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성도가 버릴 것과 사모하는 것

박이레 2026. 1. 23. 16:00

성도가 버릴 것과 사모하는 것 / 26년 1월 23일 금요일(요약) / 이우진 형제님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2:1-2, 개역한글)

성경은 성도가 버려야 할 것과 사모할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악독, 궤휼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 옷을 입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이는 말씀을 뜻하는데,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을 본능적인 것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119:131, 개역한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9:10, 개역한글)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할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섭취하여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어떻게 섭취해야 할까요?
1. 첫째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특히 학생때에 이것이 경건의 습관이 되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2. 두번째는,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저자가 성령님이시기에 성령님께 이 말씀을 깨닫도록 기도하며 읽는것이 필요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119:18, 개역한글)

3. 세번째는, 아침에 읽은 말씀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루 중 수시로 이 읽은 말씀을 생각하고 암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오늘의 양식이 될 말씀을 얻었을 때에 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구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매일매일 조금씩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4. 네번째는, 말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가 있는데 이를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상고할수 없습니다. 죄를 버리지 않으면 말씀을 사모할수 없습니다. 또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죄를 버릴수 없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119:9, 개역한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개역한글)

사도는 여기서 버리고 사모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버리고 사모할수 없습니다.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변화를 일으켜 주실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개역한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6, 개역한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우리가 버리고 사모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지만 우리가 반응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도와주시고 우리가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해서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버리고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채운다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의 결과는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영원한 평안입니다. 시편 23편의 기자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렇게 버리고 사모한 가장 놀라우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를 볼 때에 주님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으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셨던 분입니다. 주님은 출생부터 부활까지 전 생애를 사시는 동안 늘 성령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광야의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으로 사시고, 성령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드리시고, 또 성령의 힘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아버지의 뜻이 마음에 충만하셨기에 항상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은 우리에게 본이 되빈다.
두번째 본은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버리는 것이 매우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개역한글)

주님을 조금씩 더 깊이 알게 될 때에 사도바울은 이 모든것을 내려놓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매일 경험한다면 우리가 버리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워가는 기회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개역한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개역한글)

"날마다" 라는 것은 어제 우리가 버리고 상고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다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버리고 주님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과정이 쉽지 않고 우리가 많은 실패를 통과하겠지만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가 주님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한번 맛보았으면 귀하신 주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안에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자원들을 통해서 주님을 더 알아가고 닮아갈수 있는 생애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도우셔서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귀한 생애를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