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12절 “세상을 이김” / 한봉래 형제님 / 26년 5월 3일 일요일
요한일서 말씀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 5절 말씀 살펴보겠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이제 5장 하면서 "세상을 이기는 이김"에 대해서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게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가' 하는 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세상을 이긴다'고 했을 때 잠깐 그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 임금'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단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구약으로 가셔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하라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출 5:6-11).
모세가 이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 내보내라." 바로가 말 안 듣습니다. "여호와가 누군데 내가 그 말을 듣고 내 종 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보내겠느냐?" 그러죠. 그래서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이제 바로는 이렇게 만듭니다. 이게 바로가 세상 임금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냐면,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벽돌을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 들어갑니다.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일하는데, 그래서 이제 잡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가진 온 힘을 국고성을 성을 짓는데, 벽돌을 만드는 데, 온통 소비하게 만듭니다. 이게 바로가 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 살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직장 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고 진이 다 빠져서 말씀 볼 시간이 없습니다. 예배 준비 못 합니다. 이게 바로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모세가 합니다. 모세가 이제 출애굽 시키죠. 여기서부터 꺼내놓는데 이제 방법이 뭔지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게 세상을 이기는 원칙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원칙은 단순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겁'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으로 가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 3:6-8).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꺼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아니, 모세가 와가지고 괜히 나가자 그래서 삶이 더 어려워집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저기 지푸라기는 이렇게 줘서 벽돌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짚까지 주어다가 만들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한테 원망하죠. "이거 괜히 당신이 와서 출애굽 하자고 그래서 더 어려워졌다." 이렇게 하는 거죠. 예수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이제 더 어려워지는 거죠. 그런데 이제 모세는 이렇게 접근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는 지금 현재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 있는 이 '현재'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너희들은 여기 애굽 땅에 있다. 여기서 하루하루 사는 거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왜 애굽 땅에 있는지, 너희들의 과거는 뭐고, 현재는 애굽 땅에 있지만 너희들의 미래는 뭔지를 말합니다. 이걸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뭐라고 그러냐면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이다. 내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뭐라고 약속했냐면, 내가 너희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라고 하는 약속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희들의 과거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여기 와 있죠? 맨날 설명드린 거죠. 하나님이 가난한 족속들을 멸하고 거기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집어넣을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인데, 아직 가나안 족속의 죄가 관영하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이 가나안 족속을 치려면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강성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넣었습니다. 애굽으로 어떻게 넣냐? 요셉을 먼저 보냅니다. 그래서 애굽 땅에 기근이 듭니다. 애굽이 이걸 감당할 수가 없어요. 이 기근을 어떻게 해야 되냐? 기근이 들기 전에 이제 하나님이 바로에게 미리 꿈으로 했죠. 이 꿈이 뭐지 요셉이 다 설명합니다. "7년 풍년, 7년 기근이 있을 것입니다."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 요셉이 처리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가족들이 여기 와 있는 겁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요셉 때문에 이 애굽이 이렇게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잘 대우했죠. 그런데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이들을 노예로 삼아버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너희들은 과거가 있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너희들은 그냥 여기서 지금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고, 너희들이 여기에서 살게 된 과거가 있다. 그다음에 "너희들은 계속해서 사는 거 아니다." 그다음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내가 데려갈 거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1. 너희들의 과거, 2. 너희들의 현재, 그리고 3. 너희들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가 무섭죠. 바로 밑에서 맨날 종 노릇 했는데, 바로가 화나면 막 죽이기도 하고 그러니 무섭죠. 그런데 이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게 뭐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이요? 우리의 과거를 말씀하신 하나님, 우리의 현재를 말씀하신 하나님, 우리의 미래를 말씀하신 이 하나님을 믿을 때, 그들이 출애굽합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신약으로 오셔서 우리들에게 적용해 봤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보시겠습니다. 우리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걸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어떻게든지 세상에서 잘 살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이게 아니고 너희들이 왜 세상에 와 있는지, 그리고 이 세상은 잠시고, 끝나고 나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1.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는 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현재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든지 좀 잘 살아보려고 지금 현재의 삶이 중요하죠. 여기서 이제 성공도 하고, 자녀들 키우고, 집도 사고, 이렇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합니다. "너희들이 여기서 살게 된 이유는 내가 세상을 만들기 전에 너희를 선택했다." 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과거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일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걸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깁니다.
2.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4절, 우리의 미래.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우리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뭐냐? '기업'이 있는 것입니다. 업 우리 미래의 기업은 우리가 미래에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얻게 된 것은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럽지 않다'고 하는 것은 '죄'가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쇠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이 지나가도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시간이 건드리지 못하는 미래가 약속돼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우리 과거, 미래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말합니다.
우리 우리 현재에 대해서는 이제 몇 가지 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이게 우리의 현재입니다. 17절,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게 우리 현재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21절, "너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게 우리의 현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지금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지, 우리 과거는 뭔지, 우리의 미래는 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해서 건져내는 방법입니다. 바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는 뭔 과거냐? 너희들은 그냥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거다. 너희들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온 거 아니다. 그냥 우연히 태어나서 살고 있다. 미래는 뭔 미래냐? 죽음은 없지. 죽음 후는 없는 거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된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로, 하나님은 교회로 선택해서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 현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경이 말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이 이와 같은 말씀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신 말씀들을 믿는다면,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이렇게 사도들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분이 예수님이고,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우리는 세상을,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직장을 잃는다 해도,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산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이렇게 했듯이 그 상응하는 구절을 약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가시죠. 주님은 자신에 대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런 것에 상응하는 표현을 주님이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요 16:28).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셔서 이 세상에서 말씀하시고 다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선지자들을 사용하셔서,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또 바울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아버지로부터 계시다가 세상에 오셨고 다시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이분은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운행하시며,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바로가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기꺼이 나와서, 세상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제 모세가 그렇게 하죠. 바로한테 "이스라엘 백성 내보내라. 이스라엘 백성이 삼일길을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거다." 그랬더니 "무슨 하나님이 어디 있고, 예배가 뭐냐?" 그런데 이제 자꾸 재앙이 내리니까 나중에 허락을 하죠. "가라." 그런데 막 조건을 걸죠. "남자들만 가라.", "여자하고 애들은 놔둬라.", "짐승은 놔둬라." 모세가 다 거절하죠. "같이 가야 된다. 남자들만 가는 것 아니다. 함께 가야 된다. 가축, 거기 가서 희생 제사 드려야 되는데 안 된다." 뭔가를 세상에 남겨두면 하나님께 예배를 못 드립니다. 뒤쪽에 있는 거거든요. 다 데리고 갑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보겠습니다. 이제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 것은 1. 첫 번째 '세상 임금을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2. 그다음에 두 번째 '세상의 미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압박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요한일서에서 다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으 하나님의 아들로,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으면서 살면 세상이 미워합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13).
세상이 미워합니다. 세상이 압박을 가합니다. 그럼 이제 도로 "힘들어서 안 되겠네." 그리고 타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미움을, 세상의 핍박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다시 5장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3-4).
그러니까 "아이고 이렇게 말씀대로 살려고 했더니, 예배드리고 살고, 성경대로 살고 하려고 했더니 이거 못하겠네. 이게 이렇게 어렵네." 라고라고 하는 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겨내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른 성경 부분과 관련해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주님께서 "내 멍에를 매라.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의 멍에'가 뭔지 잠깐 보겠습니다. 바로 전장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7-39).
이게 주님의 멍에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게로 오라." 주님은 말하십니다. 가볍고 쉽대요. 이게 어떻게 가볍고 쉽습니까? 부모를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주님과 동행 못 합니다. 부모, 자녀 아니고 그다음에 자기입니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도 주님과 동행 못 합니다. 이렇게 하셔놓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와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대요. 이게 모순이죠. 세상이 우리를 압박하고, 미워하고, 우리는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이길 수 있대요. 이기는 것이, 나를 미워하는 세상 속에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가볍고 쉽대요. 이제 우리가 이걸 이해를 해내야 합니다.
'멍에'에 대해서 한마디만 한 가지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멍에가 뭐냐 그러면, 멍에는 성도님 잘 아시는 대로 이제 두 짐승을, 소 두 마리를 함께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목에 거는 거잖아요. 그런데 멍에에 대해서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왕상 12:10-11).
이게 이제 솔로몬 아들이 르호보암이죠.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백성들이 와서 "우리가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부친 솔로몬 왕께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셔서" 그게 아마 그렇겠죠. 성전도 지어야 되고, 국고성도 지어야 되고, 왕궁도 지어야 되고, 그러니까 이제 농사 지어야 되는 백성들을 모아다가 뭐랄까 관급 공사, 국가적인 일에 동원을 한 거죠. 이게 너무 많으니까, 이제 다 지어졌으니까 어느 정도, "이제는 좀 당신이 왕이 되면 좀 가볍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할 때 '멍에'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멍에는 뭐냐? '왕의 명령'입니다. 왕이 명령하기 때문에 우리가 따라야 되는 의무가 멍에입니다. 주님이 왕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이 멍에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부모를 나보다 더 사랑해도 안 된다." 멍에입니다.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해도 안 된다.", "자기 목숨을 나보다 더 사랑해도 안 된다." 이게 왕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볍고 쉽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성경 읽을 때마다 "주님, 이거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이게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사람을 아시면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아시면서 왜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건 이제 저희들이 따져가야 되는 거죠. 이제 풀어가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 12:1-13).
여기까지, 이제 두 안식일에 연속적으로 있었던 두 개의 사건입니다. 저희들이 조금 익숙한 구절이죠. 예수님은 주로 북쪽 갈릴리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있는 남쪽을 내려가십니다. 그리고 절기를 다 지키시고 나면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죠. 이번에도 주님께서 이제 절기가 있어서 유월절, 초막절, 이런 절기가 있으면 예루살렘에 내려가셔서 이제 이스라엘 사람에게 부여된 율법적인 명령을 따라 절기를 지키십니다. 그리고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 정통 유대인들, 랍비들하고 논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한테 제일 걸리는 게 안식일 문제가 걸린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돌아가시는데 이 예루살렘에 있는 정통 유대인들이, 율법적인 유대인들이 뒤쫓아갑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제대로 안 하시는데 이걸 걸어 가지고 예수님과 결별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죽이려고 한다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하고 이제 열두 제자랑 같이 이렇게 가시다가 시장 하시니까 이제 밀밭에 있는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관습에 의하면 남의 밭에 곡식을 잘라먹으면 절도죄입니다. 이스라엘은 합법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곡식을 벨 때에도 구석에 있는 건 놔둬라. 그래서 이건 누구든지 먹게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이제 유대인들한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이삭을 먹는 건 괜찮은데, 이 이삭을 비벼 먹은 거예요. 이 이삭을 그냥 못 먹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낱알을 까야 되는 거죠. 이건 일에 해당합니다. 일에 해당한다고 바리새인들은 해석한 것입니다. 주님은 "일 아니다." 이렇게 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안식일 논쟁보다도 지금 이제 저희 주제에 맞게 가보면, 그래서 이제 그들이 제자들한테 말을 안 하고, "너희들 왜 안식일 어겼어?" 이렇게 안 하고 예수님을 고소합니다. "예수님, 아니 왜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게 하십니까? 당신 책임입니다. 당신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메시아일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거죠.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이 있는 것 너희들 모르냐?" 성경에 안식일 다 지키라고 그래놓고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을 해라. 안식일에 일 안 하면 안 된다. 안식일에 꼭 일해라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거 혹시 읽어봤냐? 누구죠?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일해야 됩니다. 안식일이 되어도 진설병 그거 갈아야 됩니다. 등대의 심지, 이게 불이 잘 나오도록 갈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라고 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법에서 저촉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저기 진설병 갈아라고 그랬는데 그거 해야죠. 그러니까 그건 비난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주님이 이렇게 해석합니다. "안식일에 왜 그들이 이 진설병을 갈고 하는 것이 이 안식일 법에 저촉되지 않냐면 성전 안에서는 괜찮기 때문이다. 성전 안에서는 일하게 돼 있다. 성전 안으로 들어오면 안식일법은 무효다." 이렇게 된 거죠. 그리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성전보다 크니라." 성전은 물리적인 상징물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어디로 가냐면 성전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고 싶으면 성전에 양을 한 마리 가지고 가서 그 피를 뿌리고 제사장이 양에다가 이제 안수하죠. 제사장이 양 잡고 그 피를 뿌리고 "됐습니다. 당신 죄 용서 됐으니까 평안히 가세요." 그러면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갔죠.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거기 보면 상징물들이 있습니다. 뜰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고, 언약궤가 있고, 다 상징물이죠. 성전은 그림자입니다. 모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주님입니다. 주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부탁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용서하시고, 주님이 능력을 베푸시면, 하나님의 용서와 능력이 있는 거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성전보다 크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제자들이 밀을 깐 것은 안식일법에 어긴 거 아닙니다. 아닌데, 바리새인식을 인정해서 어겼다고 쳐도 그들이 왜 안식일에 밀을 깠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나를 섬기기 위해서 한 것이다." 그들도 먹지만 그들이 우리 주님 시장하실까 봐 나를 섬기기 위해서, 나를 먹이려고, 나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 것이다. 나는 성전보다 큰 사람이다. 나를 섬기려고 할 때, 성전에서도 안식일법이 성전 안에서 무효가 되듯이 나를 섬기려고 하면 안식일법은 무효다. 이렇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걸 '왜 멍에가 더 가볍냐'라고 하는 것하고 연결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이따 설명하겠습니다만, 이게 "내 멍에는 가볍다." 부모고, 자녀고, 자기 생명보다도 나를 더 먼저 우선시해야 된다라고 하는 이 무거운 멍에가 가볍게 되는 원리가 거기 숨어져 있습니다. 지금 그걸 지금 주님이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그다음 주, 일주일 후에 또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저번 안식일에는 이게 약간 논쟁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뭘 인용하셨냐면 구약 시대에 다윗이 진설병 먹은 것을 인용을 하셨어요. 다윗은 비난하기 곤란하거든요. 다윗이 분명히 진설병 먹은 것, 이거 안식법에 어긋난 것 같아요. 그런데도 다윗은 비난 못합니다. 자기들의 최고 왕인데, 그러니까 이건 이제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이제 다시 송사거리가 없나 하고 일주일 후에 있었더니 드디어 또 나왔어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들이 물어봅니다. 이제 이번에는 직접 예수님을 걸기 위해서 말합니다. 예수님께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손이 말랐으니까, 이게 어떤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제 한 손을 못 쓰는 거죠. 다시 말하면 이 병은 오래된 병입니다. 안식일에 꼭 고칠 필요가 없는 병입니다. 이렇게 가끔 그런 게 나오죠. 38년 된 중풍병을 안식일에 고칩니다. 그래서 이제 유대인들이 그러는 거죠. 그렇게 불쌍하시면 안식일 전날 고쳐주시든지, 뭐 하루 상관없으니까 안식일 후에 고치셔도 되는데 예수님이 꼭 안식일에 딱 고칩니다. 일부러 하신 거죠. 의도적입니다. 바리새인하고 충돌을 일으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도전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율법이 뭐냐?" 이렇게 말씀하신 거죠. 너희들은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율법을 잘못 해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에 없다. 구원받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신 거죠. 그래서 이제 여기도 똑같습니다. 이제 손 말랐는데 이 사람 손이 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닙니다. 이날 꼭 고쳐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리새인 쪽에서 물어본 거죠.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되죠." 그랬더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생각해 봐라." 그래서 우리 삶에서 이런 걸 봐야 됩니다. "너희들 양 한 마리 있는데" 유대인들에게 양은 비싼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자동차보다 소중합니다. 이게 집 정도 됩니다. 이게 양이거든요. 그런데 양이 한 마리밖에 없었어요. 많이 키우면 좋겠지만 돈이 없으니까 한 마리를 키웠어요. 그런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어요. 이거 안식일이니까 죽도록 놔둘까요? 아니면 꺼낼까요? 이게 유대인들이 다 어떻게 했냐면, 유대인들은 그 당시 일반적인 관습이 꺼냈습니다. 꺼낸 거예요. 왜요? 비싼 거거든요. 이거 죽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놓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거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들이 생각하는 안식일 법에 어긋난 겁니다. 그래도 하는 거예요. 그대로 모순을 주님이 지적하신 거죠.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거 안식일 어긴 거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안식일 논쟁보다도 이렇게 갑니다. "너희들이 왜 그렇게 하냐면 나 그거 동의한다. 그거 불법 아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양이 귀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이잖아요. 이게, 생명이 죽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이게 돈으로서 가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이고, 너희들이 막 이렇게 집에서 꼭 자녀처럼 이렇게 키우는 생명이고 귀중한 거니까 꺼낸 거 아니냐? 그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은 고쳐버립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다. 너희들한테는 양이 귀중하다. 양은 귀중합니다. 누구한테요? 키우는 사람에게 양은 귀중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양이 귀중한데 사람은 양보다 얼마나 더 귀중하냐? 사람은 누구한테 귀중하죠? 누가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죠? 하나님입니다. "너희들이 양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귀중히 보신다." 그래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다 해도 이 법을 깨고라도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다, 이렇게 한 거죠.
그러면 이걸 이제 멍게가 가벼운 걸로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부모,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든지 돌봐드리는 것이 합당한 이 부모는 누가 주셨죠?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귀여워하고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이 자녀들 누가 줬죠?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 내가 나는 나를 귀중히 여기죠. 나에 대해서, 그런데 이 내 생명은 누가 줬죠?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더 귀중히 여겨야 합니까? 그래서 이제 이 부분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지만 그 '부모를 주신 주님을 더 높이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다시요, 내가 부모님을 잘 돌보지만 이 부모님은 주님이 귀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나는 부모님을 잘 돌봐드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내 능력에 한계가 있고, 상황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나의 부모님을 나보다 더 사랑하시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자기가 제일 사랑한다고, 자녀 외에 누가 부모를 더 사랑하겠냐? 이웃이겠느냐? 친척이겠느냐? 내 자식이 부모를 가장 사랑하지. 맞죠, 그런데 하나님이 더 사랑하십니다. 내 자녀 귀중하죠. 사랑하죠. 그런데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자녀를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게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욥입니다. 욥이 어떤 일을 겪냐면 자기 자녀를 일순간에 잃어버립니다. 자기 자녀들이 같이 식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식사하는 집 기둥이 무너져서 자녀들이 한꺼번에 싹 죽어버립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개입한 일입니다.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그 멀쩡하던 건물, 욥이 부자거든요. 멀쩡한 건물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안전 진단 어저께 받은 거예요. 그런데 무너졌어요.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뭐라고 대답하죠? 이제 아내가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 원망하고 죽으세요." 욥의 대답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고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찬양을 받으실지어다." 이게 욥은 멍에가 가벼운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안식일에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은 얼마나 귀중하냐?" 라고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귀중하다라고 말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멍에가 가볍다.
우리가 이제 주님을 섬길 때 대가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미워하거든요.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제 아까는 이제 세상 임금을 이기는 거고, 그다음에 이제 세상은 압박을 이기는 건데, 세상의 미움을 이기는 건데, 세상이 미워하니까 이제 주님을 섬기려면 나한테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때 희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때 이제 결정을 어떻게 하냐면 내가 섬겨야 되는, 내가 순종해야 되는, 내가 순종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되고 순종 안 하면 대가 안 지불합니다. 뭘 결정할까요? 그때 우리의 계산이 이렇게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시면 이 희생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고 이 세상을 만드신 분입니다. 이 세상을 지금도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만드실 분이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그 하나님 아들을 섬기고 내가 희생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계산이 쉽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저께인가 그저께인가 인용했던 엘살바도르에 갔던 선교사 그분이 그렇게 하는 거죠. 그 밀림 지역에서 자기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는데 그 원주민들이 도끼를 들고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자기는 복음을 들고 있는데, 권총이 있는데, 결정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을 죽일 건지, 자기가 죽을 건지, 만약에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제 내가 동일하게 주님처럼 이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기꺼이 죽음을 당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인가? 이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산이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하는 겁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바리새인들이 본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이삭을 비벼가지고, 이게 비난받을 거 압니다. 이거 잘못하면 주님, 이제 완전히 바리새인들에게 소문 나서 이제 사역에 지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밀을 비벼가지고 섬기신 것은 주님은 섬길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보다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들은 어떤 대가와 희생을 지불해도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저희들이 마태복음에서 두 안식일과 관련된 사건, 그다음에 요한일서에서 한 사건을 통해서 저희들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게 말합니다. "나는 창세 전에 선택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교회로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영광스러운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 미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이 이 현재에 주님을 섬기고, 그리고 주님이 나를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이기고 세상 미움을 이기는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이 같은 말씀으로 저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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