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1일 일요일 강성찬 형제님
< 복음말씀 : 주님의 선한 증거 >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딤전 6:13).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한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 그분께서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실존 인물입니다. 우리가 여러 역사 문헌들을 살펴 보면, 이 사람은 약 26년부터 36년까지 로마인으로서 이스라엘 지역, 유대지역을 다스린 총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시대 때에 일본 총독이 와서 우리나라를 다스린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로마 제국이 군사력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고 거기에 총독을 보내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때, 그 이스라엘 땅을 다스린 로마 총독이 바로 이 본디오 빌라도 입니다. 성경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다시한번 그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여기 기록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총독,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선한 증거로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가 이제 예수님을 심문하고, 정말 예수님께서 잘못이 있는지 그것을 조사해서 판결을 내리는 그러한 중요한 심문 입니다. 이제 본디오 빌라도가 심문 할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선한 증거로 증거 하셨습니다. 특별히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신 것인데 여기에 선한 증거로 증거하셨다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재판에서 재판장이 물을때에, 대답할때에, 정직하게 대답하였다고는 말할수 있어도 선한 증거로 대답하였다고는 하지 않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것은 선한 증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님께서 하신 증거를 잘 들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선한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를 잘 받는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그러한 대답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선한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본디오 빌라도가 질문할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어떤 말씀으로 대답하셨는지를 함께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그 선한 증거를 여러분이 잘 들으신다면 여러분 가운데에 선한일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참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수 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선한 것입니까?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얼마나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까? 이것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재판하는 그런 과정이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요 18:28-31).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셨을때 사람들이 그것을 듣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기 생각으로는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 오히려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너희들은 죄인이다. 하나님은 겉 모습만 보실뿐 아니라 너희들의 마음까지도 보신다. 참으로 너희 마음이 어떠한지를 한번 정직하게 살펴보아라. 너희 마음속에는 이기심과 탐심, 음란이 가득차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반드시 심판 하신다. 너희들은 그 상태로 있다가는 죄 가운데서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충성스럽게 그들의 상태를 정직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를 싫어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아서 그때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데리고 와서 이 사람을 심판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급하게, 아주 빨리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해서 여기 기록된 대로 그때가 새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총독에게 가서 빨리 심판해서 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아니 새벽에 뭐 그런일을 나에게 재판해 달라고 하느냐?" 라고 하면서 "너히들이 알아서 재판하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유대인들은 "우리는 지금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습니다. 이 사람을 죽이는 재판입니다. 다른것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는데, 이것은 이 사람을 사형을 시키느냐 마느냐, 죽음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당신이 재판을 해줘야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어쩔수 없이 재판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선 여러분에게 첫번째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것은 이 재판은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선한 증거는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그것이 심각한 문제인지를 알고 빌라도는 새벽이었지만, 하기 싫었지만 재판을 하러 재판 자리에 앉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이 선한 증거는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빌라도처럼, '아, 나 오기 싫은데, 별로 관심 없는데, 억지로 왔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찌라도 이것이 죽음의 문제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문제이고, 그리고 바로 여러분의 죽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큰 수술을 받거나 죽음앞에 서본 사람들은 그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압니다. 그냥 평상시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살다가 죽음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제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외에 다른 문제는 이제 하찮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죽음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죽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나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떨어지는 영원한 죽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 앞에서 진지하고 심각하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에 어떻게 대하는지가 여러분의 죽음의 문제도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나와 아무 상관없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이제 영원한 죽음 가운데서, 지옥의 그 불못 가운데서 여러분은 영원토록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 관계 되어 있음을, 이 예수님의 증거를 듣고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신다면 이제 여러분은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영원토록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제 빌라도가 예수님께 몇가지 질문을 하는 것을,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를 보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빌라도가 질문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빌라도가 첫번째로 예수님께 질문하는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렇게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유대인의 왕이라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직접 물어본 것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7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 18:37).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하여 "내가 왕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왕이십니다. 어떤 분들은 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되어 있어서, "아니, 한국인의 왕도 아니고 유대인의 왕인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그냥 다른 나라의 왕이 아닌가?" 라고 질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것은 성경적인 특별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만의 왕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대표를 세워서 온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항상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통해서 온 세계를 축복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주신 유대나라,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의 왕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온 땅을 다스리겠다고 말하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특별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왕에 대해서 우리가 성경의 말씀대로 잘 이해해야 됩니다. 그분은 여러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온 세상에게 축복하실 왕인 것입니다. 관련해서 한군데를 살펴보겠습니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2-13).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5).
여기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서 임금 삼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그것을 피하시고 혼자 산으로 가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왕이신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셨을때, 그리고 시간이 길어졌을때,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먹을것이 없어서, 그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자, 이제 주 예수께서는 그 가운데 있는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떡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시고 피하신 것입니다. 만약 다른 세상의 왕들 같았다면, 그러한 기회에 흔쾌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왕 됨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왕을 삼고자 할때에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왜 거절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빵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그들에게 계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그런 양식을 먹는다 할찌라도 그들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죽는다면 그들은 죽고나서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살때에, 빵을 공급하는 것은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왕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성경의 하나님 외에 다른 종교가 다 그런 것들 입니다. 다른 종교는 왕을 삼아주면, 그 종교를 섬기고 그 종교를 높여주면, 거기서 빵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나를 왕으로 삼아주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습니다." 그것이 돈이건, 그것이 건강이건, 그것이 명예건, 혹은 그런것을 떠나서 조금 고상하다고 말할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원하면서 따르고 종교를 따르고, 그런 종교를 왕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의 참된 해결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여러분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6-27).
주 예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만족을 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왕을 따른다면 우리의 결국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 밑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의 결국은 잃어버려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의 형편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딱한 것입니다. 다른데 의지할 곳이 없는 한 아이가 부모님을 잃어버렸다고 하는것은 그것처럼 절망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만족을 주실수 있는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불행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정말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에게 참된 왕이 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것은 35절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잠깐 여러분을 만족 시키고 사라져 버리는 그런 썩어지는 양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결코 주리지 아니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떡을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떡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참으로 이분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은 굉장히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단지 빵으로 만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많은 돈이라고 할찌라도 만족되지 않습니다. 많은 명예를 얻는다고 할찌라도 만족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온전히 만족 시키실수 있는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 그분 홀로 우리를 온전히 만족시킬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왕께서는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실제로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이제 그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 예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하고 주리지 않도록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왕인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빌라도가 두번째 예수님께 물은 질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요한복음 18장으로 가서 보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은 것은 "네가 누구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욍이다."라는 말씀이었고요. 그 왕은 앞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시고자 하시는 왕인 것을 보았습니다. 두번째로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을 심문할때에 이런 순서로 진행이 되는 것이죠.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 18:35).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신 것입니다. 37절에 우리가 아까 읽은대로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참으로 그분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주 예수께서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을때, 38절에 빌라도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빌라도가 한 이 질문은 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아마도 여러분도 이러한 질문을 마음 속으로 여러번 하셨을 것입니다.진리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추구합니다.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하고 있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인류가 수천년의 역사동안 많은 철학자들과 많은 사상가들이 찾고 그 답을 구하고자 했던 그 질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의 힘으로는 찾지 못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질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참 모순적이게도 빌라도는 그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그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 앞에서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그 진히에 대한 말씀을 듣지 않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이 빌라도와 같은 그런 자세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진리의 답을 구할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오직 하나님만이 그 모든 지혜를 가지고 계시는, 모든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계시해 줄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실때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마음을 열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빌라도처럼 그 진리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어리석게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공부해서 진리를 알수있어! 내가 이 책도 저 책도 보고 또 다른 사람, 훌륭한 사람들의 말도 들어보고 해서, 진리를 알수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만약에 그런 자세로 있으시다면 여러분은 계속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만 반복해서 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히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이 예수님의 증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이 두가지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가장 큰 진리입니다. 그것을 3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우선 첫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나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 왕으로서의 일을 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때에, 엄마 뱃속에 잉태하였을때에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태어나면서 이 세상에서 존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게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도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에 왔다'고 말할수 있는 분입니다. 다른곳에 계시다가 마치 이곳에 오신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은 태어날때부터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이제 우리의 왕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또한 그분은 태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또한 우리에게 놀라운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여기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큰 능력을 가진 분으로서, 우리와 다른 그 모습으로서 이 땅에 오셔가지고 통치를 하신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죽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지은 우리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지 용서가 되기 때문에, 이제 우리를 대신해서 피흘리고 죽기를 위하여 우리처럼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진리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말씀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하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하신 일을 통해서 또한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여기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증거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증거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반문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대로 일이 술술 풀리게 하지 않으시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면, 건강하고 잘 살고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내 삶 가운데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증거를 하십니다. 우리가 부인할수 없는 그 분명한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받아야 되는 그 죄의 형벌을 자신의 아들에게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히 예수님을 잘 따르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이 구절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여러분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을 때에, 그때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바로 그런 여러분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참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증거입니다.
이제 빌라도는 세번째로, 예수님이 하신 죄가 무엇인지를 심문합니다. 이제 그 죄에 대해서 듣고 판결을 내리려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이제 빌라도는 심문을 한 후에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공식적인 이 재판의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죽을만한 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죽어야 하는 어떠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분 자신에게는 어떠한 죄도 없었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오직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대신 죽으신다면 여러분의 죄를 온전하게 속할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흠 없는 희생제사만이 우리의 죄를 온전하게 속할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죽음이,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온전하게 씻는것을 이 빌라도의 판결을 통해서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분의 그 십자가 사역이 바로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음을 믿고 여러분의 그 죄를 속하는 제사였음을 분명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빌라도는 이렇게 해서 재판을 마치고,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독촉에 이기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사형시키라고 내어줍니다. 그리고나서 한 가지 일을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2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된 후의 일입니다.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마 27:62-66).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1-15).
이제 우리 주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하신 그 선한 증거는 끝이 났습니다. 빌라도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그 선한 증거가 끝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주 예수님께서는 다시한번 빌라도에게 선한 증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에게 증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을때에, 이제 그것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거짓말을 하기로 합니다. "총독에게 이렇게 말해라. 우리가 잘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이렇게 거짓말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에 유대인들이 와서 "예수님이 죽고나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지면 더 큰 말썽이 생기니까, 이제 그것을 단단히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그 말을 듣고 "파수꾼을 세우고 힘대로 굳게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돌을 인봉까지 하였습니다. 총독이 돌로 막고 이것을 열지 못하게 인봉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세워 굳게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굳게 지키는 무덤안에 시신이 사라졌다면 빌라도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깨닳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시 부활하셨구나. 정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정말 그분이 하신 모든 말이 사실이구나,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구나.' 이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한번 빌라도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으실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이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그분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여러분의 참된 왕이십니다. 참으로 이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복음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복된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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