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찬 형제님/복음 말씀

복음 : 참으로 가치있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

박이레 2021. 10. 28. 11:00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 강성찬 형제님
< 복음 : 참으로 가치있는 것을 주시는 하나님 >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행 3:1-10).

요즘에는 많이 보이지가 않는거 같은데요. 예전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길에서 흔히 볼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은 앉아 있을때, 구걸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연을 담은 쪽지를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또 다시 한번 종이를 나눠준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구걸하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걸하는 사람들 앞을 지나가게 될 때에 그들이 강하게 구하는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참 절박한 거죠. 동전 한닢이라도 받아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 강렬하게 구하는 겁니다. 그런게 느껴지는 것이죠. 여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 뒤에 보면 그가 사십세가 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사십세가 될때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는 걸어보지 못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처럼 스스로 돈을 벌어먹지 못하고 오직 구걸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걸하는 그런 곳을 지나갈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주목하여 보게 됩니다. 그가 강하게 구하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구걸하는 자가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더 좋은 것을 그에게 준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더 좋은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가 서서 걸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걸어본 적은 더더구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생각 할 수 없었던 더 놀라운 선물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그에게 줍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 말이 이제까지 나왔지만 이제 그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짧은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저희 인생들은 이 구걸하는 자와 같이 강하게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의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단지 은이나 금, 동전 몇푼이 아니라 더 좋은 것,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우리가 감히 바라지 못하던 것,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과 사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오실때에 무엇을 구하면서 나오게 됩니까?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실때에 무엇을 원하면서 나오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구한 것, 바로 그것은 안 주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단지 동전 몇푼을 구했던 사람에게 그가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뛰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데까지 이르도록 완전히 변화시켜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했던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종교와 이 성경의 하나님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다른 종교는 모두 자기 필요를 구하면서 나옵니다.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그들의 신에게 구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업을 성공하게 해 주십시요. 아니면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도록 해 주십시요. 아니면 내가, 혹은 내 가족들이 건강하게 해 주십시요. 각각 자기의 필요를 가지고 나옵니다. 정성스럽게 헌금을 내고 기도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꼭 우리가 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다른 종교는 모두 자신의 필요를 가지고 나오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반대로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여기 나와 있는 자처럼 동전 몇푼을 바라고 나왔을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사실은 그게 너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너한테 필요한 것은 그 몸이 건강해 지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가장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얼마나 이 세상의 종교와 하나님은 다른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면서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사람들에게 증거하신 첫번째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너희들은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너희들은 지금 가는 길에서 돌이켜야 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가장 너희들에게 시급한 문제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가장 필요한 문제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 사회적으로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회적으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공의로 통치하시는 나라, 바로 이 나라가 너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 이후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 필요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는 그 필요를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채우셨습니다. 잠깐 예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누가복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3-21).

여기 예수님께 나아와 한 가지를 구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자기가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엉뚱한 것을 구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13절에 나와 있듯이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형이 자기보다 더 많이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될게 훨씬 더 많이 받을만한데 형이 자기 것을 뺏어서 형이  더 많이 가져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제 형에게 그 유업을 제대로 나누라고 말 좀 해 주세요." 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참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여러가지를 구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특이한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재산을 나눠 주십시요." 이 요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단지 이 사람은 예수님을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단지 물건 나누는 자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또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아,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내가 더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 더 큰 성공을 누릴 자격이 있는데, 아니 세상이 왜 이런거야? 왜 사회는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 세상에 불공평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는 그게 아니라 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해서 그렇다. 네 자신이 탐심이 가득차서 그렇다. 너 자신이 죄인이라서 그렇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그 돈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너의 탐심의 문제,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재산을 나눠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면, 15절에, "저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단지 물질의 넉넉한데 자신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달려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 달렸는지 너희들이 구해야 된다. 그걸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 필요를 주님께서는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하나님과 부요한 관계에 있는지, 그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한가지 더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 밭의 소출이 아주 풍성했습니다. 아주 농사가 잘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아, 여기 소출이 많이 나서 곡식이 많이 나면 그것을 어디다 두지?' 하고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거기다가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어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엉뚱한 것만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밤에 죽을 것입니다. 그날 그의 생명이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쌓아놓았던 물건들은 그가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채, 이제 내버려두고 그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에 대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부요하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요하다는 것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공통적인 것이 많다. 하나님과 내가 함께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이것입니다. 참 이 부자는 자기 창고에는 많은 것을 쌓아 두었고 자기 창고와 자기하고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어떤 점이 공통점이냐면, 창고 안에는 곡식이 많이 쌓여져 있지요. 그런데 창고는 그 곡식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창고는 그냥 곡식을 놔두는 장소일 뿐이죠.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부자도 곡식이 많지만 그 곡식을 한톨도 사용하지 못하고 그날 밤에 죽을 것입니다. 그냥 부자는 곡식을 많이 놔둔 장소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요하게 보이지만 그는 사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참 이 부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부자가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면서 창고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들을 가만히 생각해 볼때, 참 우리 인생의 어리석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 이 부자가 원하는게 무엇입니까? 이 부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까? 특이하게 이 부자가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창고입니다. 이 비유를 자세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부자는 곡식이나 물건들은 너무나 많아서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가 필요다고 생각한 것,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창고입니다. 사실 그 물건을 쓰지도 못하는 그런 창고, 이게 어쩌면 우리 인생들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모습의 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어리석은 인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이다 말씀해 주십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것은 하나님과 내가 공통점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 분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거룩하신대로 행동하십니다. 그것이 의로움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의롭게 행동하시고 판결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십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고 그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공급하시는 분이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운 분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 모습입니까? 얼마나 우리와 공통점이 없는 그런 것입니까? 참으로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저주하고 그에게 악행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내 의견과 반대된다면 그것을 악하다 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항상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 속에 시기와 미움이 솟아나는 그런 인생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거룩하신, 흠을 찾을 수 없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과 우리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전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완전히 가난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너의 가장 시급한 문제다. 그것이 너희들이 채워야 되는 가장 큰 필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내가 왔다." 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한 자이며,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가서 그러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찾아보겠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 3:14-15).

여기서 잠깐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잡혀,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고소하니까, 그 고소가 정말로 맞는지를 심문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께 여러가지 질문을 하였을때, 예수님의 대답과 여러가지 증거들을 보니 예수님께 대하여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 자신이 악행을 하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저에게서 죄를 찾을수 없도다." 이것이 재판관인 빌라도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죽이는 그 형벌에 내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나쁜,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생각해 낸 것이 그때가 유월절이었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추석이나 설날 같은 큰 명절입니다. 우리도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이 사면을 하죠. 대통령 권한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을 풀어줍니다. 그런 것처럼, 로마 총독인 빌라도도 자신의 권한으로 한명을 그 명절에 놓아줄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이 죄 없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은 죄가 없도다. 유월절이면 한 사람을 놓아주는데, 내가 이 사람을 놓아줄까 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반대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풀려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풀려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바라바를 풀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바라바가 어떤 사람이냐면 성경에 강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살인한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이런 악행을 저지른 사람인 것입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십시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고, 이 바라바를 풀어 내보내게 됩니다.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예수님,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자를 놓아 주기를 구하며"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구하였다.
참 이것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과 공통점이 없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고 살인한 자를 내어주라고 했습니까? 사람들이 살인한 자와 공통점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거룩하고 의로운 자와는 공통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언제 확인하게 되느냐면, 이럴때 입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될 때에, 그 중에서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싫은 사람, 저 사람은 정말 싫다. 저 사람하고는 같이 있고 싶지 않다. 쟤는 왜 하는 것마다 나와 반대지?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매일 거짓말 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고 그런 사람이라면 그럴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다른 데로 가고 다른 사람이 왔는데 아주 신사인 것입니다. 항상 정직하게 행동하고 옳은 말을 하고, 그런 사람이 왔습니다. 그런데 같이 지내는데 그 사람도 왠지 싫은 것입니다. 왠지 잘난 체 하는 것 같고 그리고 시기심이 들고, 그리고 나는 조금 약간 꼼수를 부리고 상사가 안 볼때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옆에 온 사람은 항상 부지런하게 일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내가 조금 불의하게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럴때에 볼때, 미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볼때, 그때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히려 내가 살인한 자와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고 이 불공평한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거룩하고 의로운 자가 내 앞에 나타났을때, 내가 그분도 싫어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사람과도 함께 있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내가 얼마나 살인한 자에 가까운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필요가 있는 존재인지를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필요가 채워졌을때,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 되었을때, 그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또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계실때에 여러가지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어쫓으시고 그리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된 그 나라에, 그때는 병이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고 병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이제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의로 통치하시는 그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맛보기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라는 말씀을 그분의 모든 행하신 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를 통해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이것도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이 장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문에 앉아 있습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예배하는 하나님과 굉장히 가까운 그런 장소입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의 죄악됨으로 말미암아 성전 안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해서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하는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밖에는 거지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불구이기 때문에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돈을 구하면서 그것으로 연명하는, 하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앉은뱅이들, 완전히 무력한 그런 사람들이 성전 밖에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거지가 앉아 있었던 문은 미문, '아름다운 문'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었습니다. 참 그 문은 사람들이 멋있게 장식을 해서 아름다운 문이라고 불릴만한 그런 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많은 화려한 것들이 우리 눈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이루어 낸, 많은 풍요로운 것들이 이름은 아름다운 문이라고 이름 붙여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 밖에는 사람들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는 무능력한 거지들이 앉아 있으며, 그 문 안에는 사람들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는 죄로 더럽혀진 마음으로 자신의 탐욕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서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미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가장 큰 필요가 무엇이며, 그 필요가 채워졌을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이와 같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책임이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이것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거절했던 메시아를 이제 그들이 돌이켜서 영접하게 될 때에, 이제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다시 세우실 것을 약속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 이제 여러분이 자신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그것을 구하고 그리고 그 필요를 채워 줄수 있는 예수님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이 여러분의 그 필요를 채우실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것이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공통점이 전혀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공통된 것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올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빌라도가 그 결론을 내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죄도 없으셨지만 바로 여러분의 죄 때문에, 여러분의 죄를 지고 그분이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믿으신다면 이제 여러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는다면 이제 하너님께서는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시고 이제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은 아버지와 자녀로서 공통점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제일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냥 창고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미워는 그 여러분 속의 죄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계속해서 그 마음 속에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오직 여러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분을 믿으신다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여러분에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