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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 창세기 25장 12-18절(요약)

박이레 2025. 12. 3. 20:57

성경읽기 : 창세기 25장 12-18절(요약)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 이 방백이었더라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창25:12-18,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12-18절까지는 이스마엘의 족보와 그의 죽음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루었는지도 나옵니다. 그는 이삭이 아닌 약속밖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12-18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12-16절까지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약속의 자손이 아님에도 왜 그 후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자세히 기록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방백을 낳을 것이라고 이스마엘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성취됩니다. 또 창세기는 인류의 계보를 명확하게 기록합니다. 그렇기에 이스마엘의 족보를 기록하고, 또 이후에 에서의 족보를 기록하고, 이후에는 야곱의 족보를 시작합니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스라엘의 대적인 아라비아의 시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얼마나 큰 영토를 차지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을 아라비야 전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이스마엘의 죽음을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비록 약속의 자손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지난시간 그두라의 자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그두라의 자손 중에 앗수르가 나온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것이 좀 다른것 같습니다. 앗수르는 이미 그 나라를 이루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수정해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죽을 때에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담이 몇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되어 있는데요. 아브라함에서부터 처음으로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기 조상이 간 길로 갔다는 뜻도 있지만,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갔다는 뜻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주님 그 이상으로부터 올라가서 아담 위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아담은 죽어서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또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하였을때 주님께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자손이 아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아닌가, 라고 했을 때에 이 성경은 이스마엘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는 약속에서 제쳐졌지만 아브라함을 이삭과 함께 장사 지냈고,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12살때에 이삭을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쫓겨나서 집도 없이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유년기를 슬프고 어둡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던것 같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느바욧의 이름의 뜻은 높은곳이라는 뜻입니다. 미스바는 듣다는 뜻입니다. 압브엘은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가 많은 슬픔을 겪었지만 그가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때에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그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2절에서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라고 다시 언급됩니다. 이는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손이 아니라 육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다른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식 열두 아들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의 후예는 유목민이고 촌과 부락에서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예는 아라비아 지역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이스마엘의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 주변에서 살았기에 지속적으로 긴장관계를 서로 형성합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은 많은 번성을 이룹니다. 이삭은 이 당시에 단 하나의 자손도 없었습니다. 창세기 25장 후반에 보면 에서가 장자권을 팥죽과 바꿉니다. 육에 속한 번성과 하나님의 영적인 번영의 차이를 이 말씀들을 통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에 속한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약속의 가치의 대비가 있습니다.
또 이스마엘이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구절은 그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살아갔음을 잠시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생각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아브라함에 이어서 하갈이 죽고 또 이스마엘이 죽습니다.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보편으로 가는 죽음의 길을 갔다는 표현입니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었습니다. 그 시대로 보면 상당히 단명한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하지 않아서 이스마엘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와 하갈과 사라를 대조해서 말씀하고 이스마엘과 이삭을 대조해서 말씀합니다. 육신과 은혜의 차이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육신의 생각을 그들이 자기 삶에 받아들였을 때에 그것은 두고두고 큰 아픈 역사를 낳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얼마나 강합니까?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했을 때에 그를 단번에 쫒아낸 것은 영과 육이 공존할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후대를 교훈하기 위한 하나의 큰 그림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25장에 왜 아브라함의 후처의 자손에 대한 언급이 가장 먼저 나오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말하자면 이스마엘이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합니다. 높은 순위대로 말하자면 정실, 그 다음에 후처, 그리고 첩입니다. 하갈은 계속해서 사라의 여종으로 나옵니다. 중요도로 치면 그두라의 후손들은 별 큰 의미가 없고(4절), 그 다음에 하갈의 후손들이 조금 영향을 끼치고(12절), 가장 중요한 리브가의 후손들이 언급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19절)  
9절에 이삭과 이스마엘에 언급됩니다. 이 둘이 아브라함을 장사하는 것이 언급되는데, 그두라의 자손들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둘이 언급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자유한 자의 아들과 계집종에게서 난 아들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갈라디아서) 언급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19절부터는 중심인물이 될 이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9-21절까지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9절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지는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20절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삭의 신부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리브가도 사라처럼 임신하지 못합니다. 이를 볼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삭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간절히 부르짖다, 끈질기게 매달리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삭이 20년간 하나님께 간정히 매달리며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이와같이 기도해야 하며, 이 기도가 믿음의 기도여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11절까지 아브라함에 대한 언급이 마무리됩니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라는 내용이 물리적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1장 마지막에 언급된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로 시작된 내용이 25장 11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가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 기록되기 전에 삽입구처럼 12-18절까지 이스마엘에 대한 생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겨난 이스마엘을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그의 족보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이 둘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아버지의 죽음 때에 만났습니다. 아마도 이 둘은 그때 만나서 이스마엘에게 그의 이야기를 이삭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12-18절에 기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형제님들께서 언급해 주셨는데요. 이스마엘의 후예는 보기에 매우 강성합니다. 그런데 이어는 이삭의 후예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바로 후예를 얻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삭은 1세, 이스마엘은 14세입니다. 이삭이 40세일때, 이스마엘은 54세, 아브라함은 140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직도 35세나 더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20년간 이삭은 자녀가 없을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은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없었던 기간과 맞먹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이스마엘에게는 이미 열두 아들이 있었을수 있고 아들을 낳고 있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나이 60세에 쌍둥이가 태어나고 아브라함의 나이는 160세입니다. 이스마엘은74세입니다. 아브라함은 15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굉장히 더딘것처럼 보입니다. 저희들은 눈앞에 펼쳐진 것들만 보고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미 이뤄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바로 이뤄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삭과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저희들이 교훈을 받는 면이 있습니다. 늙은 종의 기도는 바로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너무나 확실한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에는 많은 시간을 두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이 저희들에게 필요함을 이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배우는것 같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21절을 간략하게 교제하고자 합니다. 이삭이 40세에 결혼하고 20년 후에 야곱과 에서가 태어납니다. 그래서 이삭이 20년의 시간동안 기도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삭은 눈에 띄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사람의 방법을 이삭은 취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하갈을 취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매달리는 가운데 기도합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긴 기간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이삭과 리브가가 기도를 배워가며,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배워가는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경건한 자가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기도할 때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전의석 형제님 : 이스마엘의 자손 중에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합니다. 이스마엘을 신분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수 없을 것입니다. 에서의 가나안 헷 족속의 아내들을 이삭과 리브가가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취함으로 이삭과 리브가를 만족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딸의 이름은 마할랏입니다. 그이름의 뜻은 '용서'라고 합니다. 이스마엘은 그 땅에서 쫓겨났지만 그의 딸은 그 약속의 땅으로 다시 되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성경을 읽을때에 이스마엘이 주는 상징과 그 본인의 삶은 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죽을 때에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구절을 하나님 앞에서 그가 어떤 자였는지에 대해서 구분해서 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