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5일 일요일(요약1) / 김보영 형제님
< 복음 : 십자가의 강도 >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2-43, 개역한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릴때 두 강도도 그 옆에 달렸습니다. 똑같이 십자가에 달렸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예수님께 요청하게 되고 그는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이 두 강도는 곧 죽게 될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인데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낙원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양쪽에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지라도 이 강도와 같은 운명을가지고 있음을 부정할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개역한글)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지 않았다. 어찌 이런 상도와 같은 형벌을 받는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행함으로 죄를 정하지 않으십니다. 행하기 전에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이미 죄를 행한 것으로 보십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상대를 보고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것으로 보십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죄의 결과를 말할때에 로마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진 사람은 사망할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람은 한번 죽는것은 정하신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자기 죄를 위해서 어떤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죽음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강도가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을때 주님께서는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어떤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개역한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이 되셨습니다. 침례요한은 주님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주님은 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깨끗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값으로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이 강도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이분이 죄없이 돌아가시는 분이구나, 이분은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조롱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합니다. 구원해 달라고도 못하고 다만 생각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요청했을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율법에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말씀이고 율법에는 조금의 흠도 점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그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본성에서 나오는 죄를 거부할수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사람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인간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마가복음 9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44절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46절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막9:43-49, 개역한글)
인간이 단지 죽는다는 것을 통해서 죄값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심판은 영원한 지옥 불못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10, 개역한글)
지옥의 형벌은 우리를 미혹에서 죄 짓게 만든 마귀와 함께 유황불못에 던지우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 밤낮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강도는 예수님께 구원 요청을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강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강도가 찰나의 순간에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찰나의 삶에서 주님을 만나고 구주로 고백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강도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으로부터 돌이켰습니다. 나는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이분이 죽으시는 것은 내 죄를 위해서 죽으시는 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강도를 꾸짓고 예수님께 구원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구원 요청을 전혀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른이든 어린이가 되었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구주로 알고 마음으로 영접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구원해 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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