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 2 : 다윗과 골리앗,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승리 > 한봉래 형제님
이 시간에는 제가 다윗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이제 사무엘상 16장을 살펴봤고요. 오늘은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 이야기 살펴보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 17:1-11).
"다윗이 그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가로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여차 여차히 하시리라 하니라"(삼상 17:22-27).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7:32-37).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삼상 17:41-51).
거기까지, 하도 유명한 이야기죠. 주일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일 겁니다. 다윗과 골리앗, 또 누가 있죠? 삼손과 드릴라, 또 요나의 물고기, 주일학교 베스트 메시지 1, 2, 3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골리앗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뭘 말씀하시려고 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저희들이 배경으로 이걸 깔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이잖아요. 사무엘 상 앞에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합니다. 그때 이제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엘리였습니다.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아들이고, 이 제사장이 블레셋과의 전투 현장으로 언약궤를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는데 전쟁에 놀랍게도 저버립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뺏겨버립니다.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습니다. 이 소식이 들리자 엘리는 또 죽습니다. 며느리가 애를 낳았는데 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습니다. 뜻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버렸다.' 이게 이제 한 6장쯤에 나옵니다. 이 블레셋은 압니다. 이스라엘과 한번 싸워서 자기들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이 이제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상징하는 거잖아요. 이걸 어디에다 두냐면 자기 신, 다곤 신상에 둡니다. 왜 두냐? 우리 신 다곤이, 블레셋의 신 다곤이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보다 강하다, 둡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다곤신상 앞에 이제 두고 나갔어요. 그다음 날 와보니까 이 다곤 신상이 엎드러져 있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 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왜 넘어졌나? 이렇게 세워놓고 갑니다. 그다음 날 와보니까 이번에는 엎드려진 게 아니고 이 다곤 신상의 목과 두 팔이 잘라져 있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일까? 그다음에 이제 블레셋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고, 막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결국 안 되겠다. 이거 언약궤 돌려보내자. 돌려보내버립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스스로 지키셨습니다. 블레셋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전쟁에서 이겨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상징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가지고 있었더니 어려운 일이 자기들이 생겨가지고 이거 도로 이스라엘에 보내라. 이거 우리한테 있다가는 우리 괴롭힌다. 이게 첫 번째 배경입니다.
이제 두 번째 싸움입니다. 두 번째 싸움을 할 때, 블레셋이 이제 이쪽에 진치고 이스라엘이 이렇게 진치죠. 그런데 이제 진만 쳤지, 전쟁을 안 합니다. 쳐놓고 블레셋은 이쪽에 있고, 이스라엘은 이쪽에 있고, 이 가운데는 들판이고, 평지고, 둘이 안 싸워요. 안 싸우니까 골리앗이라는 사람이 나왓 "야, 우리 이렇게 하자. 1 대 1로 붙자. 1 대 1로 1 대 1로 붙어서 이긴 사람 쪽이 이긴 걸로 하자.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모독했으니까, 너희들 가운데 한 명, 정말 분개한 사람, 제대로 자존심이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한번 싸워보자!" 이렇게 한 거죠. 그런데 이걸 언제까지 하냐면 40일 동안 합니다. 40일 동안 안 싸우는 거예요. 그럼 왜 안 싸우냐? 보겠습니다. 왜 안 싸우냐? 이건 이제 해석을 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냐 하면 사울 왕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은 성령께서 떠나셨습니다. 여긴 17장이잖아요. 13장, 14장, 15장에서 사울이 불순종하고 15장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폐위시킵니다. 이제 사울은 왕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리고 16장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이제 하나님 쪽에서는 사울은 왕 아닙니다. 성령이 떠나버렸어요. 그러니까 그가 싸우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사울 왕은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은 그럼 왜 안 싸우냐? 블레셋은 이제 무기 체계를 보면, 블레셋이 이제 이스라엘보다 강하죠. 여기는 이제 철로 된 무기가 있고, 이제 청동 무기가 있고, 막 이랬는데요. 이쪽이 이제 철병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어디서 싸우고 싶냐면 평지에서 싸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산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병거라고 하는 것은 산에서는 싸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게 이스라엘 쪽으로 공격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유리한 평지로 얘들이 내려와야 싸움을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못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전략상 산으로 올라가서 병거 싸움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다리는 거고, 이스라엘은 겁쟁이라서 못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이 나와서, 이게 전쟁이 모양만 전쟁이지 한 번도 저기 싸우질 않으니 이게 무슨 전쟁이겠습니까? 그래서 골리앗이 나와가지고 1 대 1로 싸우자, 1 대 1로 해가지고 이긴 쪽이 이기게 하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제 골리앗이 나와서 이제 모독을 하는데 "나는 블레셋이고 너희들은 이스라엘 아니냐?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모독한다. 너희들 가운데 정말 자존심 있냐? 너희들이 이스라엘 맞냐? 한번 붙자!" 그래도 사람들이,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골리앗이 나와서 막 악을 쓰면 전부 도망갑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만 말합니다. "야, 진짜 이스라엘 모독하네. 저 사람하고 어떻게 싸우냐?" 이러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골리앗이 등장할 때 1절에 보면 그의 키를 말합니다. 그의 육체적인 힘을 말합니다. 그를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키는 몇 척이요" 그다음에 뭐죠? 저기 방어용 무기, 공격용 무기를 이렇게 묘사하는 거죠. 감당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이제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스토리 한 편에 다윗을 일으킵니다. 아버지가 이새인데 8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에서 3명이 군대에 갑니다. 나머지는 어려서 아직 군대에 징집이 안 된 거예요. 그래서 이제 3명은 군대 갔고, 이제 요즘하고 좀 달라가지고요. 제 아들이 전쟁 잘하고 있나 보려고, 막내 다윗에게 "너 전쟁터에 갔다 와라." 이렇게 음식 싸주면서 이거 형들 갖다 주고, "형들이 잘 있다고 하는 물건 하나를 가져와라." 형들의 손수건, 형들의 물건 하나 갖고 와라. 이제 임무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막내가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지금 전쟁터로 온 거예요. 와서 보니까, 여기 막사를 가보니까 전부 지금 저 앞에 전선에 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도 물건은 일단 놓고, 형 봐야 되니까 전선으로 간 거예요. 전선으로 갔을 때 골리앗이 딱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을 부딪히게 합니다. 보니까 골리앗이 나와서 또 한 번 이제 모독을 하는 거예요. "너희들 이스라엘 맞냐? 자존심도 없냐? 나하고 싸움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골리앗의 그 크기를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하고 있는 거죠. 그때 이제 여기서 주목할 것입니다. 다윗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 놀라운 것은 이제 사울의 정책을 보면 사울은 어떻게 하냐면 자기가 못 싸우겠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군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면, 이제 돈으로 하려는 겁니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면 내 딸을 주겠다. 이거 동화책에 많이 나오죠. 이기면 사위가 되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 돈을, 은금을 주겠다. 상을 주겠다. 그다음에 세 번째, 그 집안은 세금 면제다. 이 세 가지를 내세웁니다. 자기가 싸워야죠. 싸우는 게 왕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못 싸우겠으니까 돈으로 싸울 사람을 불러일으키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누가 나가겠습니까? 사위 되기 전에 죽게 생겼는데, 그래서 아무도 안 나갑니다.
다윗이 와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어봐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기 골리앗하고 싸우면" 그 사람들은 전부 겁먹고 있고, "골리앗을 싸워서 이기면 세 가지가 주어진대." 그러니까 다윗이 여러 번 물어봅니다. "사실이냐? 정말로 그렇게 준대?" 하고 물어봅니다. 그 물어보는 이유는 이겁니다. 다윗이 생각할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독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죽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살 사람이 없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건드리고 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저거 죽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두 번째 골리앗을 싸워서 이기면, 골리앗 싸워 이기는 건, 이제 이기게 돼 있는 거죠. 그가 하나님을 모독 했으니, 그하고 누가 싸워도 이긴다. 그다음에 이기면 상이 이렇게 있는 거예요. 세 가지 상이 있는 거예요. 사위가 되고, 평생 세금 면제고, 어마어마한 상금 주고, 이걸 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걸 왜 안 해? 그래서 자꾸 물어본 거예요.
그리고는 자기가 이제 사울 왕에게 갑니다. 왜냐하면 이제 자기가 함부로 싸울 수 없는 게, 골리앗은 블레셋 대표잖아요. 그러면 여기는 이스라엘 대표로 나가려면 사울 왕이 승인해줘야 합니다. "그래 네가 대표로 나가." 이렇게 해야지, 자기가 마음대로 나가면 안 되죠. 그래서 사울 왕을 갑니다. 사울 왕에게, 여기 이제 왕이 있습니다. 현재의 왕이 있는데 하나님이 폐위한 왕, 미래의 왕, 하나님이 기름 부은 미래의 왕,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게 이제 무슨 뜻이냐면, 저희들이 신명기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넣으면서 "너희들이 만약 전쟁을 하게 되거든" 가나안 땅에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잖아요. 정복도 해야 되고, 정복한 후에도 이제 반격도 있을 거고, 하여간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서 전쟁을 하거든"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전쟁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에 이제 우크라이나하고 러시아 전쟁을 하는데, 각 나라가 다 그렇죠. 이제 청년들을 징집을 해야 됩니다. 청년들한테, 너 군대 나가서 싸워라. 청년들이 잘못하면 죽잖아요. 그러니까 안 가려고 해외 도피를 합니다. 그럼 해외 도피하는 청년들한테 "이리 와!" 하고 막 끌고 가고, 이제 이런 일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렇게 합니다. 전쟁할 때 항상 그렇게 합니다. 기드온 때 특히 하는데요. 전쟁 때 "모여라, 전쟁할 거다." 이 군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직업 군인이 있는 건 아니고 평상시에 살다가 예비군들입니다. 살다가 전쟁이 있으면 이제 징집을 합니다. 그러면 오라고 하는 거죠. 이제 싸우려고 모였어요. 군대가 형성된 거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 가운데 혹시 두려워하는 사람 있느냐? 집으로 가라." 이게 이스라엘 군대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신혼? 신혼이면 가라." 이스라엘은 군인으로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군인 숫자로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왜요? 그것은 나중에 다시 보겠습니다. 다윗이, 이제 미래의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사람의 마음에 합해서 폐위된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골리앗에게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사울 왕이 이렇게 말하죠. "네가 어떻게 싸우냐? 저 덩치를 봐라. 너 지금 현실 감각이 없구나. 너 지금 개념이 없는 거야. 쟤는 덩치가 이렇지. 그리고 무기가 이렇지. 그리고 그는 어릴 적부터 뽑혀서 군인으로 훈련받은 사람이야. 너는 지금 군대에 징집될 나이도 안 됐잖느냐." 뭐 싸우는 거 한 번 해본 적도 없잖아요. "안 된다." 라고 사울이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말 들으면 분노해야 합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근데요." 이 대목부터 잘 보셔야 합니다. "근데요. 제가 어리니까 집에서 양을 치라고 그래서 양을 치면" 아버지 양이죠. 이제 육식 동물들이 있는 거죠. 사자하고 곰이 있는 거죠. 사자하고 곰이 와서 양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사자도 먹고 살아야죠. 아니 원래 사자는 양 먹고 사는 건데, 뭐.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다윗이고, 우리가 이래야 합니다. 사자가 양을 움켜쥐면 저희들이 그러잖아요. 이제 개 고양이 할 때도, 먹는 데 건드리면 안 됩니다. 동물들은 먹자고 사는 거잖아요. 먹을 때 사람이 건드리면 주인도 으르릉 하거든요. 그런데 사자가 양을 움켜 쥐었어요. 그걸 다윗이 갑니다. 그리고 칩니다. 이게 가능한가요? 다윗은 어쩌자고 이랬을까요? 만약에 누군가가 이웃 양치는 어른이 봤다면 "야, 다윗아 너 그러다 죽는다. 그냥 양 줘라." 라고 말했을 거예요. 그런데 다윗은 어땠냐면, 다윗의 하나님은 살아있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거기 계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내 삶 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양을 잡아먹는 사자를 칩니다. "안 된다! 이 양은 내가 돌보고 있다. 하나님의 양이다." 아무리 사자가 양을 먹고 살게 돼 있어도, 이 양은 안 된다! 하고 사자를 친 겁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 이 믿음은 이제 자기가 맡은 일이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이 양은 어느 누구도 못 건드린다!"라고 한 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양이다. 하나님이 이 가운데 살아계신다! 이렇게 한 거예요.
그다음에 이 믿음이 성장합니다. 계속 적용됩니다. "똑같이 사자나 곰처럼" 사자나 곰이 걔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마는, 이게 무슨 양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래도 이스라엘 양, 하나님의 양을 건드리는 건 안 된답니다. 그런데 이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독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양을 먹으려고 했던 사자와 곰을 내가 물리쳤듯이, 자기가 물리친 게 아니고 물리치도록 하나님이 힘 주셨듯이, 하나님이 살아계셨듯이, 이번에도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내가 나가서 그와 싸우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계심을 입증하겠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다시 이렇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제 사울이 "그래." 하고 이제 갔는데, 그다음입니다. 골리앗이 보기에 한 명 나왔어요. 40일 동안 막 해도 아무도 못 나오던 게, 40일째 되는 날, 40일이 테스트 기간이잖아요. 마지막 40일 날 한 명이 나오는 거예요. "오, 드디어 이제 한 번 싸우려고 나오네." 그런데 애가 나오는 거예요. 무기 하나도 없이, 두 개를 들고 있어요. 보니까 하나는 양치는 막대기입니다. 하나는 물매, 그런데 물매를 보니까 물매에 돌이 없어요. 물매는 던지는 건데 거기에 돌도 없어요. 그 두 개를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골리앗이 모독감을 느낍니다. "이게 뭐야? 네가 나를 개로 알고 개 쫓듯이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 모독감을 느낍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모독도 없었어요. 골리앗은 모독을 느낍니다. 이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저런 사람을 나하고 싸우자고? 이건 싸움이 안 돼요. 이게 말이 안 되는 싸움을 하자는 겁니다. 모독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가 실수합니다. 어떻게 이제 실수를 하냐면, 그는 무기가 이렇게 있고, 갑옷이 의하여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공격할 데가 없어요. 공격할 데가 어디냐? 그러면 갑옷, 투구, 뭐 다 있으니까 얼굴 하나가 남은 거죠. 얼굴 하나도 이렇게 썼으니까 이제 이마 하나가 딱 남은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누가 누가 그것을 막게 돼 있냐 하면 '병기 든 자'가 있습니다. 자기 앞에 병기 든 자가 있어요. 그래서 그가 그걸 막는 거예요. 나머지는 자기가 다 막아져 있고, 자기 병기 든 자가 이제 방패 같은 걸로 이쪽으로 오면 그걸 막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완벽한 방어 장치가 돼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다윗하고 싸울 때도 이 병기 든 자가 앞에 가야 됩니다. 그런데 너무 분노한 거예요. 그래 서 병기 든 자를 놔두고 자기가 앞에 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가 먼저 움직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움직이냐면, 다윗이 움직이는 걸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을 보시면 항상 달립니다. 항상 달려갑니다. 골리앗이 움직이자 그다음에 그가 달려갑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던 물맷돌 하나를 잡아서 넣어서 때립니다. 그래서 이게 그 이마를 정확하게 치는 거예요. 그리고 골리앗은 이 물맷돌로 죽지 않습니다. 이거 주일학교 선생님들 잘 설명하셔야 됩니다. 물맷돌로 안 죽어요. 물맷돌을 맞고 그가 넘어집니다. 잠깐 정신을 잃은 거예요. 그리고 다윗이 올라가서 발로 밟고 골리앗의 칼로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머리를 베서 예루살렘으로 갖고 옵니다. 이제 굉장히 상징적이죠. 이제 이런 해석은 나중에 해야 되는데,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하여간 이렇게 했는데, 이제 이 대목에서 제가 보겠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어떤 싸움이냐면 '보는 것으로 하는 사람'과 골리앗은 이렇게 보는 거예요. 나는 블레셋이다. 너는 이스라엘 아니냐? 그리고 사람들은 다 보는 거죠. 골리앗의 크기, 그의 훈련 정도, 다윗은 소년이고, 이런 걸 보는 거죠. 골리앗과 많은 사람들은 보는 것을 따라 행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믿음은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말들을 해보겠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나에게 오지만" 그다음에 첫 번째입니다. 45절,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간다. 그다음에 46절, 이 싸움의 목표를 그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 이게 싸움의 목표입니다. 너를 죽이겠다가 아닙니다. 물론 죽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입증해 내겠다. 그다음에 47절, 세 번째입니다. "칼과 창에 있지 않다." 승패는 칼과 창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를 입증하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정하신다. 이 네 가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가 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보이는 무기의 싸움, 보이는 상황의 싸움이 아니고, 다윗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인데요. 이 부분은, 놀라운 것은 다윗의 이 말들은 후대에 입증이 됩니다. 전례를 찾을 수가 없어요. 후대의 입증이 됩니다. 그래서 후대의 것들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이 '만군'은 제가 나중에 여호와의 이름 할 때, '여호와 이레', 또 '여호와 라파', 그다음에 '여호와 샬롬', 이런 게 있잖아요. 그다음에 이제 '만군의 여호와'도 그런 여호와가 들어간 이름인데요. '만군'은 뭐냐하면 '천사'를 가리킵니다. 이 부분은 언제 입증이 되냐면요. 훗날 히스기야가 모독을 당합니다. 랍사게가 와서 이제 유다를 다 점령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하나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랍사게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말할 때 항복해라." 이렇게 말하죠. "너희들이 지금 뭘 믿고 버티냐?" 보통 이렇게 하죠. 이제 성에서 버티면 성을 점령하면 다 죽여버립니다. 만약에 항복하면 그나마 힘이 덜 들었으니까 살려둡니다. "항복해라. 버텨봐야 시간 문제지. 이 성이 떨어지는 것은, 포기해!" 그리고 이렇게 모독합니다. "혹시 너희들의 하나님이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믿고 지금 버티는 거 아니지? 내가 앗수르에서 그동안 여기까지 오면서 온갖 신들을 다 정복하고 왔는데, 너희들 하나님이 뭐가 특별하다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렇게 모독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 군인도 없지 않느냐? 내가 말 200마리 빌려줄 테니까, 내가 200마리 말을 빌려줘도 너희들은 기병대도 못 만들지 않냐? 그 200마리의 말을 탈 군인도 없지 않냐?" 이렇게 합니다. 그 편지를 히스기야가 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보시옵소서."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죠? 천사 한 명이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죽여버립니다. 이게 다윗이 말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천사 한 명을 보내서 수많은 사람을 하룻밤에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답니다. 이걸 다윗이 아는 거죠. 저는 다윗이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저는 그가 사사기를 읽었을 거로 봅니다. 사사기에서 계속 전쟁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하죠. 그런데 가끔 이깁니다. 기드온 이기고, 입다 이기고, 드보라 이기고, 하죠. 그러면서 그가 이 앞에 있는 성경을 통해서 그가 압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군의 여호와', 나에게 있는 하나님은 천사 한 명을 보내서 수많은 군대를 단번에 없앨 수 있는 하나님이다." 이렇게, 이게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 이 부분은 나중에 성도님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역대하쯤 가보면, 아사 왕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이 아사왕이 전쟁을 하는데, 이게 자기들이 전력으로만 보면 이건 지게 돼 있어요. 그런데 아사가 불리한 군대를 가지고, 질 게 뻔한 전쟁을 하러 갑니다. 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주 놀라운 기도죠. "하나님, 사람으로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저기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강해도, 이스라엘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승리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네가 보기에는 겁쟁이고, 약하고, 무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이걸 입증하겠다는 거죠. 다윗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함을" 이제 이 부분은 아마 저는 그 앞에서 기드온과의 전쟁에서 배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하고 전쟁할 때 미디안은 메뚜기 때처럼 많았습니다. 기드온이 전쟁할 사람 모으니까 만 명이 온 거예요. 하나님이 숫자를 줄입니다. 아니, 전쟁에서 군인의 숫자가 줄면 어떡합니까? 줄여버립니다. 몇 명까지요? 300명, 이 300명이 미디안 군대를 포위합니다. 이 포위가 참 웃기는 포위죠. 아니 포위하면 이렇게 도망 못 가도록 밀집해서 이렇게 포위해야죠. 그런데 300명이니까 구멍이 훤하죠. 그리고 무기가 뭐라고요? 항아리하고 횃불입니다. 이게 전쟁을 이기게 하겠습니까? 항아리로 싸우는 군대 보셨습니까? 칼과 창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여호사밧이 전쟁을 하는 장면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을 할 때 어떻게 전쟁을 하냐 하면, 이제 여기 있는 말들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 아닌 즉" 이 말이 그대로 반복이 되는데요. 여호사밧이 전쟁할 때 어떤 전쟁이 있냐면 이스라엘이 군대가 갑니다. 전쟁합니다. 어떻게 하냐면, 이 군대 앞에 뭘 두냐면 찬양대를 둡니다. 이게 무슨 전쟁이에요? 전쟁을 군인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깁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에에게 한 말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이게 다윗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 이제 말씀을 마쳐보겠습니다. 우리는 골리앗처럼 돼서는 안 됩니다. 사울처럼 돼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다윗이어야 합니다. 이 세 사람을 보겠습니다.
우선 골리앗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힘이 세니 이기겠지. 너희들은 숫자도 없고 힘이 약하니까 지겠지, 라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골리앗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보이는 것은 잠시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사울처럼 하면 안 됩니다. 사울은 뭘 잘못했냐면, 다시 보겠습니다. 사울은 13장, 14장, 15장에서 실패하는데요. 13장에서 이렇게 실패합니다. 이제 블레셋과 전쟁이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일주일 기다려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 왕은 보니까 일주일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 일주일이 됐어요. 그런데 사무엘은 안 오고, 그다음에 뭘 보냐면 백성들은 흩어지고, 블레셋은 전쟁 준비가 끝나 있고, 지금이라도 공격해 올 수 있고, 그러니까 자기가 제사를 드려버립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제사는 누가 드리죠? 레위 지파, 아론 지파만 드립니다. 사울은 무슨 지파죠?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는 제사드릴 수 없습니다. 이게 그의 첫 번째 죄목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어긋내는 것입니다. 이게 그의 첫 번째 죄목이고, 그다음에 두 번째 이제 누가 믿음이 있냐 하면 아버지 사울은 믿음 없고요. 요나단이 믿음이 있습니다. 14장에 보시면 요나단이 전쟁을 시작합니다. 거기 이제 블레셋들이 막 지치고 초소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요나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초소를 요나단과 병기 든 자 2명이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그 많은 블레셋 사람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믿음을 인정하셔서 전쟁을 이기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군인들이 쓰러지니까, 사울 왕이 저쪽에서 보다가 "저기가 뭐냐? 도대체 저기가 왜 그러지?" 그래서 이제 이 전쟁이 전면적으로 일어나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막 치고 있는 중입니다. 전쟁이 승리하고 있는 중에 사울이 이렇게 명령을 내립니다. "오늘 금식이다. 오늘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먹어서는 안 된다." 왜요? 승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질서하게 한 사람이 인간적인 규칙을 세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승리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이제 요나단은 그 소식을 못 들어서 가다가 이제 적군을 치느라고 너무 힘이 들어서, 꿀이 있어서 꿀을 이렇게 찍어 먹었거든요. 그랬더니 기운이 나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사울이 "누가 먹었냐?"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서 요나단이 뽑힙니다. 그랬더니 사울이 이렇게 말하죠. "요나단은 죽으리라." 자기 아들인데도, 아들이라도 죽여야죠. 백성들이 "안 됩니다. 요나단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오늘의 전쟁을 승리케 했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신 건데, 당신의 명령을 어겼다고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겨우 말려서 안 죽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울의 두 번째 죄입니다. 하나님의 규칙을 어기고 자기의 규칙을 만들어서 승리를 방해한 것입니다. 세 번째, 15장에서는 아말렉을 치라 그랬죠. 아말렉을 쳤죠. 그런데 진멸하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누구를 살려주냐면 왕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좋은 짐승들을 놔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와서 "이거 왜 없애라니까 왜 살려뒀나요?" 그랬더니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제사 드리려고" 그때 유명한 말이 나오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그다음입니다. "불순종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입니다." 실제로 사울 왕이 뭘 하냐면 이렇게 불순종하잖아요. 실제로 사울 왕이 뭘 하냐면 무당에게 가서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고, 그러고 그리고 그날 전쟁에서 죽죠. 불순종한 사람은 우상에게 가는 것입니다. 여기 세 가지 죄입니다.
우리는 골리앗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우리는 사울처럼 육신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규칙을 어기고,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다윗처럼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한 사람이냐?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산다.'입니다. 그게 삶의 목표입니다. 그가 양을 칠 때나, 골리앗을 만났을 때나, 그는 하나님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여기 이 현장에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능력을 보이시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삽니다. 그가 사는 이유입니다. 이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그냥 뭐 다윗이 물맷돌 샥 던져서- 그게 아니고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그가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안 됩니다. 그의 물맷돌 기술 때문에 이겼다라고 설명하면 골리앗처럼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이길 리가 없었다. 이길 수 없었다. 어떻게 이겼지? 하나님이 믿는 자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의 믿음을 축복하셨다. 이게 유일한 해석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울이 되지 말고, 골리앗이 되지 말고, 다윗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죠. 다윗에 대한 최고의 칭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 대목 말할 때마다 그런데요. 제가 저를 봐도 제가 제 마음에 안 듭니다. 왜 이러지? 다른 사람을 보면 제 마음에 안 들죠. 왜 저렇게 사냐?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보고 "내 마음에 든다. 내 마음하고 똑같다." 사람이 이 같은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산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가? 하나님이 모독을 받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모독받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을 참지 않으리라, 라고 하는 것이 다윗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역사 가운데 계속 사용하셨습니다. 모세, 사도바울, 베드로, 전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입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오셨던 것입니다.
저희들이 그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도록 서로 격려하는 그런 지역 모임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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