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짐 자비스 형제님

덕언 : 주님의 신성 세가지와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

박이레 2026. 9. 22. 15:02

덕언 : 주님의 신성 세가지와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9월 6일 일요일

마가복음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2장입니다. 이 시간에는 마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우리 '주님의 어떠한 부분들'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이 다른 네개 복음서 중에 가장 일찍 기록된 복음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50년 또는 6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많은 공격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마가복음이 그러한 내용이 없다라고 많은 두꺼운 책으로 기록하고 공격하였지만, 마가복음은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주님의 신성에 대해서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심지어 요한복음보다도 더욱 마가복음에서 우리 주님의 신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한 가지 예를 마가복음 2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5절부터 10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막 2:5-11).

우리는 주님께서 여기에 중풍병 들린 병자를 낫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죄를 사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행동하셨음을 우리는 결론 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오래 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의 육체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그는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중풍병자에게 그 ‘죄사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즉시로 그 주위에 있는 서기관들이 여러 마음에 의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그 서기관들이 입술을 열어서 밖으로 그 말을 했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첫 번째 부분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 신성을 두 번째로 나타나신 것은 '그들의 중심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8절에 "예수께서 그 중심에 아시고" 이르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아시고, 그리고 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막 2:9).

어떤 것이 더 쉽겠습니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주님께서는 10절과 11절에 이어서 그 ‘능력’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0-11).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1. '죄사함'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서기관들의 2. '그 중심을 아시고', 그리고 마침내 "네 상을 가지고 일어나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는 3.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부분에서만 우리 '주님의 신성'에 대해서 이 세 가지 부분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시편 103장 2절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참으로 여호와께서 죄를 사하시고 또 모든 죄를 고치신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와 같이 행하시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마가복음의 각 장마다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각 장마다 우리 주님께서 나타내신 그 신성이 나타내는 부분을 찾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예는 1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61절부터 65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1-65).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온전하게 나타나는 그 장면이 바로 이곳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빌라도에게 보내기 전에 심문하는 장면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아주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훈련 가운데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다 암송해야 되는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손으로 성경을 가리고도 그것을 다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대제사장이 주님께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이들은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그들의 질문 가운데서 드러낸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대답은 구약의 세 가지 점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에 나타나 있는 "스스로 있는 자", "Iam"이라는 그런 표현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3장 14절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Iam"이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너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시편 110편 1절을 살펴보게 될 때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 110:1).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그 구절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요소를 보면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구약에서 다니엘서 7장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13).

그리고 14절에서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4).

우리 주님께서는 그분의 짧은 대답 가운데 그분의 신성을 말하고 있는 구약의 세 가지 구절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주님의 대답을 듣고 이와 같이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더 다른 증인을 요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사실 그 다른 모든 증인들은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유일한 참된 증인으로서 그분의 신성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제사장의 반응은 자기 옷을 찢는 것이었습니다. "그 참담한 말을 우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무리들은 "사형에 합당한 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주님을, 영광의 주를, 그분의 몸을 치며 그분을 모욕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신성에 대해서 참 아름답게 증거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또 다른 여러 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은 시간에 한 가지를 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가복음 13장에, 우리는 주님이 여기서 미래에 있을 일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됩니다. 24절에 '환난'을 말씀하시고, 25절에 '어떻게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6절에 그리고 주님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6-27)

우리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이 말씀에서 구약의 여러 말씀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신성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다니엘서 12장이 여기에 인용된 말씀이고, 그리고 신명기 30장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분 자신은 참으로 그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장래에 있을 일을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 일이 다 이룰 것을 분명히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32절을 보게 될 때에 잠깐 이상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살펴볼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여기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이용해서 주님께서는 제한된 지식이 있다, 그 지식이 제한되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이 같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그분을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공격합니다. 요한복음 16장을 그것과 관련돼서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요 16:29).

주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말씀하셨고, 그것에 대해서 제자들은 "지금은 밝히 말씀하셨다."라고 응답합니다. 그런데 30절에 이렇게 말한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요 16:30).

이제 제자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21장을 보겠습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베드로가 주님께 이렇게 고백한 것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 그 말씀도 동일하게 주님의 신성을 말하고 있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도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단지 이 부분에서 멈춰서 제한되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한 가지 알지 못하는 일'을 말씀하셨는데, 참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와 그 시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드린 이후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3장 말씀 그 표면적으로는 그분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서로 모순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해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근거해서 어떤 것도 우리 주님을 제한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결혼식 잔치를 벌일 때 한 가지 관습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습을 통해서 마가복음 13장에 주님의 그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식 관습에서는 아버지가 그 결혼식이 시작된다고 선언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그 아버지가 선언을 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 그 식이 일어나는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선언을 하기 전까지 결혼식은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는 마가복음 13장에 주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선언하는 지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 선언이 있기까지 그것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3개의 다른 카테고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에 대한 지식'을 또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그분만 가지고 있는 또한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오직 그 아들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 날과 시가 우리의 인식 가운데 언제 일어날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믿기로 우리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것을 선언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알다'라는 이 단어 자체를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제가 여기 통역하는 강형제를 "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한적인 그런 지식 가운데서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 아내에 대해서 "내 아내를 안다."라고 말할 때는 거기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그 '안다'라는 그 의미가 무슨 의미로 했는지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이 기록된 그 문맥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 26절과 27절에 나온 그러한 말씀과 함께 살펴보게 될 때, 여기 "인자가 그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이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참으로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또한 온전한 사람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