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짐 자비스 형제님

복음 :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박이레 2026. 9. 4. 01:02

복음 :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8월 30일 일요일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3-6)

오늘 이 복음집회를 시작하면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한 가지 여러분에게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 기독교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기독교계라고 하는 거에 있어서 많은 잘못된 가르침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바로 '복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참 이것이 우리 마음에 비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드리는 질문은 '바로 이러한 순간이 여러분에게 있었는지'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감사하는 것은 제 자신의 인생에 바로 그러한 순간이, 참 그 그리스도를 아는 빛이 빛인 순간, 그 해, 그 달, 그 날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영적으로 이와 같이 다시 태어난 저의 영적인 생일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그 날인데요. 9월달에 있습니다. 그 후로부터 62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62년간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날 1964년도 11살의 소년의 마음속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빛이 비춘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말씀에서는 많은 영적인 페러독스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잃어버린 자들, 참 그들이 소경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소경됐기 때문에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독교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인터넷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찾아보신다면 많이 혼란스러운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해서 그와 같은 전파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어떤 놀라운 기적들을 행할 수 있다라고 선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어린 양의 피를 전하는 것 대신, 오히려 이 세상에 더욱 악하고 더러운 실행들을 장려하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참 우리 주위의 이 기독교계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주장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오히려 비판적이고, 냉담해지고, 오히려 조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은 기독교의 대적으로 나아갈 정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광경들을 보고 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들입니까? 구주에 대해서 너무나 잘못 오해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고, 이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너무나 변형시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 마음을 돌리고 완악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쁘게도 그 잘못 가르쳐진 그러한 것들을 믿고 따라가는 것들입니다. 이제 그들의 영혼을 스스로 파괴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의 진정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복음이라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기름 부음 받으신 그리스도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시선을 돌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뉴폴랜드 지역의 한 그리스도인 친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해리'라는 분이고 낚시업으로서 그 물고기들을 처리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 지역은 많은 어선들이 있고 물고기를 잡아서 항구로 가져오게 됩니다. 그 해리라는 친구가 감독하는 물고기 처리하는 공장에서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구원받지 않은 많은 일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하는 불신자 분들이 때때로 그 해리라는 친구한테 와서 많이 불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저렇게 한다." 참으로 이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그 작은 실수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그것을 불평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감독자 해리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혜리 씨한테 가서 그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잘못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리라는 분은 사람들이 이렇게 불평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지치게 돼서, 왜냐하면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러 온 그 사람들에게 해리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그들은 "당신이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죠?"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는 분들을 그렇게 비난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를 지금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지를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사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조용히 다른 길로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서 항상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이키고자 합니다. 제가 이 순간에 이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짐 자비스'라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을 의지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통역하는 형제님이나, 또한 여러분을 데리고 나온 그 부모님을 지금 보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는 약점이 있고 실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온전한 한 분, 거룩하신, 전혀 죄가 없는 그분께 시선을 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는 분입니다.

제가 어떤 청년들을 만나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이렇게 하곤 합니다. 그는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그것에 대해서 저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입니다.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무엇인가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 그는 어떻게 해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어리둥절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까? 어떤 저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나이 든 사람이고, 복음을 전하고 그 가운데 많은 구원받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수십 년간 그 복음을 전해온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 구원 받았다라고 말한다면 당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그 젊은 청년은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저를 바라보면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 질문을 들은 사람마다 모두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을 당신이 날 구원받았다고 해서 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은 어린 소녀였는데 슬픈 눈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단지 고개만 이렇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후에 즉시로 그 어린 소녀에게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사실 나는 너에게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된다."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과연 당신이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당신은 지금 구원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분,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전도자가 그 말을 해서 아무 소용이 없고, 여러분의 부모님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소용이 없다면, 과연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저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올바른 대답으로 여러분을 지금 모셔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는 순간에, 그 구원 받을 때에 저는 단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울면서 간구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얼마나 큰 소리로 그렇게 간구하였는지 아래층에 있는 저의 엄마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는 아래에서 올라와서 "너 지금 괜찮니?"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11살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 저는 지금 구원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의 어머니는 단지 3주 전에 막 구원받은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어머니에게 그 순간에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짐, 내 방에 와서 함께 성경 말씀을 읽어보자."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로마서 10장 9절 말씀을 읽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저희 어머니가 구원받았을 때 어머니께서 읽고 구원받은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아주 놀라운 구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저희 어머니가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그 말씀이 저에게 전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가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13절 말씀도 읽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저의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이 13절 말씀을 읽었을 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 순간 저는 참으로 제가 구원을 받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그분의 구원을 분명하게 확신시켜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 말씀, 이것은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그분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 가운데 이 말씀이 말하고 있는 특별히 '세 가지'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바라는 것은 이러한 내용들은 '영적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땅 가운데 사람들이 수년간 계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은 전혀 그런 영역이 아닙니다. 무신론자들은 단지 "우리의 몸은 영혼이 아니라 영혼은 없고 육체뿐이며, 그냥 죽고 나면 그 몸은 다시 먼지가 돼서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고 있는 이 성경에 따르면 그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에 대해서 그들은 완전히 무지한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1-2).

참 이 구절이 바로 사람들의 대적이 영적인 영역 가운데서 어떻게 그들을 사로잡고 역사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6장에서 그러한 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1-12).

참으로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영역을 사단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서 사단을 아주 강력하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적인 영역 그 위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다 통제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왕국은 이 세상 신인 사단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는 CS.루이스라는 한 유명한 작가가 이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그 모든 페이지들은 이 영혼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참으로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지금 사단이 통제하고 있는 영역이 있으며, 하지만 그 위에 우리 주님께서 통제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됩니다.
사도행전 26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여기에 사도 바울이 구원받는 그때에 우리 주님께서 이러한 내용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이와 같은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사도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우리는 여기서도 이 큰 대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가 있고 또한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눈이 '소경'되어 있는 때가 있고 그 눈이 '떠지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고 또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질문은 여러분이 어느 영역에 여러분이 있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수년 전에 '소먼 러쉬디'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인데 이슬람에 대해서 책을 썼습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비평하는,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으로 비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란의 후메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을 경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누구라도 그를 만나는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는 허가가 내려진 것입니다. 이슬람의 배교자로서 그는 지정된 것입니다. 그는 보호를 위해서 캐나다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토론토에 있는 CBC 방송국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CBC는 캐나다의 국립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그때 당시에 많은 기자들 앞에서 그는 회견을 하게 됩니다. 저는 운전을 하는 가운데 그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갔습니다. 그의 회견 가운데 그는 이와 같은 한마디를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역사하고 있는 두 개의 힘이 있다. 하나는 신성한 힘이 있고, 또 하나는 불경스러운 힘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그 불경스러운 쪽에 속한 것이다." 그 순간에 그 회견장은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관중들은 박수를 쳤고 그것을 환영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 작가의 말 가운데 우리는 이 세상의 영적인 영역이 그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그 신성한 쪽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하나님께 속한 그 신성한 영역에 대한 내용이 바로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영역에 속하고 계십니까?' 그냥 그 깊이가 얇은, 하나님을 떠난, 불경건한 그 영역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까? 하지만 영적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영원한 그 영역에 속하기를 원하십니까? 로마서 6장에서는 이것을 아주 아름답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여기에 분명한 그 구분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망을 선택한 자들'이 있으며, 또한 '생명을 선택한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망이라는 것은 '죄의 삯'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죄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망과 관련돼서는 최저시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의 그 최대치의 대가를 그들은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더 많은 임금을 달라고 데모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서는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스코틀랜드 북쪽에서 이 구절과 관련된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한 남편과 아내의 한 부부가 탄광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인 그 남편은 지하에 그 석탄을 캐기 위해서 일하러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저희는 그때 당시에 그 마을에서 복음 집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부인이 그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형제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은 그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심판의 두려움을 느꼈고 구원을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그분의 남편은 밤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부인이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자신의 책상에서 성경을 펴고 읽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그 밤에 작업을 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고 나가고자 하는데, 이제 상 앞에서 성경을 펴고 울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 부인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그 영혼의 괴로움을 느끼고 구원을 얻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은 복음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아주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도시락을 들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자신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과 관련해서 이렇게 쏘아붙이고 나갔습니다. "당신은 그 은사를 받고 나는 삯을 위해서 일하러 간다." 죄로 말미암은 그 쓴 마음이 그를 아주 완고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련한 부인은 그의 남편이 떠난 후에 상에 앉아서, 그 남편이 말한 그 말에 너무나 마음이 아픈 가운데, 그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이 말씀에 기록된 그 하나님의 은사, 그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그리고 그는 침대로 돌아가서 잠을 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아침이 되기 전에, 이른 아침에 그 마을 전체를 울리는 알람이 울리게 됩니다. 그 마을에서 그러한 갑작스러운 알람은 탄광 안에서 뭔가 큰 폭발과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 탄광 입구로 가게 됩니다. 참으로 몇 시간에 걸쳐서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그 탄광 가운데서 구조되어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서 나오기는 했지만 아주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잃은 채로 실려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인에게 너무나 두렵게도 그의 남편은 죽은 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실려 나오게 됩니다. 그 여인이 그 남편이 했던 그 마지막 말에 대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을지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나 그 선물을 받으시오, 나는 삯을 받으러 나갈테니!"
참으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서 이 순간 지금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취하시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선물을 택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그 생명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죄의 대가인 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복음을 전할 때에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유, 그런 것은 아주 옛날 구닥다리 이야기가 아닙니까? 좀 이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그것은 어디 산골짜기에서나 혼자서 말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 사회에 필요한 그러한 이야기를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참 그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부름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변경해서 젊은 사람들이 저 좋아할 만한 그런 걸로 우리가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임무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청년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생명을 주는 말씀이고 오직 사람이 이것을 의지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주님을 의지한다면 분명하게 영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분께서 이 땅 가운데 계셨을 때 그분은 이 세상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시대에 그 문화의 동화 돼서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주위에 그들의 그 사회에 맞는, 말을 바꿔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의 말씀은 그분이 처음 하신 말씀 그대로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개선될 수 없는 온전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 개선하거나 거기에 더 뭐를 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 실체를 지금도 변함없이 말하고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 실체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 혼란스러운 그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 속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얼마나 어둡고 두려워할 만한 죄가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 죄야말로 변하지 않고 우리 사회 가운데 내 안에 존재하는 그 실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죄는 분명하게 사망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이것도 역시 분명한 실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 분명한 실체는 그 죄의 대가인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변치 않는 분명한 실체인 이 '죄'와 '사망'과 '지옥'에 대해서 분명하게 직면하시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모든 인류의 죄를 그분 스스로 지시고 나아가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 죄의 대가로 그분 자신이 죽음을 겪는 데까지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 고난과 그분의 고통의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그 지옥의 고통을 주님 스스로 지신 것입니다. 그 죄의 대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그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때때로 이 시를 인용하는데요. 이것이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여기에 당신이 들어갈 수 있는 한 문이 열려져 있다. 갈보리의 십자가가 바로 당신이 그 걸음을 내디뎌야 되는 장소이다.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바로 그분이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신 승리자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분의 승리를 어떻게 여러분의 승리로 만들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분의 이김을 여러분의 이김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이 오후에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한 실제로 있는 위험들입니다. 이것이 제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러한 것들을 나타내고 있는 이 차트를 걸어두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그림에 여러 가지 것들을 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그들이 직면할 실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그림을 보고 여러 가지 것들을 실제로 알고 돌이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사실 집회가 끝난 다음에 사람들은 종종 전도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본 것은 기억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두 가지 길이 있고, 그 앞에 죽음이라는 큰 기둥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길은 두 개의 다른 운명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이고, 하나는 지옥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큰 백보좌 심판을 바라보고 그 후에 있는 영원한 불못에 대해서 보는 것입니다.
1964년 8월 7일에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분들의 첫 번째 복음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분들은 30대의 젊은 부부였고, 또한 6명의 자녀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종교적인 분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그 친구의 초청으로 그분들은 천막 복음 집회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2명의 전도자가 그날 밤 복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뒤에는 바로 이 '두 길과 두 목적지'라는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어머니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집회 내내 어머니는 이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집회가 끝난 다음에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전도사가 말한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그날 밤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의 어머니가 자신이 바로 이 넓은 길 가운데서 걷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너무나 저희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사실이어서 저희 어머니는 그날 밤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저의 어머니는 아주 종교적인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분입니다. 저희 어머니의 어머니는 아주 큰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도 성가대에서 수년간 합창단으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욕을 하신다거나, 또 술을 마신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어머니는 그날 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고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8월 8일날 아침에 일어나면서 저의 어머니에게 그 마음속에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겠다.' 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참으로 그날이 다 지나기 전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어머니가 구원받으시는 그날에 저도 그 집회에 나아가서 제 생애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 다른 두 동생은 이제 모닥불을 펴놓고 거기에 조금 나이가 더 있는 10대 청년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단지 15세 청년이었지만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저의 두 어린 동생에게 복음이,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소년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의 말이 다 끝났을 때 "나도 그 구원을 받고 싶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6살 된 동생도 "아, 나도 구원받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다 지나가기 전에 저의 어머니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저희 가정에 얼마나 그 이후로 놀라운 변화가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가정에 많은 친절한 그리스도인들이 또 말씀을 듣고 방문해 주었습니다. 복음 전도지, 주일 학교 책자들, 그런 것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시고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말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참 이런 것은 예전에 듣지를 못했다라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 기도하실 때에도 저희의 영혼을 위해서 더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아직 구원받지 않은 상태였고 저희 어머니가 계속해서 그렇게 기도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침대에 들어가기 전에 저희 어머니가 또한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음 있었습니다. 거기는 오래된 농장의 집이었고 아주 얇은 벽으로 되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저희들의 이름이 저의 어머니 기도 가운데서 불러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 언급하기 전에 저희 어머니는 울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저희 어머니의 자녀들에 대해서 그분은 아주 큰 짐을 느끼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어린 동생 여섯살 된 테리는 그는 10대가 될 때까지 그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친구들과 파티하고, 또 친구들이 듣는 락 음악을 듣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과정 가운데 부모님께 반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햇수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런 것이 더 심해졌습니다. 참으로 저희 어머니는 계속해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였고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 집회에 초청하였습니다. 테리는 때때로 단지 어머니를 위해서 그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간 테리는 세상 가운데서 더 빠져들어 살게 됩니다. 이제 저의 어머니가 80세가 넘으셨고 그분께서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을 때에, 심지어 치매가 걸리셨는데도 그 테리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열렸을 때, 테리는 자리에 잘 앉아서 그 가운데 전해지는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그 동생의 마음에서 역사하신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참 그가 살았던 그 인생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그 시작점이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는 전부 다 분리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70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을 때에, 저희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수년이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동생 테리로부터 한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는 복음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놀랍게도 구원받고 싶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있었던 일을 짧게 말씀을 드리자면 그는 그 이후에 있었던 복음 천막 집회에 3주간 매일 밤 참석하게 됩니다. 저는 그 장소로부터 몇 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집회가 끝난 후에 제 동생은 또 저에게까지 와서 저희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참 2주간 동안에 매일 그 집회에 참석하면서 그의 영혼은 참으로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있었고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느 날 그 농장에 한 긴 길을 그는 왔다 갔다 걸으면서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모든 자신의 방황을 끝내고 그 구주께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저에게 말하기 전에 3일 동안 그는 기다립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것을 그 스스로 분명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는 저에게 커피를 내려주면서 그 소식을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동생의 인생 가운데 아주 깊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불경건한 삶을 살았던 그 한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그 성스러운 삶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나중에 그 동생이 복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가 걸었던 그 농장의 길에 대해서 자신이 그 길의 이름을 '구속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찬송가 중에서 그 '구속의 길'이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길은 평강의 길'라는 그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구원의 한 예로서 말씀드렸을 뿐만 아니라, 이 ‘어머니의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아직 이 구원의 문 밖에 있는 분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바로 이 날이, 이 시간이 여러분께서 이 선택을 해야 될 때인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시간은 짧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앞에 영원은 깁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은혜의 때다."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