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다윗

다윗 4 : 사울이 다윗을 네번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심

박이레 2026. 3. 20. 18:53

< 다윗 4 : 사울이 다윗을 네번 죽이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심 > 한봉래 혀제님 / 26년 3월 15일

저는 항상 다윗의 생애를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 성경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으신 분도 그 스토리에 대해서 이렇게 잠깐 귀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은 구약 성경, 사무엘상 19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삼상 19:1-24).

아멘, 다른 성경도 더 찾아 보겠습니다. 시편 59편에 보면 그 앞에 이 시편을 누가 언제 왜 썼는가가 나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다윗스 믹담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그러니까 저희들이 읽은 사무엘상 19장 을 배경으로 쓴 시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사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시 59:1-2).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끝까지 알게 하소서(셀라)"(시 59:13).

사무엘상 19장은, 사울 왕이 이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그러나 이 사울은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는 현실적으로는 왕위에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폐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다윗을 그다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 왕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힘을 가진 사울 왕이 아직 힘을 갖지 못한, 자기를 방어할 권력이 없는,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번 왕으로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제 네 번 죽이려고 하는 시도가 19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스토리를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다윗 왕이 사울 왕이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라고 명령을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18장을 저희들이 쭉 살펴봤는데요. 18장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되 몰래 죽이려고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겉으로는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닌데 예를 들면 블레셋 사람을 쳐서 양을 100명을 가져오면 내가 사위를 삼겠다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사울 왕이 그와 같이 제안한 것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100명을 죽이려면 어떻게 한 명이 100명을 죽이냐? 그러다가 다윗이 죽겠지,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이고 그 양피를 가져다가 사위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앞에서는 사울 왕이 겉으로는 좋은 말인 것처럼 하면서 사실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도가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19장에 와서는 공개적으로 한 국가의 모든 군사력 폭력을 동원해서 다윗을 죽여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누가 막았냐 그러면 요나단이 막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다시 이제 다윗이 사울 왕궁에서 사울이 두통이 나고 이러면 다윗이 수금을 켜면, 하프죠. 서양 악기로 치면 하프입니다. 하프를 이렇게 켜면 사울 왕의 두통이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이 사울 왕을 위해서 수금을 켜고 있는데 사울 왕이 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다윗을 창을 가지고 던져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창이 빗나갑니다. 그래서 이제 두 번째는 이제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섭리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사용해서, 첫 번째는 요나단을 사용해서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상황을 사용하셔서 다윗을 보호하십니다.
세 번째는 다윗이 도망을 갔거든요. 어디로 갔냐면 자기 집으로 갔어요. 이때 다윗은 결혼한 상태입니다. 아내 이름이 미갈입니다. 사울 왕이 창을 던지니까 피해 가지고 집에 와 있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도망가야 된다. 오늘 도망가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그래서 이 미갈의 충고를 받고 다윗이 세 번째로 도망갑니다.
그다음에 이제 네 번째 시도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디로 도망갔냐면 이제 사무엘이 있는 곳으로, 라마나욧이라고 하는 곳에 도망가서 사무엘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누구냐 그러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은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거기 가면 안전하겠죠. 사울 왕이 사람을 보냅니다. 신하를 보내서 다윗을 죽여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낸 사람들이 가면 이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아서, 다윗을 죽이기는커녕 자기들도 막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막 예언을 하고 성령의 충만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러는 거예요. 첫 번째 그룹을 보냈더니 그런 일이 생기니까 그냥 온 거죠. 두 번째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또 그러는 거예요. 세 번째 사람을 보냈더니 또 그러는 거예요. 사울 왕이 내가 직접 가야 되겠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다윗을 죽이려고 직접 갑니다. 갔더니 성령이 임하셔서 사울 왕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 충만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무엘 앞에서 옷을 벗고 찬양을 예언을 했더라. 이게 이제 네 번째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는 하나님이 직접, 그러니까 다시 보시면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네 번 시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어떻게 보호하시냐? 사람을 사용해서 보호하십니다. 상황 배후에서 섭리적으로 보호하십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미갈 아내를 통해서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네 번째 하나님이 직접 보호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보호하십니다. 이게 19장에 있는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이제 내용은 이렇게 돼 있죠. 사울 왕이 아무리 다윗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택하시고 왕으로 삼고자 하는 다윗을 죽일 수 없었더랍니다.

그리고 이때 이제 다윗이 자기 집에서 이제 숨어 있을 때 미갈이, 아내가 도망가세요. 그래서 도망가던 그 밤에 그가 시를 씁니다. 시편 59편을 썼는데요. 이게 시편이라고 하는 이 성경이 150편이 있습니다. 이 시편 중에서 가장 많이 쓴 사람이, 이 시편을 여러 사람이 썼는데요. 가장 많이 쓴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윗이 쓴 첫 번째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이제 밖에는 밖에는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이렇게 집을 포위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신하들은 명령을 따라 아침에 죽이려고 합니다. 왜 밤에 안 죽이냐면 밤에는 이제 식별이 안 되거든요. 캄캄하니까, 우리처럼 이렇게 막 전기가 있는 시절이 아니니까 캄캄합니다. 그래서 밤에 혹시 다른 사람을 오인해서 죽일까 봐,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죽이려고 했던 다윗은 놓칠까 봐, 그들이 밤에 아무도 못 빠져나가게 하고 날이 밝으면, 환하게 되면 인식할 수 있으니까 그때 가서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 미갈이 창문으로 창문으로 이렇게 도망가게 했던 겁니다. 이때 다윗이 시를 씁니다. 뭐라고 시를 쓰냐면 이제 아까 제가 읽어드린 시편 59편 1절에 보면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요"입니다. 내가 아무 죄가 없는데 나는 선을 행했을 뿐인데 사울왕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 악한 손에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시편을 씁니다. 그리고 이제 쭉 왜 구해주셔야 되냐면 나는 어떻고, 이제 적은 어떻고, 이런 것들을 쭉 서술하면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왜 구해 주셔야 되냐면, 한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서 한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이건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한 국가의 군대가 추적하는데, 그런데 살아남으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을 온 세상으로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악한 자에게서 하나님이 택하신 선한 자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온 세상으로 알게 하옵소서." 이게 시편 59편의 주된 흐름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을 현실적인 악한 왕이 국가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서 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도 죽일 수 없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게 이제 시편 저희들이 읽고 있는 사무엘상 19장의 주제입니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이제 그 자세한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1절부터 보겠습니다. 1절 보시면 사울이 이제 드디어 공식적으로 자기 의도를 드러냅니다. 왕으로서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립니다. '다윗을 죽이라.' 이렇게 했을 때 이제 나머지 신하들은 뭐 저기 왕이 죽이라고 하니까 죽여야지, 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달랐습니다. 요나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갈등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고 왕이 죽이라고 한 거예요. 순종해야죠. 그런데 이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왕의 명령을 따라 다윗을 죽일까? 그런데 다윗을 죽여서는 안 될 것 같은 거죠. 이 갈등 가운데 빠집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단도 믿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악한 명령이라도 아버지이고 왕이 명령한 것이니까 순종해야 되나? 이 갈등 가운데 그가 빠집니다. 이거 어떻게 해결할까요? 요나단은 다윗을 살리기로 결정합니다.
이유가 뭐죠? 이제 이 대목은 이렇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어딘가를 묻고자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왕의 명령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이거 뭐 아들로서 따라야 되죠. 도덕적으로 마땅한 일이죠. 그다음에 다윗을 보니까 다윗이 잘못한 게 없어요. 오히려 왕을 위해서 참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사람이에요. 또 이스라엘의 구원자예요. 골리앗을 이겼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가 이렇게 해결하면 이걸 좀 보겠습니다. 23장쯤 한번 보실까요? 23장쯤에서 분명하게 나오는데요. 23장 17절을 보시면 요나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 23:17).

사울이 왕이고 명령권자이지만 군대의 지휘를 가진 왕이지만 너를 체포하지 못할 것이다.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요나단은 확신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그리고 다윗 네가 이스라엘 두 번째 왕이 될 것이다.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는 왕자지만 내가 왕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기름 부은 네가 왕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왕이 되는 그 나라에서 나는 너의 신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보면 요나단은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냐? 그리고 요나단은 압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결정합니다. 사람을 따르랴, 하나님을 따르랴? 이거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한번 보시죠. 신약 성경에 이와 같은 갈등 속에 있었던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7-29).

대제사장, 그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결정권자입니다.  대제사장이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복음 전하지 마라.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는데 니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자꾸 전하면 그럼 우리는 뭐가 되냐? 안 된다. 예수님 이름으로 부활 전하지 마라." 그랬을 때 이들도 이제 이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이죠. 그리고 대제사장이 우리로 치면 왕입니다. 거기서 결정이 난 거예요. 국가가 그리고 존중해야 되죠. 그래서 갈등에 빠집니다. 이 말을 들어야 되나? 아니면 복음을 전해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나라고 하는 갈등에 빠집니다. 그때 그들이 결정합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가, 하나님을 순종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순종해야 됩니다.
저희들이 이제 예수님 믿을 때 여러 가지 갈등이 있죠. 내가 예수님 믿으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조롱하지 않을까? 내가 같이 예수 믿는 사람 막 비난했는데, "예수 믿는 애들이 이상해. 아니 무슨 어떻게 3일 만에 부활하냐? 그리고 예수님이 공중에 오신대. 그래서 뭐 휴거? 그거 우리나라에서 한 번 말썽을 피운 적도 있는데, 휴거가 아니다." 이제 이런 거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그런데 저희들이 믿는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도 이제 요나단도 그런 거죠. 요나단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고, 두 가지 선택 가운데 무엇을 무엇으로 결정할 것인가 할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라고 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사무엘상 19장으로 오셔서요. 이제 1절에 보면 요나단이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다윗에게 "일단 숨어 있으라." 이렇게 하고 3절, "내가 아버지에게 말해보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에게 어디서 말하냐 그러면, 들에서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요나단은 사울 왕에게 신하들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그렇게 명령하셨는데 그것을 막 반박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들에 있을 때 말을 합니다. 4절 뭐라고 말하냐면 "다윗을 죽이지 마십시오. 다윗을 죽이면 안 됩니다. 다윗을 죽이라고 한 명령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하는 이유가 이렇게 말합니다. "범죄치 마옵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을 죽이는 것은 범죄입니다. 다윗을 죽이는 것은 죄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는 죽일 만한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없는 정도가 아니고 왕에게 선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뭘 했냐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골리앗과 싸워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왕도 기뻐하셨습니다." 이게 이제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이긴 거죠. 이걸 이야기한 거죠. 그래서 요나단은 사적으로 지적합니다. 그런데 지적의 내용은 뭐냐 하면 이 행동은 죄악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죄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이 주님 은혜 가운데 자기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그가 맹세합니다.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7절 요나단이 다윗을 나오라 그래서 이러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하고 다윗을 다시 사울 왕궁으로 인도해 갑니다. 그래서 이걸 뭐라고 하냐 그러면, 이거 성경 하나 보겠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원수 되었던 사람, 서로 죽이려고 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을 다시 평안한 가운데 두 사람이 다시 화목하게 만든 사람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죠?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죄인이었죠.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을 막 싫어했어요. 하"나님 말씀 이상해. 이해도 안 가. 읽기도 싫어, 어려워!" 막 이렇게 하고 있었는데 다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또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고, 이렇게 변화된 거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죄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된 거거든요.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에 요나단은 "이렇게 하면 그거 죄입니다. 아버지 그거 죄악입니다." 다윗을 죽이는 것은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고, 또 혹은 다른 다른 제목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복음적인 복음적인 내용으로 요나단이 사울 왕에게 말하고, 사울 왕이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요나단이 했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이게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화목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세상에서처럼 양보하고, 또 술 한잔 먹고 없던 걸로 하자, 이렇게 해서 화목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일시적으로만 합니다. 실제로는 죄 문제가 해결이 되고, 어떻게 해결이 돼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게 용서가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첫 번째, 하나님께서 사울 왕의 의도를 보호해 주신 첫 번째 방법입니다. 사람을 사용해서, 어떤 사람을 사용했냐 올바른 사람을 사용해서, 다윗을 사랑한 믿음의 사람을 사용해서, 언제? 올바른 때에,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 가시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이 사울 왕궁에서 함께 평안하게 화목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8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골리앗을 죽였던 다윗이 동일한 믿음으로 나가서 골리앗의 민족 블레셋 사람과 싸워서 또다시 놀라운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9절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사울이 창을 가지고 던지려고 하는데요. 18장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8장을 보시면 이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7-9).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사울은 안 싸웁니다. 그리고 다윗이 싸워서 이깁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승리가 있자 사람들이 이 다윗을 높이 칭송합니다. 그랬을 때 사울이 시기합니다. 사단이 어떻게 생겼냐 그러면, 사단이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존재입니다. 그룹 천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자리에 오르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뭘 잘못했냐면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 나는 두 번째. 그런데 이 두 번째를 못하는 거예요. 자기가 꼭 첫 번째가 돼야 돼요. 이게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늘 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다윗이 칭송을 받죠. 그럼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자기는 두 번째입니다. 이 두 번째를 못 견디는 거예요. 자기가 꼭 첫 번째가 돼야 되겠다는 겁니다. 이게 '시기심'입니다. 이게 '교만'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도 이제 사울은 언급이 없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사울은 안 싸운 것 같아요. 다윗이 나가서 싸웠어요. 그러니까 안 나와 있지만 사람들이 또 다윗을 칭송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사울의 마음속에, 자기는 안 싸웠으니까 칭송을 못 받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다윗이 자기보다 더 인기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못 견딥니다. 이걸 뭐라고 부르냐? 시기심이라고 합니다. 왜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였을까요? 시기심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백성들이 자기들보다, 자기들이 권위 있는 사람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더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또 보겠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있었는데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어요. 그래서 죽이려고 하다가 종으로 팔아버렸어요. 왜요?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기들한테는 안 입힌 특별한 채색 옷을 요셉에게만 입혔던 것입니다. 이게 이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이 시기심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되는 것, 이거 성경 하나 찾고 오겠습니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죽음과 사랑입니다. 그다음입니다. 투기는, 시기입니다. "시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의 나쁜 형태죠. 시기는 죽음처럼 잔인합니다. 시기심이 일어나면 정말 잔인합니다. 그래서 이제 두 번째는 사울 왕이 다시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는 창으로 다윗에게 던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창이 빗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보호하셨다. 그다음에 두 번째 섭리적으로 다윗을 보호하셨다.

그다음에 세 번째입니다. 11절 보시면 이제 도망갔습니다. 다윗이 도망가서 집에 있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도망가야 된다. 당신이 우리 집에 왔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버지가 당신을 그냥 둘 리가 없다. 도망가야 된다." 그러니까 그가 도망갑니다. 그리고 보니까 사람들이 이제 이 집을 전부 포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갈이 다윗이 도망갈 충분한 시간을 얻도록 위장합니다. 어떻게 위장을 하냐면 침대에 사람 모양의 우상을 취해서 거기에 이제 이불을 덮고 그다음에 머리털처럼 보이려고 염소 털로 입히고 그래서 그 위를 덮고 하는 거예요. 아침이 되니까 이 사람들이 이제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들어옵니다. 그랬더니 미갈이 이렇게 말합니다. "병 들어서 안 된다. 못 들어온다. 다윗이 병들었으니까 들어오면 안 된다." 이게 지금 미갈이 누구냐 그러면 왕의 딸이거든요. 그러니까 공주지요. 사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왕에게 딸이 안 된다고 그러면 돌아갔죠. 그랬더니 사울이 "병 들었다고? 침대째 나한테 끌고 와라." 사울이 얼마나 잔인하냐면, 시기심이 얼마나 잔인하냐면 "내가 직접 죽이겠다." 이게 시기심은, 투기는 음부처럼 잔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제 가서 침대째로 가져왔어요, 하고 가져와 보니까 다윗은 도망갔고 거기 이제 사람 모양의 인형 같은 게 있는 거죠. 사울이 말합니다. 미갈한테 "왜 나한테 거짓말했냐?" 그리고 여기 보겠습니다. 17절 내 대적을 다윗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이게 사울이 다윗을 부르는 표현입니다. 내 대적, 내 원수,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잠깐 보겠습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두 번이나 죽일 수 있었는데 그때 안 죽입니다. 동굴에 있을 때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무엘 상 24장 4절, 이제 쫓겨다니는 다윗과 신하들이 동굴 속에 있는데 사울 왕이 들어왔어요.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삼상 24:4).

다윗의 신하들은 사울 왕을 뭐라고 부르냐면 '원수'라고 부릅니다. 이게 아까 했던 '대적'하고 똑같은 단어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신하들도 거꾸로 사울 왕을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 보겠습니다. 6절, 다윗은 뭐라고 말하냐 이 순간에도 사울 왕을 뭐라고 표현하냐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6).

"내 주", 나의 왕입니다. 나는 그의 신하고 사울은 나의 왕입니다. 이게 다윗의 차이점입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일 뿐만 아니라 나의 왕이시다. 이게 다윗의 겸손한 충성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26장을 가시죠. 26장을 가셔도 이때도 이제 사울 왕이 다윗의 다윗의 손 아래에 있는 상황입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삼상 26:8).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원수'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사울 왕을 원수라고 표현하지만, 9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은 끝까지 사울 왕을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폐위시켰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다, 이게 다윗의 관점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태도인 것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울이 이제 다윗에 대해서 내 원수다 이렇게 하죠. 그런데 여기서 잠깐 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 사울은 아버지입니다. 미갈은 딸입니다. 그런데 미갈을 다윗에게 시집을 보냈어요. 우리 식으로 하면 출가외인입니다. 사울이 딸 미갈에게 이걸 요구합니다. 이 딸 미갈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합니까? 아버지입니까? 남편입니까? 우리 감각으로는 이거 남편에게 해야 합니다. 이제 결혼했으니까, 이 미갈은 아버지하고 남편하고 갈등을 일으키면 남편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말합니다. "왜 네가 나를 속였느냐? 내 말대로 해서 네 남편을 죽게 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 무리한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보겠습니다. 여기까지, 이제 네 번째 케이스는 잠시 후에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놓고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하나님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이 다윗을 구해준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구해준 사람, 누가 구하냐 그러면 요나단이 구해줍니다. 그다음에 이제 이 섭리라든지, 그다음은 하나님이 직접 구하는 것은 빼고요. 요나단이 구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미갈이 구합니다. 요나단은 누굽니까? 사울의 아들입니다. 미갈은 누굽니까? 사울의 딸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사울은 죽이려고 하는데 사울의 아들, 딸이 사울이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살려냅니다. 이상하죠.
제가 다시 다른 이야기를 다른 예를 들면요. 출애굽기에 보면 이제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스라엘 남자들이 태어나면 전부 나일강에 던져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때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요? 그때 왕의 법이 이스라엘 남자 아이는 전부 강에 던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법을 어기고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아들을 강에 던진다는 게 너무 비인간적이잖아요. 그래서 숨겨두고 있다가 더 이상 못 숨기겠으니까 이제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못 던지고 갈대 상자에 넣어가지고 이제 이렇게 강에다 놓은 거죠. 이 죽어야 하는 모세를 누가 살려내죠? 바로의 딸입니다. 이게 뭘 말하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아무리 이스라엘 남자를 죽이려고 해도, 한 이스라엘 남자를 바로 딸이 살려내서 그가 훗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사람으로 씁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뭘 말하는 걸까요? 우리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사람이 통치한 것 같아도, 바로가 애굽의 왕, 바로가 왕인 것 같아도 하나님이 왕이시다.
여기서도 사울이 왕입니다. 한 왕이 한 사람 죽이고 싶어 해요. 군대를 동원해서, 못 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이 말하시는 겁니다. 너의 아들하고 딸이 네가 그토록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구해낸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걸 보고 다시 우리들의 상황으로 적용해 보면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이미 왕으로 우리의 상황 속에서 통치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18장 21절을 하나 보시죠. 사울 왕이 한 말입니다.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삼상 18:21).

이 '올무'라고 하는 게 이제 우리로 요즘 용어로 바꾸면 '함정'을 판 것입니다. 사울 왕이 미갈이라고 하는 딸을 다윗에게 아내로 줍니다. 왜 줬지요? 올무로, 함정으로, 이 미갈이라고 하는 함정에 다윗이 빠지도록 쓴 겁니다. 내 딸이 좋은 남편 만나서 행복하게 살도록 결혼을 시킨 게 아니고 미갈이 다윗에게 함정이 될 것이다. 미갈과 결혼하면 다윗은 함정에 빠진 거다라고 하는 함정으로 자기 딸을 쓴 겁니다. 굉장히 나쁜 거죠. 그런데 사울 왕이 생각한 함정이 다윗을 살려냅니다.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미갈이 함정에 빠진 다윗을 살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을 하나만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전 3:19).

18절도 읽어보겠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약간 좀 말이 어렵죠. 사람들이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이렇게 들어보니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거예요. 나도 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기분 나쁜 말이죠. 그다음에 이 죄에서 구원받을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이것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지, 그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을 들으면 세상에서 상식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왜 죄인이냐? 내가 행한 많은 선한 일을 봐라. 내가 뭐 죄를 안 지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고 친구에게 잘해주고 또 낯선 사람에게도 동정을 베풀고, 내가 뭔 죄인이야? 아니 그다음에 그다음에 구원받는 길이 왜 여러 길이 있지, 예수님 기독교 하나만 진리냐? 또 뭐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어야만 구원이냐?" 너무 독단적이고 주장이 너무 강한 것 같고 그래서 안 받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성경이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가 함정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믿냐 그러면 단순한 사람,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믿습니다. 생각이 없고 생각할 줄 모르고, 그냥 뭐 이렇게 복잡한 거 잘 모르고, 그래서 성경이 죄인이라고 그러면 "맞아 내가 죄인이지." 이렇게 시인하는 사람, 그다음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의 길이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사람, 그냥 단순한 거죠. 그러면 이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 그렇게 간단하게 하면 되냐? 생각을 좀 더 다양하게 해봐야지."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가 함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나보다 놀라우신 하나님,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요. 그다음에 조금 더 가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실 때 요나단을 사용하시고 미갈을 사용하셨습니다. 요나단과 미갈은 사울의 아들, 딸들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입니다. 요나단과 미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사울에게 요나단은 말로 말합니다. "다윗이 아버지에게 선한 일을 합니다. 아버지 두통 날 때마다 수금을 켜지 않았습니까? 두통을 없애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할 때 아무도 이길 수 없었던 골리앗을 자기가 혼자 나가서 싸워서 승리를 가져오고, 그래서 아버지와 우리가 다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을 죽일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말한 거죠. 요나단은 다윗을 옹호할 때 다윗에 대해서 좋은 면을 말합니다. 다윗이 했던 선한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실을 제시합니다. 그럼으로써 사울 왕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미갈입니다. 미갈은 어떻게 말하냐 그러면, 이제 사울 왕이 불러다가 "너 왜 다윗을 안 넘기고 도망가게 했느냐?" 그랬더니 미갈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도 다윗 넘기려고 했는데, 신하들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다윗이 나한테 말하기를 나를 도망가게 하지 않고 나를 아버지에게 넘기면 넘기려고 하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고 말을 해서, 다윗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 죽을 수 없잖아요. 아버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두려워서 다윗을 도망가게 한 겁니다."라고 거짓말합니다. 미갈은 다윗을 보호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로 보호합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미갈의 경우는 다윗을 보호하고 도망가게 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할 때 거짓말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떤 문제가 있냐면 그는 다윗을 사울이 보기에 살려줘야 될 사람, 의로운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기꺼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요나단은 "안 됩니다. 이 사람을 죽이는 건 죄입니다." 이렇게 제시했고, 이제 미갈의 경우는 사울이 볼 때 "자기 아내를 죽이려고 해? 자기 살자고, 나쁜 놈이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의도를 정당화시켜주는, 이게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당화시켜주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요나단과 미갈이 둘 다 다윗을 보호하는 데 하나님이 사용했지만 이 두 사람이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차이를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저희가 요나단에 대해서 저희들이 긍정적으로 전번에 봤었고요. 요나단은 다윗과 똑같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미갈은 아닙니다. 미갈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잠깐 보겠습니다. 19장에 보시면 어디서 도망을 다윗을 어디로 도망시켰냐면 19장 사무엘상 19장 12절 보시면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리우매" 그래서 창으로 도망가게 합니다. 이 창이라고 하는 단어가 한 번 더 나옵니다. 어디 나오냐면 사무엘하 사무엘하 6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삼하 6:16).

이 미갈과 관련해서 '창'이라고 하는 단어가 두 번 연관됩니다. 그래서 미갈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여지냐면 관찰하는, 제3자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미갈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을 사랑했지만, 다윗을 보호했지만, 어디서 실패하냐 그러면 '여호와의 언약궤', 이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물건입니다. 이게 다윗 성으로 드디어 들어옵니다. 수십 년 동안 없었습니다. 드디어 성막을 치고 거기에 언약궤가 들어올 때에 다윗 왕이 기뻐 뛰어놉니다. 이걸 보고 그가 업신 여깁니다. 왜요? '왕이 돼가지고 그런 막 춤을 추다니', 이렇게 하는 거죠. 미갈은 다윗을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왕이죠.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왕 아닙니다. 참된 왕은 하나님 홀로 왕이십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직분을 행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 미갈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영적이지 못했다. 다윗을 보호했지만, 이런 평가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이제 네 번째 사건으로 가겠습니다. 18절부터 보시면 이 다윗은 자기 집에서 도망 나와가지고 어디로 도망가냐 그러면 이제 라마로 갑니다. 라마에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로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자 사울이 신하들을 보냅니다. "다윗을 잡아와라." 그랬더니 그 신하들이 사무엘과 다윗과 또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성령이 임해서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면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다르죠. 구약 성경에서 성령은 이제 사람들에게 임했다가 사라집니다. 사울 왕에게 임했다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붓자 성령이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제 사울 왕을 왕에서 폐위하자 성령이 떠나갑니다. 신약은 그렇지 않죠. 신약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으면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첫 번째 죄가 완전히 용서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다시 묻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죄가 없으니까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신약에 있는 성도의 경우는 성령이 한 번 임하시면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이게 이제 신약과 구약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성령이 중요한 기능은 '능력'입니다. 저희들이 유명한 구절를 하나 암송하면요.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다음에 뭐죠? "너희가 권능을 받고" 입니다. 그다음에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게 성령의 능력과 관계됩니다. 율법은 '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해라, 그러면서 산다." 그래놓고 할 능력을 안 줍니다. 하려고 하죠. 하고 싶었죠. 그래서 해봐요. 그런데 안 됩니다. 이게 로마서 7장입니다. 그다음에 신약 성경에 와서는 성령은 뭘 말하냐면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라." 이것을 이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것을 가능한 능력을 주십니다. 능력입니다.
여기서도 보면 사울의 신하들이 와요. 이들은 지금 뭘 하려고 하냐면 자기들의 힘으로 다윗을 잡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힘이 있어요. 왕의 임무를 받았어요. 왕의 권위를 가지고 와요. 그리고 그들의 임무는 다윗을 잡아가는, 체포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와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누구 힘이 셉니까? 성령이 강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죠.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입으라." 이렇게 돼 있죠. 술이라고 하는 게 사람을 통제합니다. 술을 먹으면 그 사람 이상해지죠. 말이 많고, 울고,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합니다. 술 먹어서 술이 그렇게 통제하는 거죠.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평상시에 그가 할 수 없는 걸 막 합니다. 이 사람들이 왔어요. 다윗 잡아가려고, 이게 인간의 힘을 가지고 온 거죠.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그들이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예언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언은 이렇게 보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이 갑자기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능력, 이걸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제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들이 하는 예언 가운데 하나가 이런 걸 겁니다. 사울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이제 다윗이 하나님이 세운 왕이며 다윗이 왕이 될 것이다. 이런 예언들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울의 명령을 받아서 다윗을 체포해 가야 되는 사람이 성령이 임하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령한 왕이고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평상시에 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이런 말들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이제 한 번 하고 그다음에 두 번, 세 번을 갔는데 세 번 다 이렇게 합니다. 그랬더니 사울이 내가 직접 가야 되겠다, 자기가 옵니다. 자기가 와서, 사울의 경우는 사무엘과 그래서 여기가 굉장히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사실은 사무엘이 있고, 다윗이 있고, 사울 왕, 3명이 동시에 모인 적이 없습니다. 다윗과 사울왕은 같이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쪽에 있거든요. 그런데 이 세 사람이 동시에 있는 굉장히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와서 사무엘과 다윗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물어봅니다. "어디 있냐? 사무엘이 어디 있냐?" 그랬더니 라마나욧에 있습니다 라고 하는 소식을 듣고 가면서부터 성령이 임합니다. 그래서 그가 그 앞에 가서 또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한 군데 보겠습니다. 24절 보십니다.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그래서 여기서 첫 번째 보겠습니다. '또'라고 돼 있기 때문에 앞에 세 명의 신하들, 세 그룹의 신하들을 보냈습니다. 신하들을 세 번 보냈는데 그 세 번 보낸 신하들도 동일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또'라고 하는 단어가 앞에 세 번의 신하들에게도 일어난 일이다, 입니다. 그다음에 사울도 일어난 일이 뭐냐 그러면 첫 번째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리고 이 성령은 이제 이 일 끝나면 또 떠나가십니다. 일시적으로 이렇게 하신 거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언약을 세우시고, 지금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 하는데 신하들도 그렇고, 사울도 그렇고, "옷을 벗고" 입니다. 여기서 옷은 사울의 '왕복'입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입고 있는 옷입니다. 그 옷을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가 벗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왕 아닙니다." 이 옷을 벗는 것입니다.
사울의 이 옷은 나중에 보시면 또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31장을 한번 보시면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요. 그랬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한 일을 보시겠습니다.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삼상31:8-9).

그래서 사울이 옷을 벗는 장면은 이게 그냥 단순한 옷이 아니고 그가 왕으로서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벗겨야 되는 것은 그가 죽었을 때, 이제 완전히 왕복은 벗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이쪽으로 오겠습니다. 24절 보면 "그가 옷을 벗고" 그가 성령의 충만해서, "이제 나는 왕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이 세운 왕은 다윗입니다."라는 예언을 했을 것입니다. "종일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이제 저는 이 번역은 조금 동의하지 않습니다. 벌거 벗으면, 우리 생각에는 그냥 옷은 속옷까지 다 벗은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냥 벗은 몸입니다. 그냥 왕복을 벗은, 나머지 옷을 벗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머지 옷은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복을 벗고 누워서, 그가 왜 종일 종야 누워 있었냐면 하나님이 다윗이 도망갈 시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시 사무엘 있는 곳을 떠나서 다시 도망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울의 손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시간을 주도록 성령께서 종일 종야, 그로 하여금 사무엘 앞에서 계속해서 누워 있었다고 하는 것은 추격이 불가능했다. 다윗을 체포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또 시편 하나 찾아보겠습니다. 시편 76편 한번 보시죠. 유명한 구절인데요. 암송하면 좋을 구절 같습니다.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

사람들이 일이 잘못되면 분노합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상황이 되면 분노합니다. 자 그런데, 이 분노에 대해서 하나님이 두 가지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분노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뀌어지지 않는 분노는 하나님이 금지하십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보겠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시기심 때문입니다.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도가 네 번이나 실패합니다. 그리고 그가 요나단에 의해서는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득당합니다. 그다음에 미갈에 의해서는 미갈이 다윗을 이렇게 도망가게 했을 때 사울의 분노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함정을 팠는데, 사람이 판 함정이 그에게 함정이 되고, 그리고 함정에 빠진 함정에 빠질 것으로 생각됐던 단순한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제 사무엘에게 와서는 하나님이 사울 왕의 분노를 금지하십니다. 남은 노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답니다.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시편으로 가셔서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시편 59편입니다. 그때 다윗이 썼던 이 시기에 다윗이 썼던 시편입니다. 시편 59편 1절부터 보시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시옵소서"라고 하는 간구가 1, 2, 3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3절에 보시면 "저희가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아마 사울 왕궁에 권력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왕이 되는 걸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 통치 하에서 강한 자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나중에 보시면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살려주고 다윗이 사울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가 사울 왕 당신에게 다윗이 당신에게 해가 된다, 혹은 다윗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라고 하는 말을 듣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 걸 보면 이게 지금 한 믿음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이게 정치적인, 혹은 어떤 현실적인 권력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강한 자는 사울 왕궁의 기득권적인 권력자들입니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이제 제가 이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안타까운 것은 만약에 이제 이런 가정이 불가능한 거죠. 만약에 사울 왕이 다윗이 있었고,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합니다. 한 번도 블레셋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에 사울 왕이 다윗을 군대 장관으로 세우고 요나단을 협력시켜서 블레셋과 싸웠더라면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최고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이 힘을 내부에 쓰지 않고 블레셋과 싸웠더라면 이스라엘은 강성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게 안타까운 것입니다. 저는 많은 지역 모임이, 혹은 많은 성도님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다면, 세상을 위하여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쓴다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다른 데다 소모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조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 4절에 보시면 "내가 허물이 없으나" 다윗은 두 번째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두 번째, 자신의 순전함을 말합니다. "나는 허물이 없습니다." 이제 이렇게 말을 하고요.
그다음에 8절, 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를 웃으시리니 모든 열방을 비웃으시리로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데 사울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울의 신하들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울의 군대 장관이 다윗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웃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반대하는 사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과 싸우려고 하는 사람, 누가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그다음에 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이제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이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진멸되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분임을 이스라엘 아닌 이방인도, 훗날 우리들도 알게 하옵소서.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16절, 17절 보시겠습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리니" 여기서 잠깐 하나만 보겠습니다. '아침'입니다. 사울 왕은 군대를 보내서 다윗의 집을 포위하고 아침에 죽여라. 그리고 그날 밤 다윗이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이제 다윗은 죽는다고 하는 그날 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적들은 그 아침에 다윗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날, 그 아침에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17절 "나의 힘이시요." 여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은 힘이 없습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지금 죽음을 피해서 이리 피난 가고, 저리, 하나 말씀드리면 지금 이제 사무엘상 18장부터 다윗은 도망자입니다. 계속 도망다닙니다. 언제까지요? 사울 왕이 죽을 때까지 그는 계속 도망가야 합니다. 어디로 도망가냐면 블레셋 땅으로까지 도망가야 합니다. 이게 다윗의 인생입니다. 그렇게 도망가야 되는 다윗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나의 힘이시요." 다윗은 힘이 없습니다. 그는 약합니다. 그는 죽을 위협을 맨날 피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다윗이 노래한 하나님, 다윗이 찬양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