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 / 26년 5월 17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저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을 찾아간 주님께 대해서 교제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의 대로에 가신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많은 성전에 가신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나, 빌라도나, 대제사장에게도 가지 않으시고 슬퍼하는, 주님을 간절히 찾는, 밤이 맞도록 고생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중에 나타내셨습니다. 울고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일곱명의 제자들이 밤을 맞도록 물고기를 잡았고, 밤이 샐 때에 주님께서 해변가에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1. 먼저 누가복음 24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3-16, 개역한글)
두 사람입니다. 한명은 글로바고요, 한명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제자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에 글로바와 그의 아내 마리아가 나오는데요. 많은 형제님들이 이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제자를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로 보십니다.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이둘은 엠마오로 가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자기들의 생각, 마리아의 경험, 제자들의 경험을 이야기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이들에게 갔는가가 17절에 나오는데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눅24:17, 개역한글)
두 슬픈 사람에게 주님께서 가셨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제거해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가셨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여기서 감동받는 것은 이 두사람은 유명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잘 알수 없는 제자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관심있게 보시고 슬퍼하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여기 계신 가장 나이가 많은 김보영 형제님부터 가장 나이가 적은 현준 학생에게까지 주님께서는 각자를 지켜보식고 돌보시고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눅24:21, 개역한글)
주님께서 죽으시고 삼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날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자들에게, 베드로에게, 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둘은 주님께서 죽으신 3일동안 예루살렘에 우거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을수 없었고 슬퍼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5-27, 개역한글)
이 두사람은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합니다. 이를 분명히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난 받으셔야 하는것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련하고 ..모든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다 믿어야 합니다. 복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도 간직해야 합니다. 이 두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더디 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설명해 주시는데요. 참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어떤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창세기 3장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내용을 설명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유월절에 죽은 어린양의 피를 문의 좌우설주, 인방에 바르는 내용을, 또 민수기에 나오는 장대에 달린 놋뱀의 이야기나, 시편에 나오는 내용이나, 이사야 53장에서 상함을 받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상함을 받기를 원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는 때가 생깁니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24:30-31, 개역한글)
주님께서 떡을 주시면서 주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즐기고 싶습니다.
특별히 떡 때문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떡을 떼어주시는 주님의 손을 보았을 때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손자국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 했던 것도, 또 주님께서 모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것도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는데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손에 나타난 십자가의 못자국을 보았을 때 주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앞선 어떤 형제님의 이 교제를 참 좋아하는데요. 주님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신 것 뿐입니다. 주님은 계속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엠마오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잠시 그들의 사이야에서 안보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라지셨는데 이 글로바와 함께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합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 개역한글)
이제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볼때보다 더한 확신으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신합니다. 또 하나는 이들이 경험하는 것으로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을 근거로 해서 주님의 부활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이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슬픈 빛을 띈 이 사람들의 마음이 뜨꺼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눅24:33-35, 개역한글)
그리고 베드로도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고 이 두사람도 주님을 본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2. 또 하나는 요한복음 20장입니다. 앞서 형제님께서 '목자의 음성'을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20:11-18, 개역한글)
주님을 찾고 있는,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찾아가신 주님입니다. 주님꼐서 뒤에 서셨지만 주님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이심을 알게 한 것은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름을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에 마리아는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양이 자기 목자를 잘 아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왜 막달라 마리아 혼자 있을 때에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찾아가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주님을 가장 사랑했고, 주님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사가 주님의 누우셨던 좌우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덤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주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주님으로 그의 마음이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물어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천사와 대화하는 중에 뒤로 돌이켜 봅니다. 저는 천사가 마리아로 뒤를 돌아보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기 뒤에 주님께서 계시는데 "왜 울고 있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동산지기인줄 압니다.
성경에 동산지기가 몇명이 나옵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봅니다. 불이 붙었으나 타지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고 모세가 가까이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오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를 택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가서 그들을 구원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주님께 가까이 가고 주님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붙잡지 말고 형제들에게 가서 주님의 사신것을 알리라 하십니다. 주님은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보혜사를 보내시고 대언자로써, 중보하시는 일을 하실것을 전하라고 마리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더 좋은 일입니다.
3. 21장에서는 밤이 맞도로 디베랴 바다에서 수고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요21:4-12, 개역한글)
"날이 새어 갈 때에" 주님께서는 숯불과 고기를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고기가 없는것을 알지만 "고기가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이는 무언가를 깨닫게 하시려고 물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어부였습니다. 자기들의 일에 매우 능숙하고 잘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주님 없이는 아무 소득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했을 떄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제자들로 고기를 잡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바다에서는 그들의 힘으로 그물을 끌어올릴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을 때에 그 말씀을 따라 끌어올릴수 있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이 세가지 대목을 통해서, 주님의 손을 통해서, 주님의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통해서, 또 주님의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심을 밝히 보게 됩니다. 특별히 마리아에게 찾아가셨을 때는 아침에 찾아가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는 낮에, 제자들에게는 아침이 밝아오는 밤에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어느때나 저희 곁에 계십니다. 항상 곁에서 동행하시며, 바닷가에 서 계시며, 마리아의 뒤편에 서 계십니다.
4. 또 스데반이 순교할 때를 특별히 생각하게 됩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바라볼 때에 주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데 그에게는 어떤 장애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에는 더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그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흰돌에 그 사람과 주님만 아는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마리아를 부르신 주님께서, 저희를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에게 떡을 주셨던 것처럼, 저희에게 또 먹을것을 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삶을 돌아보면서,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슬플때, 또 이렇게 기쁠때, 또 이렇게 힘들때, 항상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음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항상 주님께서 분명히 곁에 계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우리를 위한 사역을 하고 계시지만, 또한 주님께서는 여전히 서서 저희를 돕고 계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같은 부분들을 묵상하며 주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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