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요한일서 3장 8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이유” / 한봉래 형제님 / 26년 5월 3일 일요일
하나님 말씀은 요한일서 3장 8절 말씀을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여기 "하나님의 아들"은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죠.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뭐냐 그러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깐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마귀가 뭔 일을 했는가?' 첫 번째 저희들 질문입니다. 마귀가 무슨 일을 했는가, 그다음에 뭔가 멸한다는 것은 이제 한문으로 돼 있어가지고요. 원상 복구시키는 것입니다. 마귀가 했던 일들을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마귀가 했던 일들을 취소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거고요.
그러면 이제 마귀가 하는 일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로 가셔서 구체적으로 마귀가 뭘 어떻게 했냐? 창세기 2장 15-17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이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여서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마라." 그런데 먹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제 먹지 말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도록 마귀가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마귀가 뭘 했는가,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아담과 화를 어떻게 만드셨냐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첫째, 창조하셨습니다. 아주 존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람을 다른 존재에게 하나님을 대변하는, 그래서 이제 신약 성경에서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다." 대사는 외국에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이 아닌 존재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다를 나타내도록 사람을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에덴 동산에 이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채울 수 있는 환경을 두셨습니다. 하나님 은혜죠.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마라." 하나님은 어떻게 기대하셨냐면 사람이 나를 만드신 하나님, 이 아담의 경우에 하나님이 자기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명백하거든요. 우리는 가끔 그런 사람이 나오죠. "아니, 우리를 하나님 만들었는지 어떻게 아냐? 안 봤는데," 막 이렇게 하지만, 아담은 자기를 만드신 것으, 그리고 이제 하와도 물론 이제 잠들었지만 하와도 옆구리에서 이렇게 딱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를 만드신 분이거든요. 그리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분입니다. 그는 완벽한 환경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부족한 게 없어요. 그리고 누구하고 갈등도 없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으로 하나님은 기대하셨습니다. 당연히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안 하면 되죠. 그런데 이걸 불순종하도록 사단이 이제 꼬드입니다.
어떻게 꼬드겼냐 그러면,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못 먹게 했잖아요. "왜 하나님이 못 먹게 했냐?" 이렇게 한 것입니다. "좋은 건데 못 먹겠다. 이거 선악과 먹으면 좋을 텐데, 선악과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그래서 선악과가 좋은 건데 이 좋은 것을 하나님이 제약하셨다.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분이 아니다. 상당수는 그렇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중요한 것, 이거 못하게 했지 않냐?"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듭니다. 이게 사단의 일입니다. 사단의 일은 하나님이 선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뒤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짜 좋은 것은 우리에게 허락 안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는 하나님 밑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맨날 순종해야 되는 사람이 됐지 않냐라고 하나님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듣고 아담과 하와가 "그러네." 이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니까 이렇게 먹은 것입니다. 이게 사단이 한 일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뭐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원래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일을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 아니다. 우리를 위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말을 들으면 손해다. 하나님은 자꾸 못하게 한다. 이렇게 왜곡시킨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바로잡습니다.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걸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만 더 이 논의를 조금 하나만 더 진전시키고 이제 예수님에게 넘어가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시겠습니다. 십계명 관련된 부분인데요.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 20:1-4).
그래서 이게 저희들이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이 10가지를 명령하셨어요. 우상 만들지 마라. 우상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을 이렇게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영이니까 보이는 분이 아니다. 형상 만들지 마라.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안식일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런 10개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들으면 아까 선악과 먹지 말라하고 똑같습니다. 이제 십계명이 있고, 또 우리 시대에도 그렇죠. 예수님 믿어야 된다. 안 믿었다가는 지옥에 간다. 이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제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아니 왜 선악과를 왜 만들어 가지고 또 못 먹게 하셨냐? 하나님이 또 참 그렇게 안 하시면 더 좋았을 텐데."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자꾸 왜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기의 십계명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십계명은 언제 주신 거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이었습니다. 노예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종에서 건져냅니다. 건져내서 그다음에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들이 제약 가운데 있던 종에서 자유롭게 해방시킨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다시 종으로 가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너희들에게 다시 또 뭐 이거 해야 되고, 저거 해야 되고, 이거 안 하면 뭐 되고, 이렇게 하려고 지금 너희를 해방시킨 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십계명도 옛날에 뭐 해야 된다, 그런 명령이 아니다예요. 이게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는 너희를 종에서 건져서 자유인으로 만든 내가 하는 명령이다."입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제약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를 뺏는 게 아닙니다.
"자유 뺏는 거지, 왜 안 뺏는 거예요? 우상도 마음대로 만들고 그러면 되는데, 하나님 이름도 함부로 불러버리고, 막 그거 못하게 했잖아요." 이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제 이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만약에 우리나라에 법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로에 차가 다니는데 교통 규칙이 없어요. 원하는 대로 달리고, 빨간 불에도 달리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빨간 불에는 서십시오.", "속도는 몇 킬로 이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제한하는 것은 도로 교통이 원활하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교통은 마비됩니다. 이게 상식이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제한하는 것은 '자유가 유지되기 위해서'입니다. 자유가 자유답게 실행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종이었다. 내가 해방시켰다. 그리고 너희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너희들이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명령한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만약에 내 명령을 어기면 너희들은 종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 어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바벨론 포로, 종이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해방시킨 이 자유를 계속해서 누리고, 그 자유를 발전시키고,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이게 성경이 계속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계속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왜 이렇게 뭘 못하게 하냐? 자꾸 집회 나오라 그러고, 안 나오면 좋은데, 안 나오는 게 편한데,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데, 자꾸 뭐 해라 그러냐?"라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면, 제가 이제 맨날 하는 건데 예배드리면 하나님한테 이익이 됩니까? 우리한테 이익이 됩니까? 우리 예배를 받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예배자가 되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인간이 된 것입니까? 우리 쪽 이익이 더 큽니다. 하나님이 뭘 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제 요즘에도 아인이한테 뭐 해라, 싫어해요. 그런데 제가 하라고 하는 일이 그를 괴롭히기 위해서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은 안 듣는 것입니다. 자기를 괴롭힌다고, "잔소리 좀 그만해." 맨날 공부해라고, 그런데 이제 일상생활에 이걸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되라."라고 하는 말을 "왜 이상하게 맨날 그러냐? 복음도 이제 내가 다 아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제약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희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자유가 참된 자유답게 되도록, 그 자유를 계속해서 누릴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설득이 안 된 거죠. "너희를 해방시킨 하나님이 십계명을 줬으니까, 이게 제약하는 게 아니고, 너희들의 해방이 해방다운 해방이 되도록 이걸 지키고 있어야 된다." 했더니 "십계명 그걸 왜 지켜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된 거죠.
그다음에 이제 예수님께서 그럼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내시는가 다시 보겠습니다. 로마서 5장 6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끝까지 보시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로마서 말씀이죠. 이제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셨는데, 2천년 전에 죽으셨죠. 물론 2천년 전에 우리는 없었죠. 어쨌거나 지금 현재로 보자면 아직 내가 예수님을 안 믿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이미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이걸 다시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냐? 내가 아직 믿지 않는데 나를 위해서 죽은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믿으려고 하는 사람을 위해 죽은 게 아닙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죄인 되었을 때"죠. 그다음에 "원수 되었을 때", 죄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싫어해요. "성경 지겹다. 난 믿는 거 딱 싫어! 차라리 절에 가면 갔지." 이런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연약할 때"는 이런 뜻입니다. 제 마음속에 "그래, 내가 믿어볼래. 자꾸 그렇게 권하니까 한번 믿지, 뭐." 그런데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질 않는 거예요. 이런 사람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람은 사랑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느냐? 선인을 위해서, 의인을 위해서입니다. 내가 생각할 때 괜찮은 사람,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사람을 위해서 우리는 희생할 용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를 들면 부모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뭐 이렇게 아주 좋은 일 하는 단체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보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막 하죠. 이게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의롭기 때문에 하는 거죠. 이게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걸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돼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희생할 수 있고, 또 이게 참 옳은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와 같은 희생을,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해도 이게 옳으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일 때, 원수일 때, 연약할 때,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2천 년 전에 죽으셔서 이렇게 하시는 말씀이 뭐냐 그러면 이제 '사단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약하는 것은 믿어야 된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은, "그냥 다 구원을 하시면 되지. 하나님이 믿건 안 믿거나 싹 구원해 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이 왜 조금만 구원하시냐? 또 보니까 믿는 사람은 숫자가 훨씬 적은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가는데, 뭐."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왜곡된 생각을 자꾸 사단이 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사단이 왜곡하는 거예요. "아니야,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사람만 구원해.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기로 정했대." 이렇게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에 죄인일 때, 우리가 연약할 때, 원수 될 때,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하시는 것이다. 믿어라라고 하는 말도 우리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지옥 보내겠다는 말이 아니고 믿음으로 함께 놀라운 은혜를 누리자라고 하는 뜻이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제 안 믿의는 분들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한테 뭘 해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이제 뻔한 대답을 하는데, "하나님이 나한테 로또 40억짜리 로또 한 세 번 당첨되면 하나님이 나 사랑한다고 믿을 용의가 있어요." 그렇죠, 요즘에 이제 많이 하는 건데요. 이제 그 일론 머스크라고 하는 그 분이 지구가 이게 지금 막 문제가 많잖아요. 기후 위기도 있고, 지진도 맨날 나고, 그래서 아주 생각하는 게 굉장히 기발한 사람이잖아요. "화성에서 살자." 그러거든요. 만약에 하나님이 행성 하나를, 화성 하나를 나한테 주신다면, "이거 다 네 거야. 화성 내가 너한테 줄게." 하나님이 나 사랑하는 게 맞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합니다. 왜요? 그렇게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나를 이해관계로 설득하지 않습니다. 훨씬 고급한 것입니다. 사람은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물질들을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애를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살고, 그리고 내가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같이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너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네가 내 백성이 되고,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는, 이 관계와 관계를 맺고 싶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입증하시고, 또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함께 거하는 것이다. 이제 그다음에 하나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로 가셔서 저희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 구절 다시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제 하나하나 설명하겠습니다. '세상 죄'입니다. 세상 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전부입니다. 그가 아무리 악한 사람이건, 그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나쁜 짓을 했건,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예수님이 지고 가신, 예수님이 그 죄를 이제 없애버리신 거죠. 없애버리셨는데, 이 "지고 간다"라고 하는 동사는 현재형입니다. 지금도 지고 가십니다. 지금도 자기 죄를 예수님에게 맡기는 사람은, 그 사람 죄를 예수님이 지금 현재도 없애고 계신 겁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어린 양"인데요. '양'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희생양', 우리나라에도 그런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 어떤 일이 생겼어요. 어떤 단체에서 예를 들면 어떤 정당에서 잘못된 일이 있어요. 그럼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돼요. 그런데 최종 책임자가,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당 대표가 책임질 수 없잖아요. 그러면 물러나면 안 되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 하나를 희생양을 삼습니다. "네가 책임져라." 이제 이게 희생하는 거죠. 실질적으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고, 어떤 조금은 고위직이 자기가 책임지고 사표 내고, 그러면 이제 된 거죠.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우리가 직접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죄를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이 죄를 놔두고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신 죽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어야 됩니다. 이걸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희생양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죠. 하나님의 양인데,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됐잖아요. 이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양은 옛날에는 사람들이 양을 준비해 왔어요.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드렸죠. 이게 구약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은 다 의식이에요. 종교 의식, 여러 가지 보면, 이제 기독교도마다가 의식들이 있습니다. 저희들도 이제 너울을 쓴다든지, 떡과 잔을 한다든가, 이런 게 의식인데요.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하나님이 직접 준비한, 그래서 죄가 정말로 사라지는, 죄가 실제로 사라지는,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는 어린 양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다음입니다. 마지막입니다. "보라"라고 하는 명령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봐야 된다." 우리의 두 눈으로 이분이 어떻게 내가 죄를 맡겼을 때 그 죄를 가지고 가셔서 없애버리셨는지를 내 눈으로 봐야 됩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보라"라고 하는 것은, "뭐 자꾸 뭘 보라 그래?"라고 하는 명령이 아니고, 우리의 자유를 제약하는 게 아니고, 참으로 우리를 해방시키고, 그리고 우리의 자유가 계속 자유답게 유지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걸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맨날 딴 걸 보죠. 예수님이 내 죄를 지고 없애버리셨다라고 하는 것을 보지 않고, 다른 걸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구원과 확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기다가 "보라" 이 놀라운 광경을 봐라. 이 귀한 것을 보라. 이 분명한 것을 보라라고 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앞에서 다시 저희들이 "세상 죄"를, 모든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예수님이 자기가 짐지고, 그리고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써, 그 모든 죄를 없애버리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이게 내 눈앞에 계속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계속 마음에 두고, 그러면 세상에 내가 들어갔는가? 내가 무슨 죄가 있나?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그 죄를 없애버리셨는가?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이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구나.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라고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시고, 마음에 두시고, 묵상하고, 받아들이고, 이 말씀이 내 생각을 주장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내 행동을 통제해야 합니다. 이 말씀과 충돌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은 물러나야 합니다. 이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다시 요한일서로 가시겠습니다. 다시 요한일서 3장에 보시면 그 '마귀의 일'을 3장 8절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 이렇게 돼 있고요. 3장 5절 보시겠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여기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목적이 뭐냐 그러면, '우리 죄를 없애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는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죄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죄가 없는 분이 오신 것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2천년 전에, 그리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죄도 없으신데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사셨는가?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죄를 없애려고" 잠깐 4장으로 가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그래서 9절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까는 예수님이 나타난 거고,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9절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다음에 10절은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9절은 우리를 살리려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10절은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두 가지 설명 드려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려고,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 있었거든요. 왜 죽었냐 그러면 하나님을 우리를 제약하는 분으로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못 살게 하는 분으로, 뭔가 좋은 것을 못 누리게 하는 분으로, 세상이 좋은 거예요. "세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놔두는데 하나님은 자꾸 제약을 하니까, 이거 하나님 믿었다가는 귀찮게 뭐 이것도 해라. 특히 거기 교회 가니까 맨날 돈 내라고 그러고, 또 뭐 해라 그러고, 그거 왜 하냐?" 이렇게 사단이 왜곡을 시킨 거죠. 그래서 사단의 말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 선악과를 먹고 그리고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살리기 위해서, 이제 다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생명을 얻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시는 게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첫 번째 행동은 하나님은 우리를 제약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자유가 참된 자유가 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제 말씀하셨고요.
그다음에 이제 하나만 더 좀 생각해 보면 "보내셨다" 그랬는데요.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어요. 사람으로 오셨어요. 이걸 이제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 이렇게 계셨어요. 그래서 이제 베들레헴에서 말 구유에 계셨고, 또 이제 나사렛에서 이렇게 자라나셔서 목수일도 하시고, 이제 우리 가운데 거하셨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이 예수님이 이제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이스라엘 가운데 이렇게 계시는데, 누구랑 같이 이렇게 사귀고 그랬냐 그러면, '죄인들'하고 같이 계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거예요. "아니, 이분이 왜 세리와 죄인들하고 그렇게 식사도 하시고, 같이 이야기도 하시고 그러지?" 그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 엘리트들은 죄인들하고 같이 안 먹었습니다. 거리를 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깨끗하게 이렇게 살고 있었죠. 그래서 이제 예수님을 죽인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그러고, 거룩하시다고 그러고,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그러고, 하시는 행동은 뭐냐 하면 죄인들하고, 문둥병자 만지시고 막 이렇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보내심"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는데 '이스라엘'로 보내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보내셨어요. 그다음에 어디로 보내셨냐면 '죄인들' 가운데 보내셨어요. 그래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그다음에 어디로 보내셨냐? '십자가'로 보내신 거죠. 하나님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저주받은 죽음을 죽는 십자가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왜 이렇게 보내셨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셨다."
제가 이제 다른 이야기 하나 하면요. 그러니까 이제 어떤 명령은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고 자유가 유지되도록 하는 명령이 있다, 이 말씀드렸고요. 이건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저희들이 이제 익숙하게 하고 있는 경험 중에 하나가 어렸을 적에 생일날이 되면 "갖고 싶은 게 뭐냐?" 이제 뭐 조금 돈이 많이 안 든 것은 그렇게 저렇게 생일마다 사주시는데, 어떤 때는 꽤 비용이 나가는 것을 사달라고 하고 사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게 예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합니다.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건 돈이 꽤 들어가는 거거든요. 학용품이 아닙니다. 장난감이 아닙니다. 돈이 좀 들어가요. 이것을 이제 부모님께 사달라고 합니다. 그럼 부모님이 해서 사줍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선물을 받은 사람은 너무 기분이 좋은 거죠. 부모님이 사주셨구나. 그런데 그가 나중에 이제 어른이 돼서 자기가 결혼해서 애를 키웁니다. 그리고 애가 또 자전거를 사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전거를 사줍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부모님이 어땠을까를 이해합니다. 어른이 돼서 뭘 이해하냐? 그때 나는 몰랐지만 부모님이 자전거를 사주기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가를 이제 압니다. 이게 만만치 않은 액수였습니다. 초등학생은 모르죠. 이게 얼마짜리인지, 그런데 사실은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아들이 이걸 원하니까, 어떻게 하든지, 뭐 조금 빌리기도 하고 그래서 사준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자기가 이제 어른이 돼서 애를 사주려고 보니까 이게 쉽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 부모님이 사주셨으니까 자기도 사주죠. 그러면서 자기도 희생을 하면서 사줍니다. 그리고 압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뭘 보냈냐면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죽일 수 있는 사람, 나는 아들처럼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자녀처럼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게 자녀입니다. 돈이겠습니까? 집이겠습니까? 자녀입니다. 그런데 이 자녀를 내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무언가를 위해서, 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만약에 무엇인가를 위해서 내 자녀를 죽일 수 없다면, 하나님이 아들을 죽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거 믿어야 합니다. 이건 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뭐 아무리 좋은 일이 있고, 위대한 이념이 있고, 뭐가 있다고 해도 그걸 이루기 위해서 자식을 죽여야 된다면 누가 그걸 하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못합니다. 그거 못하면 못 했지, 자식 못 죽입니다. 망하면 망했지, 자식 절대 손 못 댑니다. 이게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구원하려고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믿어야 됩니다. 이걸 안 믿으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10절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제 메아리죠. 반응이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랑했냐? 사랑은 뭘로 나타나냐? 우리 죄를 없애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이걸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로 가서 말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 이 구절을 보면 놀라야 합니다. 왜 놀라야 되냐면 이게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했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했다. 그렇죠, 하나님이 자기가 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했다. 뭐 그렇습니다. 뭐 그렇죠.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죠.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믿지 않는 자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이 아직도 믿지 않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충격을 줘야 합니다. 이걸 듣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직 구원받지 않은 나를, 아직 하나님의 희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를, 하나님은 그 놀라운 희생을 했지만 무감각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이제 계속 나온 거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냐?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을 나를 사랑해서 대신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이 하신 일 앞에 멈추어 서서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합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 같은 일이 있는가? 어떻게 이 위대한 인류 최고의 역사가 있는가?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입니다. "믿는 자마다" 믿음이 뭐냐 그러면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그랬대.", "그랬나 보네."가 아니고 이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나를 바꿔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이게 생명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내 생명이고 앞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이 같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경탄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말씀을 다시 줄여보겠습니다. 다시 요한일서로 넘어가셔서 두 절씩 읽고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잘못된 견해를 원상 복귀시키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3년간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다음에 5절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유는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두 가지 목적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다음에 4장으로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9절에 보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다음에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뭐냐 그러면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두시고, 묵상하시고, 붙드시고, 이 말씀에 내 삶을 드리고 거는 그런 믿음이 나타나서 구원받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을 실제로 누리는 구원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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