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2 : 주의 날을 소망으로 기다림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8월 29일 토요일
우리는 이번 시간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말씀을 계속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을 읽기 전에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집회에서 성도님들이 함께 부르는 찬송을 저도 굉장히 기쁘게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박자와 또 좋은 음정으로 부르시는 것을 볼 때에 감사가 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살전 5:1-11).
우리가 5장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이 말씀은 곧 일어날 일에 대해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그런 말씀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놀라운 그 시대를 살고 있음을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형제님은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그 두 개의 큰산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2개의 쌍둥이 봉우리 사이에 살고 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하나의 산은 그 ‘갈보리 십자가의 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온산에, 그 ‘해의 영광이 비치는 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산의 경사면 안에 속해 있는 이 시대를 우리는 '은혜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좌에 앉으시는 두 사건 사이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벌써 2천 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여기 기록된, 특별히 네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5장 1절과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에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른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주의 날'이라는 이 짧은 표현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주의 날'이라는 것은 '은혜의 날'을 포함하는 것이며 동시에 '심판의 날'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 이 휴거가 그 주의 날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환난의 기간이 지나가고, 그리고 천년 왕국이 시작되고 그 끝날 때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사건으로 시작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두 가지를 기본적으로 말해주고 있는데요. 이 사건에 '확실한 것'이 있고, 또 이 사건의 '불확실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의 확실한 점은 이것은 반드시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점은 그것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절에서 그 날에 대해서 "밤에 도적같이 이른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도덕의 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도적의 동기는 훔치는 것이고 뭔가를 빼앗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지 인용하고 있는 것은 '그 날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적이 이를 때에 그가 미리 알리지 않고 갑자기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수년 전에 텍사스에서 일어난 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한 남자가 일어나서 보니 그의 SUV 차량이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그 도시에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 자기가 그 시동 열쇠를 그 차에 꽂아놓고 내렸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경찰서에 가서 자기의 차가 도난당했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당황한 가운데 보험사에 연락하고 그 사건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에게 다시 한 번 놀랍게도 그의 차가 그대로 자기 앞마당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시동 키도 거기에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동키 밑에 거기 열쇠 고리에 그 집 열쇠와 다른 열쇠들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자에 한 메모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사과하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주 급한 상황이어서 급히 차량을 쓰게 됐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필요에 의해서 그 차량을 사용하게 돼었고, 그래서 자기가 사용한 그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고 다시 차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차량을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이제 축구 경기 입장권을 2장 놔두었습니다. '달라스 카우보이'라는 아주 유명한 팀의 경기 입장권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토요일에 열리는 그 경기였습니다. '아주 이상하게 차를 훔쳐가는 사람도 있군.'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그 차에 태우고 그 축구 경기를 보러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기를 마치고 빠른 속도로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이 차에서 내려서 집 문을 열었을 때에, 그 집 안에 모든 물건이 다 털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상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린 후였습니다. 참 이게 도적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계획해 놓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 주님께서는 뭘 훔치려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그분의 신부를 그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도행전 1장에서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 알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예고하지 않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데살로전서 5장과 또 다른 여러 구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이때 오신다'라고 제안하거나 그것을 예측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전도자가 수년 전에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당신의 말씀 사역을 훼손하기를 원한다면, 그 휴거 날이 이때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예측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98년도에 제 우편함에 한 가지 편지가 왔습니다. 사실 이건 소포였는데요. 여러 가지 책자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중요한 한 책자 중에 하나는 왜 주님께서 1998년도에 오셔야 되는지 88가지의 근거를 대고 있었습니다. 그 미국의 항공 엔지니어였는데요. 그는 그 책을 쓴 저자였습니다. 아주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측한 것이 참으로 맞음을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문자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복음주의 교회 가운데 혼란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는 모임들 가운데 영향을 받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그런 것에 대해서 영향을 받고 흔들렸습니다. 그들이 아마도 1998년 9월달에 그것이 일어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그들은 사실 아주 정확한 며칠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은 후에 처음 책을 읽어보았을 때, 그 가장 중요한 책자의 서문을 보았을 때, 정말 우리 주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거라는 것이 분명하게 서문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책을 덮고 이 책은 더 읽을 필요도 없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전도자가 '우리 주님께서는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님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러한 저자가 쓰는 주님에 대한 책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휴거의 그 날을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잘 방어하고 있어야 됩니다. 사실 이것은 수년간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 그러한 잘못들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지난 50년간의 이러한 일들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수년 전에 미국에서는 '헤롤드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날을 지정했고 그 날이 아무 일 없이 일어나자 또 다른 날을 지정합니다. 사실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 날이다, 이 날이다라는 것을 반복합니다. 지난 9월에는 또 다른 그가 지정한 날에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인터넷과 틱톡에서 많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9월 23일에 주님이 오신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가까워 오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이 행동을 하게 됩니다.
또 어떤 남아프리카의 한 사역자는 자기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까지 말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더 혼란이 생겼습니다. 사실 그 교회에 수천의 성도들이 있는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참으로 그날에 주님이 나타난다고 말했다라고 그는 주장하게 됩니다. 그것은 '러시 호산나'라고 부르는, 그 '나팔소리'라는 의미를 가진 운동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첫째 달에 해당하는 그 날을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그들이 하는 퍼캐스트를 아주 수많은 사람들이 청취하면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캐나다에 있는 어떤 분들도 저에게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저의 대답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매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잠깐 지나가면서 하는 생각일 수 있고, 또 시간을 두고 묵상하면서 그것을 즐기면서 하는 생각일 때도 있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9월 23일에 딱 이 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것은 참으로 저를 아주 화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그날에 주님께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도 어느 누구도 그때와 그 시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사람들을 너무나 혼란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불신자들이 그러한 소동을 가지고 오히려 조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과 관련해서 이제 웹사이트를 열고 게시하게 됩니다. 그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 웹사이트 이름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휴거 광대들'이라는 제목으로 웹사이트를 열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휴거 광대들의 자료 모음집'이라고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참 우리 주님께서 오신다라고 지정해서 선언하는 그 영상들, 틱톡 영상들을 모아서 그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9월 23일이 되면 그 올렸던 비디오 클립들을 다 사람들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때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바빠집니다. 참 그러한 소동들이 복음주의 교회에 굉장히 어려움을 주는 것들입니다. 그 홈페이지를 만든 여자는 이러한 소동들을 마치 코미디처럼 조롱하면서 저장해 놓고 사람들한테 게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런 것들은 얼마나 하나님께 모욕이 되는 그러한 행동입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그 놀라운 휴거를 사람들이 조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 때'와 그 '휴거의 시기'를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의 몇 구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이 미래의 예언적인 사건으로만 그들의 머리가 가득 차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때에, 이 땅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주님께서는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이 우리의 복음 전하는 그 내용의 일부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오직 몇 주만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이 예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이것을 말한 것"을 언급합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경의 예언으로 잘 견고하게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히 교회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8절에서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살전 1:8).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아주 중요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가지고 그 주위에 세상으로 나가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에 대한 그 시간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초림 때에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에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정확한 때에 태어나셨고, 또한 정확한 때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또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정해진 때에 그분께선 다시 오시리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체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결코 지체하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베드로후서 3장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드려야 됨을 이 구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이 죄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이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다음 구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리고 그는 즉시로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의 일을 다시 언급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함하는 개념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이 '주의 날'은 여러 가지 시대를 걸쳐 포함하는 것이고, 거기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것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1. 첫 번째로 '휴거'가 일어나고, 그다음에 2. '환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3. 우리 '주님의 천년 통치'가 이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에 4. 다시 한 번 '반란'이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3절과 4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놀라움을 안겨주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그 날은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 멸망을 결단코 피하지 못하는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3-4).
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그 환난의 때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두세 가지 것을 잠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엘서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도 많은 성도님들이 잘 읽지 않는 그러한 부분입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욜 2:1-2).
우리는 그 날에 대해서 2절 후반부에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요엘은 그 환난 시대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레미야서 30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렘 30:7).
다시 한 번 "비할 데 없이 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니엘서 12장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다시 한 번 여기에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 우리 주님께서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환난의 시대에 일어난 일들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비교할 만한 다른 것이 없는 아주 독특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나타났을 때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 악한 자가 할 것처럼 그도 역시 많은 악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것보다 더 악한 일을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아돌프 히틀러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1920년대, 30년대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독일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굉장히 타락하고 멀어지게 된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때 독일 교회는 고등 비평을 도입하면서 그들은 말씀을 훼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불경건한 많은 사람의 사상들이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명한 세상의 철학자들이 나와서 악한 사상을 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것들이 그 나치즘의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점점 약해져 가는, 그 영향력이 약해져 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많은 불경건한 사상들이 더욱 득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서 그들의 멸망이 분명하게 임한다고, "결단코 피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멸망이 홀연히 저에게 임할 것이요", 분명하게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의 이름과 같이" 그래서 이것은 아주 확실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잉태된 여자가 아이를 낳는 그 날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한 남편이 7개월간 임신한 그 여자 옆에 서 있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그 부부에게 다가와서 "당신의 아내가 임신 중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혹시 임신한 것인가요? 이렇게 이렇게 물었지만 남편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둘러싼 여러 어두움들을 ‘인내’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도덕적인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영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어두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회의 어두움을 경험합니다. 참으로 그 사단의 통치 아래서 이 세상은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대해서 깨어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지혜롭게 행하고 있어야 됩니다. 저는 때때로 정치 평론가들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비평하는 것을 읽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유일하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은 한 분뿐이다.’ ‘오직 성경을 알고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사실 이 세상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이 뭐가 일어난 것이고, 또 왜 일어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강한 반발과 거절이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됨을 알고 있습니다. 5절에 그는 이렇게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 주위에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밤에 어둠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자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잠자는 것, 우리 마음속에 냉담해지는 것, 이러한 것들이 불러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로부터 그들은 점점 멀어지는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단지 이론으로 그냥 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 그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해서 피차 간에 격려하면서 말해야 됩니다. 주님의 일에 더욱 착념할 것을 격려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수년 전에 온타리오의 아주 큰 농장에 하는 일들을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큰 농장 박람회가 토론토에 있었는데요. 그 주위에 많은 농장주들이 와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도시에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농장에 있는 여러 동물들을 또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한 책상을 마련하고 거기서 성경 말씀을 전하는 전도지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구텐베르크 그 인쇄본을 보여주는 그러한 것들을 또 옆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인쇄가 처음 발견 발명된 후에 인쇄된 첫 번째 인쇄물입니다. 때때로 중국 사람들은 그것보다 자기들이 더 먼저 발명했다고 하기도 합니다마는, 사실 그 인쇄기로 첫 번째 인쇄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전시된 테이블을 옆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다른 복음주의 교회에서 나와서 또 그들의 전도지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어느 한 다과가 준비돼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 다른 복음주의적 그쪽에서 나온 한 숙녀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서 한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물었고, 저도 또 그분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우리는 피차 서로 거듭난 그리스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5분간의 대화 후에 저는 "이제 가봐야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으로 향해 가면서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영원히 볼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인사는 제가 저도 역시 잊지 않고 지냈던 그 한 곳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숙녀분은 이제 장차 올 그날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또 다른 사상으로 영향을 받아서 침체돼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6절과 7절에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지 말라. 깨어 근신하라." 이것은 마치 알람 시계가 알람을 울리는 것과 같은 그 작용을 우리에게 해야 됩니다. 이 만날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 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우리가 '합당한 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8절에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 '구원의 소망의 투구'는 우리의 머리가 ‘올바른 지식’으로 있어야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워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식을 보호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냥 단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들이 그냥 바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그 소망이라는 단어를 그런 것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붙잡고 누리고 있는 것'으로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그분을 영접한 사람은 이제 영생을 실질적으로 붙잡고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과 10절을 빠르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그 '구원의 확신'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분명한 위로와 안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이렇게 9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 5:9).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제가 믿기로 이 9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 환난 가운데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하심에 이르도록 세우심을 받은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정하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바로 오늘도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이 휴거에 들려 올림을 받을 것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저는 이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이 '자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을 말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경 교사들이 이 말씀을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 그 앞에 있는 6절을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이것은 '영적인 잠자는 것'을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사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근신하는 그리스도인이든지, 또는 세상적이고 자는 그리스도인이든지, 우리 모두는 휴거에 들려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저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두 개의 그룹 중에서 어디에 속하기를 원합니까? 참 깨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그 그룹에 속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 세상 가운데서 그 세상의 일들로 마음을 채우고 살아가고 싶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휴거가 아주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아, 저 사람들은 그냥 세상적이야.' 이렇게 단정짓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휴거가 환난의 중간 가운데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환난이 다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끔찍한 그 심판을 함께 겪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것들이 우리가 바라고 있는 그런 것이라면, 그러한 내용과 11절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살전 5:11).
저는 그 환난을 말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 내용을 보게 될 때에 참 그런 것을 어떻게 위로하고 권면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이 휴거에 대해서 그와 같이 잘못된 것을 말하고 있는 분들은 이 말씀을 보게 될 때 아주 놀라울 것입니다.
어떤 한 구원받은 성도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성도들께서 이 말씀을 따라 이 휴거에 대한 주제에 대해서 잘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보존하시고, 또 우리 가운데서 계속 이 진리를 설명하는, 가르치는 교사들을 세우시기를 원하게 됩니다. 여기에 '권면하다' 이것은 이제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우리가 가졌던 만큼 그 많은 수의 교사들이 현재는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 집회가 끝난 후에 어떤 젊은 성도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어렸을 때 만난 그 교사 형제님 중에 그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그 경건한, 훌륭한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제가 기억하는 3~4명의 교사분의 이름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2시에 그 생각을 하면서 잠이 깨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새벽에 잠이 깨어서 제가 어렸을 때 저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었던 많은 사람의 교사분들의 이름이 다시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제가 한 40에서 50분 정도의 교사의 이름을 생각해낸 후에 저는 다시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참 우리는 얼마나 경건한 많은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젊은 청년들에게 이와 같이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지난 시대에 누렸던 만큼 그 많은 교사들이 지금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물론 우리는 이 모임에 그분들이 행한 많은 말씀 녹음과 또한 책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진 시간을 참 그러한 것들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야 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온전케 돼야 됩니다. 준비돼야 됩니다.
이제 시간을 마치면서 성도님들에게 다시 한 번 이 당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2천 년 동안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이었던 이 일은 바로 오늘 밤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며 또 사회자 형제님께서 나와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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