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장 “믿음과 영원한 생명” / 한봉래 형제님 / 26년 5월 2일 토요일
이 시간에는 이제 요한일서 마지막 장 5장 교제할 순서입니다. 성경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1-21).
아멘.
우선 문단을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을 1절부터 5절까지 한 문단으로 나누겠습니다. 제목을 붙여보면 5절,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 이게 5장 1절에서 5절까지의 주제입니다.
그다음에 6절에서 12절까지입니다. 6절부터 12절까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를 댑니다. 앞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승리자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는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증거가 어디냐? 그 증거를 12절까지 댑니다.
그다음에 13절부터 17절까지는,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어 세상을 이긴 사람들이 갖는 '확신'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 확신, 13절 '영생이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그다음에 14절부터 17절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이제 요한일서 5장이, 그리고 요한일서 전체가 거의 끝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18절부터 20절까지 요한일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그는 요한일서를 쭉 따라오면서 이제 세 가지를 알게 됩니다. 18절, "우리가 아노라" 그랬는데요. 첫 번째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면 거듭난 성도들은 죄를 범치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압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19절입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걸 압니다. 이 부분은 무슨 뜻이냐면 지금 요한일서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를 계속 해 왔습니다. 이 테스트를 가지고 자기를 시험해 보니까 19절에서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다'라고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걸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20절, 세 가지 아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범죄하지 않는다." 그다음에 두 번째, 세 가지 시험을 테스트해 보니까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다." 그다음에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이 부분은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지식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갖는 고급한 지식, 자기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것에 대한 어떤 고도의 지식, 또 어떤 철학, 또 천사를 숭배하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결론입니다. 결론 저는 20절 맨 마지막, "그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요, 영생이니라." 이게 결론입니다. 요한일서는 뭘로 시작하냐면, 요한일서 1장은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이시고 이 생명에 대해 예수님이 생명을 나타내셨는데, 이 생명을 사도 요한이, 사도들이 듣고, 보고, 주목하고, 만져보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의 시작은 '예수님이 사람'이시다. 이분이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 혹은 미래 세대의 생명, 천국에서 사는 생명을 나타내셨습니다. 나타내신 이분을 우리들이 만지고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람 되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이시다'로 끝냅니다.
그리고 21절입니다. 이제 마지막 성도들에게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우상에서 멀리해야 된다. 우리의 마지막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게 요한일서 5장입니다.
다시 약간 조금 문맥을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이 아까 4장 성경 읽기를 했는데요. 4장 이 끝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문제가 나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장을 나눠놓은 사람은 그냥 문맥하고 상관없이 막 잘라놓은 겁니다. 그래서 요한 5장 1절은 사실은 이 사랑이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형제님이 교제하실 때도 5장 3절까지 간다 이렇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문맥은 잠깐 보겠습니다. 4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랑에 관한 건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거듭나게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들,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해야 되는데 7절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자', 약간 이렇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되지 않겠냐? 사랑하자, 사랑합시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이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자, 이렇게 된 거죠.
조금 11절로 가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처음에는 이 성도가 하나님이 사랑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아까 옆에 있는 성도, 사랑할 수 없는 성도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니까 사랑해야 된다. 사랑하자, 이렇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 부분이 이제 그냥 그냥 거기에서 호소하는 정도가 아니고 이게 의무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당하다. 약간 더 사랑에 대해서 조금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랑하자에 대해서, 그다음에 21절로 가겠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번에는 명령입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 이건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래서 이제 사랑하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기록하면서 계속 강도를 높여가고 사랑해라, 우리 사랑해야 되지 않겠나? 사랑하자,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당연한 결과 아니냐?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지금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5장 3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다음에 이제 세 번째입니다. 이와 같이 형제를 사랑해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조금 문제가 나오는데 어렵지 않다, 어렵다고 아까 고백했는데요.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리면 요한일서는 어떤 의도로 써졌냐면 구원을 확신하도록 쓴 것입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도록" 쓴 책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를 읽으면 우리는 전부 '내가 그건 안 받은 것 같은데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해석상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보다 죄를 범치 아니하니라.", "죄를 범할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서" 이 구절을 잘못 읽으면 '그럼 내가 실제로 저 죄 범하고 있는데, 나 구원 아니네.' 이렇게 가는 거죠. 그래서 이제 첫 번째로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복잡한데 학교에서도 문법, 이런 거 싫어했는데요. 동사, 시제가 현재니, 완료니, 아오리스트 시제, 막 이런 거 따지는 거죠. 할 수 없이 이제 해석하기 위해서 그렇게 따지는 거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도를 사랑합니다. 그 성도가 어떤 성도든지 간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지금 못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을 못 삽니다. 우리 삶의 수준이 죄에 대해서 아주 떨어져 있습니다. 이건 저희들이 요한일서를 보면서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가? 우리가 처음에 배울 때부터 잘못 배웠는가? 혹은 우리가 너무 느슨하게 기준을 낮춰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면들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또 하나는 사랑에 대해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건 제가 이제 다른 형제님, 한국 형제님 말고요. 영국에 있는 형제님들이 요한일서를 교제하시면서 이렇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영국 가스펠 홀에 계신 형제님이 "우리가 교회의 진리만큼이나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더라면 어땠을까?" 라고 하는 말씀을 어떤 형제님이 교제하시면서 이렇게 넣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진리만큼이나 사랑이 강조되어 있었어야 되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고요.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는 이제 지금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를 점검하는 기준을 사도 요한이 세 가지를 댑니다. 그가 죄를 범치 않는가? 의로운 행동을 하고 있는가? 그게 첫 번째입니다. 죄를 범하면서 이제 변명하는 사람들, 1장 6절에 나와 있죠. 죄를 범해놓고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셨기 때문에 이 죄는 상관없다."라고 하는 사람 구원 안 받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나는 구원받았을 때 내 본성이 변화돼서 이제 나는 죄에 대해서 어떤 유혹도 느끼지 않는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나는 구원받은 후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었다." 완벽주의, 완전주의에 이른, "나는 구원받는 후에 완벽하게 산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죄 지을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간혹 죄를 짓게 되면, 그 죄를 우리가 처리하는 게 아니고, 죄를 지은 자기가 처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대언자로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대언자가 계신다. 이게 이제 죄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느냐, 두 번째는 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에 대한 문제, 이제 나랑 성격이 다르건, 뭐 하건, 혹은 분별이 다르건, 이렇게 사랑하는 거죠. 이 사랑하는 문제인데 이게 이제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이제 세 가지입니다. 이제 의로운 행동을 하는가, 형제들 사랑하는 가, 모임에서 이렇게 이렇게 교제하다 보면 막 삐져가지고" 딴 데 갈래요." 막 하기도 하고, 성질 나면 세상으로 가버리고, 조금 조금 덜한 사람은 교파로 가고 막 이러잖아요. 이런 게 문제가 있는 거죠. 그다음에 사랑하는가? 정말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돼 있죠. 이렇게 사랑하는가.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기준이 '진리'입니다. 진리 혹은 교리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믿고 있는가?' 이렇게 이제 쭉 해왔고요.
그다음에 이제 5장 마지막 이 부분은 지금 뭘 다루는 거냐면, 이 세 가지 의로운 행동, 형제를 사랑하는 것 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 이 세 가지가 이제 기준이 돼죠. 제가 이것도 영국의, 제가 한국 형제님을 인용하기에는 늘 부담이 되니까, 이제 외국 형제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어떤 형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거기서도 영국에서도 똑같아요. 저희들도 마포 모임이 이제 요한일서 5장, 3년에 걸쳐서 공부하고 화요일마다 한 절씩 공부했거든요. 약 3년 걸렸어요. 이게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무리 짓는데, 이제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강성찬 형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거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이걸 이렇게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하고 나니까 구원의 확신을 못하겠다라고 하는 성도들이 나왔다." 이제 의도하고 정 반대로 된거죠. 생각해보니 영국에서도 그러시더라고요. 어떤 형제님이 이 기준, 1. 의에 대한 행동을 하는가, 2. 사랑하는가, 3. 예수님에 대해서 사도의 가르침대로 계시받은 대로 믿고 있는가, 이 기준을 우리한테 적용하지 말고 나간 사람들, 여기서 나가는 것은 세상으로 나간 겁니다. 이제 교파로 가도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나간 사람들한테 적용합시다."라고 하는 형제님 제안이 있어서, 성경 읽기하는데 그런 형제님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하여간 이제 오늘 이 5장은 이 세 가지 기준입니다. 이제 이 각각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해서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는가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관계,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 이 세 가지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겠습니다. 1절 보시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이것도 시제 따져야 되는데, 하여간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어떤 성도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죠.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보겠습니다. 이건 이제 약간 복잡한 교리인데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거듭납니다. 어떻게 거듭나죠? 믿어야 되죠. 뭘 믿어야 되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렇게 믿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사람이죠. 태어나셨을 때 이름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이분이 '예수'님입니다. 뜻은 뭐냐 하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뭐냐 그러면 기름부음을 받은 분입니다.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누구누구한테 했냐 그러면,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 죄를 대속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이 대속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왕이십니다. 성도에게는 왕이라고 표현을 안 하는데요. 주님, 이렇게 표현하는데요. 하여간 이분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통치할 것입니다, 라고 믿는 거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걸 믿는 거죠. 그런데 거듭나야 믿습니다. 이상하죠. 믿어야 거듭납니다. 믿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믿는 것하고 거듭나는 것은 이건 이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논리가 아니고, 거듭난 사람이 믿는 거다. 이렇게 이제 표현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이건 좀 생각해 보고요. 어쨌거나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하고, 거듭난 사람이 믿는 것하고는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이제 어떤 분들이 이제 거듭남하고, 믿고 구원받은 것하고, 시차를 두는 분들이 계세요. 거듭났는데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 예를 들면 고넬료 같은 사람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고넬료가 이미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막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가 모르는 것은 복음을 모른 거죠. 그래서 이제 베드로가 가서 하자, 이 고넬리 상태를 거듭난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나기 전은 어떤 상태냐 하면 에베소서에 의하면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생명이 있어야 듣는다'라고 하는 이론을 가지고, 막 그렇게 설명해서 거듭남과 믿고 구원받은 것 하고를 두 가지 다 성경이 말하는데, 이 두 개의 시점을 분리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하여간 5장 1절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거듭난 사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왔다"가 이제 먼저 일어난 사건이, 이제 동사가 먼저 일어난 동사고요.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계속해서 믿는 것입니다. 한 번 믿는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이게 지금 교리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죠. 그리고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2절,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데 이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3절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2절에 보면 말씀이 뭐냐 하면, 계명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해라. 이게 4장 21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걸 이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말씀을 순종하고, 그런데 말씀이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형제를 사랑하고, 이렇게 지금 된 거죠. 제가 복잡하게 말했지만 하여간 그런 거죠. 그렇게 됐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저희들이 오해하는데 무겁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죄 싫습니다. 아무리 나하고 다르고, 그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형제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쉽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는 성도죠. 구원받은 건 분명하죠. 그런데 이 수준에 지금 우리가 못 올라와 있는 거죠. 왜 나는 가끔씩 이렇게 습관적인 죄가 있는 것 같고, 그다음에 미운 형제는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이렇게 서로 악수할 때 싹 피해버리고, 한 번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한 달 동안 그렇게 하고, 그러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우리는 고쳐내야 합니다. 구원받지 않았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정상적인 성경이 말하는 요한일서가 말하는 성도의 삶을 못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이제 분류하는 거고요. 그리고 지금 이제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쉽다.' 성도는 그렇게 하게 돼 있다, 그게 기본이고 정상이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그렇게 되냐? 다시 보겠습니다. 4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기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야, 뭐 꼭 그렇게 말씀 지키고 살아야 되냐?" 이 세상은 늘 그렇게 하는 거죠. 그다음에 형제, "저렇게 행동해서 미워하는 것,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세상이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듭난 사람은 그와 같은 세상적인 가치에 대해서 거부하고 말이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약화된 태도를 많이 "이거 어쩔 수 없잖아. 이 정도는 사람이 짓고 사는 거지, 뭐. 나만 그런가? 다 그런 것 같아." 이렇게 하고 경제 이렇게 하는 것은 이유가 뭐냐? 요한일서가 지적합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말합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 믿음이 이긴 거다.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 자체가 '승리의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걸 못 믿게 하거든요. "야, 예수님이 뭔 하나님 아들이냐?",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냐?", "2천 년 전에 이 땅에 사셨던 역사적인 인물이 무슨 하나님이냐?" 라고 하는 이 세상적인, 그리고 내 합리적인 이성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 양심으로, 성령을 감동하심으로, 그와 같은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이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죄를 안 짓고, 또 뭐 말도 안 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또다시 이걸 하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되는 게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이 승리를 준다. 이게 이제 요한일서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일단 5절까지는 그렇게 돼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증거'가 뭐냐? 그건 분명하냐? 잠깐 보시면 5장 1절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했고요. 5장 5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님 물어보시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했을 때 베드로가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내가 이 반석 위에" 이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죠. 이 두 가지 고백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가 뭔지 돼 있는 거죠. 그리스도는 주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그리스도', 하나님이 보내신 임무를 완성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임무를 완성하신 이분이 사람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이분이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5절은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다. 하나님이시다, 라고 믿을 때 이제 죄를 짓지 않고,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에 죄에 대해서 유혹을 느끼면 죄의 수준을 낮추려고 하면, "이 정도는 괜찮지, 뭐." 이렇게 안 되고 하나님은 빛입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하고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그분을 의식하면서, 그분이 내 기준이,고 그분이 내 주인이고, 그분의 말씀이 가치 평가의 기준이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이랬을 때, 이걸 낮추려고 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어떻게 안 낮추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하는 이 믿음, 이 믿음을 갖는 거죠.
그렇게 하고 이제 6절로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증거가 첫 번째 6절은 "물로 임하신 자"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피로 임하신 자"고, 그다음에 약간 설명을 합니다. "물로만 아니요" 이 물로만 임했다라고 하는 원수들이 있는 거죠. "물과 피로 임하셨다. 그리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다." 그리고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성령과 물과 피고" 그다음에 10절, "자기 안에 증거"해서 증거가 4개입니다. '물'과 '피'와 '성령'과 '자기 안의 증거'입니다.
1. 우선 "물로 임했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 약간 달리 해석하시는 분이 있는데요. 이제 기본적인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침례를 누가 주냐면 침례 요한이 주죠. 그런데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침례를 안 주려고 합니다. "아니, 당신이 왜 저에게 침례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제가 당신에게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죄 없는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죄인인 사람이 죄 없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에게 침례를 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죠. "침례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자. 이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이루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제 침례를 줍니다. 그래서 이제 침례를 주니까 요한복음 1장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합니다. "비둘기 같이"는 저희들이 보통 이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노아가 이제 노아 방주에서 나와야 되는데 까마귀 내놓고 그다음에 비둘기를 내놓죠. 비둘기는 정한 짐승이어서 더러운데 안 앉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는 갔다가 아직 이제 물이 안 빠지고 시체가 둥둥 떠 있으면 돌아옵니다. 까마귀는 시체 먹으니까 그냥 안 돌아오는 거죠. 그래서 이 '비둘기'는 '깨끗한 곳에만 내려앉는다'라고 하는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리셨다고 하는 것은 이제 거룩하신 영이 죄 없으신 주님에게 임하신 것을 침례가 봅니다. 그리고 증거하죠. "나도 누군지 몰랐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침례를 줄 때 성령이 임하시는 분을 볼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성령 침례를 주실 분인 것으로 알아라." 성령 침례는 저희들이 시흥 모임에서 한번 했었죠. 성령 침례가 뭐냐? 성령 침례는 한 번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 번 받는 게 아닙니다. 한 번만 있는 거고 역사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서만 일어납니다. 이제 사람들을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몸이 되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몸으로 집어넣는 이 침례를 줄 뿐이다, 이렇게 하죠. 그래서 이제 이 '물로 임했다'고 하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직접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그래서 물로 임하신, 예수님이 침례받으실 때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고, 침례 요한이 증거하고 했던 것입니다.
2.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입니다. 이제 '피로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죠. 그래서 물과 피를 보통 주님은 공생애로 이해합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보면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 수 있답니다. 피로 임하신 것은 주님이 이제 십자가에 죽으실 텐데요. 이게 이제 '물과 피'가 요한복음 19장을 이렇게 찾아보시면, 이 물과 피가 아니고 피와 물이 있는, 그러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제 강도 2명과, 이제 세 분이서 돌아가시죠. 그런데 그때 그다음 날이 안식일이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빨리 죽게 하기 위해서, 빨리 죽이려면 다리를 꺾어야 합니다. 뼈를 꺾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라도에게 부탁합니다. 저기 꺾고 와라 그래서 군인이 한 명이 와서, 원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당일날 죽는 형이 아닙니다. 오래 피를 흘리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게 죽는, 사람이 발명한 최고의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게 한번 달리면 빨리 안 죽습니다. 그냥 피 졸졸졸 나와서 이제 한 이틀, 3일, 기록에 의하면 일주일까지 거기 달려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이 안식일이니까, 이제 로마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상관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돼 있냐면 "안식일에 시체를 계속 달아두지 마라" 이런 신명기 말씀이 있으니까, 할 수 없이 가서 "얼른 빨리 뼈를 꺾어주세요." 하니까 로마 군인이 오죠. 와서 이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주님 가운데 계셨거든요. 그런데 이쪽에 있는 강도 뼈를 꺾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빼고 반대쪽 강도를 뼈를 꺾어요. 이상하죠. 그리고 세 번째 주님에게 옵니다. 보니까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뼈를 꺾을 필요가 없는 거죠. 뼈를 꺾는 이유는 빨리 죽게 하려고 한 건데 이분은 이미 죽으셨어요. 주님은 이제 때를 다 이루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돌아가셨죠. 이제 그런데 이제 안 꺾고 오면, "너 왜 안 꺾었냐? 꺾으라고 했는데." 상관한테 보고를 해야 되잖아요. "죽었기 때문에 안 꺾었습니다." 라고 말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옆구리를 창 찌릅니다. 그랬더니 피와 물이 나옵니다. 이제 주님이 죽으실 때 요한복음 19장은 두 가지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1. 첫 번째 예언은 '유월절 양은 뼈를 꺾지 않는다'라고 하는 출애굽기 말씀을 이루십니다. 주님이 유월절 양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출애굽할 수 있었던 그날, 죽음의 천사가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그 밤, 그리고 죽음의 천사가 건드릴 수 없게 만든 유월절 어린 양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2. 그다음에 두 번째는 스가랴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를 찌른 자를 보리라." 주님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이 이제 온갖 미움을 받아서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몰려듭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절망입니다. 망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고 있을 때 주님이 지상 재림하셔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십니다. 그때 택한, 그때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이렇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있는 창자국을 보고 그들이 울 것입니다. 애통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이 남편을 잃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을 애통해 하듯이 그들이 애통해 할 것입니다, 라고 하는 스가랴서 말씀을 이루었다. 이 말씀이 이 두 가지 이렇게 하는데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의 죽음, "피로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신 것을, 하나님의 아들은 뭐냐 하면 구약에서 다 예언해 놨습니다. 메시아를 창세기 3장부터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세상 만민에게 축복을 줄 것이다.", "다윗의 후손이 영원한 왕이 되어서 통치할 것이다."라고 하는 구약에 있는 예언들의 약속을 주님이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입증합니다.
그리고 또 이제 십자가 죽음으로 일어난 기적들을 보면 이분이 하나님 아들인 것을 입증합니다. 1. 첫 번째 기적은 뭐가 있었냐면, 주님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 골고다 언덕이라고 하는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잖아요. 그런데 예루살렘 성문 안에 그때 성전이 있었습니다. 헤롯 성전이라고 하는, 헤롯이 60년 동안이나 지었지만 완공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가운데를 막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집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그리고 완전히 둘로 갈라집니다. 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2. 그다음에 또 일어나는 기적은 '지진'이 일어납니다. 히브리서는 이걸 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진동치 못할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이 나라는 지금 이 땅은 하나님께서 한번 불로 태워버릴 겁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땅을 흔들어버리실 것입니다. 이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을 보면서 이 지구가 영원할 거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아닙니다. 영원 안 합니다. 이제 휘장이 찢기고, 그다음에 지진이 일어나고, 3. 그다음에 세 번째 '무덤 속에 있던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상징적으로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 성에 들어갑니다. 예루살렘 성 사람들은 놀랐을 거예요. 언제 죽었는지 모르지만 한 100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 조상, 혹은 얼마 얼마전에 죽은 이런 사람들이 다 살아서 와서 갑자기 만나는 거에요. 이런 이상한, 이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증거하셨습니다. 그래서 "물과 피로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받을 때,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입증돼 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하나님 아들의 죽음이다라고 하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3. 그다음에 세 번째 '성령'입니다. 물과 피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은 과거에 일어났던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그 사실을 지금 현재 우리 마음속에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겠느냐"라고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4. 그리고 이 증거를 믿는 사람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자기 안에, 내가 우리가 예수님 믿을 때,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는 지금도 시간까지, 기억 못하는 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억합니다. 언제 어떤 말씀이 내 마음을 열고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 때를 기억합니다. 우리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성경으로 치면 이런 겁니다. 수가성 여인이 있었는데 주님하고 대화를 하다가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수가성 여인이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거 다 설명해 줄 거예요. 어디서 예배드리는지,"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그리스도니라.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이걸 받아들입니다. 이걸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그 동네, 자기는 원래 그 동네 사람 창피해서 잘 안 만났는데, 갑자기 그거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창피 다 놔두고 가서 전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분을 와보라!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랬더니 이제 그 사람들이 와서 듣고, 이제 또 예수님 이틀 더 머무시죠.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 믿는데 처음에는 당신 말을 듣고 내가 믿었지만 직접 말씀을 들어보니 이제 우리가 안다. 이분이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그래서 이제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전해준 분으로 인해서 생긴 거지만 자기 안의 증거를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이게 이제 네 가지 증거가 있고요.
그리고 이제 다시 "계명들이 무겁지 않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성경 한 두 군데만 찾아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한번 보시죠. 로마서 7장은 사실 좀 문제가 있는 장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인용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22절, 이제 로마서 8장에 있는 사람하고는 다릅니다. 로마서 7장은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가 좌절되는 그런 내용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대목을 한번 보겠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 7:22).
구원받은 사람이 그 구원의 생명 속에 있는 특징입니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이게 구원의 특징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8장 한번 보시죠. 히브리서 8장 10절이죠. 이 신약을 설명해 놨는데요.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이게 이제 사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약속이죠.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부분을 우리 현재 교회에게 이제 적용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판'에 기록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이 돌판에 있었습니다.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에 있는 법이 나한테 말을 하면 들어야죠. 그래야 되는데 이게 안 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법이 내 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법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청년이 어떻게 하여 그 행실을 깨끗히 하리이까, 내가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게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내 기쁨입니다. 이게 이제 기본적인 거고, 그와 같은 구원 자체를 저희들이 이제 갖고 있다. 이렇게 보고요.
조금 더 또 가보겠습니다. 그래서 증거가 그렇게 있고, 그다음에 13절로 가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이 '믿음이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승리하는 겁니다. 승리를 못하면 이 믿음이 없는 겁니다. 사도 요한은 아주 흑백 논리로 이렇게 말을 한 거죠.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 이름을 믿는 자에게" 믿는 자에게 쓴 것은, 이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이죠. "믿는 자에게 이것을 쓴 것은" 이것은 요한일서입니다. 요한일서를 쓴 것은,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이제 이 말씀을 쭉 따라온 사람은 이제 확신합니다. 나에게는 영생이 있구나. 왜요?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 때문이다.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저희들이 간편하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믿는다고 하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걸 믿고, 그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습니다. 내가 받아야 될 형벌을, 내가 받아야 될 심판을, 대신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시고 피 흘리신 분이다. 예수님이 누구며 무엇을 하셨는가, 이 두 개를 합쳐서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저희들이 명함, 이렇게 할 때 이 사람이 누군가? 나이가 몇 살이고, 이름 뭐고, 그다음에 명함 줄 때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나하고 무슨 거래를 할 수 있는가, 거래를 하잖아요. 그래서 이 두 가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이 이름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라고 요한일서가 주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 위에 또 다른 계시가 필요하지 않다. 다른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 요한일서, 이걸 잘 읽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영생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한 거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확신은 14절에서 보시면 '기도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기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이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듣고 또 구한 것을 얻는다고 돼 있는데요. 1.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서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 기도들이 있고요. 그러면 하나님 뜻인줄 어떻게 아느냐? 우리에게 두 가지가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 주어져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령'께서 안에서, 무엇을 구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기도하시는 성령님이 계신 거죠. 그래서 성경과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 기도는 이루어진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기도 응답 확신을 갖는 거죠. 2.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게 이제 대표적인 게 구약에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 나를 왕으로 세우시고, 이 놀라운 영광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나는 왕궁에 거하는데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천막 안에 어두운 데 계시는구나. 이게 맞냐?" 그래서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선지자 나단이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요." 그날 저녁 하나님이 나단에게 교정하죠. "안 된다. 다윗은 성전 못 짓는다. 그 아들이 지을 거다.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성전 지으라고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이 성전을 짓게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이 먼저 그를 위해서 그 집을 지어준 사람만이 합니다. 하나님은 빚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시고 거기에 대해서 감사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게 이제 원리이기 때문에 다윗에게 안 된다. 그래서 다윗이 그럼 안 된다고 그러니까, 저 같으면 삐질 것 같아요. 아니,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모처럼 한번 헌신하려고 했더니 안 받으시네. 이 물질 그냥 딴 데다 써야지. 이렇게 안 합니다. 거절당했을 때 다윗이 이렇게 합니다. 자기가 물질을 다 준비해서 솔로몬이 짓도록 이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게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들입니다. 그래서 이건 다윗의 기도는 안 이루어지고요.
그다음에 이제 신약으로 오면 사도 바울의 기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하죠. "하나님 이 사단은 사자, 육체의 가시, 이거 좀 제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세 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제 두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은 반드시 응답을 확신하면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엘리아의 기도가 그런 것들이죠. 그리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약간 어려운 대목인데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중보 기도'에 대해서 나옵니다. 중보 기도는 이제 형제를 위해서 기도해라, 그다음에 이제 어떤 형제는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 '기도하지 말라'도 아니고, '기도하라'도 아니고 이제 이렇게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맡기고 있는 이런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에 보면 "사망에 이르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는 거죠. 그런데 하여간 저희들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이해하겠습니다. 마포 모임에서는 여러 가지 이 '사망이 뭐냐' 그랬을 때, 육체적인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냐? 영적인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냐? 이제 이렇게 두 가지 다 견해가 있는데 저희들은 '영적인 사망'으로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에서 나오는 생명과 사망은 항상 영적인 거였습니다.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망에 이르는 죄', 다시 말하면 우리와 함께 있다가 세상으로 나가버린 사람들, 왜 나갔냐 그러면 사도 요한과 같이 이렇게 전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가버린 것입니다. 이유는 뭐냐 그러면 원래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속하지 않았는데 왜 들어와 있어요? 영접 잘못한 거죠. 그런데 이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건 아이언사이드 형제님이 하신 분별인데요. 제가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행전 초기에 세상과 관계가 나옵니다. 핍박이 있고, 그다음에 사도행전 5장에는 범죄가 있죠. 사도행전 3장에 핍박이 있습니다. 교회가 사도행전 2장에 세워지잖아요. 그런데 한 장 후에 핍박이 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복음 전하지 마라."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이제 5장에 가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6장에 가면 교회 안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헬라파 과부,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죠.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이 교회가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걸 성경으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읽으면서 교회가 세워지면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 그리고 사도들이 어떻게 대응했다, 이게 이제 우리 기준입니다. 핍박이 일어나면 우리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랴? 하나님께 순종하랴?" 그다음에 범죄 교회 안에 범죄가 있으면, 굉장히 참 웃기는 범죄죠. 헌금하고 죽습니다. 헌금 안 하고 죽은 게 아니에요. 아나니아 삽비라가 헌금하고 징계합니다. 그다음에 6장, 그다음에 이제 분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은사 있는 사람들을 세워서 해결한다. 이게 이제 저희들이 기본적으로 갖는 교회에 관한,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있다가 나갔어요. 또 나간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진짜다. 우리가 가진 지식을 봐라.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놀라운 지식들을 봐라. 저들은 모른다." 혹은 "저들은 수준 낮은 기독교다. 우리는 고도의 지적인 정말 잘하는 거다." 라고 했을 때 이제 흔들릴 수 있잖아요. 그걸 해서 이제 이렇게 쓴 건데요. 하나님이 놀랍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시험할 수 있는 테스트를 사도 요한을 통해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나가게 한 거죠. 나간 사람들 위해서 기도하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이제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배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확신 세 가지' 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 18절입니다. "범죄치 아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짓는 완벽주의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주의자들을 반대합니다. 이단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완전주의입니다. 죄를 범치 않는다. 그렇게 거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실수할 때가 있고,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대언자로서 다시 그 문제를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하여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범죄하지 않는다. 특별히 이제 이걸 약간 표현이 애매한데요. '습관적인 죄를 반복적으로 계속 짓지 않는다'입니다. 이제 이렇게 말하면, "아니, 그럼 얼마 만에 계속돼야 습관이에요?" 이제 이렇게 물어보니까 이제 엄밀하게 뭘 이렇게 정의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 죄를 짓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이게 주님이죠. "저를 지키신다." 그래서 주님이 성령님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 우리의 주로 계셔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면, 뭐 안 한 거냐면 예수님은 주되심을 실행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악한 자가 못 건드립니다. "저기 나는 안 하려고 그랬는데, 사단이 하도 강하게 유혹을 해서..."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못 만집니다. 사단이 건드릴 수 없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내 책임입니다.사단에게 핑계 대고, 또 뭐죠? 아담처럼 "하와가 먹으라고 해서" 남자가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다음에 19절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제 우리가 아는 것이, 19절은 테스트를 해봅니다. 내가 의로운가, 내가 사랑하는가,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성경대로 믿고 있는가, 그랬을 때 '그렇게 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다, 이렇게 확정하는 거고요. 그리고 온 세상은, 이렇게 주님 안에 들어오지 않는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다"라고 하는 단어가, 이 '처한다'고 하는 것이 '누워 있다'는 뜻입니다. 감각이 없이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있는, 안타까운 상태를 이제 표현하고 있는 거죠.
그다음에 2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각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또 주님에 대해서, 성령님이 주신 지식이 있습니다. 이 지식보다 더 우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많은 걸 알고 있는데, 우리는 이걸로 이걸로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성경을 안다." 암송하고, 주일 학교에서 맨날 암송하잖아요. 암송하고, 또 말씀 맨날 성경 공부하기 때문에,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안다. 이 말씀은 뭐다라고 배웠고, 내가 삶에서 살아보니까 과연 그렇더라,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이것보다 더 뛰어난 지식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그다음에 21절 가시면 "너희 자신을 지키라" 돼 있는데요. 다시 보겠습니다. 이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논리인데요. 18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저를 지키십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독생하신 주님께서 성도들을 지키십니다. 그다음에 21절, "너희가 너희 자신을 지키라" 합니다. 그래서 이게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저희들이 이제 그런 그런 이상한 가르침을 하는 데도 있다고 그러죠. "기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다 하시는데 우리가 뭘 기도하냐?" 굉장히 오해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소돔을 심판하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알립니다. 아브라함이 딱 알아듣고 어떻게 하냐하면, 기도합니다. "롯만 구해주세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소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지만 우리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만 우리 책임이 있는 거고요. 다시요, 제가 1장 성경 읽기를 해서, 1장에 보면 이 생명의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주목하고, 이런 '특권'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만난 날, 요한복음 1장에 있는 날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금 한 90세, 100세 될 때까지, 자기 기억에, 늙은 자기 머리에 지금도 생생하게 주님의 음성, 주님이 행하셨던 귀한 일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여기까지 되고, 그다음에 특권은 항상 '책임'을 동반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은혜만 누리고, 특권만 누리고, 책임은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책임을 하는 것이 그를 성장시키고 온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특권이 뭐냐 하면 그다음에 이제 후반부에 나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다음에 어둠 속에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으니까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언자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앞에 '은혜'가 나오고, 두 번째 '책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앞에 18절에서는 '주님의 지키심'이 나옵니다. 주님이 지키시니까, 주님이 지키는데 뭐 완벽하겠지 뭐, 가만히 있어도 되지. 아닙니다. 그것을 사람의 논리라고 합니다. 성경의 논리입니다. 주님이 지키시고 내가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키시는 것을 알기에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키는 것이 불완전해서 지키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지키시기에, 주님과 함께,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주님과 함께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제 지킨다고 하는 게 뭐냐 하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피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것'입니다. 깨어서, 그리고 "우상에서 멀리 하라." 잘못된 교리와는, 죄에 대해서 괜찮다, 우리도 사람인데 저 마음에 안 들면 미워할 수 있는 거지. 이런 것들하고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상에서 멀리 하라고 돼 있죠.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수준과 기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못 따라가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걸 이제 고쳐내야 되겠죠. 말씀을 하나만 읽고 마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주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러고, 주님을 모르면, 예수님을 모르면 그건 모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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