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 복음 : 아버지의 두 아들을 통해 보는 참 회개 >

박이레 2021. 8. 19. 15:38

2021년 8월 15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 복음 : 아버지의 두 아들을 통해 보는 참 회개 >

 

이와같이 여러분을 오랜만에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함께 누가복음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1-2).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11-32).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15장에 있는 한 구절을 더 보도록 할텐데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회개하는 것을 굉장히 하늘에서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멸망치 않기를 원하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15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여기 앞에 15장 1-2절에, 세리와 죄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보면은, "야, 이것은 잘못한거야. 이것은 틀렸어." 지적을 합니다. 특히 앞에 나와 있는 죄인들에 대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항상 지적하고, "야, 넌 이것 잘못했으니까 고쳐야 해, 회개해." 이렇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주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정말 회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너 이거 잘못했으니까 회개해야 해." 말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대전 중구 모임에 오기 위해서 서울역에 기차를 타러 가는데, 서울 시내에 들어가니까 경찰차들이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아마 시내에서 집회가 있어서 그런거 같습니다. 그렇게 경찰차들이 많이 있는것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경찰들은 우리가 어떤 것을 잘못했을때 그것을 지적합니다. 신호위반 했을때 지적하고, 차선을 잘못 바꾸었을때 지적하고 말을 하지요.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잘못했을때 지적을 합니다. "이건 네가 잘못한거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지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적하시는 것과 그런 경찰들이 우리에게 지적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그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적하시는 것은 경찰이 "너 이것 잘못한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부모가 자식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을 교정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그가 정말로 교정되고 바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가 말을 하잖아요. 이런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경찰은 우리가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건 아니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그냥 잘못을 지적하고 범칙금을 내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해서 벌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잘못을 우리에게 깨닫게하고 그것을 정말로 돌이키고 그리고 그가 정말로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두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 사람은 큰 아들입니다. 이 큰 아들은 아주 착실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기 말씀에 읽은 것처럼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이 큰 아들은 우리가 요즘말로 치자면, 엄친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엄마 친구 아들' 이라고 해서 뭐든 잘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죠. 이 큰 아들은 항상 그 밭에 가서 성실하게 맡은 일을 잘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둘째 아들인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가지고 이제 그 돈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창기와 술먹고 쾌락을 즐기는데 다 써버린 것입니다. 이런 방탕한 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아들 중에 내가 어떤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듭니까? 우리 사람들의 눈에는 이게 굉장히 달라 보일 것입니다. 한 사람은 굉장히 성실한 아들이고, 한 사람은 굉장히 망나니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께서는 이 두사람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이 두사람이 사실은 같은 그런 사람들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같은 사람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은 굉장히 성실하고 그렇게 밭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그냥 술집에 가서 돈을 다 써버린 방탕한 아들인데 어떤 면에서 같은 것입니까? 우리는 그 두 아들의 말을 통해서 같은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를 그냥 돈의 관계로만 생각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돈만 받으면 이제 관계가 끝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몫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유산을 받고, 유산을 미리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제 아버지는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상관 없는 사람이다. 이 둘째 아들은 그 유산을 가지고 그냥 옆 동네 가서 산 것도 아니고 먼 나라에 가서 살게 됩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난, 이제 아버지가 연락하지 않는, 더이상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 그 먼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이죠. 이제 그게 둘째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나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어떻습니까? 이 첫째 아들도 겉으로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마음은 둘째 아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첫째 아들도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그냥 이해타산적인 관계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해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엇거늘 왜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서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었습니까?" 내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했으면 나에게 뭘 줬었어야 되잖아요. 나에게 돈을 많이 줬어야죠.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아니라 회사원의 입장입니다. 내가 일을 많이 했으니까, 나도 보너스를 줘야 하지 않습니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이 온세상을 만드시고 그리고 여러분을 만드시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지금도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에 있습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교회를 착실하게 다니고, "그래도 교회는 꼬박꼬박 다녀야지." 그러면서 교회 다니고 그리고 헌금도 내고 십일조도 내고 이런 분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각자의 형편 가운데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 사람은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거야."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헌금을 착실하게 낸 분은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으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실거야. 내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게 해주실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행한 어떤 일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실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 하나님이 당연히 나에게 좋은것을 줘야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 첫째 아들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회사원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둘째 아들과 똑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이것을 깨달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희도 회개해야 하는 사람이다. 너희도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너희도 돌이켜야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모든 사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첫째 아들과 같은 사람이 있고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 아들 모두,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제 회개가 무엇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하늘에서 기뻐하는 그 회개가 무엇인가? 여기에 둘째아들은 회개합니다. 그 둘째 아들이 어떻게 회개하는지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아들은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돌이킵니다. 회개라는 것이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생각하고, 그리고 자기가 이제까지 기준으로 삼았던 것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돌이키냐면 두가지를 돌이키게 됩니다. 한가지는 아버지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 자기가 이제까지 생각했던 아버지가 아니라 정말 그 아버지의 참된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그 아버지가 얼마나 너그러운 분인가를 알게 됩니다. 단지 자신의 자식에게만 너그럽게 대할뿐만 아니라 자신과 혈연 관계가 없는 그냥 돈 주면 끝나는 품군에게도 얼마나 너그러운 분이셨는가를 그는 깨닫게 됩니다. 두번째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19절에 보면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얼마나 그가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까?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완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되도록이면 멀리 떠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랑 상관없이 살고 싶어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먼 나라에 와서 돈을 다 날려버리고 그리고 흉년 가운데 한 사람에게 붇어 돼지를 치는 일을 하다보니, 그리고 자기에게 그 주인이 돼지에게는 먹을 줘도, 자기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그 완고한 주인을 보게 될때, 자신의 아버지는 얼마나 풍요로운 분이시고 인자한 분이셨는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재산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 아버지의 재산을 "아, 이건 내거야. 이건 내거니까 지금 주세요." 라고 하고 가져갔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를 그냥 단지 자기가 잘못한 것, 그 잘못한 것을 꺠닫고 그것을 고치는 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이 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아들은 어 어려움 가운데 배고파서 돼지를 치면서 먹을것이 없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있을때에,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으면 내가 뭘 잘못했구나 라고 생각할것 같습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큰 재산이 있었는데, 그것을 잘 썼어야 한다. 그것을 술먹는데 쓰지 말고 그 재산을 은행에 넣어놓고, 아니면 장사를 해서 그 돈을 불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좋은 친구를 사귀었어야지.' 라거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이런식으로 생각합니다. '아, 내가 그때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너 이거 잘못한 거, 그거 일을 하면 안되." 그리고 자기는 그 일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돈을 술집에 쓰지 않고 은행에 잘 저축하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사람이야. 이런 바리새인들의 판단이 이 정도 수준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판단이 이 정도 수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찌르고 계시는 것은, 단지 그 잘못, 그 하나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행동 하나가 잘못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도 많은 실패가 있을 것입니다. 작은 실수가 있었을수도 있고요. 아니면 판단을 잘못해서 큰 나쁜 결과를 가져온 실수와 실패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두고 돌이켜 보면서 후회하고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회개라고 하고 그런 생각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런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내가 얼마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도 여전히 따뜻한 해와 비를 내리고 계시는 은혜로운 분이신가. 이것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여기 사람의 많은 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참 저희 인생들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는 죄입니다. 그 마음 속에 불의와 추악과 탐욕과 악의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또한 여기에 우리 누구도 변명치 못하는 우리의 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자기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그 부모도 거역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그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가 알기를 바랍니다. 단지 그 어떤 한 행동, 하나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대로 28절에 그 모든 죄의 원인은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우리의 실패들, 이러한 것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 그것이 이 모든 죄의 원인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도 그의 문제는 아버지를 멀리 떠난 것입니다. 돈을 허랑방탕하게 쓴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멀리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시급한 여러분의 문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실패 가운데서 나의 문제가 이것이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이것을 어떻게 고칠수 있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이것이 회개인 것입닌다. 그리고 그 둘째 아들이 보인 모습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너무나 기뻐합니다. 그 아들이 돌아왔을때, "네가 지금 내 재산의 반을 가져가서 그렇게 날려먹으면 어떡하냐"고 꾸짖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고 그에게 달려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그를 반기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얼마나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원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그 아들이 정말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가 더이상 이해타산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냥 돈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정말 아버지를 알고 그리고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그런 관계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잔치를 벌립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함께 즐거워하며 기뻐하자고 말합니다. 이제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기뻐할수 있는 그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한 마음인 것입니다. 참 우리 주님께서도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원하는 그 마음이 담겨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지,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를 아시면서도 우리 죄대로 심판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그들이 그 죄를 용서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 집나간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같이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여러분의 죄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여러분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아야 되는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분이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신 것이 나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라고 믿으신다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믿은 한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예수님을 믿은 그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이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을 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 낙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기뻐한 것처럼 여러분과 예수님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이 성경의 하나님을 무슨 증거로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분에게 한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의 부모가 맞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저의 부모님이 제 부모가 맞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수 있습니까? 저는 저의 어머니가 저를 낳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봤으면, "제 어머니가 맞죠." 그렇게 할수 있겠죠. 물론 그 현장에 있었지만 저의 어머니가 저를 낳는 장면은 보지 못하고 기억도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저의 어머니가 저를 낳으셨다는 것을 확신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유전자 검사를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확신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볼때에, 어머니가 그 자녀를 용납하고기다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볼때에 우리는 나의 어머니구나 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지금도 베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의 매 순간순간 여러분의 호흡을 유지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이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하늘나라로 함께 이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이상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복음 말씀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