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한번 죽는 것과 그 이후의 심판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9월 6일 일요일
히브리서 9장 말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6-27).
요한계시록 20장 말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1-15).
우리가 방금 읽은 두 구절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누구나 마주치게 될 것에 대해서 그 히브리서 9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요. 휴거를 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우리 자신의 운명은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온 부분에는 이러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절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진실은 누구나 마주쳐야만 하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미국에서 살았던 어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버트 온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인데요. 그냥 '버트'라고 간단하게 줄여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성경을 불신하고 성경을 조롱하던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는 마을에 오는 어떠한 목회자들에게도, 설교자들에게도 그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서 공격하고 비난하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아주 젊은 설교자가 버트가 사는 마을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자를 공격할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 길가에서 만났을 때, 버트가 그 목회자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면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잘못된 걸 믿고 있고 조작된 걸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성경을 믿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예수님을 믿지도 않거니와 그 교회에서 하는 일이 모두 잘못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버트가 이 목회자에게 한 말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좋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가르치려고 하는 모든 것을 저는 배척하고 듣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러한 저에게 당신은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때 이 설교자가 버트의 눈을 쳐다보면서 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이 말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믿지 않으니까, 성경을 인용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설교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건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죠? 할 말이 그거밖에 없습니까?"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설교자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버트는 휙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가면서 이 설교자가 계속 반복해서 했던 말이 버트라는 사람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못을 지나 그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가게 되면서, 거기서 개구리가 개굴개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개구리가 계속해서 "심판", "심판"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제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눈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그동안 바보같이 행동을 하였는가, 그다음에 주님에게 구원에 대해서 간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이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었죠.
그러면 이제 요한계시록 20장 말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그 사도 요한이 본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 요한이 본 것은 "크고 흰 보좌"입니다. 여기서 '크고 흰 보좌' 중에서 "크고"라는 단어는 이것이 가진 그 '힘', '권력'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색깔이 "하얗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에 '결백함'을 상징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보좌”라는 것은 그것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희다”는 것에 '결백', '순수' 이런 것을 얘기하고 있고요.
이 세 가지 특징들을 저희가 모두 조합을 해봤을 때, 이 크고 흰 보좌에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모든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 저희가 찾지 않겠습니다만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침례 요한이 얘기했던 그 동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신 분, 모든 사람에게 그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분. 그런데 우리가 이 요한복음과 약간 다르게 요한계시록에서 본 우리 주님의 모습은 마치 사자와도 같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모든 사람들은 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 20장의 말씀으로부터 도망가려 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읽어서 아시겠지만 그들에게 숨을 곳은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이 설교가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말씀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도망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망가서 숨거나 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하나하나의 모든 죄인들은, 주님을 알지 않고 죽은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성경을 싫어하고 죄의 악을 행했던 이런 죄인들,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했던 자들, 자기 자신이 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제 반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의로운 죄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에 의거했을 때, 그러한 죄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제가 봤을 때 가장 구원을 전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은 선하다'라고 주장하는, '성선설'에 대해서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그 불못 가운데서 당할 그 고통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좋은 교회의 일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침례를 받았지만 세례를 받고, 일반적인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 구원에 대해서 정확한 개념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죠.
또 계속해서 자기가 할 일을 미루는, 그러니까 지연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계속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뤄서, '언젠가 내가 구원을 받겠지.'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혀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만큼 충분한 빛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죽음 심판으로 책망받은 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주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누가복음 12장 48절 말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경도의 심판이 행해질 것이고, 우리가 또 생각해야 될 것은 이러한 비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과 행악에 대해서 다 기록하신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그 심판대 앞에서는 시간이 간다고 해서, 그러한 기록이 오래전 일이라 하더라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기록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행한 그 사소한 모든 잘못까지도 그것이 기록이 되고 노출이 될 것입니다. "감추어서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라고 누가 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감추 수 없고, 안 드러날 수 없다. 다 밝히 보여질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우리의 치부가 드러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러한 판결이 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들이 나에게 이제 무릎을 꿇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리고 "모든 혀는 주님을 주라 고백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논쟁을 멈춰야 하는 곳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큰 특징은 이 사람들은 논쟁을 멈추질 않습니다. 계속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그것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른 설교자나 어떠한 특정한 교인들, 성도들에 대해서 비방을 하고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 영원성에 대한 이야기를,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나타 나와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
여기서는 자비를 구하는 어떠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자비의 영역을 뛰어넘은 그러한 곳입니다. 증거가 너무도 차고 넘치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입들은 담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빛들, 그 자신에게 비춰졌던 빛들을 이 사람들이 거역하였고, 거절하였고, 그래서 영원한 그 어두움, 영원한 그 칠흑 같은 어두움을 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크고 흰 백보좌 앞에서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핑계를 지금은 댈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 교회가 맞는지, 저 교회가 맞는지, 나는 아직 선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성경에는 어떠한 교회를 다니라고 기록한 적이 없고,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중에 위선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지가 않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만 이렇게 하고 행동은 다른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들은 최악의 위선자들이고요. 하지만 그렇게 변명을 하는 것이 그보다 더 큰 위선입니다. 그 위선자들 사이에 자기가 숨으려고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죠.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위선자들을 지적하고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위선자 되는 걸로 다른 사람을 책망하거나 우리는 그러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 설교자가 마음에 안 들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분 좋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일인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죄를 짓는 게 괜찮다고 그냥 좋게 이 자리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제가 커다란 실수를 자행하는 것이죠. 이 설교자의 목적은, 여기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적은 여러분들이 죄에 대해서 깨닫고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비참한 상황이 있는지 알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이 죄라는 것이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게 만든다는 것,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돌이켜서 정확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 나온 것처럼 이 "불못에 던지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죠.
여기 '불못'이라는 것을 보면, 불로 묘사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을 때 "불에 데이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는 표현을 하신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그에게 임했다", 주님에게 임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커다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거기서 모든 것을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불못이나 이러한 지옥이 없다면 주님께서는 뭐하러 그러한 고난을 감내하셨겠습니까? 이러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갈 장소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어떤 장소인지 이해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런 고통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 나무에서 주님의 몸으로 이러한 커다란 죄를 홀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커다란 진노,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이러한 묘사가 정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 하나님의 진노, 만약 하나님의 아들을 순종치 아니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다면, 그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 위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던 이 진노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들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여러분들이 만약 구원을 받는다면 그 순간 여러분들이 이것을 뚫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는다면 그 하나님의 진노를 뚫고 나와서 구원의 그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캐나다 중부에서 있었던 어떠한 일을 여러분들에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3명의 남자가 농사를 짓기 위한 땅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찾는 와중에 저 지평선 너머에서 뭔가 이렇게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불길이, 이제 들불이죠. 들불이 나서 자기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 두 사람은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달아날 곳이 없다.'라고 생각을 하였고, 하지만 이 세 번째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바람의 향방을 먼저 살펴보았고, 불길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을 때 거기는 마른 풀들이 있었고, 그 바람이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죠. 저 멀리서는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고, 화염이 자신들을 이렇게 덮쳐오게 될 때, "이미 탄 자리로 빨리 옮겨서 거기에 서 있어!"라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미 불이 난 곳에 있어라!" 왜냐하면 불길이 이미 스쳐 지나간 곳에는 다시 이 화염이 우리를 감싸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죠.
제가 요한계시록 20장을 읽게 될 때 이러한 '불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특별히 생각하게 될 때 이미 화염이 지나간 자리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이것을 지고 다 해결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시인하였을 때 저는 이미 불탄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는 불길이 다시 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심판을 홀로 지고 가셨고, 저에게 이 분노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시키기 위해서 주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이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서 있는 것, 이 불길이 모두 지나간 이 영역에 우리는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물든 것이 잠겨 있는 그러한 땅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이러한 주님의 피로 인한 명백한 안보와 안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아버지의 손을 뚫고 나올 수 없다." 뿌리칠 수 없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과연 오늘 어느 곳에 서 있습니까?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이미 이 불길이 지나간 그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안전한 곳에?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서 그 화염이 다가올 그 자리에 혹시 서 계신 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이 무엇을 하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까? 움직이길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찾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복된 것을 여러분들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크고 흰 백보좌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을 마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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