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개요 :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9월 3일 목요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많은 성도님들을 뵙게 돼서 확실히 기쁩니다. 제가 제대로 발음했는지 모르겠는데 이 풍산동 모임의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신약 성경에 있는 '유다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성경에 나와 있는 책들 중 매우 짧은 책들 중에 하나입니다. 1장과 25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어로 603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몇몇 구절을 읽으면서 이 유다서의 ‘개요’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유 1:1-2).
여기서는 유다라는 사람이 이 서신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이고 그리고 "야고보의 형제"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유다를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우리 주님의 육신의 형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55절에는 그는 다른 여러 형제 자매들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 유다가 믿는 자인지에 대한 기록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가 믿지 않는 자였을 거라고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 다른 많은 서신서의 제자들처럼 성도들을 "사랑하는 성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 1장에서 '사랑'으로 번역 되겠습니다. "사랑하심을 얻고" 여기서 영어는 '거룩하심을 입었다'고 돼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심을 입은 것"과 동일한 말입니다. 그리고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 안에서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서신서는 주후 60년쯤에 쓰였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이 '사도들의 행위'라고 부르는 대신, 사도들의, '주님의 적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3절 4절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3-4).
1-2절은 유다의 부르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에게 "믿음을 위해서 싸우라"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안팎에서 우리를 파괴하려고 하는 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소 캐나다에서는 저희가 방금 읽은 구절에서 저희가 많이 다루고 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3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데,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누구든지 믿음을 위해서 힘써 싸우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된 말씀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이 말로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될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행하여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에베소서 4장에서 읽을 수 있는데 사랑으로 말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형제님의 사랑하는 믿음 안의 형제가 캐나다에 있습니다. 그는 종종 이 구절을 인용했는데, 모임 말해서 그가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는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공격하였습니다. 그가 좋은 친구였지만 어떨 때는 대하기 어려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대부분에 있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또 맞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그로부터 등돌리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랑과 긍휼히 여김"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믿음의 기초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가르침과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어떤 것들을 가져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읽은 4장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을 하려고 합니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일"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이러한 적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밖에서부터 우리의 담을 허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쁜 것은 안에서부터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모임을 쌓아가고 지어나가는 데, 견고케 하는 데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당면한 모든 것들은 그 당시 성도들도 당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모임에서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성경에서 그와 비슷한 문제들과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좀 긴데 5절부터 16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 1:5-16).
우리는 방금 읽은 절들을 통해서 우리를 대적하는 적들과 대적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개요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1. 첫 번째는 '사도의 부르심과 천거'에 대해서 나와 있고요. 그리고 2. 두 번째는 '믿음을 위해 싸우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3. 그리고 우리가 처한 ‘대적과 대치’하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나와 있는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집트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멸망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이 땅에 있는 성들로부터 이 하늘에 있는 성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한 천사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6절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매우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단순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이 천사들은 루시퍼 사탄과 같이 함께 반역에 동참한 천사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네피림이나 다른 것과 같이 연관시키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추락한 천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론과 관련해서 제가 큰 문제로 생각하는 점은, 아마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어떻게 타락했는가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번 일어났던 일이 그 후에 많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이 사람의 죄악에 대해서 그 책임을 덜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다면 이 사람들의 죄악된 습성을 타락한 천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에 대해서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적당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기까지의 그들을 심판의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는 "소돔의 고모라"에 관해서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7절에 묘사된 장면을 보면 '그들의 행위'를 묘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는 이 소돔과 고모라를 치욕되고 죄가 가득한 그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태복음 11장에 나와 있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곳에서 갈릴리 주변에 많은 고을들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거절한 빛 때문에, 이 심판의 날에 소돔과 고모라가 그들보다 견디기 쉬울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우리 주님의 세대에 그 세상과 비교하셨습니다. 그것은 8절입니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유 1:8).
거룩하지 않은 행위는 언제나 잘못된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언제나 그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형제들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8절에 나와 있는 대로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권위를 업신 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우리 주변의 현재 상황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9절에서 이 천사장 미가엘과 관계돼서 이것과 연관 있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변론"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여기서 고백드릴 것은 저도 이 변론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탄이 왜 모세의 육체를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탄의 그 동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천사장 미가엘은 그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뤘습니다. 9절에 보시면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영적인 것을 다룰 때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임 안에서건, 밖에서건, 동일합니다. 우리 사이에 어떻게 말하는지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주변에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저희는 말할 때 언제나 조심하여야 합니다.
저는 가끔 우리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은 자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주님을 간증하기를, 드러내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매우 담대히 행하였습니다. 주님을 변론하기 위해서 가끔씩 아주 격렬하게 큰 다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토론이 격해지고 싸움이 되면, 결과야 어찌 됐든 간에 그 토론을 전부 진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이 서서히 올라가고, 그리고 그 다른 상대방은 자신이 믿는 것을 더욱 굳건히 붙들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대화에서 말로서 그 자를 이기더라도 그의 영혼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저희는 조심스럽게 사랑과 긍휼함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자들에게는 우리는 그들과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우리는 이 장의 마지막 줄 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11절에 또 다른 흥미로운 예로서 저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구약에 다른 '3명의 인물들'이 언급됩니다. '가인'과 '발람'과 '고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이 뭘 상징하는가 또한 언급되고 있습니다.
1. 가인은 '잘못된 종교'를 상징합니다. 그는 피가 없는 구원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수고한 것들을 가져왔지만 짐승의 피를 거절하였습니다.
2. '발람'은 그와 반대로 '잘못된 사역'을 상징합니다. 그는 돈을 받고 이스라엘에 대해서 나쁘게 예언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큰 삯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아간이 숨겨둔 바벨론의 옷이나 그런 것들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벨론 그 겉옷을 입지 않으면 가르치게 않겠다,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을 주지 않는 한 가르치지 않겠다. 그러한 자들은 이 발람과 같은 자들입니다.
3. '고라'는 '잘못된 예배'를 상징합니다. 그는 레위 자손의 한 지파였는데 아론의 제사장의 직위를 그가 대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땅이 열리고 그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삼켰습니다. 이것들은 현재 그리스도의 모임의 상황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잘못된 종교', '잘못된 사역', 그리고 '잘못된 예배'가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은 1세기 전에도 자기들이 구원받았다고 하고, 침례를 받았고, 모임에 들어온 자들에 의해서 일어났던 사실입니다.
이제 유다는 이러한 자들에 대해서 12절과 1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강한 어조로 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탄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는 구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그냥 흩날려가는 구름과 같은 자들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들"입니다. "거품을 품는 바다의 물결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이는 1세기에 일어난 모임의 간증입니다. 아마 오늘날은 이러한 자들이 모임에 들어오기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예언'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에 대해서 논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에녹서'라는 이 책에 나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에녹서는 전경에 들어가 있지 않나?”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 디도서를 이용해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디도서 1장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그리스도인(그레데인?) 가운데서 일하는 자였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시인이 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레데인들은 언제나 거짓말쟁이고 자기 배만 배불린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했는데 제가 잘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제 생각엔 그들이 그레데 시인들에 대해서 무언가를 인용해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그러한 문학에 대해서 익숙했을 거라고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기독교(?)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하더라도 그게 바로 성경에 기록돼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을 다시 반복하여 말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도 동일한 것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유다는 이 에녹서에 대해서 알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감동되어 그 부분을 인용하였습니다. 뭔가 진실된 것으로 인용하였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에녹이 이 절에서 말한 이것을 말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에녹은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우리의 휴거'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는 시간을 건너서 우리 주님께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장면을 보았습니다. 에녹은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우리 주님께서 다른 성도들과 같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같이 지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만 명”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오는 것은 "뭇 사람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그 누구도 이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 후에 이 '3개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경건치 않은 자가 한 곳에 모여 있고, 그다음에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경건치 않은 자는 영원한 불못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을 믿는 자들은 천년 왕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흥미로운 장면는 이 아담의 7세손이라는 이 이른 사람이 이 후에 일어날 예언에 대해서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명해지려고 하는 동기를 가지고 그렇게 됩니다. 혹은 이렇게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육신적인 정욕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제가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요. 제 옆에 테이블에 두 사람이 와서 앉았습니다. 저는 안 들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큰 교파 교회 목사였습니다. 아마 그 모임에 나오는 자는 수천 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는 그 교회 장로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교인들을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 그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프로그램들이 어떠했는지 그 자세한 세세한 내역은 알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 대화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는 그 장로에게 이러한 예산을 투입해야 많은 사람들을 더 모임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설득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명예를 위한 어떠한 것도 그 대화의 내용에 없었습니다. 그 대화에 단 하나의 말씀 구절도 인용되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기에 그들의 동기는 더 유명해지거나 아니면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들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 하나님의 모임의 사람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들이기를 바랍니다. 누구도 그의 지위가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 지위에 따른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동기를 얻어서는 안 됩니다. 혹은 돈을 더 벌기 위한 동기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18절에 나오는 대로 "기롱하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성령이 그들 안에 머물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모인 이 목적에 맞게 이 후의 구절들을 다루기를 원합니다. 1절부터 18절까지는 우리가 그러한 잘못된 교사들을 대항하고 그들에게 반항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 20절과 21절은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절 21절은 유다는 진정한 믿음의 성도들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1절에서는 "사랑하는"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한글로 말하면 좀 이상한데요, 아무튼 "당신을 사랑하는 여러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절 21절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0-21).
여기 이 두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네 가지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인 건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자신을 건축하는 데는 무엇이 연관되어 있습니까? 제가 서울에 와서 주변을 봤을 때 여러 가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많은 재료’가 필요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영적으로 저희를 건축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두 가지 것들이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제 자신을 건축하기 위해서 어떠한 재료들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잡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거룩하게 건축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빌딩을 지을 때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걸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더 많은 자원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많은 성도님들이 서재에 어떠한 믿음의 서적들을 소유하고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에 그렇게 수년 동안 저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러한 책들을 제 서재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지나면서 카세트 테입으로 녹음된 말씀이 있었고요. 그리고 나서 CD에 녹음된 말씀들이 있었고, 그다음에 전부 디지털화되면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무한한 메시지 정보가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와 정말 대단하다. 우리 손끝에 모든 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유다서에 관련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할 때 흥미로운 것은, 인터넷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곳에 수많은 풍부한 정보가 있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 또한 엄청나게 많은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뭔가 찾을 때 얼마나 그러한 잘못된 것들이 많은지 셀 수가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되게 좋고 이것이 성도를 세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중간 가운데 성경과 전혀 반대되는 것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 두려움은 젊은 성도님들이, 어린 성도님들이 그런 것들을 잘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게 좋고 유익하며, 어떤 것들을 듣고 읽어야 하는지 먼저 된 분들께 상담하며 교육을 받는 게 좋습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는 정말 좋은 유익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스펠홀 오디오’라는 사이트가 있고, 많은 곳에 가르침과 그리고 복음이 나와 있는 다른 영적인 유익한 사이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 서적도 멀리 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정말 유익한 많은 신앙 서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말씀 듣는 것을 유익히 여기고 많이 봤지만 책으로부터도 정말 많은 유익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공부하면서 노트를 적기에도 유익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우기로는 이렇게 노트를 적으면서 배우는 것이 학습을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건축을 쌓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2.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두 번째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공부하는 것들도 그다지 유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보고 싶고자 하는 것은 이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는 기도할 것을 다 외우고 나서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을 적은 다음에 그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짜로 하나님과 성령에 이끌어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할 때 가끔씩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성령의 말과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일날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까? 저는 모임에서 많은 성도님들이 그냥 단지 형제님들이 감사를 드릴 때 그것을 단순히 적어서 그걸 단순히 읽는 것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일어서서 성령에 의지하여 합당한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성령의 건축을 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자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성령이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을 여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것들을 즐기는 것'입니다. 단지 이렇게 하나님의 것들을 즐거워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를 경험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결정하는 하나님의 그런 풍성한 것들을 우리가 교제를 통해서 누리며 즐거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것들을 교제하고 나누기를 부끄러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이 오늘 저를 더 북돋아 줍니다. 돋보이게 합니다.
제가 서울을 돌아다닐 수 있을 때 젊은 형제가 뒤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영어로 잘 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말을 하였습니다. 그의 짧은 단어로 어떻게 그가 구원을 받았는지 말할 때 그것은 제 마음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것들을 즐기며, 즐거워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우리 가운데서 충분히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들을 나누는 데 있어서 언제나 이 모임의 장소에 모여서 나누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것들과 이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어디서 만나든지 간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4. 그리고 네 번째 것은 21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걸 읽기 전에 위에 나오는 몇 구절들이 이걸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우리를 이끌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김을 받고(?) 변화를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잘못된 것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오지만,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들도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모임으로부터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리고 어떤 자들에게는 23절에 나와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 1:23).
우리 중에 어떤 자가 죄 가운데 빠지면 영적인 자들을 그들을 구원해서 끌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걸 할 때 매우 조심히 그러한 일을 행하여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러한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제가 10대 때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결혼하지 않은 싱글 자매님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자세하게 말씀은 않겠지만 두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에 뭔가를 전달해 주기 위해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이 문을 열었을 때 그 두 방문자들은 그 안에 더 나이 든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녁 때 저녁밥을 먹다가 캐주얼하게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방문했던 소년 중에 아버지는 모임의 장로 형제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로 형제님은 밥 먹다가 일어나서 전화기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로 형제님께 전화해서 그 자매를 방문해 돼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분들이 그 자매님의 아파트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3절에서 방금 저희가 읽은 이러한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매를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눈물 흘리면서 자기가 죄악을 저질렀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악은 그녀를 교회로부터 단절시켰습니다.
저는 그때 13세, 14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기억에 큰 감명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일요일 날 장로 형제님들이 이것에 대해서 공적으로 발표했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젊은 자매님은 모임으로부터 출교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그 젊은 자매님은 다시 모임에 뒷좌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두세 달 안에 다시 그 자매님은 모인 안으로 회복되어 영접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자매님이 모임에 영접되었을 때, 많은 성도님들이 눈물로써 그 자매님을 환대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이러한 영적인 징계가 있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성도님들은 그 자매님이 다시 회복하고 모임으로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회개함으로 형제 자매님들에게 응답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자매님의 미래의 남편이 저와 좋은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님은 이제 다시는 그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주님을 향해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그러한 성도님들을 향해서 저희가 다가가서 그들을 다시 데려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저희들이 거절해야 될 자들이 있고, 그러한 자들은 그들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저희들에게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유다는 이러한 주제들을 다룬 후에 이 서신을 끝내고 있습니다. 24절, 25절을 읽겠습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유 1:24-25).
이 구절들은 특별한 설명이 없습니다. 저는 형제 자매들에게 이 말씀을 묵상하라고 맡기고 싶습니다. 저와 많은 영적인 성도님들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모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여기는 많은 모임의 형제 자매님들이 오늘 저녁에 와 계십니다. 제가 한국에서 많은 다른 모임의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서 매우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 만나게 될 때 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유 1:24-25).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일은 다시 저희가 구약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다니엘서 9장, 그리고 12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략하게 이 장들의 개요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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