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1 : 주님의 다시 오심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8월 29일 토요일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교제할 수 있게 돼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이 장소를 마련하시고 이전하셨다고 들었는데, 참 이 집회를 위해서 또 좋은 공간 마련하신 것에 대해서 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자리에 여기 장자 호수 모임 성도님들과 또 여러 지역에서 함께 집회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휴거'에 대한 주제를 계속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사건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두 번째로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1-55).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이제 요한계시록에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구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 22:20-21).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우리가 읽은 이 구절들은 마지막 때에 우리가 '휴거'라고 불리는 그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우리가 먼저 읽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휴거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읽었던 두 번째로 읽은 부분은 그 '휴거에 대한 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5장과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말씀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맨 마지막으로 읽은 요한계시록 말씀은 그 '휴거를 기다리는 소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아주 갈망하는 가운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 휴거를 제자들을 위로하는 문맥 가운데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례식에서 그리스도인 성도들에게 위로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족을 위로할 때에 그 말씀을 종종 인용합니다. 그런데 이 요한복음 14장 3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종종 잘못 이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마치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때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데려가는 것으로 이 구절을 잘못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가 계속 살펴보겠지만 우리 주님께서 휴거로 오시는 그 장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지금 죽었을 때 우리는 하늘나라 가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고, 데리고 가시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죽었을 때는 우리가 그 하늘나라로 주님께서 계신 곳에 가는 것만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내가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자기에게 좋다."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다윗도 역시 밧세바와 첫 번째 낳은 그 아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시 올 수 없으나 내가 다시 그에게 갈 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의 죽음과 관련돼서 우리는 죽음 이후에 즉시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보게 될 때에 이와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그 사건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여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사건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하늘에 주께서 호령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천사장의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죽었을 때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고린도전서 15장과 데살로니가전서 4장 말씀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께서 친히 오심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그 사건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아는 방식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죽은 성도이든지 간에, 그들의 몸이 이미 땅속에 묻혀 있든지 간에, 그리고 그 순간에 이 땅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먼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5장 51절에서 사도는 이것에 대해서 "비밀"이라고,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라고 말합니다. 때때로 이 비밀이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한국어에서 이 '비밀'이라는 단어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영어의 그 '비밀'이라는 단어는 그것은 감추어져 있고,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헬라어 단어 자체도 '미스트리 온'이라는 그 헬라어 영어 단어와 비슷한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헬라어 단어는 감췄던 것이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러내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라는 것은 우리가 밝혀낼 수 없는 감춰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가려놓으셨고 그것은 가리워져 있었던 것이었지만,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성경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휴거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가 다른 집회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초림에 대해서 많은 성경 구절이 언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경우에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예언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 그분 자신이 공중에 임하시는 것은 단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감춰 놓으셨고 이제 사도들을 통해서 그때에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 내용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휴거 사건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하나님께 받아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 서두에서 그는 먼저 '성도들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의 그 몸에 대해서 그것은 마치 땅에 심기우는 씨앗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씨는 모두 각각에 해당하는 그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랐을 때 우리는 각각 다른 형태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많은 서로 다른 그 몸을 보고 있습니다. 그게 어느 하나도 서로 같은 것이 없습니다. 참 각자가 서로 특별한 그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몸의 부활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었지만 썩지 아니할 것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43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또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참으로 이 죽어야 되는 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후에, 그리고 성도들에게 그들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아직 살아 있을 그 성도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참 이것은 그들에게 아주 놀라운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사도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그 기록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진정한 신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통해서 계시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수세기 동안 감추었던 그 비밀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51절에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이 '잠잔다'는 것은 물론 '성도들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분명하게 "우리 모두가 그때 죽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1세기에 아주 분명한 확신 가운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는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참 저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70년 정도 살고 죽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많이 살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몸에 점점 그 노화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몸이 쇠약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참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몸의 문제들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내가 점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에게 있어서 사도는 죽음을 죽음이라고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반복해서 이것은 '자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잔다는 것은 깨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은 즉시로 이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그 운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구나.
첫 번째로는 죽음을 경험하는, 이제 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결과가 있고, 그 몸은 땅에 심겨져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이러한 경험을 하였는데요. 제 여동생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었습니다. 참 그 장례식에 많은 슬픔이 있었지만,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앞에 놓인 그 놀라운 전망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52절에 이와 같은 말씀들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 51절에 보면 "순식간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사실 이 '순식간에'라는 표현이 우리가 가진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읽었던 그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그 순서를 알다시피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변화하리니" 이것은 우리에게 100% 확실한 사실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렇게 자주 얘기합니다. 그 두 가지는 죽음과 또한 세금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망이 우리에게는 100% 확실한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세금은 다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분명한 그 가능성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아름다운 표현으로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54절에 이와 같은 승리의 외침을 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이김에 삼킨 바 되리라." 55절에 우리는 이것이 저는 휴거 때 우리가 외칠 그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와 있는 그 휴거의 말씀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 그리고 우리도 또한 변화되어 들려올림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임재 앞으로 불려 올라가는 두 그룹의 성도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을 하는 그룹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우리는 그 가운데 살아서 모두 올라가는 성도들을 생각하게 됐기에 그들은 이와 같은 외침을 외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살아 있는 성도들은 사망에 쏘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덤 가운데서 부활해서 올라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 같은 외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제 그 열려진 무덤을 부활한 성도들이 바라보면서 "사망아 네가 나를 잡을 줄로 생각했느냐?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참므로 그들의 승리는 그 사망을 이긴 승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단락에서 네 가지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우리는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2. 두번째로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3. 세 번째로 나팔 소리가 날 것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5. 다섯 번째로 모든 성도들이 그들이 살아있던 자들이든지, 죽어 있던 자들인지 모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를 보게 될 때에 이것이 오늘날 이 땅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으로 가서 거기서 말하고 있는 몇 가지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그 '휴거의 교리'에 대해서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전반부의 그 문맥을 살펴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이제 사도는 성도들에게 그 주위에 정욕으로 더럽혀진 그 세대를 따라가지 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 이 정욕에 얽매이는 그 죄에 대해서 사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경고합니다. 그와 같이 여러 가지 측면으로 경고한 후에 이제 사도는 휴거의 진리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 휴거의 진리를 통해서 우리가 그 세상 가운데로 빠져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그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정욕에 얽매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3장에서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설로니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또한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성도들이 이미 소천했던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은 먼저 죽은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그들은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라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은 결코 어떤 것도 놓치지 않았다라고 안심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제 동생의 남편의 죽음 가운데 거기에 많은 슬픔이 사실 장례식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은 슬픔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동생의 남편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고 아주 분명한 그 믿음의 간증을 나타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4절에 사도는 이것이 분명하게 일어날 사실이라는 것을,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된 그 사건이 여기 14절에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그것을 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분명한 만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다시 오시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참 우리가 이미 죽은 성도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예수 그리스도 주님 자신이 휴거 가운데 그들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우선권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6절에 이 세 가지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1. 첫 번째가 "주님의 호령"입니다. 2. 두 번째가 "천사장의 소리"입니다. 3. 세 번째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저는 자주 이 세 가지 소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호령'이라고 했을 때에 우리는 몇 가지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선장이 그 배 위에서 방향을 지시하는 그 소리를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장군이, 어떤 장교가 그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 소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마차를 모는 그 마차꾼이 더욱 속력을 내도록 호령을 하는 그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리가 ‘명령을 내리는 소리’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이 그 음성을 들었을 때 그가 하늘로 들려 올림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소리는 바로 "이리로 올라오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참으로 그와 같은 명령이 우리가 휴거 때 듣게 될 그 호령이 아니겠습니까? 주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부를 이제 집으로 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이 더 나옵니다. 로마 군대에 있어서 그 나팔 소리는 세 가지 다른 소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 소리는 그 모든 군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상나팔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소리는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서 준비시키는 그 소리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소리는 그들이 행군하라는 소리입니다. 그러한 소리 가운데 세 번째 소리가 이 휴거 때 일어나는 소리에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이 한 가지를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이 그 환난 바로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 그래서 '호령'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음성일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분의 신부를 집으로 초청하는 그분의 음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4장에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한 음성 뒤에는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그 목적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늘에서 이 땅 가운데 일어나는 그 환난의 사건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천사장의 소리"를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번 '천사'에 대해서 언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일곱 교회가 언급될 때 또한 나타났고, 그 이후로 계시록의 후반부에서는 심판을 선언할 때 천사들이 언급이 됩니다. 그래서 이 '호령'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부르는 그 소리였고, 이 '천사장의 소리'는 이제 수많은 '천군 천사들을 부르는 소리'로 많은 분들이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그 신부를 부른 이후에 그 이후에 7년 동안 천사들은 활발하게 심판을 이 땅 가운데 집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는 자로서 이제 그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함께 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나팔"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난 집회에서 잠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나팔'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그들이 행군할 때 사용이 됩니다. 그분이 이 땅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들의 시선을 모으는, 그들을 집중시키는 그 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땅 가운데 그 환난이 시작될 때에 그러한 가운데 유대인 14만 4천 명이 부름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교회의 휴거 자체가 특별히 지금도 그 구약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의 그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들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학자들은 오늘날도 그들의 메시아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셔서 그들 가운데 이 14만 4천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17절에서 그들이 하늘로 들려 올림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휴거라고 부릅니다. 많은 분들이 "왜 이 사건을 휴거라고 부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저는 수년 전에 캐나다 뉴폴랜드 지역에서 텐트 복음 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도시에서 온 분이 그 전도 말씀을 듣고 이와 같이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집회 가운데 여러 번에 걸쳐서 이 휴거에 대해서 전하였는데요. 참으로 그 표정 가운데 전혀 무관심한 표정으로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제가 놀라게 되는 것은 그 지역 신문을 보게 될 때였습니다. 그 지역에 이제 세인트 존스라는, '세인트존스 텔레그램'이라는 신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문의 편집자에게 그 사람이 어떤 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는 그 도시 가운데서 있었던 천막 복음집회의 경험을 그는 신문에 보낸 것입니다. 사실 아주 비판적인 어조로 그 글을 썼습니다. 그는 내가 교회의 휴가에 대해서 말한 것을 비난하기 위해서 그 글을 쓴 것입니다. '그 전도자는 성경에도 없는 단어를 자꾸 말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조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참석했고 복음을 들을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편지에 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편지를 썼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편집자가 제 편지도 실어줄까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그 편집자가 신문에 실어주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끌어올려"라는 단어는 헬라어 ‘하포자’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할 때, 그 '끌어올려'라는 단어에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휴거'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번역했던 것입니다. 그 라틴어 단어가 렙처러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잘 알고 계시는 성도님들에게 이 휴거라는 단어가, 랩처라는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이렇게 설명을 드립니다. 그래서 헬라 언어는 하포자이고, 라틴어는 랩처러이고, 그리고 바로 거기서 영어 단어인 랩처가 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에게 왜 이 성경에서 휴가라는 단어가 없는데 사용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어 단어가 사실 그 '끌어올려'라는 그 의미를 잘 담고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비난한 사람은 다시 복음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 성경은 우리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다시 오심'에 대해서 좀 더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재림에 대해서는 구약 성경에서 여러 번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께서 그 몸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시고, 그분의 발이 감람산 위에 설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심이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복음적인 교파에서도 "이것은 두 개의 다른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설명을 드리자면,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의 두 가지 단계'라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 주님의 재림의 첫 번째 단계는 주님께서 ‘공중’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기록된 모든 환난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사람들의 죄와 그들의 그 거절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절정으로 아마겟돈 전쟁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날에 우리 주님께서 얻으실 승리는 얼마나 놀라운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두 가지 단계가 모두 주님의 재림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공중에 임하시는 것이 이 땅 가운데서 일어날 일의 그 신호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7년의 환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승리에 이 땅에 임하시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고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제 온 세상은 우리 주님의 통치 가운데서 번영과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어떤 분들은 뉴욕시에 방문하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 가운데 있는 유엔 빌딩에 가보셨다면 그 앞에 아주 아름다운 조각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조각상은 어떤 사람이 망치를 들고 그 앞에 칼을 내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그 예언의 말씀을, 그 천년 왕국에서 일어날 일을 그 조각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해안에서 저 해안까지, 온 세상이 평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과 번영의 나라에 이스라엘은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 주님께서 통치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 나라를 함께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우리에게 오늘날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은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있는 그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위에 많은 혼란과 많은 불안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집회에 오기 전에 네팔에 아주 큰 홍수가 난 사건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 엄청난 물이 많은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그 장면은 눈으로 보기 어려운 그러한 광경입니다. 이것이 이 불경건한 세상 가운데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에도 이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사도 요한이 그 소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제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으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도 '우리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아주 아름다운 진리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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