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매년 5월 성도집회

성경읽기 : 요한일서 4장 "하나님의 사랑"

박이레 2026. 5. 2. 15:19

성경읽기 : 요한일서 4장 “하나님의 사랑” / 26년 5월 2일 토요일

- 김회상 형제님 사회 : 요한일서 3장 23절부터 읽겠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3-24).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1-21).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5-7).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 1:10-11).

아멘. 이제 요한일서 3장을 마쳤고요. 오늘 요한일서 4장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요한일서 이제 3장 11절부터 24절까지 '사랑'에 관한 주제로 쭉 말씀하시고요. 그리고 오늘 교제하는 4장에서는 4장 1절부터 6절까지는 '진리'에 관한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고, 7절부터 5장 3절까지는 다시 '사랑'에 관한 부분으로 이 주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 요한일서에 대해서 첫 시간에 저희들이 개요를 들었습니다만, 잠깐 다시 한 번 소개를 해드리면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통해서는 저희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이 세상에서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생명을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저희들에게 생명을 또한 주신 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절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을, 주님께서 나타내신 그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저희들 안에 있는 생명은, 저희들 안에 있는 영생은, 주님 안에 있는 생명과 동일한 생명입니다. 저희들이 주님을 생각했을 때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희들은 주님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과 같은 무한한 지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이제 이 생명이, 믿는 자들 안에 있는 생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계속 가르쳐 주시는 그러한 서신서입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크게 세 가지로 저희들이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1. 첫 번째로 '의를 행하면서' 삽니다. 이것은 요한일서에 있는 다른 말로 하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생명은 의를 행하는 삶을 살게 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게 생명의 첫 번째 증거입니다. 2. 두 번째 증거는 '형제를 사랑'하게 합니다. 그 생명의 두 번째 특징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 요한일서에서는 계속 이것을 이제 대비해서 말씀하고 있고요. 3. 생명의 세 번째 증거는 '주님을 향하여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속죄 사역으 이루셨다는 이 주님에 대한 온전한 교리, 정확한 교리를 이해하고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든지, 주님의 인성을 부인하든지, 주님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요한일서 4장을 공부할 텐데요. 4장 1절부터 6절까지는 이 '세 번째 증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주님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갖고 있는가?' 이것을 이제 다루고 있고요. 4장 7절부터, 이제 저희들이 교제는 21절로 하겠습니다. 21절까지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두 번째 증거에 대해서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이 4장이 시작되기 전에 3장 2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주님의 계명의 내용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잠깐 제가 말씀드린 두 번째 증거와 세 번째 증거를 지금 언급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4장 1절부터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주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를 가지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4장 1절에서 6절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7절부터 21절까지 요한 사도가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배운 대로 3장 11절부터 24절까지 이제 사랑에 관한 내용이 쭉 나오다가 갑자기 4장 1절부터는 이제 교리에 대한, 주님에 대한 교리에 관한 내용이 이제 들어가고 다시 7절부터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요한이서를 잠깐 읽어드린 이유는, 요한이서의 주제는 그 부녀에게 사도가 '사랑할 것'을 이제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진리 안에서의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영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진리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요한일서는 사랑에 관한 얘기를 쭉 하는, 긴 사랑에 관한 이 내용 중에 그 가운데 4장 1절부터 6절 사이에 거짓 교사들에 관한 내용을 이제 추가해서, 삽입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장 24절에 보면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이 사도는 사랑에 관한 주제를 마치면서 이제 '성령'에 관한 언급을 합니다.

그리고 4장 1절부터는 자연스럽게 성령 외에도 이 세상에는 다른 영이 있음을,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 미혹의 영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고 그들의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이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4장 1절부터 6절까지 내용을 먼저 교제할 텐데요. 4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제 이 서신서를 받는 자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영을 시험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을 시험해야 되는 이유가 1. 첫 번째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 영, 악한 영은 이미 지금 굉장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은 3절에 보면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훼방하고, 주님에 대한 가르침을 왜곡하는, 이 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영들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그러한 영들이고요. 마지막으로 6절에서는 "미혹의 영"이라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믿음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지식에서 벗어나서, 이제 곁길로 나가도록 하는 미혹의 영들입니다. 이 영들을 지금 경계로 해서, 이제 경고하면서, 저희들에게 믿지 말고 시험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시험해야 될지 그 시험의 기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사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2절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하나님의 영을 따라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전하는지를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잠깐 첨언을 말씀드리면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이라고 돼 있는데요. 이게 이제 다른 성경을 참고해 보시면 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실을 시인한다, 이렇게 돼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영마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합당한 번역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이제 이렇게 돼 있고요. 3절에서 "이것이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적 그리스도의 영이냐면, 3절에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기서 이 "예수"라고 하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 the'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즉 2절에서 언급한 "그 예수를 시인하지 않은 영은 적 그리스도의 영이다"라고, 적 그리스도의 표준을, 이제 기준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6절에서도"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그 기준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에서는 그 기준이 '주님의 인격'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이 어떠한 분인지에 관한 것이 그 기준이고, 6절에서는 우리의 말을 듣느냐, 안 듣느냐, 즉 사도의 가르침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그 기준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조금 드리고요.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자면 4절부터 6절까지 보면 "자녀들아 너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서신서를 받는 자들이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저희를 이기었나니" '저희를' 이는 3인칭 복수죠. 그들은 이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6절에 우리는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희들이 이해해서 이 말씀을 참고할 수 있겠고요.
그래서 4장 1절부터 6절까지 말씀에 대해서 읽으시면서 형제님들 가운데 또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제해 주시면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왜 여기서 이제 처음에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 이렇게 하지 않고, 왜 "영들을 믿지 말고 시험하라" 이렇게, 영에 대해서 자꾸 말씀하시는지 좀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 중요한 부분인데요. 2절에서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를 시인하는 것",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어떠한, 주님에 관한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또 한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백인 형제님 : "영들을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이제 이 부분에 대해서 교제를 좀 드리겠습니다. 이 '시험하라'는 것이 '현재 시제', '명령형'이고요. 그리고 다른 성경에서는 이제 '분별하라', 그리고 "살피고" 그다음에 "범사에 헤아려"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은 "영을 분별하라"라는 말로도 이렇게 쓸 수가 있는데요.
성경에 이 "영을 분별하라" 이 부분이 고린도전서에서도 기록이 돼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이제 사도 바울이 은사를 설명하면서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이 '시험하라'라는 여기서 말하는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말하는 그 '시험하라'와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라,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말하는 시험하라는 보편적이고 모든 성도들, 모든 사랑하는 자들에게 요한이 명령하고 있는 것이고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영들 분별함의 은사는 이제 특정한,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는 특정한 성도들이 그걸 그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빌립보에서 사도바울이 귀신 들린 여종을 분별했던 것처럼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이 시험하라는 것이 보편적이고,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하는, 반드시 해야 하는 '명령형'으로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님께서 방금 말씀해 주셨지만 왜 "선지자를 시험하라"가 아니고 "영들을 시험하라"라고 했을까, 사실 선지자는 이제 도구일 뿐이죠. 그러나 그 선지자를 움직이는 것은 영적인 출처, 그래서 그 선지자를 움직이는 것은 그 악한 영, 사단의 영, 그리고 우리의 싸움이 그러한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그 영들을 시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험하라'는 것은 당시 영지주의를 가지고 교회 안에 숨어들어서 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그들을 이제 시험하라라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데요. 사실은 "영들을 시험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떤 확장성이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이제 더 이상 우리 모임에는 그렇게 찾아와서 저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의 어떤 영적인 생각과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그런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는 그러한 악한 영들이 시도하는 여러 가지 것들의 '영적 출처'를 반드시 밝혀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접하는 그런 모든 것들, 예를 들어서 핸드폰이라든지, 인터넷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고요. 그리고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니"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영들을 시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에 "범사에 헤아려 모든 좋은 것을 취하고" 여기서 "헤아려"가 동일하게 '시험하라', 즉 '분별하라'와 같은 어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가 보고 듣고, 그리고 생각하는 것들에 영향을 주는 그런 외부적인 것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깨어서 분별해야 함을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방금 형제님께서 '영들 분별하는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약간 더 보충해서 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 많은 은사들이 있는데요. 그 은사들은 다 '이적 은사'입니다. 그것은 지금은 이제 없어진 은사들입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제 있었던 은사들이고요. 지금은 없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영을 분별하는 은사는 지금은 없는 은사입니다. 이제 그 예로 지금 사도행전 16장에 있는 빌립보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을 해 주시는데요. 그 사건을 한번 보시면 어떤 이제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을 쫓아다니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귀신이 그 여자를 통해서 얘기를, 악한 형이 여자를 통해서 얘기하는데 이제 맞는 말을 하는 거죠. 그 여종이 맞는 말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고 구원의 길을 너희들에게 전하는 자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악한 영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영 분별하는 은사를 사용한 거죠. 그리고 그에게 그 말을 이제 그칠 것을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한일서 4장에서 "영을 분별하라"는 것은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 것을 분별하라는 건데,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맞는 말을 합니다. 그 여종이 틀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맞는 말을 하는데, 그 맞는 말의 배후에 귀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자꾸 저희들이 그 "진리를 분별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잘못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 자체가 내용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잘못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누구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을 통해서 이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 은사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잠깐 말씀을 드립니다.

또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성도님들 또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네, 24절에서 성령에 대해서 언급해 주시고 있고, 이제 4장 1절에서 이것과 대조되는 악령, 또는 6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혹의 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저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저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또 볼 수 있고, 이런 역할을 하시는 데 반해서 이제 악령, 미혹의 영은 그 반대 역할을 하는 그와 같은 것이다라는 걸 먼저 우리가 짚고 가야 될 것 같고요.
그다음에 성령을 저희에게 주신 것은 저희에게 먼저 믿음을 허락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또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 진리를 우리가 듣고 믿음으로 화답할 수 있도록 하셨고, 그때 이제 저에게 성령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은혜 가운데 주신 것이고요. 이제 저희에게 주신 이 은혜를 바탕으로 이런 악령을 우리가 이제 분별해야 함에 대해서 또한 말씀해 주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있고, 저희가 이제 실제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될 일들이 있고, 그래서 4장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말씀하시면서 "이와 같은 것들을 시험하라"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성령은 저희 눈에 보이지 않고 마찬가지로 이제 악령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시험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1. 일단은 그들이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는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2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지 않으셨다라고 이제 잘못된 진리를 말하는가, 어떠한 말을 하는가를 가지고 우리가 이 영을 시험할 수 있을 것 라는 생각이 들고요. 2. 두 번째로는 이제 4절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느냐에 대해서 저희들이 그 태도를 보고, 말씀에 대한 태도를 보고, 또한 그런 미혹의 영, 악령을 저희가 또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어제 박용수 형제님께서 꼭 질문을 본인에게 해달라고 하셔서 좀 중요한 내용을 조금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이제 그 영을 구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영"이 이제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 있는 사람은 누구나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시인하는 것이죠. 그래서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것"이 주님의 어떠한 것들을 이해하고 믿고 있는 것인지를 조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이제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 박용수 형제님 :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는 적어놓은 게 없기 때문에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토대가 되는 진리다.' 이렇게만 적혀 있네요.

- 김회상 형제님 : 참 당황스럽습니다. 조금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한다"고 했을 때, 1. 첫 번째로 '오셨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분은 영원 전부터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인데 이제 인류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거죠. 2. 두 번째로 그 하나님께서 오실 때 '육체'로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성육신 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육체로 오셨다"는 이 동사는 이제 완료형으로 돼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인성을 취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인성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라는 것은 주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를 주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라면, 그 인성과 신성이 주님은 완벽한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사람이신 것을 또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고요.
요한일서에 대해서 이제 어제부터 계속 공부를 저희들이 해오고 있는데, 보통 이제 저희들이 교제하면서 '영지주의자들', '거짓 교사들' 이제 이런 표현들을 계속 썼거든요. 그래서 혹시라도 이것에 대해서 이제 간단하게, 이 당시에 요한일서를 쓸 당시에 어떠한 이단, 대표적인 이단이 영지주의자들인데,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간단하게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이 영지주의자들은 영이 중요하다, 영이 선하고 중요한 것이다라고 가르쳤고요. 2. 두 번째는 그들은 물질은 악한 것이다. 그래서 육체는 항상 악한 것이다라고 가르쳤고요. 3. 세 번째로는 우리들은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명상이나 이런 수도를 통해서 뭔가 우리는 수준 높은, 더 한 차원 높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그리스도인들 너희들보다 우리가 더 한 차원 높은 지식을 알고 있다라고 가르쳤던 사람이 이제 영지주의고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이제 여러 가지 잘못된 이단적인 가르침들이 나옵니다. 1. 첫 번째로 육체를 악하다고 이 사람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체로 오신다고 하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인성을 계속 부인합니다. 여기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거고요. 그 앞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또한 거절'한다고 돼 있습니다. 2장 22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있다는 것을 부인했던 자들이고요. 2. 두 번째로 이들은 육체가 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학대함으로써, 그러니까 몸을 괴롭게 하고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패함으로써 자기의 노력을 통해서 육체를 통제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려고 했던 사람이고요. 3. 세 번째로는 이 사람들은 또한 '정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영이지, 이 물질이 아니다. 몸이 아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 몸을 아무렇게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대로 정욕주의로 썼고요. 4. 마지막으로 이 사람들은 신비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한 단계 높은 지식을 갖고 있다. 너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라고 계속 이제 가르쳤습니다. 저희들이 요한일서를 보시면 계속 등장하는 단어가 뭐냐면 "너희들은 안다", "너희들은 안다.", "너희가 기름 부음을 받고 있기 때문에 너희가 알고 있다."라고 계속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게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대해서 이제 사도 바울이 계속 이와 같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고요. 간단하게나마 이렇게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요한일서를 조금 이해하시면 좀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혹시 왜 '영'이라고, "영을 자꾸 분별하라",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다." 왜 '영'이라고 이걸 표현했을까요? 이것을 이제 '거짓 선지자를, 거짓 교사를 분별하라, 조심하라.' 이렇게 하지 않고, 혹시 이것 또 제가 질문을 좀 드리고요. 혹시 앞에 계시는 형제님들 가운데서도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

네, 시간 관계상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이 영지주의자들은 굉장히 언변이 뛰어나고 논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은 인간적인 철학을 가지고, 인간적인 논리를 가지고, 아주 뛰어난 화술과 뛰어난 논리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속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배후에 있는 영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서 그 배후에 역사하고 있는 영을, '그들의 본질'을 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들은, 영지주의자는 '영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뭔가 신비한 것이 있고, 뭔가 더 높은 수준의 영적인 지식들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들의 영은 악한 자들로부터 왔다, 마귀로부터 왔다라고 계속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지금도 보면 이단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신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제 사람들의 눈에 이렇게 뛰어나 보이죠. 그러나 그들의 영은 이제 미혹의 영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1절부터 6절까지 가운데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저는 여기 4절에 있는 말씀 보면서 여기 "이기었나니"라는 표현을 보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보면 지금 "이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세상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커 보이는 것이나,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제 자녀들에게 "너희가 이겼다." 그리고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이가 세상보다 크다."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 생각해 보면, 영지주의자들이 더 신기한 것들이 자기네들이 더 있고, 이런 것들을 이제 얘기하고 있을 때 "그렇지 않다." 이제 얘기하면서 "우리가 오히려 이겼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이게 어떻게 해서 이제 우리가 이기게 되는 거냐면, 보면 이제 금욕하고 이런 것들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저희가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 세상보다 크신 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가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분이, 그래서 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들을, 그래서 저희가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교회에 나온다. 이제 교회 열심히 나오는 거고, 그리고 이제 내가 믿는 성도이기 때문에 모임 생활 열심히 하고, 교회 열심히 다니고,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이제 세상은 나쁜 거다. 하니까 이제 세상을 거부하고 있고, 좋은 것을 포기하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이가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기서 하나님이 이겼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요한일서에서 이겼다라는 표현이 몇 군데 나옵니다. 보면 2장 14절에도 "이겼다"라고 되어 있고요. 그다음에 4장 4절에서 이제 또 "이겼다" 하고 있고, 그다음에 5장 4절에서도 "이겼다" 되었습니다. 2장 14절에는 저희가 어떻게 이겼냐면 "말씀으로 이겼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2장 14절에 보면, 마지막에 보면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겼음이라" 했는데 이제 어떻게 이겼냐면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함으로 너희가 이겼다."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교제하고 있는 4장 4절에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겼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5장 4절에 보면 "우리의 믿음이 이겼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믿음'은 내가 가진 믿음으로 이겼다가 아니라 마태복음 16장에 이렇게 되어 있죠. 주님께서 베드로한테 물어봤을 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했을 때 이제 베드로가 고백한 게 있었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이렇게 고백했을 때 이제 얘기합니다. "그것은 너가 안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제 우리의 믿음도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 자기의 힘으로 내가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안에 거하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더 생각해 볼 게 "이기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너네가 승리해라, 이겨라가, 아니라 과거형이 이겼답니다. 이겼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요한일서는 요한복음에 이렇게 돼 있죠. 주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겁니다. 우리가 승리를 가지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승리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에 우리가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승리를 해서 싸워야 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에게는, 하나님께로 속한 자에게는, 속한 자에게 나타나는 증거로서 우리가 이기었다라고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맞습니다. 방금 요한일서에서 "이겼다"라고 나온 부분 세 군데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한번 살펴보시면 큰 유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으로 이기고, '성령'을 통해서 이기고, '믿음'으로 이긴다, 이것에 중요한 포인트고요.

아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4장 1절에서 6절까지 거짓된 영과 하나님의 영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1. 첫 번째로 '주님'에 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게 알 수 있고요. 2. 6절에서는 사도들의 증거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두 가지로, 즉 주님에 대한 주님을 어떻게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것으로 이제 구분할 수 있다고 이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7절 이하의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7절 이하에서는 다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다시 '사랑'에 대한 주제로 넘어갑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이 사랑에 관한 주제를 나타내는 곳이 이제 세 군데가 있습니다. 2장 7절부터 11절, 이게 첫 번째 사랑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요. 두 번째, 3장 11절부터 24절까지 사랑에 관한 두 번째 파트고요. 이제 여기 세 번째 부분입니다. 4장 7절부터 5장 3절이 사랑에 관한 부분을 이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세 구절을 보면 좀 특징이 있습니다. 1. 2장 7부터 11절까지 보면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여기서는 '사랑'을 '빛'하고 연결을 시킵니다. 2. 그리고 3장 11절 이하에서는, 3장 14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여기서는 '사랑'과 '생명'을 이제 연결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3. 지금 이제 7절부터 이제 21절까지, 이제 쭉 더 5장 3절까지 이어지는데요. 편의상 21절로 하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사랑을 8절 말씀 보겠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여기서는 '사랑'을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성품'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을 다 아마 다 찾아보시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계명"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 네 가지를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1. 첫 번째 어떤 사람이냐? 그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2. 두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생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3. 세 번째로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을 가지고 그 성품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4. 네 번째로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즉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계속 이 주제들을 이제 엮어서 계속 설명을 하고 있고요.

제가 제가 편의상 이 부분을 네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7절부터 11절까지, 그리고 12절부터 16절까지, 17절부터 18절까지, 그리고 19절부터 21절까지, 나눌 거고요.
7절부터 11절까지는 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나타난 것에 대해서 이제 7절부터 11절까지 쓰고 있고요. 여기에 "우리에게"라고 하는 이 단어를 조금 문자적으로 제가 번역해 드리면, "우리의 경우에 나타난다"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경우에, 우리의 처지에 이렇게 나타났다."라고 이제 설명하고 있고요.
그리고 12절부터 16절까지는, 12절에 "그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부터 16절까지는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지금 설명하고 있고요.
그리고 17절 18절에서는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라고 돼 있는데요. 이거는 조금 고치겠습니다. 전치사는 이제 '함께'라고 하는 전치사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온전히 이룬 것은" 그래서 17절, 18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이루었다라는 것을 이제 설명하고 있고요.
19절에서는 다시 사랑의 테스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이제 이 부분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생명이 없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요.
두 번째 12절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의 간증'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우리가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을 지금 계속 포인트를 맞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포인트를 맞춰서 설명하고 있고요.
17절, 18절에서는 '미래'를 보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심판날에 대해서, 앞으로 있을 일을 포인트를 두면서 지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또 말씀드리면 7절부터 11절은 중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을 나타나셨다라고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고요. 12부터 16절은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는 것을 포인트에 맞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 18절에서는 "주의 어떠 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주님'에 관해서 포인트를 맞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단락을 조금 함께 교제할 예정이고요. 7절부터 먼저 11절까지 형제님들 가운데 또 교제하실 내용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백인 형제님 : 여기서 이제 7절에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하나님께로 나와서 하나님을 알고" 그다음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도 났고, 하나님을 아는 거고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를 좀 생각을 해봤습니다. 1. 첫 번째는 이제 방금 형제님 말씀해 주셨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빛임과 동시에 그분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만약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2. 두 번째는 이제 여기서 "안다"가 되어 있는데, 어제도 잠깐 교제가 됐지만 '안다'에는 두 가지 안다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직관적으로 아는 것, 그리고 이제 두 번째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 여기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표현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어떤 실체를 보고 어떤 체험하는 그런 경험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요. 3. 그리고 이제 세 번째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도 "하나님의 씨"라는 게 3장에 나왔는데 하나님의 씨, 즉 씨에는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로 난 자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씨는 이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고, 우리가 이제 부모의 특징을 닮듯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특징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은,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이 통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하고 그분을 안다는 사실이 이제 눈에 보이는 그런 하나님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을 통해서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방금 선생님께서 이제 '안다'라고 하는 동사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이것도 좀 설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더 '쉽게'라고 표현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제 '에이도'라고 하는 동사가 있고요. '디노스코'라고 하는 동사가 있습니다. 두 개의 헬라어죠. 그런데 이제 둘 다 안다라고 번역할 하는 데, 에이도라고 하는 게 이제 저희가 '직관적으로 안다' 이렇게 표현을 해 주셨고요. 디노스코라고 하는 단어를 '경험적으로 안다', 이렇게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요한일서를 보면서 이 '안다'라는 동사를 쭉 이제 살펴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결론이 있는데 이것을 이제 형제님들한테 먼저 말씀을 드리고요. 혹시 잘못된 결론이라면 교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에이도라고 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안다가 맞고요. 디노스코가 경험적으로 안다가 맞습니다. 그런데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제가 조금 설명을 해드리자면, 직관적으로 안다 에도라고 하는 동사는 '성령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을 가지고 있죠.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을 통해서 아는 것이 에이도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고요. 요한일서의 안에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디노스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혹시라도 이제 예외적인 게 있다거나, 잘못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제가 찾아본 바로는 에이도라고 하는 직관적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아는 거고, 디노스코라고 하는 것은 교제를 통해서 깊이 더욱 알아가는 것, 이렇게 이해하셔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여기 말씀하셨는데요. 저희가 1장에서는 "하나님이 빛이시다"라고 돼 있고요. 여기서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고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마치 소금이 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속성은 빛이시고, 그분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빛이신 하나님이시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분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성품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어떤 인격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대방을 대할 때 늘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인격적인 성품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렇게 돼 있고요.
여기 이제 아까 그 9절에서 "우리의 경우에 이렇게 나타나신 바 되었다"라고 제가 이제 설명을 해드렸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처한 처지, 우리가 처한 경우를 이제 채우십니다. 보면 9절은 "독생자를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돼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생명이 없음을 아시고, 저희가 사망 가운데 거한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저희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10절에는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돼 있습니다. 저희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시고, 저희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그 유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죄를 위한 화목제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저희들이 3장 17절에서 보면,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의 궁핍함을 봅니다. 저희들이 생명이 없다는 걸 알고, 저희들이 죄 가운데 있다는 걸 아신 것입니다. 그걸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갖고 계신 것이 그 아드님, 그러니까 자기의 독생자, 그 아드님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 저희들의 사랑에 대해서 다 알고 있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먼저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이십니다. 이걸 말씀하고 있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면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이게 현재형으로 돼 있습니다. 저희들은 과거의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현재의 하나님의 사랑을 저희들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그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는데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님 여러분들을 지금도 동일한 사랑으로, 그 아들을 내어주신 그 최고의 사랑으로 저희를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형제님들 또 이 부분에서 7절부터 11절까지 말씀해서 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나서 하나님을 안다"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저희가 요한일서를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완료형'이라는 표현들을 형제님들이 계속해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 완료형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문법으로 이미 옛날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아직까지도 그 효력이 지속하고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아까 형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겼다'는 표현도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지금도 오래전에 이루었던 일이 저희가 이겼다고 과거 완료형으로 표현이 되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의 그 "하나님께로 나서"라는 표현도 앞서 4절에서 '이겼다'는 표현처럼 이미 완료되었던 표현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거듭남의 사건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했던 사건이, 지금도 우리에게 그렇게 그 사건이 효력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요한일서를 저희들이 공부를 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교제를 하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 완료형 시대가 계속해서 지금 나오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에서는 "하나님이 영이시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요한일서 1장에서는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보는 요한일서 4장에서는 8절과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이렇게 두 번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는 그 본질 자체인 것이고요.
그리고 이어서 9절에서 사도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나타나셨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났다'는 동사 또한 언어로 '드러냈다'는 뜻이 또 있고, 이 또한 계속해서 저희들이 방금 교제했던 것처럼 과거에 하나님의 사랑이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거고, 그와 같은 일로 우리들이 완전하게 거듭났고, 완전하게 승리했고, 완전하게 이겼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 우리를 살리려 함이었고, 이는 우리가 원래 죽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고, 죽어 있는 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신 생명을 주신 것,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네, 그 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시고 있고요. 그리고 7절에서는 사랑의 사도인 사도 요한 형제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아" 이렇게 부르시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요. 그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지금 권하고 있는 사도 요한이 받은 사랑도 하나님께서부터 온 사랑이고, 또 하나님께 속한 이 서신을 받고 있는 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들끼리 이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서로 사랑하자." 이렇게 권하고 계시다고 이해가 되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을 드러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자신의 아들을 저희들을 위하여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것으로 드러났던 것처럼, 저희 가진 사랑도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반드시 드러나야 된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상입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여기서 이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을 9절, 1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보면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해서 보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하나님의 속성은 빛이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수 없는데, 이 화목 제물을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만족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통해서 우리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생각을 해보게 되면 하나님은 빛이신데 어둠과 할 수 같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화목 제물이신 대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족시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자가 저희를 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적을 보면 하나님이 나중에 계속 나오겠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여기서도 "우리를 살리셨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를 구원하셨다, 죄를 없게 하셨다가 아니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주님이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은 동물을 죽여서 그 피로 주님께 드리는 제사를 지내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산 제사'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제 살아서 우리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되는 것들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라고 이제 하고 있습니다. 11절에 그래서 나오는 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고 있는 것들이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이제 계속 저는 의문이 있었던 것인데 더 교제가 되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너도 사랑해라"가 될 것 같은데 "서로 사랑하라"고 하겠습니다. 서로 사랑, 그래서 여기서 왜 서로 사랑하라고 돼 있는가? 왜 너도 사랑해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해라를 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한번 생각해 봤을 때 그냥 잠깐만 생각해 보면 이런 거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받은 자가 보면 옆에 있는 성도, 같은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그 성도에게, 그래서 우리가 그 성도를 사랑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을 때 이제 그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서 나타나야 되냐면 먼저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적으로 먼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이 교회와 주님이 계신 임재하신 이 곳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는구나'를 알게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이 교회를 얘기하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
그리고 이제 여기서 간단하게 보면 여기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9절에서는, 그리고 10절에서는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신 사랑이 정말 얼마나 큰 사랑이고, 또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이 다시 사랑하는 것, 정말 큰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큰 사랑을 다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걸 통해서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받은 사랑을 다시 나타내는 것들도 우리에게는 큰 특권이다. 이런 것들을 여기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예, 형제님께서 지금 '서로 사랑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지난 시간에 저희들이 3장에서 배운 부분들을 조금씩 참고하면 더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3장 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니 무릇 의를 행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형제가 '그의 형제'라고 얘기를 하고 있고요. 12절에서도 "가인과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의 형제를 죽였으니 자기 행위는 악하고 '그의 형제'는 의로움이니라." 그래서 형제들이 '나의 형제'라는 것, 정말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 한 생명을 나눈, 하나님의 동일한 아버지를 둔, 동일한 생명을 둔 한 형제라는 개념을 계속 지금 강조해서 말씀을 해 주고 계시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박용수 형제님한테 마지막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중요한 내용인데요. 여기 이제 앞에서 형제님 말씀해 주신 대로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다"고 돼 있는데요. 이제 아마 앞에 성도님들을 위해서, '독생자'라는 의미가 이제 저희들이 자주 교제하는 내용인데요. 독생자라는 게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님의 독생자" 했을 때, 그것이 주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데 그게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조금 이렇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박용수 형제님 : 독생자는 홀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고, 그러니까 출생의 개념이 아니고, '관계가 유니크'하다는 뜻입니다.

- 김회상 형제님 : 고맙습니다. 잘 설명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히브리서 11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독생자를 드렸다"고 돼 있죠. 아브라함은 솔직히 이제 여러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삭 외에도 이스마엘이 있었죠. 이삭을 독생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독생자라고 했을 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고요. '특별한 관계에 있는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관계에 있는, 약속으로 말미암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아들이고요. 주님이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욥기에 등장을 하고요. 그것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 보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과는 다른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에 있는, 독특한 관계에 있는, 피조물과 다른 관계에 있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유일하고 특별한 관계에 있다, 라는 의미에서 이제 독생자라고 하는 의미가 있고요.

여기 '화목제'라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을 지난번에 해 주셨는데요. 이게 이제 2장 2절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2장 2절에서는, 이제 화목제라고 하는 것이 좀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은 단어인데요. 어떤 한글 성경에서는 이것을 '속죄 제물' 이제 이렇게 번역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번역이 조금 더 의미에 가깝지 않나라고 생각이 들고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서는 이제 화목제로 번역을 해버렸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로운 진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만족시키는 제물' 이렇게 저는 정의를 하고 있고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 죄를 보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시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만족시키는 제물이 이제 화목 제물, 혹은 더 좋은 번역으로 이제 속죄 제물, 이렇게 할 수 있겠고요.
이제 2장 2절에서는 그 속죄 제물의 '속죄의 범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다" 라고 하고 있고요. 여기 저희들이 있는 지금 4장 10절에서는 '이 화목 제물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왔다.' 그 속죄 제물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고요. 2장 2절에서는 이제 '그리스도인의 회복'과 관련해서 교제의 회복과 관련해서 말씀하고 있다면, 4장 10절에서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는 것'과 관련돼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4장 10절에서는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즉" '이같이'라고 하는 표현은 그 사랑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사랑하셨던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고요.
저희들이 3장에서 보면, 3장 16절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그래서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근거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말하고 있고요. 4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근거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12절부터 16절까지는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이제 이 '온전히 이루다'라는 단어를 조금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하는 것은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것이 완성되었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입니다. 그것에 뭔가 부족한, 하나님의 사랑에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실 때, 하나님은 그 사랑을 나타내실 때 어떠한 의도한 '목적'을 가지고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하는 표현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 목적을 이루었다라고 하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실 때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12절에서 16절까지 표현하고 있고요. 두 번째 목적을 17절에서 18절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부터 14절까지는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표현하고 있고요. 17절에서는 "우리와 함께 온전히 이루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우리 안에 이루었다"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신 1. 첫 번째 목적은 뭐냐 하면,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주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저희들이 여기 이렇게 돼 있습니다. 12절에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쭉쭉 나가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래서 저희들이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나타내어 주신 첫 번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목적이 이루어지는 거고요. 2. 두 번째 17절에서는 "사랑이 우리와 함께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타내 주신 두 번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도록' 그 심판 날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두려움을 갖지 않고 담대함을 가지도록,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목적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시는 것입니다.

먼저 이제 12절부터 16절까지 말씀, 이 말씀을 통해서 또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백인 형제님 :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저는 이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 부분에 대해서 교제를 좀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여기서 '어느 때나'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창세 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여러 번 나타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 주님이라고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모세에게도 나타났고, 여러 성경의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본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봤다면 이제 살 수가 없겠죠. 모세가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는 살 자가 없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드러내게 되면 죄 있는 사람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이제 나타내시지 않고 하나님의 그 본질적인 영광을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우리가 만약에 서로 사랑하면 그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제 12절에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말하고 있고 그 뒤에는 이제 "만약 그렇게 되면 볼 것이다"라고 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거하시고", "온전히 이루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형제님께서 방금 설명해 주셨지만 우리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모세가 그토록 원했던, 그 모세가 그토록 보고자 했던 그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광을 이제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것을 보고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매우 놀라운 사실이죠. 구약 시대에서 많은 선지자들과 많은 인물들이 그토록 보고자 갈급했던 것을 우리는 이제 성도를 사랑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것을 경험하고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말씀을 봤을 때 우리가 교회 안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이제 교훈을 받은 것은 우리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리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한 놀라운 자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제 마음속에 과연 내가 그러한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동기와 제가 지금 모임에서 하고 있는, 모임 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과연 그러한 것인가를 좀 되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네, 형제님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잠깐 또 말씀 한 구절 추가해서 말씀드리면 저희가 잘 아는 말씀이죠. 요한복음 1장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저희들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통해서 저희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거죠. '아! 하나님이 참 이런 분이시구나.'라고 알 수 있는 거죠.
여기 방금 찾아주신 그 말씀 12절,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을 나타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하나님을 보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요한 사도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 첫 번째는 그 '아들을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저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서로 사랑할 때 참으로 이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것을 우리가 발견하고 알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참 굉장히 독생자를 통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교훈을 받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4절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그래서 이제 사도들이 먼저 주님에 대해서 보고 알았고 배웠습니다. 그것을 이제 증거하였죠. 그리고 그 증거를 15절에서 이제 받아들인 자들에 대해서, 사도들의 증거를 받아들인 자들에 대한 언급이 15절에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지금 아까 '온전히 이룬다'에 대해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들이 16절에 나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 말씀하시면서 저희와 같은, 원래 죄인들이었던 자들이 사랑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시는, 그래서 이것이 결국은 이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신 것이다 생각이 들고요.
좀 더 얘기해 보면 저희들은 원래 저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했던 자들인데, 주님께서 원수와 같은 저희들을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은 이제 주님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세상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말씀을 이제 저희들이 받고, 실제로 그와 같은 사랑까지 저희들이 해낼 수 있는 자들을 보시죠. 그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이제 16절에 언급되어 있고, 이것은 이제 온전히 이룬 것이라는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상입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말씀하신 것처럼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여기서 '알고 믿었노니' 또한 완료형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교제하는 것처럼 과거에 시작된 일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에서 사도의 서신서를 받아보는 그때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랑이 우리가 그 같은 사실을 알고 믿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완벽하게 작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고, 그리고 경험적으로 알고, 그 앎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탁하고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깊고 친밀한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그 당연한 결과로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회상 형제님 : 방금 시제에 대해서 잘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14절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한다." 사도들이 증거한 거죠. 복음을 전한 거죠. 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주님을 믿은 거죠. 여기 '시인'이라는 단어는 이제 부정 과거형으로 돼 있습니다.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을 때, 주님을 마음으로 영접했을 때 이제 일어나는 것을 이제 말씀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이제 변화가 됩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목적어가 '사랑을 알았다'고 돼 있습니다. '알다'라고 하는 동사는 형제님 말씀해 주신 대로 이제 '현재 완료형'이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처음에 주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점점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었노니" 이것도 완료형이죠. 저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에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점점 더 '깊이 신뢰'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고 그 사랑을 깊이 신뢰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이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기 중간에 16절에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이해하고, 그것을 신뢰해 나갔을 때, 참으로,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구나. 이건 이제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모든 것들, 오늘도 변함없이 내게 주시는 것들이 다 사랑으로 주시는 거구나. 이것을 그가 알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가 정말 하나님과의 밀접한, 더욱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는 그 과정을 구원받을 때부터, 사도의 증거로부터, 더욱 깊이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깊은 교제로 들어가는 이 과정을 이제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7분 남았는데요. 17절부터 21절까지 같이 교제하겠습니다. 조금 이제 17절, 18절은 조금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요.
"사랑이 우리와 함께 온전히 이룬 것은" 이 '우리와 함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 함께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그 사랑의 목적을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이루었다는 것이고, 그 목적이 무엇이냐면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이걸 이루었다'라고 설명을 할까? 이게 조금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요. 저는 그것을 16절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과 사람이 지금 서로 지금 연합해서 한 교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우리와 함께 이루었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고요. 그 온전히 이룬 목적이 이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사랑의 두 번째 목적인데요. 여기 보면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의 어떠하심'이 현재형으로 돼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주님은 화목 제물로서 저희들이 받아야 될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활 승천에서 영광 중에 계십니다. 빛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그 깊은 교제 가운데 계십니다. 이게 주님의 모습이죠.
"그러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 주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다 통과하시고 지금은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저희들이 세상에서 지금 그러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처럼, 지금 하늘에 계신 주님처럼 하나님을 가까이서 뵙고, 가까이서 교제하고 있는 그러한 깊은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19절에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게 참 놀라운 말씀인데 여기에 "우리가 사랑함"이라고 했을 때, 특이한 것이 뭐냐 하면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가 됐다는 뜻입니다. 그 대상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말과 굉장히 오버랩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관계를 맺으시든지 사랑하는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는 이제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그런 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어제 교제했던 내용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장 5절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주님께서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타나셔서 우리의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저희들을 주님처럼 만들어준 것입니다. 여기 사랑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로, 우리를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저희들에게 새로운 성품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저희 안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품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저희들은 계명을 따라서 또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우리 안에 있는 그 하나님께서 주신 성품을 따라서, 정말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계명을 따라서 또한 사랑하는 그러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혹시 17절부터 21절까지 말씀 좀 읽으시면서 또 교제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신영 형제님 : 사회자 형제님께서 얘기해 주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그 성품이 나타나야 되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이제 19절서부터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오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19절에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하게 된 것은', 하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이 사랑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하나님의 이 사랑은 우리를 그냥 사랑을 받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그런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얘기해 주셨듯이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이제 보게 될 때, 이제 20절에서부터 그러한 일들을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미워하면 이제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고 있고,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냥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형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는 누구일까, 저는 한번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그 형제, 그냥 형제를 모임에 있는 모든 형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형제'라고 했을 때, 저는 이 말씀 보면서 마음에 좀 찔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면 그 형제는 여기서 지금 앞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면,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봤을 때 여기서 '그 형제'는 내가 정말 사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형제,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형제, 내 바로 옆에 있지만 내가 그렇게 있는 형제, 나랑 잘 맞지 않아서 이런 사람, 그래서 이 형제가 그냥 성도이라기보다 '그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서 이제 그런 얘기를 말씀을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어떠한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되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이제 되고, 그래서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계명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들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야 되고, 그것을 봤을 때 정말 이제 밖에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이 안에 정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시는구나."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앞에서 잠깐만 언급해보면, 12절에 보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 그래서 보았다가 아니라 '거하시는' 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보냐면, 이제 눈으로 보게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타내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들이다라고 이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김회상 형제님 : 시간이 오바가 됐는데요. 또 혹시 더 필요한 말씀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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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 교제한 것 같고요. 많은 형제님들 또 교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조금 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또 이후에 또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교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