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짐 자비스 형제님

휴거와 이후의 환난의 때

박이레 2026. 9. 1. 00:01

휴거와 이후의 환난의 때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8월 28일 금요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또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이 시간을 빌어서 여러분이 저와 저의 아내에게 보여주신 친절과 환대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언'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그런 사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24장에 처음 네 구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1-4).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제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면서 이러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말하는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그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움을 받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사실 이때 제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절에서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았을 때 다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때 제자들은 특별히 그 감람산과 관련된 구약의 예언으로 그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부분인 스가랴서 1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슥 14:4).

제자들은 그 순간 우리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장소에 와 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발이 그 감람산 위에 서 계셨던 것입니다. 스가랴서 14장에서는 바로 주의 발이 그 감람산 위에 서실 것을 예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전에 그들은 또한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서 44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전도자는 이 에스겔서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읽지 않는 깨끗한 성경으로 남아 있는 그러한 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가 에스겔서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 시간에는 에스겔서 44장 1절부터 3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 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겔44:1-3).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겔 43:1-2).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겔 43:4-5).

특별히 이 구약의 예언은 성전과 그 성전의 동향한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구약에서 말한 그 정확한 그 장소, 감람산 위에 있으며, 그리고 그들은 성전과 동향한 문을 향하여 바른 방향으로 지금 서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예언이 말하고 있는 그분이 그 자리에, 그분 앞에 제자들이 서 있었음을 그들은 느꼈습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온전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바로 이 순간이 그 왕국이 시작될 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천년 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생각에서 잘못된 점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행전 1장에서 그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행 1:6).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다시 한 번 감람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그들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이 온전히 나라로 회복되는 그 순간이 지금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본 그 똑같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들은 바른 장소에 서 있으며, 그리고 그들은 성전과 또 바른 방향을 향해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그 예언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면 그들의 이러한 논리 가운데서 '잘못된 점은 무엇이었는가'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7절과 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그들의 그 논리 가운데서 잘못된 부분은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 외에 모든 것은 다 옳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때'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이렇게 교정해 주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장래에 하실 모든 예언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그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시고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8절에서 "너희들은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오히려 제자들이 지금 해야 될 일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언의 말씀을 상고하는 것, 주님께서 미리 하실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 예언이 말하고 있는 그 구름 속에서만 머물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우리가 그 구름 속에만 머물러서 우리가 이 땅을 딛고 이 땅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되는 그 일은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참 이 제자들도 그들은 모두 예언이 말하고 있는 그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서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자신이 지금 해야 되는 그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그 제자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사용하는 그러한 종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을 공부할 때 우리도 역시 이 부분을 명심하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그 예언이 말하고 있는 그 미래에 있는 일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이 다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 '예언'이라는 것은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들고 일어서는 데 더욱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미래에 대한 일에 대해서 우리가 더 분명하게 알면 알수록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더욱 다가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교훈을 아주 잘 받은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고로 그 부활에 대해서 처음에는 아주 두려워하고 겁에 질려 있던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런데 이제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복음을 위한 용사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예언을 공부함에 있어서 그 예언의 목적은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들고 일어서도록, 우리를 북돋아 주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이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예언의 달력 가운데 지금 다음에 일어날 일은 무엇입니까?' 비록 그것이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차트에서 이 좁은 길 위에 있는 이 기둥과 같이 표현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교회의 휴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한 시간을 할애해서 이 교회의 휴거에 대한 진리를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그 '휴거 후에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첫째 집회에서 마태복음 24장 5절에서 11절까지 있는 일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온 세상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혼란과 여러 가지 두려운 사건들에 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12절부터 17절까지의 기록된 말씀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마 24:12-17).

우리는 13절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이러한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환난의 시대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직 휴거가 일어나지 않은 이 시대에도 이와 같은 것들이 동일하게 경험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많은 불법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심지어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어떤 분들은 여기서 "인자가 오는 것"이 휴거 때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이 땅에 임하시는 그 임재를 말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이 문맥을 살펴보면 저는 이것이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이 땅에 ‘재림하시기 전의 사건’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그때 주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그 신자들에게 내려지는 핍박은 아주 강력한 것입니다. 그때 그 시대에는,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그런 의문이 드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러한 시대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구절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안전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주장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족하거나, 그리고 그들도 그리스도를 떠나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13절, 이 구절은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그 '환난 시대에 믿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휴거 이후에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신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그 환난을 끝까지 견딘 그 신자들은, 참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는 그 7년간의 기간을 다 견딘 자는, 그들이 바로 우리 주께서 통치하시는 천년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을 살펴볼 때에 또 동일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마는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부분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25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거기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그 천년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고, 또 다른 자들은 영벌에 들어가는 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그 환난의 기간 동안에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24장 14절에 보면 '천국 복음'이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우리는 이 천국 복음이라고 할 때에 그 천국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계시록 7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7장에서 그 환난 초기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그 무리들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14만 4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 오늘날 이 14만 4천이 누구냐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이 14만 4천이 누군지 그들의 정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7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14만 4천이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부름을 받아 구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당시에 이미 환난의 심판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 장은 그러한 심판 가운데 있는 사건에 대해서 이제 더 자세한 설명을 주고 있는 그러한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이 사람들을 불러내서 14만 4천이라는, 그 젊은 성도들의 그 무리를 만들어내십니다. 그들은 아주 특별한, 그리고 유대인 신자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그가 구원받은 것처럼 이 유대인들이 회심해서 구원을 얻는 그러한 기적적인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4장 1절부터 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1-3).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 14만 4천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은 이 젊은 성도들이 어떠한 자들과 같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구원받은 14만 4천, 그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한 특징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처음 보기에는 그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이와 같이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그다음 구절을 보면 그러한 목적들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우리는 공중에 한 천사가 날아가는데 그가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을 누가 전하게 됩니까? 우리는 천사가 그 복음을 직접 전파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의 초반부에 나와 있는 그 14만 4천이 그 사역을 맡은 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6절에 나와 있는 그 공중을 날아가는는 천사는 그 복음을 가졌고 그것을 이 앞에 나온 14만 4천의 젊은 청년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14만 4천이 그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가운데 있는 그 온 세상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전하는 그 메시지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들의 메시지가 이 7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7절 말씀을 보게 될 때에 그것은 우리가 지금 전하는 복음과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면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비하라 하더라." 저는 그래서 이렇게 이 구절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14만 4천이 전한 복음을 먼저 받은 사람들에게, 이제 천사가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복음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와 같이 말하는 성경적인 근거로서 갈라디아서 1장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7-10).

여기에 특별히 천사라도 그 복음을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면 저주를 받을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온 세상에 전하도록 맡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오직 '하나의 복음만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의 복음만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 시대에 뭔가 다른 복음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제가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 14만 4천 젊은 청년들이 사도 바울이 전했던 그 동일한 복음을 똑같이 전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이점에 대해서 마태복음 24장 14절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 이 복음에 대해서 특별히 "천국 복음이 전파 되리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끝까지 견디지 못한 자는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환난 시대에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들 중에서는 그 환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할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에서 그들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9-11).

우리는 이 큰 환난 가운데 분명하게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환난 기간 동안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임을 당한 그들은 즉시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 환난 기간에 주님을 믿고 죽임을 당한 성도들은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10절에 이와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0절을 읽겠습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10).

이제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을 신원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적에게, 그리스도의 대적에 대해서 신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받으실 때 그분이 했던 말씀과 대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그 순교의 죽음을 당할 때에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신원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이들은 신원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단순하게 말씀드리자면 '환난 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또 그들이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은혜의 때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가운데 있는 때의 사람들입니다. 주의 진노의 심판의 때에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관점’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대적의 기간이 곧 끝날 것이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사단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실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그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항하는 것이 더 이상 길게 지속되지 않을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멈추시고 올바른 궤도로 올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에 대한 심판을 분명하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적들은 6장 후반부에 보면 차라리 산과 돌이 그들을 덮을 것을 바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6-17).

이것은 누구의 진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16절 후반부에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진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누군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결말인지, 그리고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자가 누군지, 그들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환난 기간 동안에 순교하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환난을 끝까지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은 천년 왕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 그다음 장 보면, 31-32절에 이 구절을 보게 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마 25:31-32).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바로 이 장면이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는 장면이고, 환난 기간에 살아남은 자들이 이 나라에 살아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딘 자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영원 가운데 각각 다른 장소와 시대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구별돼서 서로 떨어져 있는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섬김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교제를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 구약의 성도들은 또 우리가 구별해서 볼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인 그 교회는 또 하나의 구별된 존재로 있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 기간 동안에 구원받은 성도들도 또 다른 구별된 존재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난 기간 동안에 구원받은 성도들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죽어서 순교한, 그래서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있고, 그리고 환난 기간에 구원받고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천년 왕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또 구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천년 왕국에서 복된 것들을 함께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에 복음을 듣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환난 기간 동안에 그들은 어떠한 복음의 기회를 얻게 됩니까? 참으로 그 복음을 듣고 그들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복음을 듣고 그들의 마음을 열지 않은 그런 사람들은, 그들은 자기의 죄에 계속해서 머물겠다고 이 시대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참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밤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휴거하기 위해서 오신다면 그 사랑하는 가족들은 남아서 여기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사실 이러한 주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그러한 주제입니다. 이 장은 그 환난의 시기와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말하고 있는 그러한 장입니다. 이제 적그리스도가 그의 통치 초기에 벌써 세상을 장악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거절하는 가운데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수많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미혹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통제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참으로 이 적그리스도는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들은 복음을 들었지만 '거절한 자들'이라고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거절한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거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그 결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못하도록 유혹을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선택한 것을 이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그 은혜를 알고서도 그들은 적극적으로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참으로 여기 나와 있는 이 '유혹'이라는 것은 이제 온 세상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는 '범세계적인 그 유혹'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12절은 이것이 '심판'이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2).

사실 이 구절은 참 오랜 기간 참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아직 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그 지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저는 이제 캐나다 사람입니다마는, 이 캐나다 안에서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그런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이 복음을 들고 다가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 강력하게 동화되어 있어서 이 복음에 대해서 완전히 잃어버리고 관심 없어하고 살아갑니다. 참 이 복음을 한번 듣고 생각해 보고자 하지도 않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제 나라에서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또한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또한 그것을 고의로 거절하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주 강한 유혹을 그들 가운데서 역사해서 다시 구원받을 수 없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을 알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을 때 그를 환영하고 그의 표식을 받아낼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대해서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자기의 표식을 남기게 됩니다. 바로 이들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나와 있는 그 하나님이 역사하게 하신 그 유혹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13장 16절부터 1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계 13:16-18).

이 짐승의 표식을 받은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참 이들은 환난 시대에 그 표식을 받고 적그리스도가 주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허용하는 많은 상업과 여러 가지 많은 상업적인 행동들을 하면서 부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 환난 기간 동안에 그 표식을 거절한 성도들과 완전히 대조되는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필요한 그런 일상용품, 식량도 사지 못한 채 오히려 사람들에게 쫓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러한 환난은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오직 7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간 가운데 죽는 성도들에게서는 그들은 즉시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다음 장 14장에서 9절부터 11절까지 그들의 결말을 보게 됩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9-11).

참으로 여기 나와 있는 이 구절들은 그 자체로 명백하게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어서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은 기록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심지어 우리 주위에 있는 복음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명백한 진리에 대해서 전하는 사람들이 아주 소수입니다. 오히려 대조적으로 '이 환난의 기간에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잘못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환난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들었는데도 거절한 사람들도 다시 기회를 얻고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잘못 말하고 있고, '환난 기간 동안에 그 짐승의 표식을 받았는데도 나중에 결국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잘못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보게 될 때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됩니다. 우리는 환난 기간에 그 성도들과는 달리 또한 이 은혜의 시대의 성도들로서 하나님의 그 긍휼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때가 너무나 짧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이때, 이 시에 올 거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여러 복음적인 파에서 이것에 대해서 잘못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다음 집회 가운데 한 날, 또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날, 어느 시에 이 휴거가 일어날 거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들이 잘못된 것을 말하였고 그들은 스스로를 어리석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 사건이 지나면 다른 예언의 말씀을 들고 나와서 또 있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러한 잘못된 상황들을 볼 때마다 왜 사람들은 참 성경으로 돌아가서 오직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만 붙들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앞에서 말한 그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 22:17-21).

이제 요한은 그 예언의 놀라운 것들을 기록한 그 서신서를 마치면서, 그리고 성령께서도 참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최종적인 말씀인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성된 그 예언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시는 그 순간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인류에게, 과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언에 어떤 것을 더하지 말 것이며, 또한 어떤 것을 빼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 특히 제가 말씀 집회를 하는 가운데 오직 이 성경에만 착념하고 집중할 것을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은 또한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에 대해서 더욱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 모든 세상 끝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록한 후에, 요한은 그 모든 일을 기록한 후에 "내가 곧 속히 오리라"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참으로 이 동일한 응답은 그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모든 자들이 마땅히 그 마음 가운데 응답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이라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응답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마음속 에 이것에 대해서 어떤 주장이 있다면, 내 마음속에 "주님, 아직 잠깐만요."라고 말하게 된다면,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가 조금 더 있어야 되는데라고 하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랑하는 영혼들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뒤에 구원받지 못하고 남겨져 있을 것을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구원받기를 우리가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집회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이 예언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머릿속이 그냥 구름 속을 떠다니는 것 같이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 발을 분명하게 이 땅 위에 내딛고, 우리가 복음을 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공부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예언 가운데 다른 관점에서 또는 다른 해석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전반적인 동의가 있습니다.

제가 이 집회를 마치면서 며칠 전에 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서신서에 그가 기록한 마지막 문구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함께 기다립시다.' 사실 이 나팔이라는 것은 그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이 교회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 우리는 아직 이 나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 나팔 소리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그 신호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집회를 알리기 위해서 나팔을 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 교회 시대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유일한 그 나팔 소리는 그 교회를 휴거하기 위해서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천사장의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과 같이 귀를 기울여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뉴욕 주에서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때 나이 드신 그리스도인 부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유 목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요. 젖소가 있는 것이죠. 이제 그 일에서 은퇴하시고 여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지역에 집회가 있을 때마다 그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저는 그 집회가 어느 한 날 끝나고 나서 그 집의 부엌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식사가 마친 후에 그분은 테이블 위에 있는 한 어떤 문구가 적혀 있는 블록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작은 나무로 만들어진 블록에는 '아마도 오늘'이라는 두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참으로 바로 '오늘이 우리가 이 땅에서 만나는 마지막 날일 지'를 말하는 그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는 이렇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짐 형제님, 그 블록을 한번 뒷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나무 블록을 뒷면으로 돌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혹시, 오늘 밤' 그래서 그 형제님 부부는 아침에는 '혹시, 오늘'이라는 문구를 보고 있고, 이제 저녁에는 '혹시, 오늘 밤'이라는 문구를 돌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그들의 여생을 기쁘게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은 다 하늘로 소천하셨고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동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오늘 밤 주님께서 오신다면 우리는 즉시 공중에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우리 주님을 먼저 만나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만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계속 우리를 격려하시고, 북돋아 주시고, 그분을 만날 것을 준비하고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