은 자기 옷을 찟었다. 불순종 가운데 있는 사람은 능력이 없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따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볼수 있다.

- 전의석 형제님 : 2절에 작은 계집아이 하나가 있었다. 나아만이 노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가려 할때, 13절에 다시 나아만이 요단강에 가서 씻을 것을 권하는 종들이 나온다. 이 종들은 작은 계집아이는 아니었다고 보인다. 그들은 나아만을 가로막고 분을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권한다.
또한 나아만은 나음을 입고와서 모든 종자들과 같이 엘리사 앞으로 나아온다. 이 작은 계집아이를 생각할때 이 작은 계집아이가 나아만과 그 집의 모든 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조직들과 처한 상황들이 있다. 우리가 그 가운데 작은 계집아이와 같은 영향력이 작은 존재라고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때, 생각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킬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 9-14절 성경읽기 ]
- 김대현 형제님 :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앞으로 갔을때에 엘리사는 사환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는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지간에 하나님이 말씀을 순종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아만은 자기 자신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모든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하지만 자기의 군대장관의 신분만을 생각하고 있다.(11절)

그리고 13절에 종들이 나와서 말하는데, 어느것이 쉽겠느냐고 말한다. 나아만의 생각은 요단강에 씻으면 그 물 덕분에 자기의 병이 낫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 자체엔 능력이 없다. 요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만은 돌이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고 그 문둥병이 치유가 되었다. 일곱번 씻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때, 완전한 순종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두번 중복되어 씻을때에 점차 몸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일곱번 씻엇을때에, 마치 구원을 단번에 받는 것처럼 그의 몸이 나아진 것이다.

- 김보영 형제님 : 근본적인 측면에서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을 이 말씀이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9절에서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간다. 말들과 병거들을 데리고 엘리사의 집 문앞에 선다.
나아만의 잘못된 행동들, 그는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의 태도는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말과 병거를 끌고 갈 것이 아니었다. 군대의 위용을 보인다고 해서 엘리사가 그를 고쳐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자기의 위용을 보였을때 엘리사가 집 앞으로 나와서 특별한 의식을 행하며 자기의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교만한 생각을 나아만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씻으라고 말한다. 엘리사가 왜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를 생각할때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나올때에 거만한 자세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로 나왔을때에 구원을 받을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그렇기에 엘리사는 나아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마음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몸을 씻으라고 말한다. 이 일곱번을 말할때에 상당한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레위기 14장의 말씀을 보면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는 규례에서도 일곱번 씻는 것을 말씀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둥병자가 나았을때 일곱번 씻는 것이다.
나아만의 경우 나음을 받기 위해 일곱번 씻으라고 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에 순종했을때 소경은 보게된다.
이를 생각할때에 요단강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진흙이나, 실로암 못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일곱번 씻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때, 성경에서 7은 완전한 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공격할 때에 7일동안 일곱번 성을 돌았다. 또한 엘리야가 3년 6개월 가뭄후에 비를 내리기 전에 그는 일곱번 기도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한 두번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일곱번 같은 일을 행한다고 하는것은 그 일의 결과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믿음을 보기 위해서 일곱번 몸을 씻으라고 한 것이다. 구원은 받을때에 50%, 60%의 구원은 없다. 99%의 구원도 없다. 오직 완전한 100%의 구원만이 있을 뿐이다.
구원이 어떤 자에게 임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온전한 믿음만이 구원을 얻을수 있으며 온전한 믿음만이 순종으로 나갈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