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짐 자비스 형제님

노아의 때와 같은 마지막 때

박이레 2026. 8. 30. 21:44

노아의 때와 같은 마지막 때 / 짐 자비스 형제님 / 26년 8월 26일 수요일

예, 이곳에 또 다시 방문하게 돼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특별히 지난번에 방문해서 알게 된 여러 낯익은 얼굴들을 다시 한 번 뵙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 저의 아내와 함께 브렌다 자매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더욱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성경에 나온 '예언'에 대한 주제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마태복음 24장과 또 성경의 여러 군데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계속 성경을 이렇게 펴시고 또 거기에 책갈피를 사용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처음 네 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1-4).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그 승리의 입성을 하신 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그 나귀의 위에 앉아서 들어오시고, 그리고 사람들은 호산나 외치며 그리고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 밑에 깔고 환영한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할지어다!"라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 안에서 그 상을 엎으시며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 상에는 사람들이 돈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그들은 그 돈으로 성전의 제물을 사고 그리고 그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서 사람들은 이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와 같은 잘못된 실행을 하는 그 집이 황폐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쉐키나,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그 이스라엘에서, 그 성전에서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 바로 24장 1절에 나오는 그 문맥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성전에서 행하시고 성전에서 나오셨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그 갈보리의 무서운 고난을 앞두고 계심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자들은 이제 약속된 그 하나님의 나라가 곧 세워질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주님께 그 성전 건물들을 자랑하면서 말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주님의 통치를 시작하실 때가 지금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년 왕국에서 통치하시고 다스릴 그 때라고 제자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주님께서 2절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을 때, 그들은 분명히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감람산 위로 3절에서 나아가십니다. 제자들은 완전히 당황한 가운데 "언제 말씀하신 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임하실 때에 그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기 "세상 끝"이라는 이 표현은 그 시대의 끝을, '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율법의 경륜의 시대가 마치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시대가 바로 이어질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구약의 여러 성경 책에서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놀랍게도 이렇게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땅 가운데서 세워진 그 성전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은 이미 46년간 건설되고 있었던 성전이었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 이 말씀하시는 그 시대에도 그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나중에 기원 후 64년이 되었을 때 그 성전은 마침내 완공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77년간 이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건축물이고 그 고대의 참 기이한 건축물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로 그 성전에 대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아주 큰 놀라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주 큰 재앙과 같은 것이 일어나게 될 것을 이해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마태복음 몇 장 뒤에, 27장에 가보게 되면 우리 주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지 며칠 뒤에 유대인들은 주님께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것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27장에 보면 빌라도는 그를 무죄한 자라고 선언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참으로 무죄한 자라고 빌라도는 하고 "내가 이를 어찌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 빌라도의 말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마태복음 24장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그 감람산에서 성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우리 주님의 죽으심과 그리고 장사됨과 부활하신 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생각했어야 됩니다.
그들은 이제 그 사건이 일어난 몇 년 후, 78년 기원 후가 되었을 때, 로마 장군 디도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 오게 됩니다. 이제 그는 군대를 이끌고 마침내 그 예루살렘 전역을 포위하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성벽을 허물어버리고, 문자적으로 그 예루살렘 안에 있는 유대인들을 다 도륙하게 됩니다. 그 전쟁 가운데 마지막 보루는 그 성전 지역이었습니다. 사실 디도 장군은 부하들에게 그 성전은 불태우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유대인들이 아주 강렬하게 저항을 하였기 때문에 로마 군은 불을 쏘면서 그들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성전은 화염으로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살육을 당한 그 방어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타버렸습니다. 하지만 디도 장군은 그 성전이 타버린 것에 대해서 아주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수일이 지난 후에 디도 장군은 거기에 있는 돌들을 다 들어올리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을 태웠던 화염이 그 성전 안에 있던 많은 금과 은들을 녹여서 돌 사이에 끼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돌 위에 돌을 다 하나씩 옮기면서 그 사이에 있는 금과 은을 파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2절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라는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죽이고,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제 그 대가가, 심판이 아주 이 이스라엘에게 분명하게 내려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24장에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언급하신 '장차 일어날 사건들'은 사실 그 성전이 무너졌을 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기원 후 70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은 그 '지역에만 국한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2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이 일들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7절을 읽어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것은 범 세계적인 사건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8절에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이 시간에 마포에서 이 '재난'이라는 단어가 어머니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 그 '산고를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날에는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24장에 나와 있는,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말씀하고 있는 이러한 내용이 '휴거'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 그분의 영광 가운데서 '임재'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의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 장면을 이 24장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4장에서는 비록 많은 분량이 그전에 있는 '환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난 전에 우리 주님께서 휴거로 공중에 임하시는 것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아주 가깝게, 밀접하게 연관된 사건입니다. 교회에 휴거 사건이 있고, 그 후에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 재림의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의 뒷부분으로 가서 37절부터 39절까지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우리가 이 말씀을 읽게 될 때 염두에 두어야 되는 것은 여기 나와 있는 사건들이 이 세상의 '말일에 있을 일'이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이 세상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요즘 세상의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무감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장래 일에 대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사람들은 좀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받지 않은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지 않은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두 가지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 그는 자기의 친구, 그 구원받지 않은 친구가 복음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지 않는 친구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친구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네가 아주 제대로 말했어. 그것이 바로 핵심적인 부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문제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1. '알지 못한다'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무관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관심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도 상관치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슬프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이 죄에 대해서 사람들이 듣기 시작할 때, 그들은 죄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일 때, 그들은 죄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더 알고자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 말에 사람들의 모습이 '노아의 때'와 같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노아의 때의 6가지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1. 우선 첫 번째 그 '노아의 때'의 특징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속적인 사상'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다." 그 마음의 생각들이 그 결과로 항상 악한 것만 결과적으로 맺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생각'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을 보면 그것은 마치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이 그릇을 형성하는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들은 어떤 것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악한 것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의 생각의 결과는 악한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에 대해서 아주 멋져 보이고 사람들이 환영하고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회 모습을 그들이 고안해낸 악한 형태로 만들어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좋아하는 그 악한 것을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환영하고 누리도록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뉴에이지 사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이름처럼 그것은 새로운, 뉴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창세기 6장부터 사람들이 만들어냈던 사상인 것입니다.
2. 그리고 두 번째로 노아의 때의 특징은 '과학적인 진보'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4장 말씀을 보게 될 때, 4장 17절입니다.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애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여기 가인이 나오는데 그는 성을 쌓는 사람입니다. 참 그들의 건축 기술이 발전하여 그들은 한 도시를 건설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20절에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우리는 이 사회의 목축업이 또한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절에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이제 음악과 악기가 또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2절에 "그는 동철로 가장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그래서 그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그 사회에서 과학적인 진보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노아가 만든 그 방주도 우리는 아주 놀라운 기술이 들어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일어났던 폭풍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큰 폭풍이었습니다. 그 배를 고칠 수 있는 어떠한 항구도 없는데 그러한 가운데서 그 배를 만든 것입니다. 그 물 가운데서 어떠한 식량을 공급할 수 없는데 그것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그 방주였던 것입니다. 어떤 레이더라든지 GPS 시스템이 없는데도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배였습니다. 370일간을 그들은 모두 그 방주에 안전하게 있었습니다. 그 아라랏산에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그들은 안전하게 그 배 안에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 사람으로서는 그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방주 안에 들어갈 때는 세상에서 그들이 소수였지만, 그들이 다시 방주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는 그들이 사실 세상의 모든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외에 다른 모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또한 여기에 사회적인 측면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1-13).

우리는 그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 "땅이 패괴하였다"라고 그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가득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회의 특징은 폭력과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서는 어떠한 평안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4장에서 라멕이라는 인물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 4:23).

라멕은 아주 잔혹한 보복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맨 처음에 가인은 자기의 형제, 자기의 동생을 폭력적으로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라멕은 다른 청년들에게 이렇게 위협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자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폭력을, 또 그 폭력에 보복해서 일어나는 폭력이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6장에서 그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다"라는 하나님의 결론을 듣게 됩니다.
4. 그리고 또한 노아의 때는 그들의 특징이 '성적으로 문란한', 또 '성적으로 이상하게 된' 그러한 시대입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 6:4).

우리는 그 사람들 사이에 아주 심각한 성적인 문란함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7장에,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마지막 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단지 노아의 때와 같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소돔과 고모라 시대, 그 롯의 시대와 같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49-50).

5. 그 소돔의 죄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함,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이것은 '게으른 것'이, 이제 풍족한 가운데서 게으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게으름 가운데 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그 가운데서 도와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만하고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롯의 시대에 그들에게 가득했던 그 하나님 앞에 가증함이 또한 노아의 때에도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특징들이 인자가 다시 오실 그 세상의 끝에, 그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그들의 특징은 '이기적인' '자기만을 위하는 번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잘못된 쾌락한 그러한 것은 이와 같은 이기심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 세상의 모습이 이러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조차도 세상이 이렇게 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1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아서 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이 나중에 다시 한 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1장의 마지막 부분에 그 인간성이 얼마나 타락해 들어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사실 사람은 진보를 말하고, 진화를 말하고, 그들이 점점 나아진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지만 사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점점 더 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벌레와 같이, 아주 미천한 존재로까지 퇴화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그러한 태락에는 또한 함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이와 같은 잘못된 사상들에 대해서 그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그와 같은 모든 것을 다 용납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고 타당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짧은 생애에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 그와 같은 용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이제 잘못된 결과를 금방 일으켜 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잘못된 것을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잘못된 것을 용납한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잘못된 것이 원래는 옳은 것이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빠르게 이 잘못된 것이 당신이 반드시 승인해야 된다. 이 잘못된 것이 사실은 옳은 것이었다라고 인정하라고까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한 행동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들은 오히려 장려하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이 그 소돔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세상의 끝에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롯의 집에 방문한 그 천사들에게 소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자 했는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합당치 못한 일들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라고 합니다. 오늘날 그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적을 당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어." 참으로 그와 같은 말에 대한 저의 대답은 "맞습니다. 사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악 가운데 태어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이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참으로 오늘날 텔레비전과 또한 인터넷과 라디오에서는 이 악한 일에 대해서 점점 우리가 더 무감각해지도록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당신이 그걸 싫어한다면 그냥 그걸 꺼버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신이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범죄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냥 집에 문 닫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 셈입니다. 그것은 "공기가 오염됐다면 그냥 숨 쉬지 말고 있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이 올바르지 않은 대답이고 합당하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 끝에서, 그 노아의 때와 같은 세상 끝에서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을 알아야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우리는 노아의 때에 그들의 사회의 6가지 특징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노아는 아주 엄중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노아는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전했습니다. 그의 전도는 이제 그들 가운데 내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파에 그 배경 음악으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준비하는 그 망치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때 이제 어떤 실물을 가져다 놓고 실물 교재를 하게 됩니다. 사실 노아가 짓고 있는 노아의 방주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실물 교재였습니다.
이제 창세기 7장에 그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노아는 가족들을 방주에 들이시고 그 문을 친히 닫으십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 문을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분입니다. 그러한 분께서 노아와 가족들을 그 방주 안에 넣으시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참으로 제가 분명하게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노아의 가족들을 들여보내시고 문을 닫으셨을 때 어느 누구도 그 문을 다시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롯과 그의 두 딸이 소돔을 탈출한 후에 그 소돔에 내렸던 그 불의 심판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러한 위험을 알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것을 한 가지 예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옆에 강 형제님이 이곳에 오는 가운데 이야기했던 내용 중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북한과 남한과의 상황을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었는데요. 북한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위협을, 또 미사일을 쏘면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국의 남한에 있는 어느 분도 그것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밤에 잠자지 못하고 깨어 있는 분이 없을 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것은 정말 실제적인 위험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실제적인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날 날이 올 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사건은 분명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이 아주 심각하게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마지막으로 노아와 관련돼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그 가운데 얼마나 큰 공포가 있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직 이 가운데 그의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분이 있다면 참으로 그분께서 이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그 구원의 문은 아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복음 13장에 따르면 이제 그 문을 주님께서 친히 닫으실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늘로 들려 올리움을 받고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그와 같은 일은 이 세상에 큰 공포를 안겨다 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그 고통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을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아마도 3-4학년 때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시골에 아주 작은 그런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니던 학교는 아주 한 교실만 있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단 한 명의 교사만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학년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선생님은 이제 다른 학생들을 학년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될 숙제를 금방 끝내고 선생님에게 제가 도서관에 가도 되냐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도서관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아주 작은 헛간과 같은 곳에 한 30권 정도 책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아주 두꺼운 한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 이야기 책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 저의 부모도 그렇고, 그때 당시에 이 복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저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셨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책장에서 그 두꺼운 성경 이야기 책을 꺼내고 읽어보았습니다. 그 책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의 그림이 바로 이 노아의 방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이 있는 측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의 문은 닫혀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 주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도 있었고, 남편과 아내들, 또 나이 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그 노아의 방주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은 벌써 종아리까지 차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어린아이로서 그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그림에서 본 충격이 계속적으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그 문 밖에 지금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일까?' '왜 그 문은 그들에게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일까?' 저는 나중에 그 성경 말씀을 읽고 나서 거기에 그때 무슨 일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노아가 의를 전파하였을 때, 그들은 그것을 조롱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노아가 그들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전도하였을 때 그들은 그것을 등한히 여기고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2장에 이 구절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우리가 어찌 피하리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그 구원의 문은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그 문은 닫혀버릴 것입니다. 그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완전히 닫힐 것입니다. 참으로 이제 그 후에는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해서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단지 8명만이 그 복음에 반응해서 방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주께서는 그 문을 닫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온 교회를 주님께서는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인할 시간은 없지만, '에녹'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5장에서 노아의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에녹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24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교회가 휴거돼 올라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노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에녹은 먼저 하늘로 들려올림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들려올림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노아는 뭐죠? 노아는 그 홍수 심판을 통과한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노아'는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이 그 환난을 통과해 나갈 것입니다. 그 노아가 새로운 땅에 들어간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환난을 통과해서 천년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내용입니다. 이 땅에 큰 환란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환난에 대해서 다니엘서 9장에서 또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건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은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대해서 24장 36절에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리고 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여기서 이 두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사건은 우리 주님께서 그 '교회의 휴거'를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 두 사건은 단지 7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이 휴거를 언급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또한 한 형제님과 다른 형제님들이 다르게 생각을 하신다면, 또 이것에 대해서 제가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이 두 구절 외에 다른 구절들은 모두 분명히 '환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난을 염두에 두고, 이 두 구절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 '휴거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으라'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 환난을 시작하는 그 시점이 되거나, 또는 그 휴거가 있은 그 이후에 환난이 시작되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니엘서 9장에서 그 환난의 시점이 언제인지 분명하게 못을 박아 놓으셨습니다. 그 9장 27절에 보면 적 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의 협정을 맺는 그 순간이 그 환난의 시작이 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휴거와 그리고 이 적 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협정을 맺는 그 두 개의 사건은 아주 근접한 기일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이와 같이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여기 있는 많은 그런 일들과 그런 사건들이 환난의 때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마치 씨앗과 같은 형태로 우리는 오늘날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참으로 노아의 때와 같고 또한 롯의 때와 같다는 것을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곳마다 여러 분들에게,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들에게, 또한 소년과 소녀들에게, 바로 오늘이 지금이 구원받을 때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우리 주위에 있는 그 많은 경건치 않음과 많은 악한 일들을 보게 될 때,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바로 그러한 구원의 아주 놀라운 본입니다.
특별히 롯이 그렇습니다. 롯은 아주 급박하게 그 심판이 내리는 그 직전에 그 심판을 피했던 것입니다. 가까스로 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롯이라기보다는 노아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그 어두운 때에 의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롯은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점점 소돔 땅으로 가깝게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이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받을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들려올림을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와 그 시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날을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 날과 그 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서 그러한 대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그것은 아버지의 손에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어떤 다른 사건들과 이루어지는지를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